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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01-16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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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습니다. 아침 일찍 부터 오후 늦게까지 품꾼을 포도원에 들여보내 약속대로 한 데나리온씩 받게 합니다. 그러나 이를 불평하며 악하다 하는 이들에게 집주인은 내 것을 가지고 내뜻대로 하는 것이라 하고 이와 같이 나중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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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국은 집주인과 같다는 말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국임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왕되신 주님, 그분의 통치, 왕권이 하나님나라 그 자체입니다. 그러니 어디고 가고 오고, 들어가고 말고 하는 장소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함께하시면,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그의 통치 안에 그분의 임재 안에 있으면 그는 이미 천국에서, 천국과 함께, 천국을 순종으로 누리며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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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절 천국은 모든 이들에게 약속되고 필요한 나라입니다. 

포도원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부터 나간 집 주인은 한 데나리온식 약속하며 들여보냅니다. 오전에도 오후에도 심지어 마감 한시간 전까지도 놀고 있는 품군을 포도원에 들어가도록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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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로마의 세금과 이를 갈취하는 부패한 관료들로 인해 백성들은 궁핍한 중에 있고 여기에 흉년까지 겹치니 전토를 저당 잡히거나 잃고, 하루벌어 하루사는 것같은 피폐한 이들이 많아집니다. 게을러서도 아니고 악해서도 아니며 순전히 탐욕스런 이들의 전횡으로 말미암아 착취당한 이들의 보편적인 삶이면서, 이는 곧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의 실존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인간, 그래서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시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하루살이같은 인간의 실존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사람을 상징하는 이들이 이 품꾼들입니다. 이들에게는 가장 기본적으로 한 데나리온의 품삯이 있어야 자신도 그리고 가족도 부양할 수 있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품꾼으로 써주는 이들이 없기에 이들은 종일토록 귀가하지 못하고 놀고 있습니다. 그런 시간까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일을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견디고 그대로 하루를 보내고 밤을 맞으면 자신을 비롯하여 가족들의 생계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절박한 이들입니다. 바로 그런 이들을 아침 일찍부터 오후 늦게까지 찾아서 포도원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집주인의 긍휼이 천국의 주인과 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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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품꾼으로 택함을 받은 이들이나 오후 늦게 품꾼으로 택함 받은 이들 모두 한 데나리온의 품삯이 필요한 이들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에게도 한 데나리온 같은 구원과 천국의 생명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절실함을 절감하고 있는 이들과 깨닫지 못하는 이들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생명을 얻는 길로 갈 수 있는 자격과 조건은 아무에게도 스스로 만들거나 채울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를 품꾼으로 택하고 세워주시는 집 주인같은 주님이 계셔야만 가능합니다. 

지금 천국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먼저 믿든 나중에 믿든지 모두다 집주인의 은혜로 말미암아 천국의 품꾼으로 택함 받아 살고 있는 이들입니다. 자격없는 우리를 품꾼으로 삼아 천국의 일꾼과 백성으로 삼아 주신 것은 전적으로 신실하신 우리 주님의 선택과 예정과 은혜와 사랑으로 인함입니다. 우리게 필요한 것은 누구보다 잘 아시고, 또한 아실뿐 아니라 살 길을 열어 자격여부를 따지지 아니하시고 천국으로 초청하시고 일꾼과 백성 삼아주신 주 앞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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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0절 천국은 모두에게 공평한 나라입니다. 

저물어 포도원 주인이 나중 온 자로부터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약속대로 한 데나리온씩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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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원 주인은 약속대로 한 데나리온씩 주되 먼저 온 자나 나중 온자의 일을 열심히 하고 많이 하고 잘하고를 따지지 아니하고 동일하게 삯을 주라고 명령합니다. 하지만 먼저 온 자들은 나중 온 자들보다 더 받을 줄 알았지만 주인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구약 선지서에서 하나님나라에 대한 이상을 말할 때 자주 등자하는 단어가 ‘공평(미쉬파트)’과 ‘정의(체다카)’라는 단어입니다. 정의라는 말은 여러가지로 정의할 수 있지만 일한 만큼의 대우를 제대로 받는 사회, 소외된 이들을 잘 챙겨주는 사회 정도라 할 수 있습니다. 공평이라는 말은 획일적이고 일률적으로 분배하고 나누는 것이 아니라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현하며 많이 가진 이들은 많이 나누고, 많이 필요한 이들에게는 그만큼 많이 채워주는 곳을 통해서 모든 이들이 평균케 하는 기본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있는 것 안에서 자족하는 것과 동시에 필요 이상을 소유할 때 그것을 기꺼이 이웃을 위해 나눌 수 있는 마음이라야 이것이 실현될 수 있지만 만일 누구 하나라도 탐욕을 따라 자신의 소유를 나누지 못한다면 공평과 정의가 실현되기는 어렵습니다. 

