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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2:07-17 보배로운 소유에 대한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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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는 그토록 사랑하고 아끼던(보배로운 소유) 유다를 버려야 하는 아픔을 우화로 표현하십니다. 그렇게 약속의 땅은 여호와의 분노로 황폐해져서 아무도 찾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어서 이스라엘을 심판했던 이방 나라들도 여호와의 도에 대한 순종의 여부로 구원 여부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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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절 보배로운 소유를 버려야 하는 심판은 여호와께 큰 슬픔과 아픔을 동반합니다. 

“내 집”, “내 소유”, “내 마음”이라는 표현의 반복과 “내가”라는 표현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보배로운 소유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해산의 수고를 통해서 낳았기에 소중하게 여겼던 보배로운 소유가 반역하고 배역하여 심판을 받게 되어서 이제는 버리고, 내던지고, 원수의 손에 넘기고 미워할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마음을 들짐승에 에워쌓인 매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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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집이며, 여호와의 소유이면서, 여호와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숲속의 사자처럼 스스로 왕이 되어 여호와를 거역하고 배반한 것입니다. 심지어 여호와를 향하여 대적하기에 이르러 여호와의 미움을 사게 됩니다. 급기야 여호와께서는 반역한 이스라엘, 하나님의 소유를 심판하기 위해서 들짐승들(이방 나라)을 들어 삼키게 하신 것입니다. 자녀의 죄악을 심판하기 위해서 더 악한 채찍을 들어서 쳐야 하는 하나님의 마음은 아픔과 슬픔과 고통없는 무정하신 분이 아니라 누구보다 고통스러워하시는 결정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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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은망덕하고 불요한 자녀를 향하여 매를 드는 일은 할수만 있다면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내의 한계에 다다라서 도는 시급하게 교정해야 할 문제가 생겨서 징계의 채찍을 들어서 쳐야 할 때 부모의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 찢어집니다. 내 자식이, 내 소유가, 내 사랑이 그렇게 배반하고 불순종하고 패역한 행동을 서슴지 않으면 모두가 다 내 잘못같고 내 탓인것 같기도하고 부모의 마음을 몰라서 철없이 행동하는 자녀들이 밉기도 하지만 결국엔 배앓이 통해서 나은 자녀들 한사람 한사람 아프지 않은 자식이 없는 법입니다. 오랜 시간동안 길러오고 인도하시고 채우시고 양육하여 여기까지 왔지만 결국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 같고, 제자리 걸음도 못 미친 무지한 백성을 징계해야 하는 하나님의 아픈 마음, 슬픈 마음, 안타까운 마음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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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3절 여호와의 분노는 보배로운 소유된 모든 땅을 황폐하게 하실 것입니다. 

많은 목자 곧 이방 나라들이 여호와의 포도원, 여호와의 몫, 여호와께서 기뻐하는 땅을 황무지로 만들었습니다. 황무지가 된 땅의 슬픔이 하나님의 마음이고, 그런 땅을 마음에 두는 이들이 없음을 한탄하십니다. 파괴하는 자들 곧 여호와의 심판의 칼은 광야의 모든 벗은 산 곧 우상을 숭배하던 모든 곳에 이르러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여호와의 분노로 황폐해진 땅들은 더이상 소출을 내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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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폐해진 황무지가 여호와를 향하여 슬피 운다고 말합니다. 그 땅의 인간들의 잘못으로 땅이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 땅의 고통은 곧 여호와의 고통으로 이어집니다. 땅의 울부짖음과 신음하는 소리가 여호와께 상달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좋은 포도를 내는 땅이었고, 여호와께서 기뻐하는 땅이었는데 짓밟히고 황폐해져서 그 땅이 여호와를 향하여 슬퍼합니다. 그렇게 되어도 누구도 그 땅에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마음이 떠났음을 표현하기도 하고 포로로 끌려간 이들이 돌아올 기약이 요원하고, 귀환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의미로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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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도구인 파괴하는 자들의 칼은 온 땅에 두루 심판의 칼을 휘두릅니다. 누구도 이 심판의 칼을 피할 수 없고, 평안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진노로 황폐해진 땅은 더 이상 밀을 심어도 가시를 거두고, 수고하여도 소득이 없고, 오히려 적은 소득으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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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탐욕으로 인한 죄악은 어느날 땅이 더이상 그 소출을 내지 않을 날이 오게 될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의 탐욕이 자연이 오염되어 더이상 그 소출을 낼 수 없게 될 때 급기야 그 땅이 의인화 되어서 오히려 인간을 공격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토록 다산과 풍요를 위해서 우상을 숭배하고 더 많이, 더 풍성하게, 더 높이 얻고 오르려고 했던 탐욕은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는 우상이 줄 수도 없었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여호와의 분노로 말미암아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모든 것을 잃게 되는 벌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소유들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망각하게 되면 마침내 우리는 여호와께서 모든 것을 거두어 가셔서 수치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여호와를 분노케 하는 길과 일에 서 있진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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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7-13(당신의 소유를 포기하시는 하나님) - 묵상도움글

