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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06:01-14 새 인류_새 사람_성화_은혜와 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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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에서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는다고 설명하면서, 율법은 죄를 더하게 하는 것이며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고 했습니다(5:20), 그렇다면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생기는데, 이에 대해서 세례의 그림 언어 통해서 연합 이론으로 그럴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자신을 죄에 드리지 말고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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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줄 묵상 :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죄에 대하여 죽고 새 생명을 얻었으니(득의) 우리 자신을 죄에 드리지 말고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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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장은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아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들(모습)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 로마서 앞 부분에서 인간은 스스로 선을 행할 수 없고, 율법에 비추어 볼 때 죄가 드러나고 사망 선고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 인류를 만드시는 언약을 신실하게 이루시면서 행위 보응의 원리가 아니라 믿음의 법(원리)으로 하나님을 믿는 새 인류(새 이스라엘) 되는 것을 두 가지 각도로 설명했습니다. 3:21-4:25에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의가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아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5-8장은 인간의 입장에서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아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줍니다. 의롭다 함을 얻고 생명을 얻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하나님과 화목하고 영광을 소망하게 됩니다. 결국 이러한 것을 통해서 믿음의 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결국 예수로 생명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논리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계속적으로 율법의 기능에 대한 문제가 드러나게 됩니다. 생명을 주는 것이 믿음의 법이라면 율법의 기능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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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1-11:36 논지> 새 인류

  ㅇ 03:21-08:39 새 사람

       - 03:21-04:25 칭의(주장3:21-26/ Q&A3:27-4:15/ 정리4:16-25)

       - 05:01-08:39 성화(논지5:1-21/ Q&A6-7장/ 정리8:1-39)

  ㅇ 09:01-11:36 새 이스라엘(도입9:1-5/ Q&A:9:6-11:32/ 정리11: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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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장 문맥 흐름> 성화

  ㅇ 5장 [논지] : 믿음의 법으로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칭의 모습(성격) = 성화)

  ㅇ 6-7장 [Q&A] : 두 가지 질문

- 6장 : 죄와 은혜 - 죄를 지으면 되는가?

- 7장 : 율법의 기능 - 율법이 죄와 사망의 원인인가?

  ㅇ 8장 [정리] : 믿음의 법으로 사람에게 일어나는 모습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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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0-21 vs 6-7장의 수사학적 구조>

  ㅇ 5:20a 율법(의 기능)

         5:20b-21 은혜, 죄

6장 은혜, 죄

  ㅇ 7장 율법(의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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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이해

(이 부분과 아래 팁은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의 이진섭교수님의 글을 그대로 발췌한 것입니다)

6장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칭의의 효력이 생명으로 나타난다고 했을 때 등장할 수 있는 첫 번째 의문을 다룹니다. 은혜가 있다고 해서 죄를 지어도 되는가의 문제입니다. 유사한 내용을 다른 각도에서 반복해서 다룹니다(6:1-14; 15-23). 1-14절은 은혜가 더 있게 하려고 죄에 머물러 있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주장을 반박합니다. 1절은 먼저 질문 형태로 잘못된 주장을 제시하고, 2-14절은 그 주장을 반박합니다. 바울은 먼저 한 마디로 ‘그럴 수 없습니다.’라고 제시합니다. 생명을 얻었다는 말은 죄에 대해 죽었다는 뜻인데, 어떻게 죄에 머물러 살겠느냐고 합니다(2절). 이 점을 두 번이나 반복해서 논증합니다(6:2b-4; 5-11). 이때 세례의 개념을 중요하게 부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로 생명을 얻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그림 언어입니다. 2b-4절은 그리스도와 같이 죽은 것이라는 점을 좀 더 강조하고, 5-11절은 같이 살았다는 점을 좀 더 강조합니다. 결국 초점은 죄에 죽고 그리스도와 살았으니, 죄를 지을 수 없고 바르게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12-14절).

☞ Tip

6:1-14 이 문단은 5:20b-21에서 제기한 ‘은혜와 죄’의 주제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는 뜻을 왜곡하는 사람들의 논리를 반박하는 것이다. 엉터리 질문(1절)과 정직한 답변(2-14절)을 제시하고 있다.

6:2a 답변의 핵심을 제공하는 구절이다. 바울은 단호하게 부정할 때 ‘그럴 수 없습니다(메 게노이토)’라는 말을 종종 사용한다(롬 3:4,6,31; 6:2,15; 7:7,13; 9:14;11:1,11).

6:2b-4 그리스도의 사건이 생명의 효력을 가지는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함께 죽고 새 생명을 얻기 때문이다. 이 연합을 잘 설명하는 그림 언어가 세례이기에 바울은 세례로 답변하고 있다.

6:5-11 5,6,7절은 순서적으로 ‘죽음과 부활의 연합-우리의 앎-그 근거’라는 점을 말하고 있는데, 이는 8,9,10-11절에서 유사하게 반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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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a절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할 수 없다. 

