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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09:01-18 새 인류_새 이스라엘_약속과 선택으로 세워지는 이스라엘

*

하나님의 은혜로 새 백성을 세워가는데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가운데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실패한 것에 대해 바울은 슬퍼하면서 참 이스라엘은 약속과 선택을 통해 세워지는 것이며  하나님은 결코 불의하지 않으신 분이심을 모세와 바로를 통해 증거합니다. 

*

# 한 줄 묵상 : 우리가 참(새) 이스라엘로 세워진 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선택에 의한 것이며, 하나님은 결코 불의하지 않으신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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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1-11:36 논지> 새 인류

  ㅇ 03:21-08:39 새 사람

       - 03:21-04:25 칭의(주장3:21-26/ Q&A3:27-4:15/ 정리4:16-25)

       - 05:01-08:39 성화(논지5:1-21/ Q&A6-7장/ 정리8:1-39)

  ㅇ 09:01-11:36 새 이스라엘(도입9:1-5/ Q&A:9:6-11:32/ 정리11: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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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 1~8장과 9-11장의 관계

로마서 1-8장까지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을 설명하면서 옛 인류(1:18-3:20)와 새 인류(3:20-8:39)의 이야기를 율법과 믿음의 법의 대조를 통해 설명하면서, 로마에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바른 복음을 설명했습니다. 이를 통해 바울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의 법이 우리를 살리는 것이며, 결국 이러한 논증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메시아(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해 가는 것입니다. 

이제 9-11장에서는 앞의 논의에 따라 제기되는 이스라엘의 문제 곧 믿음의 법에 의해 약속과 선택을 통해 새 백성(참 이스라엘)이 세워진다면 기존 유대인(이스라엘)은 어떻게 되는 것이며, 율법은 또한 폐기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에 다시한번 답하면서 참 이스라엘이 누구인지에 대해 논증하고 있습니다. 

# 9-11장의 문맥 흐름 :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참 이스라엘

1. 도입 : (근심) 이스라엘 민족으로 근심이 있다. (9:1-5)

2. Q&A : 약속과 선택으로 나는 참 이스라엘 - 이스라엘 민족의 문제 (9:6-11:32)

(1) 역사적 약속의 문제 : 약속과 선택으로 나는 참 이스라엘 (9:6-29)

(2) 역사적 현실의 문제 : 이스라엘 민족의 문제와 해결 (9:30-11:32)

     1) 이스라엘 민족의 실패 (9:30-10:21)

     2)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 : 남은 자의 회복 (11:1-32)

          ① 이스라엘 민족의 남은 자 (11:1-10)

          ②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 (11:11-32)

3. 정리 : (찬양) 하나님의 구원 방법으로 하나님을 찬양 (11:33-36)

  - 9-11장에서는 먼저 이스라엘의 문제를 다룹니다. 언약의 대상이었던 이스라엘 민족이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약속과 선택을 통해 새 이스라엘을 끝까지 만드십니다. 그래서 참 이스라엘은 누구를 가리키는가를 논증을 통해 밝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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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29 문맥구조  역사적 약속의 문제 : 약속과 선택으로 나는 참 이스라엘 (9:6-29)

  (1) 약속과 선택으로 나는 참 이스라엘 (9:6-13)

  (2) 제기 되는 두 가지 질문 (9:14-29)

      1) 질문1 : 하나님의 판단 기준에 문제가 있느냐? 하나님께서 불의하시냐? (9:14-18)

      2) 질문2 : 왜 우리를 책망하시는가? (9: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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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이해

(이 부분과 아래 팁은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의 이진섭교수님의 글을 그대로 발췌한 것입니다)

바울은 9-11장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참 이스라엘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 이스라엘은 혈통으로 나지 않고 하나님의 선택으로 만들어집니다. 바울은 먼저 1-5절에서 이스라엘 민족과 관련된 자신의 근심을 말합니다. 자기 안에 큰 슬픔과 고통이 있는 점을 언급하고(1-2절), 그 근심의 내용이 바로 자기 동족인 이스라엘 민족의 잘못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힙니다(4-5절). 그들을 위해서라면 자기가 저주를 달게 받고 싶을 정도라고 합니다(3절). 이어 바울은 6-12절에서 하나님의 약속과 선택으로 되는 참 이스라엘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잘못된 모습이 곧 하나님의 약속의 폐기를 뜻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합니다(6a절).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참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 아니라(6b절), 약속과 선택으로 참 이스라엘이 되기 때문입니다(7-12절).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약속으로 난 자이고(7-9절), 에서와 야곱 중 야곱이 선택으로 상속자 된 것을 예로 듭니다(10-13절). 14-18절은 이런 주장에 제기될 수 있는 의문을 다룹니다. 마음대로 결정하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지 않느냐 라고 묻고(14절), 출애굽 사건을 예로 들며 하나님이 불의하지 않다고 답합니다(15-18절).