야훼께서 당신의 상속재산인 가나안 땅과 이스라엘을 적들에게 넘겨주며 탄식하십니다. 그분은 숲 속의 사자처럼 당신께 으르렁거리며 대드는 예루살렘을 미워하며 적들에게 넘겨주십니다. 그분의 명령에 따라 파괴자들이 쳐들어와 칼로 쳐죽일 뿐만 아니라 땅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야훼의 소유인 가나안 땅은 더 이상 수확을 기대할 수 없는 황무지가 됩니다. 일부가 전쟁에서 칼을 피하고 살아남을지라도 숨을 돌리기에는 너무 이릅니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흉작과 기근입니다.

7절 야훼의 소유인 가나안 땅(내 집은 가나안 땅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이 어떻게 적들에 의해 유린당하고 폐허가 되었는가? 이는 야훼께서 ‘당신 집과 소유와 사랑하는 것’을 적들에게 넘겨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결정하시고 그대로 이뤄지게 하셨습니다. 사용된 세 개의 동사 ‘버리다, 내던지다, 넘기다’는 심판을 집행하시는 야훼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내 집’은 일반적으로 성전(cf. 11:15)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가나안 땅 또는 야훼의 백성을 함축합니다. 상속재산을 의미하는 ‘소유’는 예레미야서에서 야훼의 백성을 의미하는 10:16을 제외하고 다른 곳에서는 가나안 땅(cf. 2:7; 3:19; 12:14-15 등등)을 가리킵니다. 8-9절처럼 여기서도 일차적으로는 야훼의 백성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도 땅보다는 백성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야훼께서 당신 집과 소유의 포기를 선언하시고 사랑하는 이것들을 적들에게 넘겨주십니다.

야훼의 1인칭 소유형용사(내 집/내 소유/내 사랑하는 자; [10절의 내 포도원/내 몫])가 보여주듯이 이스라엘과 가나안 땅은 야훼의 소유에 속했습니다. 소유주가 자신의 소유물을 포기할 수 있듯이 야훼께서 이스라엘에 대한 당신의 소유권을 포기하십니다. 여러 세기 동안 지속되어왔던 야훼와 이스라엘 사이의 사적 관계가 파국으로 끝장납니다. 이제 주인이 없어진 이스라엘과 가나안 땅은 힘이 있는 자가 마음대로 가져가도 됩니다.

8절 소유주이신 야훼께서 당신의 소유를 포기하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보여줍니다. 소유물이 소유주에게 반기를 들고 대드는 부조리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야훼의 소유인 이스라엘이 숲 속의 사자처럼 자신의 소유주에게 으르렁거리며 대들었습니다. 짐승들의 왕인 사자가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부르짖듯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인도와 도움을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소유주이신 야훼의 손에서 벗어나 독립을 시도했습니다. ‘나를 향하여 그 소리를 내므로’(‘나를 거슬러 그 소리를 높였다’)는 이스라엘이 야훼께 단호하고도 완강하게 저항했음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은 야훼를 자신의 적으로 간주하고 대들었습니다. 소유주의 권한과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이스라엘은 소유주의 미움을 자초했다. 야훼께서 마음으로 사랑하였던 이스라엘이 이제는 미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9절 “내 소유가 나에게 알록달록한 맹금이 되었는가? [다른] 맹금[들]이 그를 거슬러 둘러싸고 있는가? 너희는 가서 모든 들짐승들을 불러모으고 [내 소유를] 삼켜버리도록 [그것들을] 데려와라.”

