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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0:14-21 새 인류_새 이스라엘_전파된 복음을 거절한 이스라엘

*

유대인이 하나님을 향한 열심은 있었지만 잘못된 성경 해석으로 믿음의 법이 아니라 율법이 자신들을 살려 주는 것이라고 살았습니다. 이에 대한 바른 해석을 통해 결국 구약도 율법이 아닌 믿음의 법을 통해 의(구원)를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이러한 진리의 말씀을 이미 오래전부터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고 불순종했음을 구약 성경의 인용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

# 한 줄 묵상 :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기에 복음이 전파되었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듣지 않고 불순종하여 실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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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1-11:36 논지> 새 인류

  ㅇ 03:21-08:39 새 사람

       - 03:21-04:25 칭의(주장3:21-26/ Q&A3:27-4:15/ 정리4:16-25)

       - 05:01-08:39 성화(논지5:1-21/ Q&A6-7장/ 정리8:1-39)

  ㅇ 09:01-11:36 새 이스라엘(도입9:1-5/ Q&A:9:6-11:32/ 정리11: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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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1장의 문맥 흐름 :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참 이스라엘

1. 도입 : (근심) 이스라엘 민족으로 근심이 있다. (9:1-5)

2. Q&A : 약속과 선택으로 나는 참 이스라엘 - 이스라엘 민족의 문제 (9:6-11:32)

(1) 역사적 약속의 문제 : 약속과 선택으로 나는 참 이스라엘 (9:6-29)

(2) 역사적 현실의 문제 : 이스라엘 민족의 문제와 해결 (9:30-11:32)

     1) 이스라엘 민족의 실패 (9:30-10:21)

     2)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 : 남은 자의 회복 (11:1-32)

          ① 이스라엘 민족의 남은 자 (11:1-10)

          ②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 (11:11-32)

3. 정리 : (찬양) 하나님의 구원 방법으로 하나님을 찬양 (11: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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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4-21의 초점(& 문맥구조) - 복음이 전파되었지만 순종하지 않음이 초점이다. 

1. 1차 설명 : 말씀이 전파되었으나 불순종했다 (10:14-16) - 전파 강조

    1) 그러므로 말씀이 전파되었다 (지식이 주어졌다) (10:14-15)

    2) 그러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다 - 인, 사 53:1을 통해 (10:16)

2. 2차 설명 : 지식이 전파되었으나 불순종했다 (10:17-21) - 불순종 강조

    1) 그러므로 말씀이 전파되었다 - 인, 시 19:4 (10:17-18)

    2) 그러나 불순종했다 - 신 32:21; 사 65:1-2을 통해 (10:19-21)

# 이스라엘은 이미 말씀(복음)이 전파되었는데 그것을 듣지 않았고 심지어 구약을 잘못 해석하고 율법이 생명을 가져다 준다고 믿고 하나님의 의보다 자기 의를 더 세우게 되어 결국 문제가 생긴다. 본문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를 채우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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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이해

(이 부분과 아래 팁은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의 이진섭교수님의 글을 그대로 발췌한 것입니다)

14-21절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길이 전해졌지만, 이스라엘 민족이 결국 불순종의 길을 걸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밝히는데 바울은 구약성경의 여러 본문을 사용합니다. 유사한 이야기를 두 차례 반복하면서 이스라엘의 불순종이 얼마나 분명한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14-16절이 먼저 한번 말하고 있습니다. 믿지 못하는 자를 부를 수 없고, 듣지 못한 자를 믿을 수 없으며, 전하는 자가 없이 들을 수 없고, 보내심을 받지 않으면 전할 수 없습니다(14-15a절). 전하는 자의 발걸음이 아름답다 하였습니다(15b절).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의 말처럼(사 53:1) 모두 이 복음의 소식을 받아들인 것은 아닙니다(16절). 이어지는 17-21절은 다시 반복해서 말합니다. 먼저 앞에서 한 이야기를 짧게 반복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비롯됩니다(17절). 그런데 시편 19:4에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분명히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18절).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분명히 듣고 알았음에도 불순종했습니다(19-21절). 지도자 모세와 이사야 선지자가 한 말과 같습니다(신 32:21; 사 65:1-2).