☞ Tip

9:1-5 이 구절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잘못 된 모습에 대한 바울의 근심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 근심은 11:33-36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방법에 대한 드높은 찬양과 극명하게 대조되고 있다.

9:3-5 이 구절들이 ‘이스라엘 민족주의’ 사상을 정당화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바울은 참 이스라엘이 될 기회를 놓친 이스라엘 민족의 안타까움을 유대인의 한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의 진정한 관심은 ‘참 이스라엘’에 있다.

9:6 바울은 여기서 ‘이스라엘’이란 표현을 두 번 사용하는데, 그 의미는 서로 다르다. 첫 번째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고, 두 번째 이스라엘은 ‘참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 의미의 구분은 9-11장 논의에 매우 중요하다.

9:7-13 바울은 여기서 이스라엘 민족이 형성된 원리 두 가지를 제시한다. 그 첫째는 하나님의 약속이고, 둘째는 선택이다. 따라서 진짜 이스라엘 됨은 혈통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약속과 선택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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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절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근심과 고통이 있습니다. 

바울은 양심이 성령안에서 증언하는 자신의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형제 곧 골육의 친척들(이스라엘 민족)이 실패한 것을 말한 것으로, 자신이 비록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지라도 실패한 이스라엘이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오길 바라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스라엘에게 약속과 선택의 복을 주신 그리스도를 찬양받으실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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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던 이스라엘을 향한 모세의 간구를 연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32~34). 4-5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약속과 선택의 특권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양자 됨의 은혜와, 하나님의 임재를 허락하신 영광과, 언약들(아브라함부터 계속 이스라엘의 약속 불이행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갱신해 주시며 선민으로 세워주시겠다는 약속들), 율법을 세우심, 예배(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고 소통할 수 있게 하신 제도), 약속들(여정 속에서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인도하시며 세워가신 수많은 약속들)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이 언약을 온전히 이루실 그리스도께서도 이 약속과 선택의 혈통을 따라 태어나셨습니다. 이러한 은혜를 이미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고 심지어 하나님을 온전히 신앙하지 아니하고 율법이 자신들을 살려준다고 오해하면서 잘못된 신앙 내지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지경에까지 처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민족의 불신앙과 실패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한 것입니다. 

유대교의 골수분자였고, 예수 배척의 앞잡이었뎐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복음을 전하는 과정 가운데서 동족 이스라엘의 반대와 무지 급기야 메시아를 거부하고 실패한 모습 앞에 그의 양심과 성령을 통해 주신 깨달음이 안타까움으로 고통하며 근심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5하). 로마서 전체를 통해서 증거하고자 하는 바,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부인하고 있는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에 대해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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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아 약속과 선택을 통해 새 이스라엘 된 이방인이었던 우리가 받은 특권들(은혜)도 이스라엘 민족이 받은 특권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도 동일한 특권과 그에 합당한 삶과 행동과 믿음이 요구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에 순종하고, 택하심의 뜻을 따라 합당하게 살아가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며 새 이스라엘로서 잘 믿고 살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더불어 여전히 우리 주위에 있는 불신 친지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도 함께 품어야 할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약속과 선택의 은혜를 거절한 이들을 향한 기도가 절실한 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 긍휼의 마음을 품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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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절 참 이스라엘은 약속을 통해 세워집니다. 

믿음의 법을 통해서 참 이스라엘이 세워지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이 폐해진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은 처음부터 약속과 선택을 통해 이스라엘을 세워 오셨다는 사실을 논증합니다. 

먼저 이스라엘에게서 혈통적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다 (참)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씨라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약속(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 그래서 그를 통해 하늘의 별처럼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통해 태어난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이스라엘입니다. 육신의 자녀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로 태어난 씨가 하나님의 자녀(참 이스라엘)이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아브라함과 사라가 계획하여 낳은 이스마엘이라는 아들과 그두라로 말미암은 6명의 자식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들이 아니라 이삭이 약속의 씨라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난 자라야 참 이스라엘이었다는 것을 아브라함 이후의 역사에서 보여줍니다. 특별히 메시아의 계보를 통해서 우리는 혈통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약속을 통해서 이스라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진 것을 보았습니다. 더불어 이 약속의 후손인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불의한 인간을 대속 하셔서 하나님을 믿는 새 백성을 만드신 것입니다. 

