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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01:09-20 만남과 사명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는 일로 밧모섬에 갇힌 요한은 성령에 감동되어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두려워하는 요한에게 보여주고 두려워 말라시며 보져 주고 들려준 것들을 기록하여 일곱교회에 편지하여 보내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 9-11절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깨닫습니다. 

요한은 자신을 교회의 형제, 예수님의 환난과 나라(통치)와 참음(인내)에 동참하는 자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는 일로 말미암아 밧모섬에 갇히게 되었다고 소개합니다. 그 곳에서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되어 큰 음성을 듣고서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시고 들려주신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일곱교회(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에 보내라는 명령을 들었다고 밝힙니다.

*

요한은 자신이 지금 밧모섬에 갇힌 이유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는 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증언자로 살았던 것은 교회의 형제 곧 동역자로서, 그리고 예수님의 환난과 나라(통치)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이 세가지 표현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승귀를 의미하면서 동시에 예수사건(성육신으로부터 승천까지 하나님의 뜻에 신실하게 순종하신 예수님의 모든 사역들)을 제유하는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동시에 이러한 일에 동참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환난과 다스림과 인내의 여정은 주님을 따르는 제자 곧 교회가 믿음의 여정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제유적으로 표현하는 말입니다. 앞서 예수님께서는 교회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먼저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면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명하셨고, 그 명령을 따라 요한도 다른 제자와 교회들과 더불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이 가신 길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그 끝에 지금 자신은 밧모라는 섬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우리가 주의 말씀과 가르침과 먼저 가신 그 길을 따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야 할 길에 대한 총칭입니다. 

주의 날 곧 주님을 만난 날, 특별한 사건과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날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물론 초림과 재림의 날에 대해서도 그렇게 표현합니다. 지금 밧모섬에 있는 요한에게 주님은 성령(의 감동-원문에 없음)을 통해서 심판과 예언의 말씀을 보고 듣게 된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의 사역은 그리스도를 바로 알게 하시고 그 뜻대로 살게 하시는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께서 요한에게 이르신 말씀은 지금부터 보여주시고 들려주신 것을 두루마리에 기록하여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것입니다. 당대 요한이 알고 있는 교회요, 실재한 교회이면서 일곱이라는 숫자가 상징하는 것은 모든 교회를 향하여 보내라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모든 교회면 당대의 교회 뿐 아니라 이후로 된 모든 열방의 교회 곧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을 향한 서신이기도 하며, 그 말씀 곧 가르침은 신구약을 포괄하여 하나님께서 일관되게 주의 백성들에게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셨던 가르침과도 일치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성경의 모든 가르침들과 일치된 가르침으로 연관성, 일관성 있는 말씀을 해석하고 적용해야 할 말쓰인 것입니다 

*

주님과의 만남은 주님이 누구이신지에 대해 깨닫게 되고, 동시에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우리의 존재의 이유인 사명에 대해서 깨닫게 됩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바울이 그랬고, 오늘 여기 사도 요한도 그렇습니다. 이전에 그는 이미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과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깨달아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 곧 복음 전하는 일을 하다가 지금 밧모섬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감옥에 갇힌 그의 인생이 여기서 끝이 아니라 다시 이곳에 보내신 뜻을 깨닫고 그 사명에 충성된 자로 지금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주의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은 ‘주의 날’ 곧 주님과의 만남의 역사,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뵙고 함께 떡을 떼고 나누며 주님의 통치와 인도를 받는 시간입니다. 우리에게는 예배하는 시간, 기도하는 시간, 그리고 묵상하는 시간이 주의 날입니다. 어쩌면 그 날은 제의적인 자리 뿐 아니라 일상에서 모든 순간들을 주의 날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특벽ㄹ히 이 묵상의 시간에 보고 듣고 인도하시는 대로 하루하루를 순종하면서 우리가 가야 할 삶의 여정 곧 환난과 다스림과 인내의 여정을 올곧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사자들에게 그리고 그 사자들이 요한에게, 요한이 교회들에게, 교회가 다시 또 다른 교회와 역사 이래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리고 여기 우리들에게 보여주시고 들려주신 말씀들을 통해 우리 하나님의 뜻과 역사와 계획을 읽고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 말씀을 읽고 듣고 그 가운데 기록된 대로 지키는 자가 복있는 자라고 하셨기에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뿐 아니라 날마다 주의 말씀을 묵상하는 복있는 자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 12-16절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보호하고 세상을 심판하는 권세를 가진 분이십니다. 

