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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09:07-16 이 땅이 멸망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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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는 딸 내 백성의 거짓에 대해 녹이고 연단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밝히며 심판으로 황폐하게 될 유다의 성읍을 보며 탄식합니다. 이렇게 된 데는 유다 백성이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고 순종치 않았기 때문이며 마음의 완악함을 따라 바알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심판의 실제적인 결과는 알지 못하는 여러나라로의 유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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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절 여호와께서는 말과 마음의 생각까지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아직 그들을 ‘내 딸 백성’이라 부르며 어찌할꼬 합니다. 결국 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 하시는데 그렇게 된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거짓을 말하면서 이웃을 죽이고, 입으로는 평화를 말하지만 마음으로는 해를 꾸밉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말과 생각까지 하나님의 정의를 짓밟는 것을 간과하지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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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는 돌아선 이스라엘이 멀리까지 유배로 끌려갔을 때에도 오래도록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아니 끝까지 돌아오길 원하십니다. 이미 북이스라엘이 멸망한지 100여년이 지났음에도 다시금 그들이 돌아오길 원하셨던 것도 예레미야 초반부에서 보았습니다(3:12). 여기서도 ‘내 딸 백성’이라고 아직도 부르고 있습니다. 적어도 하나님은 우리가 핑계할 수 없을 만큼 오래 참으시고 기회를 주시고 기다려 주시는 것입니다. 다만 이것을 악용하거나 오용하는 무례를 범하지 않는 것이 지혜로울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이 백성을 향하여 결심하신 것은 녹여서 연단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진멸이 목적이 아니라 정화가 목적입니다. 회복하고 온전케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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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렇게 탄식하시는 데는 유다 백성의 죄악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말로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급기야 살인 행위까지 서슴치 않습니다. 그러고도 그것을 가볍게 여깁니다. 말은 그의 마음을 담아 내는 것입니다. 거짓으로 가득찬 마음이 결국 입술 로도 거짓을 말하며 불신과 불의를 자행하는 것입니다. 함께 신뢰하며 의지하며 살아가야 할 공동체가 관계를 깨어서 더이상 함께 할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입으로는 평화(샬롬)를 말하면서도 정작 마음으로는 해를 꾸민다는 것을 압니다. 이는 진리에서 떠나 탐욕의 노예가 되어서 끊임없이 하나님 아닌 것으로 만족해 하려 하고, 물질의 소유 여부로,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가는 여부로, 자신들의 가치를 따지고 삶의 의미를 생각하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더 많이 모으려고 이웃을 이용하기 위해서 아무하지만 정작 그의 마음에는 사람을 이용하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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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우리를 향하신 그 마음을 다시금 헤아려 볼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악한 유다는 도무지 자신들의 문제를 돌이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물질을 탐하면서 풍요제의에 물들어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정의와 공의를 행해야 할 본분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이는 결국 인간관계의 파괴를 가져오고 공동체를 와해 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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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다. 그리고 물건이란 사용되어지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세상이 혼돈 속에 빠진 이유는 물건이 사랑받고 있고, 사람이 사용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티벳의 노승이 한 이야기입니다. 이미 십계명을 통해서,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물질은 잘 다스려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 세 가지를 혼동하게 되면 동시에 문제가 생깁니다. 사람이나 물질을 경배해서도 안되며, 하나님과 사람을 이용해서도 안됩니다. 물질 또한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철저하게 잘 다스리고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혼돈하면 역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다산과 풍요의 제의로 혼합주의와 우상숭배에 빠진 유다의 모습은 바로 이것을 혼돈하고 있기 때문에 탐욕의 노예가 되고 사람을 사용의 대상으로 이용하면서 거짓을 말하고 해를 꾸미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심판(보복, 하나님의 정의)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생각까지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악을 끊어버리시고 온전케 빚으시기 위해서 녹이고 연단하시는 손길을 잘 깨달아 날마다 새롭게 온전하게 빚어져서 온전한 사람 즉 믿음과 행함이. 언행심사가 모두 일치된 삶을 살아 가는 자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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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도움글