집 주인은 한 데나리온이 필요한 모든 이들이 그들의 일의 성과와 능력의 고저대소(高低大少)를 따지지 않고 필요한 만큼 약속한 것을 주고 있습니다. 많이 일했다고 더 많이 받은 것도 아니고, 적게 했다고 해서 적게 받은 것이 아닙니다. 생산은 차이가 있지만 그들이 받은 것은 모두가 기본적으로 살 수 있는 것을 일한 것보다 훨씬 더 받아 넉넉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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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는 이렇게 보편적이며 동일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서 반응하는 이들이 많이 용서 받은 이들은 더 많이 감사하지만, 자칭 의인이라 하면서 자신은 용서 받을 것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그 은혜가 그렇게 깊이 절감되지 않을 것입니다. 더더군다나 자신이 그런 은혜를 받을만핝 충분한 자격과 일을 감당했다고 생각하며 받는 이들에게는 이것을 은혜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응당한 대가를 받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렇게 일하지 못한 이들보다는 또 다른 뭔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데까지 욕심을 부리게 될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문제가 생기고 결국 교만이 싹트게 됩니다. 자신은 노동의 대가로 즉 열심히 믿는 대가로 구원에 더해 또 다른 선물이 있을 거라 기대하는 마음도 갖고 더불어 그렇게 일하지 않은 이들은 당연히 차별을 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마음의 끝은 교만의 끝으로 결국 주인을 향하여 불만과 불평 급기야 정죄하면서 어느새 자신이 주인의 권위를 거역하는 데까지 가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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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6절 천국은 주님의 뜻과 은혜로 세워지는 나라입니다. 

일찍 품꾼이 되어 일한 이들이 주인을 원망하기에 이릅니다. 그것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것을 자족하는 것이 아니라 왜 자격없는 이들을 자신들과 동일하게 대우하느냐는 것입니다. 주인은 자신이 잘못한 것 없이 약속한대로 행했기 때문에 받은 것을 가지고 가라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주인의 것을 가지고 주인 뜻대로 선하게 행한 것을 왜 악하다 하느냐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나중 된 자가 먼저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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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없는 자신에게 주어진 은혜를 망각하고 자신을 품꾼으로 택하고 불러 약속한대로 품삯을 준 주인을 원망하면서 왜 자격없는 다른 이들을 자신과 동일하게 취급하는지에 대한 불평은 결국 배은망덕한 행위입니다. 그리고 시기와 질투로 점철된 행태입니다. 

주인은 약속을 지켰고, 은혜를 베풀었고 모든 이들을 향하여서 공평과 정의를 실현한 것입니다. 그런 그를 향하여 원망하고 악하다 하면서 투정을 부리는 것은 지금 우리의 자화상과 닮아 있습니다. 우리를 자녀로 백성으로 성도로 부르신 은혜를 망각하며서 뭐가 있네 없네 조건을 따지고, 급기야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미움과 다툼과 시기와 질투의 대상으로 보면서 그들을 향해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까지 간섭하려 듭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여전히 자신의 모든 것의 주인이 주님이 아니고, 그의 가치관과 세계관 또한 여전히 이전의 옛 사람의 세상적 관점을 버리지 못한 것일 뿐입니다. 

먼저 된 자든, 나중 된 자이든 하나님의 약속은 동일하게 구원을 베푸십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니 주님의 뜻대로 베푸시고 집행하시며 세워가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뜻을 이뤄가는 것이 선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오히려 주님을 대적하는 것 같은 가치관과 세계관과 삶에 있어서는 결국 허락한 그 나라에서 나중 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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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지금 예루살렘을 오르고 계십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우리 모두를 구원하사 천국 백성으로 삼아 주시고 천국의 일꾼으로 또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도 아니고 열심히 해서도 아닙니다. 철저하게 주님의 일방적인 선택과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며, 그러한 사랑을 우리게 베푸신 것은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으로 말미암아 우리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향하여서도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마음으로, 함께 세워가고 살아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 은혜를 아는 이들은 살아갈수록 겸손하게 은혜에 반응하지만, 잘 모르고 자신의 열심과 믿음으로 되는 것인 줄 알고 사는 이들은 결국 교만하게 되고 붙여주신 연약한 이들을 사랑으로 대하지 못하고 미움 시기 질투의 대상으로 삼다가 결국 자멸하고 맙니다. 이 어리석은 길로 행하지 않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면 우리 모든 소유의 주권이 주님께 있으며,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함을 알게 되고, 우리에게 붙여 주신 이들의 절박한 처지와 곤경에 공감하면서 그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실천하여 천국을 온전히 누리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먼저 된 자가 가져야 할 자세이며, 우리는 모두 먼저 된 것 같으나 나중 된 자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알고 겸손하게 주를 따르는 인생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의 도래에도 불구하고 자칭 먼저 된 이들은 이 선한 주인을 향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심지어 그를 능욕하고 채찍질하고 못박기까지 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이후로 바로 등장합니다. 우리의 천국 백성됨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다시금 깨닫고 강조하고 온전히 알아야 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지금 강조되어야 할 때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넉넉하게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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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우리를 천국의 품꾼으로 삼아주사

