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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09:30-10:04 새 인류_새 이스라엘_이스라엘 민족의 실패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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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과 선택에 의해 참 이스라엘이 세워지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과 긍휼을 드러내는데, 그럼 유대인들은 왜 실패했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믿음의 법이 아니라 행위의 법(의의 법)을 따라 의를 얻는 것을 잘못 알아들은 것이고, 두 번째는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께 열심을 낸 것이 결국 자기 의를 드러내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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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줄 묵상 : 행위 법이 아니라 믿음의 법으로 의를 얻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열심은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르지 않아 실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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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1-11:36 논지> 새 인류

  ㅇ 03:21-08:39 새 사람

       - 03:21-04:25 칭의(주장3:21-26/ Q&A3:27-4:15/ 정리4:16-25)

       - 05:01-08:39 성화(논지5:1-21/ Q&A6-7장/ 정리8:1-39)

  ㅇ 09:01-11:36 새 이스라엘(도입9:1-5/ Q&A:9:6-11:32/ 정리11:3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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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1장의 문맥 흐름 :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참 이스라엘

1. 도입 : (근심) 이스라엘 민족으로 근심이 있다. (9:1-5)

2. Q&A : 약속과 선택으로 나는 참 이스라엘 - 이스라엘 민족의 문제 (9:6-11:32)

(1) 역사적 약속의 문제 : 약속과 선택으로 나는 참 이스라엘 (9:6-29)

(2) 역사적 현실의 문제 : 이스라엘 민족의 문제와 해결 (9:30-11:32)

     1) 이스라엘 민족의 실패 (9:30-10:21)

     2)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 : 남은 자의 회복 (11:1-32)

          ① 이스라엘 민족의 남은 자 (11:1-10)

          ②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 (11:11-32)

3. 정리 : (찬양) 하나님의 구원 방법으로 하나님을 찬양 (11:33-36)

# 1장에서 9장까지

로마서 1장에서 하나님의 의가 1:17에 믿음의 법을 통해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로마서의 대 전제이자 주제입니다. 

1:18-8장까지는 두 가지 법과 처지가 대조되어 나타납니다. 하나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았을 때 하나님의 의가 진노의 형태로 나타나고 모든 사람이 사망으로 끝납니다(1:18-3:20). 이와 대조적으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으면 살아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나타나서 그리스도(의 신실함, 예수 사건)로 새 백성을 만들어내고 새 생명가운데 살게 됩니다(3:21-8장). 

9-11장에서는 먼저 이스라엘의 문제를 다룹니다. 이들은 결국 그리스도를 거부해서 문제가 됩니다. 언약의 대상이었던 이스라엘 민족이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약속과 선택을 통해 새 이스라엘을 끝까지 만드십니다. 그래서 참 이스라엘은 누구를 가리키는가를 논증을 통해 밝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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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 이해

(이 부분과 아래 팁은 에스라성경대학원대학교의 이진섭교수님의 글을 그대로 발췌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란 개념을 새롭게 설명했던 바울은 이제 이스라엘 민족의 실패와 회복의 문제를 다루고자 합니다. 9:30-10:21에서는 먼저 실패 문제를 다룹니다. 바울은 실패의 원인을 간략하게 제시합니다(9:30-33). 의를 추구하지 않은 이방인들이 의를 얻은 반면 의의 율법을 추구한 유대인이 의에 도달하지 못한 이유를 묻습니다(30-32a절). 그 답은 유대인들이 믿음의 원리를 따르지 않고 행위의 원리를 추구했다는 것입니다(32절). 결국 그들은 돌에 걸려 넘어진 자처럼 되었습니다(33절). 이어서 바울은 행위의 원리를 따라 간 길이 어떤 모습인지를 좀 더 설명합니다(10:1-4). 앞에서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근심을 쏟아내었던 바울은 (참조. 9:1-5) 이제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을 열망한다고 합니다(1절). 이스라엘 민족은 열심이 있었지만 바른 지식은 없었습니다(2절).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였고, 오히려 자신들의 의를 세우려고 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3절). 하지만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 되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는 의로움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점을 알아야 했습니다(4절).

☞ Tip

9:30,32 ‘믿음에서’(30절)와 ‘믿음에 근거하여’(32절)라는 표현은 헬라어 ‘에크 피스테오스’를 번역한 것이다. 이 부사구는 하박국 2:4의 인용문에서 따온 것으로 로마서에서 ‘모토구절’로 사용되고 있다.

