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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03:01-20 옛 인류_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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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을 가진 유대인들이 문제가 있지만 그들에게 유익도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유대인의 문제는 하나님이 아니라 유대인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줍니다. 이어서 결국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든 사람들이 죄 아래 있음을 성경의 근거 통해 밝히고,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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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줄 묵상 : 불의함은 우리의 죄악이요 모든 인류는 죄와 심판 아래에 있는 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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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진노가 유기와 최종심판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유대인과 율법의 관계에 대한 의문에 답하고 결국 모든 인간은 죄인이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실존임을 밝히며 옛 인류에 대한 상태에 대한 말씀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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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3:20 논지> 옛 인류

  • 1:18-2:16 (논지)에서 논제인 율법을 제시하고, 

  • 2:17-3:8 (Q&A)에서는 질문과 답변을 한 후에 

  • 3:9-20 (정리)에서 1:18~3:8까지의 내용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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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이해

1-8절은 두 가지 의문을 더 다룹니다. 하나는 유대인에게 이로움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1-2절). 바울은 이로움이 있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점이 그 대표적 예라고 밝힙니다(2절). 또 하나의 문제는 인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3-8절). 인간의 불의가 결국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기에 인간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논리입니다(5절). 하지만 바울은 인간의 거짓됨이 문제이고 하나님은 참되시고 신실하시다고 밝힙니다(3-4절). 따라서 악을 행하여 하나님의 선함을 드러나게 하자는 논리는 적절치 않고(7-8절), 하나님께서 공평하게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점이 받아들여져야 합니다(6절). 결국 바울은 9-20절에서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는다는 최종 결론을 냅니다.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다는 대 선언으로 시작해서(9절), 구약성경의 증언으로 이를 뒷받침합니다(10-18절). 의로운 자가 없고(10절),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으며(11절), 선을 행하는 자도 없습니다(12절). 악한 말과 저주를 하며(13-14절), 악한 행동을 일삼습니다(15-18절). 따라서 율법에 비추어 보면 모든 사람은 죄를 깨닫게 되어(20절), 하나님의 최종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19절).

☞ Tip

3:2 ‘맡다’라는 말의 원어(피스튜오)는 ‘믿다’라는 말로 보통 번역되는 단어이다.

3:19-20 ‘율법’은 ‘모세 율법’이란 개념을 가지고 ‘구약성경’을 가리키거나 ‘하나님께서 세상을 판단하고 다스리시는 원리’를 가리키고 있다. 이 원리는 2:6-11에 나타난 ‘행위 보응의 원리’와 연결되어 있다. 2:12-15에서는 율법이 이 원리를 가장 잘 반영한 것으로 제시 되었다(제유법).

3:20 ‘그러므로’로 번역된 헬라어 ‘디오티’ 라는 단어는 결론보다는 근거를 제시하는 접속사이다. 따라서 ‘그러므로’라고 번역하기보다 ‘왜냐하면’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낫다(NRSV, ‘for’). ‘왜냐하면’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논의의 초점은 3:20에 있기보다 3:19에 있게 된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다는 것이 바울의 결론이다. 이 결론은 2:1-16의 핵심 주장과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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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절 말씀을 맡은 자의 참된 유익은 그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라는 것과 할례는 하나님의 택함과 언약을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이 있었음에도 유대인이 죄를 범했다면 유대인은 할례를 행하는 것들이 아무런 유익이 없는가? 하는 질문에 그렇지 않고 유익이 많으며 무엇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이 유익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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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례는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구별된 이들이라는 상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행하는 것과 외식만으로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 죄라고 하는 사실을 알게 되니 유대인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없는가? 하는 질문이 나오게 됩니다. 이에 바울사도는 ‘말씀을 맡은 것’이 유익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맡았다’는 것은 단순하게 소유하는 것만을 말하기 보다는 그 어원이 ‘믿는다’는 말로 변역되는 단어입니다(이어서 나오는 3절의 ‘믿지 않는다’와 어근이 동일합니다). 결국 유대인들 중에서도 믿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과 주신 말씀을 통해 믿는 자가 있다는 사실이 유익이라고 말합니다. 2절의 ‘범사에 많다’가 유익이 많은 것인지, 믿는 자가 많은 것인지 불분명하지만 중요한 것은 유대인이 말씀을 맡은 것(믿는 것)이 유익이라고 말하며 이것이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이 아님을 먼저 밝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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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믿을 바에야, 그렇게 교회를 다닐바에야, 그렇게 묵상하고 살 바에야.. 안믿는 것이 낫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다니고 묵상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도 없고, 돌이킬 기회도 없으며, 우리가 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과 교정할 수 있는 기회는 더욱 멀어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나마 지금 이 말씀을 묵상하고, 가끔이라도 주의 말씀을 접할 수 있는 것이라도 한가닥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고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할 수만 있는대로 우리는 말씀을 전하고 나누고 또 자신과 잃어버린 이들을 향하여 지속적으로 이 말씀을 믿는자로, 맡은자로서 나누고 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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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절 사람은 다 거짓되고 하나님은 참되십니다. 