약속을 따라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 아버지

택하시고 세워주시며 베푸신 은혜를 인하여 감사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갈 바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

광야에서 길을 헤매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택하사 천국백성으로 일꾼으로 세우시고

잘잘못을 따지지도 일의 성과에 상관없이

필요를 채우시고 생명주시고 복주심을 또한 감사드립니다. 

주신 구원의 크신 은혜를 온전히 알고

자족함과 더불어 주신 사랑을 

작은 자를 향하여 나누고 베풀며 살게 하신 뜻을 기억합니다. 

이웃은 시기와 질투, 정죄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세우고 자라가며 사랑해야 할 대상임을 알고

선하신 주님께 받은 은혜를

아낌없이 나누고 증거하게 하옵소서. 

더욱 겸손히 주를 바라며

나의 모든 소유를 주님의 것으로 고백하고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고 나누며

선하신 주님의 뜻을 이루어

먼저 된 자의 교만에 빠지지 말고

겸손히 주를 따르게 하옵소서. 

*

# 참고글

<이용세 목사님의 글> 포도원 품꾼과 주인의 비유(마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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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인이 품꾼들을 고용하다(1-7)

커다란 포도원을 가진 농장 주인이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사람들을 구하려고 아침 일찍 인력시장에 나갔다. 이 장터에 나온 자들은 일자리를 얻지 못한 자들로 하루하루 절박한 생활을 하며 살고 있었다. 누군가 자신들을 써 주지 않으면 가족이 굶을 수밖에 없는 처지의 사람들이었다. 그 때 한 주인이 이른 아침에 일하기를 기대하며 서성이는 자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고 포도원에서 일하게 했다. 그리고 주인은 제3시(9시)와 6시(12시), 제9시(오후3시)에 나가 일꾼들을 데려와 일하도록 했다. 그리고 제11시(오후 5시)에 또 장터에 나가 보니 아직도 불러주는 이가 없어 놀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그는 끝나기 한 시간밖에 안 남은 시간인데도 그들을 데리고 와 일하도록 했다. 

주인은 왜 이렇게 계속 일꾼을 불러 왔을까? 아침에 한번 일꾼을 쓰면 시간이 지난 뒤에는 일꾼을 쓰지 않는 것이 상례다. 그런데 왜 주인은 이렇게 시차를 두고 그들을 고용한 것일까? 그것은 주인이 어떤 일을 빨리 끝내기 위해 그랬다기보다는 일자리가 없어 낙심하는 자들을 구제하려는 은혜로운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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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인이 임금을 동일하게 주다(8-15) 

어느덧 일이 다 끝나자 주인은 청지기를 시켜 늦게 온 자들부터 품삯을 주기 시작했다. 끝나기 한 시간 전인 11시에 온 자들에게 한 데나리온씩 주었다. 한 시간 일했는데 하루 품삯을 다 준 것이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일찍 온 자들은 은근히 그들보다 더 받을 줄 생각했다. 그런데 주인은 먼저 온 자들에게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 주었다. 이때부터 평화롭던 포도원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한다. 그동안의 감사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주인을 원망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이 비유는 일찍 온 자들의 반응을 통한 주인의 말씀에 초점이 맞추면서 천국의 성격을 드러낸다.