☞ Tip

10:14-21 이 문단은 전체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을 표현하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문제는 바른 지식을 따르지 않은 점이다(10:5-13). 그들은 말씀을 들을 기회가 주어졌지만 소홀히 여기며 불순종했다(10:14-21). 이 사실을 바울은 두 차례 걸쳐 반복한다(10:14-16; 17-21). 두 번 모두 말씀이 전파된 점과 이스라엘이 불순종한 사실을 말하지만, 차이점이 있다. 첫 번째 문단(14-16절)은 전파된 사실을 좀 더 강조하고, 두 번째 문단(17-21절)은 불순종한 사실을 좀 더 강화한다.

10:14-15 바울의 논리는 ‘보내심’ → ‘전파함’ → ‘들음’ → ‘믿음’ → ‘부름’이란 순서로 진행된다. 하지만 본문(14-15절)은 이 순서를 거꾸로 쓰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10:13의 ‘부르는 자’와 연결하려 하기 때문인 듯 보인다. 10:13은 요엘서 2:32를 인용할 때, ‘부르는 자’의 구원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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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5절 복음을 전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믿는 자를 부르심, 듣는 자가 믿음, 전파하여 들음, 보내어 전파함, <> 믿지 못하면 부를 수 없음, 듣지 못하면 믿을 수 없음, 전파하지 않으면 듣지 못함, 보냄 받지 못하면 들을 수 없음.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발걸음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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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심-전파함-들음-믿음-부름이란 순서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복음의 말씀을 전파했습니다. 선지자와 제사장 그리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을 오해 여러가지 모양으로 곧 꿈과 환상, 기적과 계시, 직접적인 음성과 대면등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스라엘에게 전하셨습니다. 그렇게 불의한 인간을 향해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면 인간은 스스로 그것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특별히 약속과 선택을 통하여 세워 열방의 축복의 통로로 부르셨기에 그들을 향하여 먼저 복음을 전해 주셨지만 이스라엘의 반응은 불순종이었습니다. 

이사야 52:7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 황폐한 이스라엘 땅에 다시 여호와께서 돌아와 이스라엘을 위로하고 구속하여 다스리시게 될 것이라는 복음(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찬양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이스라엘을 향한 특별한 사랑으로 복음을 전해 주셨고 심지어 포로된 이스라엘을 향하여서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이 소식을 전해 주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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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약속과 선택이 누구에게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불의한 인간이 이 복음을 듣게 된데는 전하는 자가 있어야 들을 수 있습니다. 전하는 자 또한 이 복음을 믿는 자여야 합니다. 그런 자를 택하여 부르시고 믿게하고 다시금 복음을 다른 이에게 전하는 축복의 통로로서의 역할을 이스라엘이 하길 원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들을 수 있는 복음을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 가르치고 전파하고 증거하시며 계시해 주셨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신앙에서도 마찬가지 부르심을 따라 잘 듣고 또한 믿었으면 부르시고 믿게 한 그 뜻을 따라 부지런히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전파(가르침과 증거와 전함)하는 것이 주어진 책임입니다. 내가 먼저 말씀을 잘 듣고 보고 배우면서 깨달은 것을 또한 전하고 가르치고 나누길 원합니다. 증거되는 것은 나의 의가 아니라 복음이어야하고 우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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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절 복음에 대한 합당한 반응은 순종입니다. 

이사야 53:1(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을 인용하면서 이스라엘이 복음을 순종하지 않았다고 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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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부르신 것은 그들을 통해 열방이 복(음)을 얻(듣)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축복의 통로는 커녕 이스라엘이 부르시고 전하여 준 복음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 시간이 길어졌고 참으로 오래도록 하나님은 오래참으심과 긍휼하심으로 이스라엘을 향하여 말씀을 맡은 이(예-대-언자)들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듣고 믿어 오직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것을 온전히 믿고 순종했던 이들은 대부분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인들이었고, 이스라엘 가운데서는 소수에 부과했습니다. 결국 나라가 망하여 포로로 끌려가 있는 상태에서도 하나님은 복음을 전해 주셨지만 돌아온 이들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맡았던 이사야의 탄식이 나옵니다. 예언자들의 삶을 보면 극단적인 퍼포먼스까지 행하게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합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싸늘한 거절과 외면 그리고 불순종이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의 반응을 보면서 탄식하면 이사야가 말한 것이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여러가지 모양으로 전해 주신 복음을 끝내 듣지 않고 불순종한 것입니다. 