전반절은 본문이 불확실해서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내 소유가 내게 대하여는 무늬 있는 매가 아니냐”는 “내 소유가 나에게 알록달록한 맹금이 되었는가?”로 번역하는 것이 좋습니다. 소유주의 보호를 거절한 이스라엘이 맹금들에 둘러싸인 ‘무늬 있는 매’에 비유됩니다. 먹이를 채어가려는 맹금을 다른 맹금들이 둘러싸고 공격하는 것처럼(?) 야훼의 보호를 거절한 이스라엘이 주변에서 기회를 노리던 사나운 적들의 탐욕에 희생물이 됩니다. 후반절은 들짐승의 표상을 사용해 야훼를 배반한 이스라엘의 운명을 기술합니다. 야훼는 당신께 반역한 이스라엘을 사나운 들짐승들의 먹이로 내어주십니다(9b절). 그분은 당신의 소유를 삼켜버리도록 모든 들짐승을 불러모으십니다. 그분은 이방민족들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배반을 징계하십니다. 이방민족들에 의한 이스라엘의 침략이 힘의 논리에 따른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야훼의 허락에 따른 신학적 사건임을 보여줍니다. [14절에서 야훼는 당신의 소유를 파괴한 이방민족들에게 심판을 선언하신다.] 후반절의 청자 ‘너희’는 특별한 상대를 지칭하기보다는 문학적 장치로 사용된 것 같습니다.

10절 10-11a절은 심판으로 폐허가 된 땅을 묘사합니다. 삶의 기반인 땅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야훼의 포도원이 파괴되고, 그분의 몫(밭)이 발에 짓밟혔습니다. 야훼의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전통적 표현입니다(cf. 2:21; 5:10). 야훼의 ‘몫’과 야훼께서 기뻐하는 ‘땅’은 동일한 히브리어(할라카)가 사용됩니다. 야훼의 포도원과 몫/땅(밭)을 짓밟는 많은 목자들은 유다를 침략하는 이방 왕들을 가리킵니다. [이 단락의 시대적 배경에 따라 막연히 약탈꾼의 우두머리들이나 또는 예루살렘을 침략한 느부갓네살과 동맹군의 제후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1절 야훼로부터 허락을 받은 들짐승들이 땅을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황폐해진 야훼의 상속재산인 포도원과 밭이 그 소유주에게 [또는 ‘나를 향하여’대신에 ‘나로 인하여’로 번역할 경우: 소유주의 심판의 결정 때문에] 탄식한다. 어근 ‘샤맘’이 명사와 형용사와 동사로 한 번씩 사용되면서 황폐함의 심각성을 강조하여 보여줍니다. 모든 경작지가 완전히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습니다. 하늘(하나님)을 향해 통곡하는 것밖에 달리 할 일이 없게 되었습니다.

11절 후반부터 13절까지는 예언자가 화자로 등장하여 황폐해진 땅을 보며 탄식합니다. 땅이 황폐해졌음에도 이 일을 마음에 두는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11b절). 누구도 멸망의 참된 원인(→ 8절)을 찾아보려 하지 않습니다. 야훼의 분노에 관해 질문하지 않습니다. 상황이 전혀 절망적임을 보여줍니다.

12절 10절의 내용이 좀 더 구체적으로 기술됩니다. 이방민족들이 광야의 헐벗은 산을 넘어 가나안 땅을 침략합니다. 파괴자들이 아마도 요단 동편과 유다 남쪽의 광야 지대로부터 공격해 들어온 것 같습니다. ‘여호와의 칼’은 다시금 침략자들이 야훼의 명령에 따라 쳐들어왔음을 보여줍니다.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는 유다 어디에도 칼(전쟁)의 심판으로부터 안전한 곳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파괴자들은 배반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는 야훼의 도구이기에 아무도 이들의 칼로부터 벗어나 목숨을 구할 수 없습니다. ‘모든 육체’(25:31; 32:27; 45:5)에 평안(샬롬)이 없을 것입니다. 평안을 보장해주시는 분께 대적한 이스라엘은 두려움과 공포와 파괴의 지배에 넘겨집니다.