1) 먼저 온 자들이 실망하고 불만스러워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품삯이 적어서가 아니다. 단지 나중 온 자들과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준 것 때문이다. 먼저 온 자들만 있었다면 이런 볼썽사나운 모습은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비교의식 때문이었다. 이들이 포도원에서 필요한 것은 동역의식이었다. 동지의식이었다. 함께하는 의식이다. 한 데나리온씩 함께 받아서 같이 잘 살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인간은 이런 것을 참지 못한다. 자기가 손해 보는 일이 아님에도 남이 잘되는 일을 수용하지 못하는 이 옹졸함은 비교의식에서 비롯된다. 이 비교의식은 경쟁하게 되고 경쟁자는 동역자가 아니라 적이다. 그러면서 그들과의 사이가 괜히 나빠진다. 비교의식은 동역자 관계를 무참히 깨버리고 시기하는 추한 관계로 발전한다. 그렇게 되면 시기하는 대상을 미워할 뿐 아니라 그들을 이롭게 해준 주인도 미워한다. 비교에서 비롯된 시기와 질투는 아름다운 관계를 깨는 주범이다. 가인의 무서운 범죄도 이 부류에 속했다. 이것은 인간의 죄성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비교의식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비결은 하나님의 주권의식이다. 하나님은 각각의 사람들에 대한 계획을 기지고 일하신다. 그리고 각자에게 주님의 뜻대로 보상하신다. 먼저 온 자들이 품삯을 같이 준 것에 대해 거세게 항의할 때 주인의 하는 말을 들어보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14). 그러니까 비교의식이란 기준으로 볼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나와 전혀 무관한 상태에서 그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고, 나 또한 다른 사람들과 무관하게 나에게 주시고자 하는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다. 그러니 남이 잘 된다고 배 아파할 것도 없고, 내가 잘 된다고 우쭐댈 필요도 없다. 나를 불러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보다는 내 이웃이 나와 같이 잘되는 것을 용납 못하는 우리 마음의 왜소함과 그 옹졸함으로 인해 우리의 공동체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갈등을 겪어 왔는가? 

2) 무엇 때문에 먼저 온 자들이 시험에 들었는가? 먼저 온 자들이 이들은 주인에게 감사하면서 일을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주인을 원망하고 있다.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나중 온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11-12). 이들을 시험에 든 것은 공로의식이다. 그들은 아무도 불러주는 자가 없을 때 주인으로부터 부름 받았다. 그들은 처음 포도원에 들어와 주인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열심히 일하는 동안에 자신도 모르게 동기가 점차 변질되어 갔다. '내가 이만큼 일했으니 이런 보상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보상이 자기 기대에 못 미치자 시험에 빠졌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는 이전에 이들이 어떤 상태에 있었던 자였는지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그들은 장터에서 서성이면서 자신을 써주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이런 애처로운 상태에서 그들을 고용해준 것은 주인의 은혜였다. 그리고 주인은 그들에게 약속했던 품삯을 주었다. 주인에겐 전혀 잘못이 없다.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13). 그런데 그들은 주인을 원망하며 따지고 있다. 은혜와 감격은 온데간데없고 불만이 가득하다. 공로의식은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하는 무서운 독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수고와 헌신에 분명히 보상하신다. 그러나 우리의 헌신이 이 땅에서 받을 보상만을 바란다면 이 시험에 빠진다. 그 보상보다 우리는 나 같은 죄인을 택해주셔서 구원 받게 하신 은혜와 나 같은 자를 불러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기회와 여건을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봉사하고 헌신해야 한다. 공로의식이란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은 은혜의식이다. 열심히 일하는 자에게 함정이 있다. 공로의식이다. 이것은 성실성의 함정이다. 은혜의식을 잃으면 공로의식이 생겨 그 열심과 봉사와 헌신으로 어떤 권한을 행세하려 한다.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오래 믿고 열심 있는 자들이다. 공로의식에 빠졌기 때문이다. 공로의식에 사로잡힌 자들은 신앙이 정지되거나 퇴보한다. 은혜가 없으니 신앙이 자랄 리 없고, 하는 일에 감사가 있을 리 없다. 주님은 이런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을 것을 염려하시면서 그 유명한 말씀으로 이 본문을 마무리하셨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되리라"(16, 19:30).

*

3. 주인의 은혜

주인이 나중 온 자에게 한 데나리온을 준 것은 불공평한 것이 아니라 주인의 자비를 드러낸 것이다. 손해를 본 자가 있다면 주인이다. 먼저 온 자들은 아무 피해도 입은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무슨 큰 피해라도 입은 것처럼 말하는 것은 그들이 피해의식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만약 나중 온 자가 먼저 온 자의 가족이라면 그렇게 말하겠는가?

주인이 그들을 부르시는 것은 긍휼의 마음에서 시작한 자비였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던 자들을 불러준 것 자체가 주인의 은혜다. 우리를 불러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주님은 우리가 꼭 필요해서 불러준 것은 아니다. 우리가 불쌍해서 불러주신 것이다. 내가 꼭 필요해서가 아니다. 나에게 상급을 주기 위해 등용해 주신 것뿐이다. 그러니 한량없는 그 은혜에 감지덕지하면서 기쁘게 섬길 일이다. 이런 마음에 천국이 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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