9:30-32 여기서 바울은 ‘믿음의 원리’와 ‘행함의 원리’를 대비시키고 있다. 이 대비는 로마서 3:27과 8:2에 극명한 방법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9:31;10:1 이 두 구절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킨다(참조. 9:4, 5a).

10:1-4 바울은 이스라엘 민족이 믿음의 원리를 따르지 않고 행위의 원리를 따른 점을 10장에서 자세히 풀어 쓰고 있다. 1-4절은 유대인들의 잘못이 일차적으로 어디에 있는지를 지적한다. 그들은 율법이 전하는 지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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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33절 믿음의 법(원리)이 아니라 행위의 법(원리)을 의존했기에 이스라엘은 실패했습니다. 

이방인들은 믿음(의 법-원리)으로 의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의의 법(율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의 요구)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믿음(의 법)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의 법)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28:16에서 하나님께서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그리스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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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과 선택의 외인이었던 이방인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믿음의 법을 통해 의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율법과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율법(의 의 법)이 생명 곧 의를 가져다 준다고 생각하여 행위의 법을 따라가다가 결국 율법의 요구(곧 의)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이스라엘이 믿음(의 법)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의 법)을 의지했기 때문에 부딪칠 돌에 부딪쳐서 실패했다고 말합니다. 

# 9:30,32에 사용된 ‘믿음’을 ‘믿음의 법’으로 해석하는 이유는 여기에 쓰인 믿음이 로마서에 쓰인 믿음의 세 가지 용법 중에서 ‘에크 피스테오스’가 쓰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의의 법’은 율법을 가리킵니다. 32절에서는 이를 ‘행위에’라고 연결합니다. 바울은 여기서도 동일하게 믿음과 행위가 인간의 믿음과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게 되는 믿음의 법과 행위의 법(율법)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행위의 법에 의존해서 율법이 생명을 가져다 주어 살리게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방인은 믿음의 원리를 따른 것이기에 의를 얻게 된 것입니다. 

# 이러한 것들은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었는데 그것을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는 결국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십자가의 도가 유대인들에게 걸림이 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 또는 십자가는 단순하게 그리스도와 십자가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 사건’을 통채로 의미한다고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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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여기서 처음으로 ‘예수를 믿는 우리의 믿음’이 9:33에 나옵니다(갈라디아서 2:16과 간접적으로 10:11에도 동일).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빈번하게 ‘예수를 믿는다’라고 나옵니다. 하지만 바울 당시에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아직은 신학화 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교회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믿음에 가장 기본적인 이해로 등장하게 된 것은 로마서에서 복음에 대하여 설명한 바울의 신학적 논리 덕분입니다. 바울은 예수가 주(主)이시고, 하나님으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기에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으로 믿는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것을 누가가 받아 ‘주 예수를 믿으라’라고 간략하게 쓰고, 요한도 요한문헌에서 그렇게 쓸 수 있도록 신학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봅니다. 바울사도가 이러한 것을 만드는 과정이 로마서 10장 전후에 보입니다. 

# 그런데 여기에는 또 다른 신학적 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사람들이 인간인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도 자연스럽게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고 믿지만, 유대인들은 인간을 하나님을 보지 않았습니다. 고대 신화들은 사람을 쉽게 신으로 보지만 유대인들은 결코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판에서 ‘내가 그(하나님)다’라고 대답하셨을 때 이를 참람하다고 했던 것입니다. 로마 황제도 신이라 하는 것이 말도 되지 않는데 더군다나 예수님은 나사렛 촌사람이 무슨 하나님이라고 하느냐고 말도 안되는 신성모독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어떻게 하나님으로 믿었는지는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인간 예수님을 갑자기 주님이라고 하나님으로 고백한 사건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의 과정은 우리가 다 알 수 없지만 분명 놀라운 전환이 일어난 것은 분명합니다. 바울은 바로 이 예수님을 왜 믿어야 하는 것인지, 어떻게 예수님을 통해서 의(또는 구원)를 얻는 것인지를 로마서 통해 신학적으로 정리하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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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와 심판으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이 종노릇 하며 부끄러움을 당할 처지였지만, 이제는 믿음의 법을 통해서 의를 얻고 이제는 하나님을 믿는 새 백성이 되었으니 그리스도 예수님의 신실하심(예수 사건)을 거치는 돌과 바위가 아니라 우리의 유일한 자랑으로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믿음의 법을 통해 의롭다 함을 얻었으니 그 은혜를 인하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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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열심은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르지 않았기에 실패했습니다. 