*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은 특별한 계시인 성경을 통해서 그리고 일반 계시인 여러가지 통로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전해 주십니다. 설교, 책, 성경등의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서도 끊임없이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들을 말씀이 없다 하기 전에 과연 나는 그 말씀을 분별할 능력이 있으며, 또한 이미 들은 말씀에 합당하게 순종으로 반응했는지 돌아봅니다. 복음의 말씀이 설교되고 전파되는 일도 중요하고, 그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도록 잘 듣고 순종하는 이들의 자세도 상호작용으로 중요합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말씀앞에 나아가 주여 말씀하옵소서 제가 듣겠나이다 하는 자세로 듣고, 그 말씀이 그런가하고 상고하고, 그리고 깨닫게 된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아멘하며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할 반응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가 땅에 떨어지거나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도록 잘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지런히 우리가 듣고 보고 믿으며 살게 된 이 생명의 말씀을 나눠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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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18절 믿음은 복음의 말씀을 들어야 생깁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데서부터 생깁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온 땅에, 땅 끝까지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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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는 상대를 잘 알아야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 믿음이 자랍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셔야만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계시된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면 그분의 성품, 계획, 섭리, 능력, 뜻, 마음을 알게 되고,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주님에 대해 신뢰하게 됩니다. 우리가 부지런히 말씀을 묵상해야 하는 이유 그중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부지런히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잘 아는데서부터 나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과 내용이 변화와 성숙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필요할 때만 찾는 하나님, 우리의 욕망을 이뤄 주길 바라는 하나님,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하나님은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니라 욕망의 산물인 우상일 뿐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 결국 하나님 아닌 것들을 만들고 섬기고 만 것입니다. 

[시편 19: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 바울은 이 말씀도 결국 복음으로 재해석합니다. 

마침내 이스라엘이 듣지 않은 그 말씀, 이스라엘을 통해 열방으로 전하려고 했던 그 말씀을 하나님께서 직접 온 땅에 퍼지고 땅끝까지 이르게 하셨습니다. 물론 이러한 역사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지금도 부르시고 또한 보내고 계십니다. 

*

자주 만나야 상대에 대한 애정도 신뢰도 쌓이게 됩니다. 그렇게 마음이 맞아야 함께 또 다른 이들에게 그 사랑을 나눌 수 있게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의 말씀을 듣기 위해 말씀앞에서 듣는 마음을 갖고 임하는 일, 여러가지 모양으로 우리에게 전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잘 분별하여 온전히 순종하는 일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우리 삶의 우선순위에 주님의 말씀의 권위를 두는일등은 복음을 듣고 믿고 순종하는 이들의 가장 기본적인 모습입니다.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우리 아니면 아쉬워서가 아닙니다. 다만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오래참으심과 긍휼하심으로 여전히 우리를 부르시고 말씀의 사람들을 붙이시고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주시고 계시지만 마침내 더이상 우리가 끝내 듣지 않는다면 더이상 그 말씀을 듣고 싶고 보고싶고 순종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날이 올 수 있음을 경각심을 갖고 귀담아 들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의 홍수라고 하지만 그 물이 먹을 물인지 그렇지 않은 물인지 분간도 안되고 분간도 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그만큼 강단도 그리고 들어야 할 성도의 마음도 혼탁해진 때입니다. 과연 말씀을 맡은 우리들, 말씀을 묵상한다고 하는 우리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모습이 낯설지 않음을 본다면 오늘 다시금 조용히 주님앞에 회개하면서 돌이켜 잘 듣겠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

# 19-21절 결국 이스라엘은 복음을 듣고도 불순종했습니다. 

불순종한 이스라엘은 역사 가운데서 분명히 보았습니다. 불순종의 결과 결국 복음이 이스라엘이 아니라 오히려 이방인들(백성 아닌 자, 미련한 백성, 하나님을 찾지 아니한 자, 묻지 아니한 자)에게 전파되어 먼저는 불순종한 이스라엘을 심판하고, 그들이 담대하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알게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불순종하고 불평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서 오래도록 돌아오길 기다리시고 마침내 심판을 위해 불러 모으십니다. 