유대인 가운데 어떤 자들이 믿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하나님의 신실하심(미쁘심)에 문제가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두번째 질문을 던집니다. 바울은 강하게 그럴수 없다고 말하면서 사람이 거짓된 것이지 하나님은 신실하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낸다면 죄를 더 지으면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드러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그래서 더 악을 행해야 하는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 더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불의하지 않기에 온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으며, 인간의 불의함이 심판을 자초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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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자들이 믿지 않았다’는 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인정했지만 그들의 삶이 온전하지 못하였음을 말합니다. 그것은 온전한 믿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미 롬 2:17-19에서 언급된 엉터리로 믿는 자들과 동일합니다). 언약사를 보면 하나님과 인간(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을 파기한 것은 항상 인간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인간의 언약 파기행위에도 불구하고 언약을 파기하지 않으시고 계속 갱신하셔서 끝까지 그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서 오래참으시며 끝가지 신실하게 일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의(언약에 신실하심)가 드러난 것입니다. 불의한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하여 적반하장으로 하나님이 불의한 것 아니냐 할 수 있으나 이는 결코 그럴 수 없고,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드러나게 죄를 더 짓고 악을 더 행하는 것은 더욱 망령된 행동으로 정죄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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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한 인간은 스스로 범한 죄에 대하여 늘 핑계합니다. 급기야 그 핑계는 신실하신 하나님에게까지 책임을 묻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유대인 뿐 아니라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신앙의 능력들을 잃어버리고 나태하고 안일하게 살아가며, 무엇보다 믿음과 행함이 일치되지 않은 삶에 대하여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하거나, 바빠서 그런다고 하거나, 누구 때문에, 무엇때문에, 환경 때문에 그렇다고 하는 등등의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자신의 죄를 타인에게 전가하고 핑계하는 죄악의 깊은 습성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더 드러난다고 더 죄를 짓고 악을 행하는 일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의로우심과 은혜에 대한 심각한 도적이며 배은하고 망덕한 일입니다. 지금 나의 불신앙과 죄악을 온갖 핑계로 정당하 하고 있진 않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끝까지 지를 회개하지 않으면 정죄가 따르고 결국 죄의 지배를 당하고 심판아래 놓일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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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8절 모든 사람은 죄 아래 있습니다. 

유대인이 문제라면 헬라인(이방인)인 우리는 괜찮은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다 죄 아래에 있습니다. 이어서 구약에 기록된 죄악에 대하여 나열합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돌아선 마음(10-12절; 하나님에 대한 범죄), 진리를 싫어하고 타인을 죽이는 언행(13-14절; 말의 범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다툼을 일으키고 관계를 파괴하는 행동(15-18절; 이웃에 대한 범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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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한 인간, 하나님을 떠난 인간,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하나님 아닌 우상을 섬기는 이들은 모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죄아래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스스로 하나님을 찾지 않고 불의한 일을 자행 하면서 자신 뿐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도 파괴합니다. 결국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자신과 이웃과 모든 것들과의 관계가 파괴된 채 죄의 능력 아래에 살고 있어 스스로 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죄인된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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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의인으로 믿음으로 산다고 하는데 또다시 이러한 죄의 목록들이 낯설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부지런히 주를 찾거나 주의 뜻을 깨닫는 일에 무관심하고, 헛된 일에 치우쳐 있고 무익한 일에 열심이며, 주의 뜻을 이루는 선한 일을 행하는 일에 관심도 필요도 열심도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마음에 품은 것이 결국 말로 드러날 뿐인데 그 말은 생명을 살리고 진리를 전하고 온전케하고 화평케 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무덤처럼 더럽고 속이고 상처를 주고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니 어찌합니까? 성경에는 혀와 말로 지은 수많은 죄악에 대해 언급됩니다. 이웃과의 관계에서는 살인과 파멸과 고생의 길로 평강의 길로 행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행동들은 결국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지도 믿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 죄의 지배아래 놓인 인간의 실존입니다. 이러한 모든 행위에 대해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그 날에 결국 심판받게 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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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절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율법(구약성경)이 말하는 바는 율법(행위 보응의 원리)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죄인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19절). 왜냐하면 율법의 행위(행위 보응의 원리)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도 스스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습니다. 율법은 결국 우리의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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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18에서부터 제기한 논제인 인간이 하나님이 진노 아래에 놓인 원인과 결과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결국 성경이 말하는 대로 하나님을 떠난 불의한 인간은 모두다 죄 아래에 있고 결국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율법 그 자체를 소유하는 것만으로, 아는 것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고, 그 율법의 요구(2:26에서 율법의 규례로 번역된 표현은 ‘요구’가 더 적절하다)를 다 지킬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곤궁한 처지에 있는 것입니다. 다른 부분에서 이러한 불의한 인간의 실존을 살 길도 소망도 없는 사망의 종노릇 하는 상태로도 표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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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한대로 심판받기에 불의한 인간은 누구도 스스로 의를 얻을 수 없습니다. 죄 아래 놓인 인간의 실존과 최종 상태가 심판 아래에 놓인 것을 말합니다. 이제 새롭고 산 길,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이 드러나는 은혜가 아니면 인간은 이대로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날마다 말씀 앞에서 우리의 언행심사를 돌이켜 보면서 우리가 바른 길로 행하고 있는지, 바르게 믿고 있는지, 바르게 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죄악을 깨닫게 되거든 우리가 이러한 죄에서 벗어나 살 길은 우리 주님이 내어 주신 새롭고 산 길이 유일한 생명의 길, 의의 길임을 알고 그 은혜(믿음 또는 신실함)로 우리가 살 수 있음을 날마다 깨닫고 감사하며 의의 길로 행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말씀앞에서 나는 죄인이며 나의 사는 길은 오직 믿음으로(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것을 믿고 순종하는 믿음)살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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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신실하신 하나님, 

우리에게 말씀을 주사 믿음으로 살게 하신 주님

택하심에 감사드리며, 믿음 주심도 감사합니다. 

주의 뜻을 오해하고 불의한 일을 행하지 않게 하옵시며

온전치 못한 행실로 주의 이름에 영광 가리지 않게 하옵소서. 

이전에 우리가 죄아래 살던 모든 습관을 버리고

우리의 언행심사가 온전하고 거룩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경외하여 의인의 삶을 살고, 

주의 뜻을 부지런히 상고하며

주를 찾고 선을 행하며 살리는 말을 하고

평강의 길로 행하는 성도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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