요한은 이제 성령에 감동되어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며 만난 주님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일곱 금 촛대(교회)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과 눈 같고,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 같다고 말합니다. 그의 오른 손에는 일곱 별(교회의 사자)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의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다고 증언합니다. 

*

요한이 본 그리스도에 대한 환상은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신지 보여주는 상징들입니다. 모두 구약(특히 다니엘 7,10장, 에스겔, 이사야등)에서 사용된 표현들입니다. 이 표현은 2-3장에서 각 교회에 등장하는 그리스도의 이름에 반복해서 사용됩니다. 우선 그리스도께서는 일곱 금 촛대 곧 교회(1:20, 성전 전체,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 동시에 불을 켜야 하는 존재로서 교회는 세상의 빛으로 증인된 사명을 함께 함축하고 있는 표현입니다) 가운데 계십니다. 세상 끝날까지 임마누엘 하시리라는 약속대로 그리스도께서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영원토록 동일하게 우리 사이에, 우리와 함께 우리 가운데 계시는 분이십니다. 

인자(왕적 제사장) 곧 그리스도께서는 발에 끌리는 옷(왕과 대제사장의 옷을 의미, 위엄에 대한 표현)을 입고 가슴에 금띠(왕, 제사장, 심판자)었습니다. 흰 머리는 옛 적 부터 계신 영원한 신성을 소유하신 분이라는 의미로, 불꽃같은 눈은 모든 것을 아신다는 것(전지全知)으로 완전하고 공의로운 심판자로서의 의미가 큽니다.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은 것은 강하고 순결하신 영광의 주님을 상징합니다. 더불어 풀무불에 단련한 것은 심판의 권세이심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와 같다는 것은 크고 권위 있는 분으로서 하나님과 동등하심을 나타냅니다. 그의 오른 손에 일곱 별(1:20, 교회의 사자)이 있다는 것은 그런 사자들을 다스리시며 교회의 주관자이심을 의미입니다.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온다는 것은 심판자를 의미합니다. 얼굴이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과 같다는 것은 전쟁에서 승리한 전사의 얼굴로 죄와 죽음과 사탄에게 승리하고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분으시며, 하나님의 원수를 무찌르고 승리한 메시아로서 제사장과 왕과 가튼 존재이며 교회와 세상의 주인이자 심판자라는 것을 이 환상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

주님을 만나면 우리는 주님이 누구이신지 깨달아야 합니다. 이는 말씀앞에서 그리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가 만나고 알고 깨달아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우리 주님에 내게는 어떤 분으로 인식되고 믿으며 또한 알게 된 그대로 주님을 신앙하고 있느지 돌아보기 원합니다. 삶의 우선순위에, 그리고 나의 모든 최고의 권위의 자리에, 그리고 가장 소중한 시간과 물질과 모든 것들을 아낌없이 주님을 위해 순종할 수 있는 그런 분으로 섬기고 계신다면 주님이 맞지만 그렇지 않다면 주님은 더이상 주님이 아니라 내가 만든 우상일 뿐입니다. 우리 주님의 위엄 앞에 합당한 앎과 그에 따른 반응이 있길 빕니다. 



# 17-20절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일을 예언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요한은 주님을 뵙고 곧 부복합니다. 그런 요한에게 주님은 오른 손을 얹으시고 두려워 말라시며 다시한번 자신을 소개해 주십니다. 처음이요 마지막 곧 살아있는 자로 일전에 죽었으나 다시 부활하여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지금 요한이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고 말하면서 그 중에 요한이 본 것은 주님의 오른 손에 있는 일곱 별(교회의 사자)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교회)에 대한 일이라고 설명해 주십니다. 