13절 파괴자들의 침략으로 사람(‘모든 육체’)만 멸망의 위험에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대 세계에서 전쟁이 가져오는 가장 치명적인 피해는 생존에 필수적인 경작지의 파괴였습니다. 전쟁으로 땅이 황폐해져(10-11a절) 더 이상 추수할 것이 없게 됩니다. 농부들이 씨를 뿌려도 추수할 것이 없습니다. 땅이 황폐해져 밀을 심어도 자라지 못하고 가시나무만 무성할 뿐입니다. 땀을 흘리며 수고해도 아무런 소득이 없습니다. 빈약한 소출에 농부는 부끄러워할 뿐입니다(cf. 욜 1:11). 농부의 능력은 소출로 결정되기에 소출이 없는 농부는 좋은 농부가 될 수 없습니다. 농부로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확이 없음은 자연현상이 아니라 야훼께서 분노하셨기 때문입니다(13b절). 야훼께서 당신 땅에 진노하셨기 때문에 땅은 저주를 받아 결실을 맺지 못하고 농부들은 수확을 거두지 못합니다. 당신 백성에 의해 배반당하신 ‘여호와의 분노’가 이스라엘에게 최소한의 생존 가능성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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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7절 악한 이웃이라도 여호와의 긍휼은 그들을 보배로운 소유가 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도구로 쓰신 악한 이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들도 자신들이 행한대로 보응을 받습니다. 또한 잡혀간 유다도 다시 포로에서 귀환하게 될 것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계십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이 다시 기업으로 얻은 땅으로 귀환하게 인도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한편 악한 이웃 곧 이방 나라 들도 여호와의 백성의 도를 배우며 따른다면 그들도 여호와의 백성으로 세움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선언하십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역시 멸하게 되리라는 것도 선언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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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백성이 포로로 끌려간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었으나 그것은 그들이 돌이키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긍휼은 이방나라에게도 열려 있습니다. 만일 욕심에 이끌려 행하는 악한 이방 나라라 할지라도 그들의 여호와의 백성의 도를 배워서 그 길로 행하기를 자신들이 이전에 바알로 맹세하며 행하던 것과 같은 열심으로 따른다면 여호와께서는 그들도 여호와의 백성으로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방 나라에 대해서도 구원의 길을 열어 두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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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보편적으로 심판하시지만 또한 보편적으로 사랑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택한 이스라엘이나 피조된 열방도 모두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신 것입니다. 그들도 여호와의 백성의 도를 열심으로 배워서 여호와 하나님을 신앙하고 따르고 그 길로 행한다면 그들도 여호와의 백성으로 세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원수와 같은 나라에게도 이와 같은 긍휼을 베푸시는 모습에서 우리 스스로 교만하지 말아야 하며, 원수같은 나라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에 있어서도 그들도 하나님의 구원이 열려 있음을 기억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는 것은 오늘 역사와 현실적 상황에서 깊이 새겨 보아야 할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도를 따라 행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길로 행할 것인지 우리의 믿음의 현 주소를 되돌아 봐야 합니다. 

# 12:14-17(주변 민족들의 심판과 구원; cf. 18:7-10) - 묵상도움글

12:14-15 주변 민족들의 심판과 구원

12:14 주변 민족들의 심판

12:15 주변 민족들의 구원

12:16-17 구원 또는 심판

12:16 구원의 조건

12:17 위협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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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절 14-17절은 중심단어 ‘소유’에 의해서 앞 단락에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에게 물려준 상속재산을 건드린 모든 ‘나의 모든 악한 이웃’은 아마도 광야의 모든 헐벗은 언덕을 넘어 쳐들어 오는 파괴자들(12절)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앞 단락에서 배반한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던 주변의 민족들이 여기서는 징계의 대상이 됩니다. 이들은 야훼께서 이스라엘에게 상속재산으로 넘겨준 가나안 땅을 침략한 자들입니다. 유다를 침략한 이웃 나라들도 유다와 동일한 운명에 떨어집니다(14b절). 야훼만이 가나안 땅을 주관하시기에 누구도 임의적으로 취할 수 없습니다. 야훼께서 당신의 권한을 침해한 이들을 자기네 땅에서 뽑아내실 것입니다(cf. 1:10).