*

두 번째 이스라엘에 말씀이 전파되어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순종하지 않았다고 이스라엘의 불순종했음을 강조해서 말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었던 유대인들의 지위를 강조하는 호칭입니다. 이 호칭을 써서 ‘알지 못하였느냐’하시면서 그들이 듣고 알고 이해 했지만 결국 순종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32:21]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 

# 이 말씀은 모세의 노래의 일부분입니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말하는 대목입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하여 이방인들을 통해 ‘시기의 원리(11장에서 다루게 됩니다)’를 말씀합니다. 이것은 불순종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극단의 조치입니다. 여기서는 우선 이스라엘의 불순종이 강조됩니다. 모세의 때에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에 대해 불순종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이사야 65:1]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 이사야 본문에서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는 문맥상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바울사도는 이 말씀을 이방인으로 적용하여 해석합니다. 그래서 불순종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찾지도 묻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이방인에게 계시해 주셨고 그들이 순종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반대로 이 말씀을 이사야의 본문대로라면 이스라엘의 불순종 곧 하나님을 찾지 않고 묻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나타나시고 말씀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강조되는 표현으로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결국 두 가지 모두다 이스라엘이 불순종했다는 것이 강조됩니다. 

*

[이사야 65:2]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 21절에서 바울사도는 이 말씀이 ‘이스라엘에 대하여’라고 말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하고 거슬러 말하는 이스라엘에게 종일 손을 벌렸다고 표현합니다. 이 표현이 보호와 심판을 위한 의미를 다 가지고 있기에 불순종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들을 마침내 심판하시기 위해 손을 펴시는 것 두 가지 다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문맥속에서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끝내 불순종하고 거역했다는 것을 강조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실패의 요인들을 계속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듣지 못해서, 몰라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불순종해서 심판을 받는 것이라면 불공정하다고 할 여지가 있겠지만, 하나님은 그런 억울한 이들이 없도록 하시는 분이시며,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더욱 말씀을 듣고 알았음에도 불순종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죄입니다. 그러니 무지하고 미련해서도 안되고 알고도 행치 않아도 안됩니다. 이스라엘은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수없이 듣고 배우고 알았습니다. 하지만 끊이없이 불순종했고 오히려 이방인들이 복음에 합당하게 반응한 일들을 빈번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부지런히 하나님을 찾고 만나고 묻고 순종하며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듣고 아는 말씀도 순종하지 않고 급기야 아예 하나님을 찾거나 묻지도 않고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며 하나님 아닌 것을 섬기고 순종하며 들으며 품으며 살아가는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오래참으심과 사랑은 여전히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기다림이 마침내 행한대로 보응하는 하나님의 심판도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

# 거둠의 기도

말씀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부르시고 말씀을 듣고 믿게 하여 주심 감사하오며

믿은 그 말씀대로 살고 또한 전파하는 사명 주심도 감사합니다. 

이전에 악하던 불순종의 삶에서

이제는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삶으로

변화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날마다 주의 말씀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말씀의 사람, 믿음의 사람, 순종으로 사람 되기 원합니다. 

이 생명의 말씀, 복음의 말씀, 그리스도의 말씀을

땅 끝까지 증거하는 증인으로 부족함 없게 하옵시며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워가는 일에

말씀을 맡은 자로서의 소임을 잘 감당케 하옵소서

오래참으시는 주님의 사랑 앞에서

듣기를 즐거워하며, 순종하기를 또한 기뻐하고

증거하기를 쉬지 않는 거룩하 주의 백성으로

온전히 살게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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