*

하나님을 만난 인간의 첫번째 반응은 두려움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권위와 위엄 앞에 두려움으로 반응하는 외형적 모습이 부복 곧 엎드리는 것입니다. 시내산의 모세가 그랬고,  다메섹 도상의 바울이 그랬으며, 이제 밧모섬에서 주님을 만난 요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거룩하신 주님께 대한 온전한 충성과 복종을 함축하는 고백의 모습으로 볼 수 있습니다. 동시에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예수님은 자신을 처음이요 마지막이라고 소개합니다. 이는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바로 그런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는자요 전에 죽었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전 생에 대한 요약이면서 동시에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아울로 모든 생명을 주관하신 분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심판자로서 살고 죽는것과 천국과 지옥에 대한 것을 결정하고 주관하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심을 말합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요한에게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하고 그 본 것이 교회에 대한 일이라는 것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시간 순서대로 1장과 2-3장과 4-16장을 각각 말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해석들이 있는데 이는 요한계시록이 시간 순서로 기록되었다고 말하는 이들의 주장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시간 순서로 연대기적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주제별로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세 가지 일을 혼재하면서 교회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여정을 보여주고 알게하고 살게 하는 일을 지금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에 대한 권위를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섬기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너무도 우리 편한대로 하나님을 끌어 쓰다 보니 그 권위가 무너진 듯한 분위기입니다. 그러니 말씀도 신앙도 세상의 다른 주인들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더이상 복음의 능력은 우리의 언행에 아무런 도전도 변화도 성숙을 가져오는 반응을 기대하기 힘들어 졌습니다. 날마다 말씀 앞에 부복하는 일은 그의 위엄과 사랑을 다시금 회복하면서 우리가 진정 붙잡고 순종하고 살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점검하고 확인하고 결단하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지금 믿고 따르고 계신 우리 주님은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구원자이시고 동시에 심판자이신 분이십니다. 그런 주님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 지금 교회된 우리를 향하여서 말씀하시고 위로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로를 얻어야 하는 동시에 교회 밖에 있는 어둠의 세력들을 향한 심판의 메시지를 보면서 우리는 더욱 굳게 주님을 붙잡고 그 길을 가야 함을 확신하게 됩니다. 지금 악의 흥황이 결코 오래 가는 것이 아니고 은혜와 평강은 오직 주께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을 그래서 서신의 첫부분에서 언급하고, 이제도 교회에 대한 말씀을 먼저(2-3장) 하신 후에 세상에 대한 심판의 말씀들(4-16장, 중간에 막간을 이용해 교회를 향한 위로와 소망 그리고 사명을 재확인시켜 줍니다, 7장 10-11장 등에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핍박 받는 교회, 광야의 여정을 살아가는 교회, 초림과 재림사이의 종말과 마지막 때를 긴장 속에 살아가는 교회를 향한 위로와 도전을 주고 있으며, 동시에 교회 밖에 세력들에 대한 심판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래서 서신을 받는 당시의 교회들에게도 의미가 있고 이후로 계속 되는 하나님의 백성, 주님의 몸된 교회를 향한 말씀이면서, 오늘 교회된 우리를 향한 말씀이기도 하고 이후로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 세워질 교회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 가르침은 이미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된 이스라엘을 향하여 주신 계명이면서 역사서와 선지서등에서 끊임없이 경고하고 위로했던 그 방식과 신학과 일치된 교훈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어야 할 말씀이면서, ㄱ에 대한 해석은 다른 65권의 성경과 상이한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일관되고 연관된 말씀으로 읽어야 하며, 우선은 위로로 그리고 불의한 세상을 향하여서는 경고로 읽으면서 우리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뜻은 무엇이며 그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그 뜻이 무엇인지 깨달아 그에 합당한 반응을 행하며 읽어가고 풀어가며 순종하는 것이 이 말씀을 증언하는 요한과 요한을 통해 교회를 향해 서신을 보내신 우리 주님의 뜻인줄 믿습니다. 



# 기도

알파와 오메가 되신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주님의 몸된 교회로 삼아

우리 주님의 환난과 통치와 인내의 여정에 동참하게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길을 온전히 따르지 않고 

주께서 보여주시고 들려주시고 인도하신 뜻을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였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다시 불러 보여주시고 들려주시며

그 길을 따르도록 기회 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이켜 그 음성 듣기를 즐거워하며

성령께서 깨닫게하시고 순종케 하심에 온전히 순종하기 원합니다. 

창조주, 구원주, 심판주이시며 역사의 주관자 이신

우리 주님의 그 위엄에 합당하게 반응하기 원합니다. 

날마다 주의 말씀을 듣고 반응하는 

이 묵상의 자리를 신실하게 지켜가길 원하오며

그렇게 보여주시고 행하시고 인도하실 일을 밝히 깨달아

온전한 교회 곧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증인의 삶을 살아가는 거룩한 교회로 살기 원합니다. 

현재 있는 고난을 주님의 위로로 잘 극복해 나아갈 수 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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