바울은 마음 다해 형제 이스라엘이 구원 받기를 하나님께 구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실패한 이유는 그들이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께 열심을 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의 의를 세우다가 경국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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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지식에 근거한 열심이 문제입니다. 여기서의 지식은 일차적으로 유대인들의 구약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이해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앞서 하나님의 의가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것이고, 믿음의 법의 핵심은 결국 예수 사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를 따르려면 예수 사건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고, 믿음의 법(예수 그리스도가 핵심)이 생명을 가져다 주는 것인데 유대인들은 율법을 잘못 이해하고, 심지어 이 율법이 자신들에게 생명 곧 의를 가져다 주는 것이라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결국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다 결국 하나님의 의에 불순종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잘못된 지식은 잘못된 신앙과 행동을 양산하게 되는 당연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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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믿음과 행함이 분리되고 복음의 능력을 상실하고 변화되지 못한 종교인으로 살아도 아무렇지도 않게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면서 세상에서는 온갖 부정적인 행동은 제일 잘하는 이상한 신앙인들이 양산된 데에는 그들 자체도 문제이겠지만 그러한 이상한 신앙과 삶에도 전혀 신앙에 문제는 없다고 착각하면서 심지어 자신이 잘못한 것으로 비난 받는 것을 핍박을 받는다고 착각하면서 오히려 더 극단으로 비상식적 신앙으로 치닫는 경우입니다. 그것이 지나치면 결국 굳어져서 갇히게 되고 심지어 몰상식하고 비상식, 비이성적이며 비현실적이고 터무니없는 행동을 자행하고도 부끄러운줄 모르고 사는 자칭 그리스도인이라 하지만 무늬뿐이고(무니도 아닌 경우도 많지만) 종교인을 양산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지금의 신앙을 양산한 신학이라면 다시금 말씀 앞에 나아가 우리가 알고 믿고 행하는 근본적 신앙의 내용들이 과연 성경의 가르침에 일치하는가 하니면 전통과 우리 자신의 의를 따라 행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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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더 가르치는 자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말씀입니다. 특히나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그 말씀이 그런가하고 바른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고,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깨달아 하나님나라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바르게 정립하여 사는 것이 중요하겠습니. 이를 위해서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해야하고, 성도들 스스로가 이 말씀 앞에 서고, 말씀을 잘 읽고 듣고,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할 수 있는 일을 또한 스스로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목회자는 성경의 교사로서의 사명이 가장 중요한 사명입니다. 이는 장로도 마찬가지이고 교회의 지도자에게는 이 말씀을 가르치는(더 정확하게는 ‘가르키는’ - 그래서 가르치는 자신이 아니라 가르키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께 성도들이 집중할 수 있도록) 교사의 직이 가장 우선적으로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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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절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해 율법의 마침이 되십니다. 

율법은 그리스도를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고 이를 통해 의를 얻는데 유대인들은 정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율법이 생명과 의를 가져다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8장까지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율법의 요구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규범적인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 스스로는 그것을 다 이룰 수가 없습니다(1:18-3:20). 이후에 메시아 통해 율법의 요구를 이루고 성령을 통해서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율법의 기능은 결국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를 알고 정죄하는 기능과 결국 곤고한 처지에 이르게 되면 나를 구원할 자는 그리스도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율법이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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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에서 믿음의 법으로 가게 되는 것은 율법의 마침이 될 수 있고, 율법의 요구를 이루면(성취), 율법이 가리키는 것이 그리스도이기에 율법의 마침이라고 말하고 이 ‘마침’에 해당되는 의미는 크게 성취-마침-목표라 할 수 있고, 상세하게는 성취, 종국, 마침, 종말, 끝, 결과, 목적, 의도 목표등의 의미가 있고 더 상세하게는 ‘의무’와 ‘세금’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여기서는 전자의 의미들이 더 타당하고, 전자의 의미들 모두를 포함하여 ‘율법의 마침’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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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 곧 성취-마침-목표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을 믿습니다. 나의 힘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 주신 힘과 능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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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우리를 믿음의 법을 통해 의를 얻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우리를 의롭다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의 도 곧 예수 사건의 가르침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믿는자에게 영광을 허락해 주옵소서. 

더욱 주의 말씀과 더불어 주님을 의지합니다. 

말씀을 옳게 분별할 수 있는 지혜 주시옵고

올바른 말씀에 대한 지식을 따라 

주님을 향한 열심을 내게 하옵소서. 

주의 말씀의 뜻을 순종하기 보다

자기 의를 드러내는 어리석음 범치 않게 하옵시며

날마다 주님의 의에 기쁨으로 순종케 하옵소서.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해

율법의 마침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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