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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03:21-31 새 인류_믿음의 법(원리)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면 희망은 없는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복음 곧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믿음의 법(원리)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랑할 수 없고, 이 원리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믿음의 법은 율법을 굳게 세웁니다.


# 한 줄 묵상 :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행위 보응의 원리)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믿음의 법(원리)으로 되는 것입니다.


# 1:18-3:30까지 율법(행위 보응의 법(원리))아래 있는 옛 인류 곧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 죄 아래에 있어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실존(옛 인류)을 설명하고, 이어서 3:21-11:36까지는 1:16-17에서 언급된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언약에 신실한 하나님의 은혜, 자비, 사랑)가 믿음의 법(원리)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창조(의롭게 된)된 인간의 실존(새 인류)을 새 사람(칭의와 성화), 새 이스라엘의 모습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03:21-11:36 논지> 새 인류

 ㅇ 03:21-08:39 새 사람

      - 03:21-04:25 칭의(주장3:21-26/ Q&A3:27-4:15/ 정리4:16-25)

      - 05:01-08:39 성화(논지5:1-21/ Q&A6-7장/ 정리8:1-39)

 ㅇ 09:01-11:36 새 이스라엘(도입9:1-5/ Q&A:9:6-11:32/ 정리11:33-36)


<03:21-04:25 논지> 칭의

 ㅇ 03:21-26 [주장] : 믿음의 법(원리)으로 의롭게 된다

      - 03:21-22 예수로 말미암는 방법

      - 03:23-26 방법에 대한 설명(23-24 사람의 입장에서, 25-26 하나님의 입장에서 설명)

 ㅇ 03:27-04:15 [Q&A] 3 가지

       - 03:27-28 = 04:01-08 자랑할 수 있는가?

       - 03:29-30 = 04:09-12 이방인이 포함 되는가?

       - 03:31 = 04:13-15 율법의 기능은 무엇인가?

 ㅇ 04:16-25 [정리] : 믿음의 법(원리)으로 의롭게 된다


21-22절 하나님의 의가 예수 사건으로 나타납니다.

1:18-3:20까지의 결론은 모든 인간은 행위 보응의 원리(율법)로 보면 심판 아래에 있기에 희망이 없다. 그런데 (이미 구약 성경을 통해 증거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1:16-17).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또는 예수 사건)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은혜, 자비, 신실하심, 사랑)로서 차별이 없다. - 3:27-31에 언급하고 있는 자랑, 이방인(차별, 모든), 율법의 문제가 다 언급되고 있습니다.  

*

# 1:17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의가 어떻게 나타난 것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의는 신학적으로는 언약적인 신실함의 의미인데 결국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사랑의 의미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행위 보응의 원리(법; 3:27)로는 인간은 죄아래, 심판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해결책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율법과 선지자 곧 구약성경을 통해서 이미 증거된 것이라고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가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22절에서 설명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것으로 차별이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라고 번역된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신실함)’으로도 번역이 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더불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의 헬라어 원문에는 ‘믿음’이라는 단어가 전치사의 유무에 따라 세 가지 용법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각 ‘믿음’, ‘믿음으로 인하여(인한)=믿음이 법(원리)에 대한 환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예수 사건에 대한 환유)’로 번역될 수 있는 표현입니다.

# 그런데 3:22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라는 표현은 문맥과 정황상 어색한 표현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서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지금 이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의를 표현함에 있어서 우리가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을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불의한 인간, 하나님을 떠난 인간 곧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는 인간이 스스로 믿음을 가질 수도 의를 얻을 수도 없는데 어떻게 예수를 믿어서 바로 의를 얻는다고 하는 것은 3:20까지 말한 인간의 실존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인간 스스로 가질 수 없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주시는 하나님의 의 또는 은혜가 나타나고 그런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능력이 우리에게 작용되어야 그제서야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그리고 하나님을 만왕의 왕으로 믿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우리의 믿음이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신실함)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의를 따라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이 땅에서 이루신 모든 사역들과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 그리고 성령을 보내시는 사건까지를 다 포함하는 예수님의  신실하심을 말합니다. 이러한 소위 예수님의 속량하신(23절) 모든 사역들을 통틀어 ‘예수 사건’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며 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신실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예수 사건을 통해서 모든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의가 미치게 된 것이며 이는 누구든 차별이 없습니다. 특히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 또는 구원이 필요한 이유는 1:18-3:20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의를 드러내셔서 오래전 약속하신 뜻을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셔서 우리를 하나님을 믿는 새 인류(새 사람, 새 피조물, 새 백성, 새 이스라엘)로 재창조(거듭남,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을 얻어서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이루고 전하는 새 인류 새 백성 새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통틀어서 믿음의 법(3:27)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


23-26절 하나님의 의(은혜)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제 믿음의 법에 대하여 사람의 입장(23-24)과 하나님의 입장(25-26절)에서 다시 설명하고 있습니다.

*

# 23-24절에서는 먼저 사람의 입장에서 설명합니다. 먼저 1:18-3:20까지의 내용을 요약하는 표현으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라는 인간의 실존을 표현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곧 예수 사건 =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표현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 역시 예수님의 믿음(신실함)을 말하는 예수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졌기에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득의 得義) 곧 의인이 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한문으로 표현하면 이은득의(以恩得義)라 하겠습니다.