율법이 범죄를 더하게 하고,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는 말을 오해하여 그렇다면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를 계속 지어야 한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대해서 결코 그럴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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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은 정죄(죄를 정하다)의 기능을 갖고 있으며, 은혜는 용서하고 죄인을 의롭다 함을 얻게 합니다. 그래서 정죄는 사망을 가져오지만 용서는 생명을 부여합니다. 그래서 죄가 많을수록 은혜는 더욱 넘치고, 사망이 지을 수록 생명은 더욱 밝게 빛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은혜를 더욱 부각시키기위해서 죄를 지어도 되는가? 하는 생각에 대해서 단호하게 그럴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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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오해하여 일주일 내내 죄를 짓고 살다가 주일에 쉽게 용서를 받는다는 인식은 은혜 안에서 죄를 더 짓고 다른 것들을 통해서 면직되는 사고 방식들이 급기야 죄를 짓는 일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너무도 당연시 여기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성도의 견인(堅忍)에 대한 교리는 성도들이 비록 고난을 당하지만 그 고난을 참고 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할 때 세상은 핍박하지만 그 가운데서 무너지지 않고 참고 견디며 인내하고 견딘다는 의미의 견인(堅忍)입니다. 그런데 이 견인을 끌고간다 혹은 인도해 간다의 견인(牽引)으로 오해하여서 한번 구원을 얻고 나면 어떠한 죄를 범해도 하나님이 계속 용서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서 하나님 안에 계속 살아가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심지어 이 견인을 한 번 받은 구원이 영원한 것으로 생각하여 방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도의 견인은 인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생명을 얻은 자로서 순종하는 삶을 살아는 데 있어서 끝까지 참고 인내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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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b-4절 우리는 새 생명 가운데 거하기 위해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세례는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하여 함께 죽고 다시 살리심을 보여주는 성례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사는 세례를 받는 것은 우리가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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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는 우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함께 죽고 함께 다시 사는 것을 경험하게 하는 성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아래 종 노릇하던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함께 죽고 다시 새 생명으로 태어나서 새 사람, 새 피조물, 새 이스라엘로 살기원하신 것입니다. 

*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새 생명을 가진 자로 새 사람, 새 백성, 새 이스라엘이 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만일 이러한 새 생명의 삶이 우리에게 없다면 우리는 아직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함께 죽음 곧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졌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과 함께 우리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새로운 생명 곧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그림을 보여주는 세례는 우리 자신이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사는 곧 죄에 대하여 죽고 새 생명 가운데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

# 5-11절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게 된 것은 죄에 죽고 하나님께 산자로 살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함께 죽고, 부활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죄의 종으로 살지 않고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았다면 다시는 사망이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난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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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게 하는 그림언어 곧 성례가 세례입니다. 세례의 모형은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옛 사람은 물 속으로 잠기면서 모두다 죽고 물위로 다시 올라오는 것은 부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다시는 죄와 사망의 종노릇 하지 않고 의의 백성(곧 새 생명, 또는 새 백성)으로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죽고 다시 살아난 것은 믿음의 법을 통해서 단번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와 같이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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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우리에게 여전히 옛 사람의 습성이 남아 있고, 죄에 더하고 있다면 우리는 아직 죄의 몸이 죽고 의인이 되는 여정에 제대로 서 있지 않는다고 진단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죄의 종 노릇 하여 여전히 옛 사람의 습성을 따라 살고 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한 삶의 모습들이 없다면 이는 아직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고 신앙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이렇게 옛 사람에 대하여 죽고 새 생명으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 큰 은혜를 알고 믿는다면 우리는 우리를 다시 살리신 주님의 뜻을 따라서 죄와 사망이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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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4절 우리를 하나님께 의의 무기로 드려 죄가 주장하지 못하게 하라. 

바울 사도는 이제 세례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의 교리를 통해서 이제 권면합니다.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해서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어 주지 말고, 우리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났기 때문에 곧 우리가 새 생명, 새 사람이 되었기에 이제는 우리의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 의의 무기로 드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는 법 아래에 있지 않고 은혜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이제 신분도 그리고 주인도 삶의 이유도 모두 바뀌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옛 사람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옛 사람을 지배한 죄와 사망의 법이 힘을 쓸 수 없습니다. 몸의 사욕을 따라 살아가는 것도 멈춰야 합니다. 불의의 무기로 죄에 끌려다니지 말고 부화뇌동해서도 안됩니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하나님께서 온전히 통치하시고 섭리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누구도 우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법이 아니라 은혜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

지금 우리 삶의 동인은 우리를 다시 살리신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에는 옛 사람의 습성이 없어야 합니다. 아직도 뿌리깊은 골이 남아 있다면 심각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먼저 우리가 사욕을 쫓고 불의를 행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의의 무기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제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고 인도하심을 따라 살고 인내하게 하심을 따라 살아가고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며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를 정죄하는 법 아래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 거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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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우리의 왕 되신 주님

아직도 주님과 함께 연합하여

죽으심에 함께 동참하여야 할진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일을

온전히 감당치 못하였음을 회개합니다. 

우리를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신 뜰을 따라서

새 사람, 새 피조물, 새 백성, 새 이스라엘로

서로를 보호하고 살리는 공동체로 이어가게 하옵소서. 

다시는 죄와 사망의 법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소서.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하고

우리 안에 사욕과 불의의 무기들을 버리게 하옵소서

그래서 법이 아니라 은혜로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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