*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의 언약 자손인 줄 믿습니다. 아브라함의 혈통을 통해 난 자손이 아니라 믿음의 자손이 된 것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새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약속(에팡겔리아)을 따라 오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약속의 자손이 되었으며 또한 다시 오마 약속하신 그 약속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들 곧 새 이스라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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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3절 참 이스라엘은 또한 택하심(선택)을 통해 세워집니다. 

약속을 통해 이스라엘이 세워졌다는 것은 동시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통해 세워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 예로 이삭의 아내 리브가의 태중에 있는 에서와 야곱 중에서 그들이 산악을 행하기도 전에,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심을 통해서 야곱을 사랑하고 큰 자로 세우셨다는 것을 확인해 줍니다. 

*

먼저 태어난 에서가 아니라 야곱 하나님의 약속의 씨라고 하는 사실을 이미 태어나기 전에 그들이 어떤 선과 악을 행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셨다는 사실을 말하고, 하나님께서  택하심을 따라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고(창 25:23), 야곱은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했다(말 1:2,3)고 말합니다. 왜 야곱을 택하고 에서를 택했는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심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섭리가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의문을 14절 이후에 답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이 폐해지지 않은것은 지금 이스라엘이 잘못되고 실패해도 하나님의 약속과 선택이 폐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약속과 선택에 의해 갈대아 우르에 사는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약속 하셨으며 그에게 한 약속은 훨씬 이전의 약속을 이루신 것이고, 또한 아브라함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이스라엘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계속 갱신하여 하나님은 끝까지 이 약속과 선택을 통해 이스라엘을 세우셨습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오셔서 온전한 이스라엘을 세우셨으며 이제 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예수님을 통해서 새 이스라엘을 세우고 완성해 가시는 것입니다. 약속의 외인이었던 우리들도 바로 이 은혜로 말미암아 새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_ 엡 2:12-13….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_ 엡2:1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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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8절 하나님은 불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선택이 이와 같다면 하나님의 판단 기준에 문제가 있는것 아닌가? 불의한 것 곧 불공평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에 답합니다. 하나님은 금송아지를 숭배해 심판을 받을 상황에서 모세가 중보한 기도에 응답하시면서 자신은 긍휼을 베푸는 하나님이심을 밝히십니다. 그래서 사람이 간절히 원하거나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긍휼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바로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드러내신 것처럼 하나님은 뜻을 따라서 긍휼히 여기시고 완악하게도 하신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불공평하다고 말하기 전에,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 앞에서 잘한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계속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구원하시며 살리려고 하셨을 때에도 이스라엘은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죄에 종노릇하며 불의함 가운데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무엇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은 긍휼하심으로 말하고 행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 지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약속과 선택에 대하여 불공평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바로마저도 하나님은 그의 완악함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통해 돌이킬 기회를 주셨지만 끝내 거절하고 완악함으로 반응했었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이 불공평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

처음 아브라함이 약속과 선택을 따라 세워졌을 때에도 바벨탐 사건 이후 죄악이 관영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신 것입니다. 마치 롬3:21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에도 마찬가지였고, 지금도 여전히 죄와 사망의 종노릇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과 선택을 통한 긍휼을 외면하면서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면서 우리를 지으시고 구원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불공평하다 하고 심지어 통치하시는 하나님 자체를 부인하거나 왜곡하고, 심지어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그리고 스스로 왕이 되어 살아가는 완악함들이 편만해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의 곧 불공평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약속과 선택앞에 우리의 반응은 의문이 아니라 감사와 믿음과 순종으로 반응하는 것이 합당한 길입니다. 약속과 선택은 사람의 노력이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긍휼(자비)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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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약속과 선택의 외인이었던 우리를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아 

새 이스라엘로 삼아주신 그 크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새 백성된 특권과 의무를 기억하고

즐거이 누리고 감당해 갈 수 있길 원하오며

예수님의 그리스도되심을 찬양하고

또한 주님의 통치와 인도와 뜻에 따라

날마다 즐거이 그리고 온전히 순종하길 원합니다. 

아직도 이 은혜에 온전히 거하지 못하는

우리의 이웃과 친지들에게도 

우리에게 베푸셨던 

그 긍휼하심을 베푸시길 간구합니다. 

오늘 약속과 선택으로 말미암아

새 이스라엘 됨과 새 백성됨의 은혜를 기억하고

찬양과 감사와 순종으로 살게 하옵시고,

양자 됨, 영광, 언약, 율법, 예배, 약속들을

우리 삶의 자리에서 

누리고, 증거하고, 감사하고,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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