14bb절 ‘유다 집을 그들 가운데서 뽑아 내리라’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문맥에 이질적인 진술입니다. 때로는 유다의 회복에 관한 약속을 보기도 합니다. 이방민족들 가운데 사로잡혀 살던 유다 사람들을 그들 가운데서 뽑아내서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해주시겠다는 식으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사용된 동사 ‘나타슈’와 14b절의 문장구조는 그런 긍정적 해석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유다의 운명과 그 주변 민족들의 운명을 동일한 차원에서 언급하기 위해 삽입했던 것 같습니다.

15절 주변 민족들에게 무조건적인 구원약속이 주어집니다. 이스라엘을 침략한 잘못으로 제 땅에서 뽑혀 다른 곳으로 유배를 당하지만 야훼의 자애가 이들에게 새로운 출발을 허락하십니다. 징계로 추방당한 민족들을 그분께서 가엾이 여겨 각자 제 기업으로 돌아가게 해주실 것입니다(cf. 46:26b; 48:47; 49:6). 주변 나라들의 운명이 이스라엘의 운명과 동일하게 결정됩니다.

16절 유다의 주변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정치적 회복이상입니다. 그분은 유배당한 이방민족들을 제 고향 땅으로 인도해주실 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당신을 찾을 수 있는 길도 열어주십니다. 이스라엘이 주변의 민족들로부터 바알숭배를 배워 멸망에 떨어진 것처럼, 이방민족들이 이스라엘로부터 야훼신앙을 배우면 그들에게도 구원이 주어질 것입니다(cf. 46:26; 48:47; 49:6). 더 이상 바알의 이름이 아니라 야훼 백성의 길을 배워 야훼의 이름으로 맹세하면(cf. 4:2; 16:14-15.; 23:7-8) 그분께서 이들을 당신 백성 한가운데 세워주실 것입니다.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맹세는 신앙고백과 통치권의 인정을 의미합니다. 이방민족들은 야훼께 순종함으로써 그분의 백성이 됩니다.

17절 야훼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이 이방민족들에게도 완전히 열립니다. 선택은 이들의 손에 달렸습니다. 주어진 기회를 잡아 야훼를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분의 보호와 축복을 즐길 수 있지만, 기회를 거절하고 그분께 순종하지 않으면 뿌리째 뽑혀 멸망 당할 것입니다. 이방민족들이 야훼의 구원사에 편입됨과 동시에 이들에게 선택의 책임이 부과됩니다. 

*

# 거둠의 기도

우리를 보배로운 소유로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 삼아

마음으로 사랑하여 주의 집에 거하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

탐욕으로 주를 배반하여 주님의 미움을 사게 된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돌이키게 하시기 위해서 

징계의 채찍을 들게하여 주님을 아프게 한 죄 또한

우리의 죄악 때문임을 고백합니다. 

황폐한 땅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우리 삶의 총체적인 분야에서 행한

헛된 우상과 탐욕의 죄악들은

결국 우리를 평안히 거하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여호와의 분노를 사는 어리석음에서 돌이키게 하옵소서. 

원수같은 악한 이웃이라도

주께서는 그들에게 여호와의 백성의 도를 열어 주셔서

그들에게도 구원의 길을 여시사

오늘 이방인같은 우리를 주의 백성 삼으셨다는 것과

원수같은 이웃들이라도 주께서는 

긍휼을 베푸실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선교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품을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 또한 여호와의 백성의 도를 따라

변함없이 신실하게 행하는 자로 

부족함 없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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