# 25-26절에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믿음의 법을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피(죽음), 믿음, 화목제물(속죄소)로 세우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죄에 대해 진노하시지만 즉각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오래 참으셨습니다. 하지만 죄에 대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묵인할 수 없었기에 마침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예수님을 대속 제물로 세우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마침내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고, 예수님의 믿음(신실함=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예수 사건으로 말미암아 믿는자가 되었고 그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것입니다. 참고로 25절에 있는 ‘믿음’ 역시 우리가 예수를 믿는 믿음이 아니라 피와 대속제물 모두 예수님의 피와 제물이기에 예수님의 믿음(신실함=예수 사건)이 더 적절한 해석입니다. 이 세 가지 것은 모두 다 ‘예수 사건’을 의미하는 환유적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모든 사람이 범한 죄는 곧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으며,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죄로 대표됩니다. 그런 불의함의 결말은 결국 심판이며 멸망입니다. 이러한 실존과 심판에서 인간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인간이 치룰 수 없는 최고의 값 곧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치루시고 죄인된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그 사랑과 그 은혜와 그 의가 우리를 하나님을 알고 믿고 따르는 참 인간, 참 삶을 가능케 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오래 참으심의 사랑과, 공의로우심과, 아들을 내어 주시는 사랑과, 의로우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27-31절 믿음의 법(원리)앞에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 곧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법(믿음의 법)을 통해 우리가 득의(의롭다 함을 얻음)하게 되었으니 우리는 자랑할 수 없습니다. 이는 율법(행위 보응의 원리)이 아니라 믿음의 법(원리)으로된 것이며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도 동일하게 믿음의 법(원리)으로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 그런다고 율법을 파기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더 굳게 세우게 됩니다.

*

3:21-26까지 세번에 걸쳐 ‘믿음의 법’에 대해서 설명한 후에 제기 되는 세 가지 의문에 대해서 답변하고 있습니다.

# 첫째 의문은 우리가 자랑할 데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득의(得義) 것이 행위(율법 또는 행위 보응의 원리)가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3:27)’으로 된 것이라고 요약합니다. 다시한번 28절에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행위 보응의 원리)가 아니라 믿음(의 법)으로 되는줄 인정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다시 4:1-8에서 아브라함의 예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 둘째 의문은 유대인(할례자)만 믿음의 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것이냐?는 것입니다. 진실로 이방인(무할례자)도 믿음의 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신다고 말합니다. 같은 하나님께서 같은 방법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을 의롭다 하시기에 구약과 신약,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같은 방법 곧 믿음의 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4:9-12에서 다시 설명하고 있습니다.

# 셋째 의문은 그렇다면 율법은 파기되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그럴 수 없다고 말합니다. 도리어 율법을 더 굳게 세우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는 율법의 기능에 대한 문제로서 어떻게 율법을 더 굳게 세우는 것인지는 4:13-15, 7장 등에서 그리고 이후 계속 율법의 기능을 설명합니다.

*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앞에, 믿음의 법으로 우리를 하나님을 믿는 새 백성으로 새 인류로 거듭나게 하신 그 사랑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겸손히 그 은혜를 수용하고 새롭게 된 뜻을 따라 감사하므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이 의롭다 함을 얻는 것 곧 구원을 얻는 방법은 구약과 신약,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동일합니다. 모두 믿음의 법을 통해 의롭다 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구약성경 또는 행위 보응의 원리)을 파기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요구(원리)를 더 굳게 세우는 것입니다.


# 율법에 대한 용례는 모세오경, 구약성경, 원리, 법(체계), 하나의 법(a law), 믿음의 법, 모세의 율법, 행위 보응의 원리(법) 등으로 쓰이기에 이 중에서 어떤 용례로 쓰였는지 문맥을 따라 파악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이러한 용례를 무시하게 되면 율법을 해석할 때 보통은 율법주의라고 쓰고 행위구원론으로만 해석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새관점의 논의는 언약적 신율주의라고 해서 유대인들의 율법에 대한 이해는 행위 구원 즉 율법을 지켜서 구원얻는 것이 아닌 이미 택한 선민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의 표지로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율법주의(공로주의, 행위구원론, 또는 형식주의?)나 언약적 신율주의 모두 율법에 대한 바울의 표현을 한 부분만 강조한 것입니다. 로마서에서는 다양한 용례로 쓰이는데 주로 율법주의나 언약적 신율주의를 포함하여 ‘살리는 율법주의’로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유대인들이 이 율법을 자신들을 살려주는 법으로 이해했다고 갈라디아서에서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갈 3: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 기도

신실하신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신실함과 속량하심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그 놀라우신 은혜를 또한 감사합니다.

오래 참으심과 사랑과 공의를 이루사

마침내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미치게 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새 백성 되게 하심도 감사드립니다.

그러므로 자랑치 않고 교만하지 않으며

겸손히 믿음으로 살게 하옵시며

모든 인류의 하나님, 모든 민족의 왕되심을

땅 끝까지 전파하길 원하오며

더욱 율법의 요구들을 굳게 세우신 뜻을 깨달아

말씀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뜻을 잘 분별하여

말씀을 맡은 자로서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며

우리 주님께 영광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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