7절 거짓과 속임수를 일삼으며 사회를 폭력과 투쟁의 장으로 만든 이스라엘의 죄악에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지 않으십니다. 수사적 질문 “내가 어떻게 처치할꼬”에는 하나님의 분노와 당혹감뿐만 아니라 행동을 결정하신 그분의 단호한 의지가 담겨있는 말로 “내가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로 번역하는 것이 좋습니다. 징계 이외의 다른 선택이 없게 된 그분께서 심판을 통해 악을 제거할 것을 결정하십니다. 그분은 거짓의 혀를 치명적인 화살로 악용하는 자들(8a절)을 금속을 정련하듯이 시험하실 것입니다(cf. 6:27-30). 순도 높은 금속을 얻어내는 정련 과정과 관련된 동사 ‘녹이다’와 ‘연단하다’(시험하다)는 심판의 목적이 멸망이 아니라 정화에 있음을 시사해줍니다. 하나님은 징계를 피할 수 없게 된 유다를 여전히 ‘내 딸 백성’(cf. 4:11; 8:11, 19; 14:17)이라 부르시며 안타까움과 연민을 내보이십니다.

8절 징계의 심판을 선언할 수밖에 없는 근거가 한 번 더 언급됩니다. 전반절에 3절의 비유(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진 활과 같은 혀)가 다시 등장하고, 후반절은 4-6절의 고발을 요약합니다. 거짓을 말하는 이들의 혀는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화살과 같습니다. 겉으로는 친근감 있게 평화(샬롬)를 말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웃에게 해를 끼칠 계획을 세웁니다. 겉에 드러난 친절과 사랑은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거짓으로 이웃을 안심시켜 함정에 빠뜨립니다. 아첨하는 위선적인 혀는 치명적인 독을 감추고 있는, 사기꾼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9절 거의 문자적으로 5:9, 29에도 나오는 9절은 내용과 역할에 있어 심판을 선고하는 7절의 반복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공동체를 사기꾼의 집단으로 만든 자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거짓과 속임수를 삶의 원칙으로 삼아 이웃의 연대성을 철저히 파괴한 당신 백성에게 보복할 것을 선언하십니다. 돌아올 가능성을 완전히 상실한(6절) 이스라엘에게 그분은 심판의 하나님으로 당신의 모습을 계시하십니다. ‘보복하다’(~qn 나캄)는 무시당한 하나님의 정의를 다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징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짓밟은 자들이 징계를 받지 않는다면 그분의 정의는 더 이상 주장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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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1절 여호와께서는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가 되었어야 할 약속의 땅이 황폐해진 것을 탄식하십니다. 

여호와께서(또는 예레미야가) 산과 광야 목장을 보고서 탄식합니다. 그 이유는 산과 목장이 불에 타고 왕래하는 이가 없고, 가축도 공중의 새도 짐승도 다 도망가서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공중의 새도 다 도망하여 없어졌습니다. 예루살렘은 무덤처럼 승냥이의굴이 되어서 황폐해져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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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되신 여호와께서는 약속의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푸른풀밭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 땅에서 오직 여호와가 하나님인 줄 믿고, 오직 여호와만 바라며 여호와의 통치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이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리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 속에서 여호와의 동행하심과 함께하심을 통해서 어딜 가든 목자되시는 주님으로 족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여호와를 떠난 이스라엘은 이것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스스로 여호와를 버리고 떠난 자리가 심히도 황폐해 진 것입니다. 여호와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산과 목장이 불에 타고 왕래하는 이들도 없고 심지어 가축이나 짐승의 소리와 공중의 새도 다 도망하여 없어졌습니다. 여호와께서 결국 진노 하시니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이 무덤처럼 되고 승냥이의 굴이 되게 해서 다시 광야처럼 황폐하고 더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여호와께서 무더기로, 승냥이의굴로, 황폐하게하고 주민을 좇아내는 일은 참으로 가슴아픈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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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황무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축복의 통로로의 부르심은 일상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편지로, 향기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날마다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황폐하여 주님이 없게 하리라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며 자초한 일들이지만, 더 아파하시는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운명앞에 통곡하며 슬퍼합니다. 부디 모든 것을 다 잃고 타버리고 마감해야 할 날이 오기 전에 속히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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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0-11(멸망의 탄식) - 묵상도움글

예루살렘에 멸망의 심판을 선포하는 11절의 화자 ‘나’가 하나님이심은 분명하지만, 10절에서 탄식하는 ‘나’도 하나님이신지 또는 예언자인지는, 1-5절의 경우처럼, 불분명합니다. 연속되는 11절은 하나님을 지지하지만, 탄식의 내용은 예언자를 화자로 전제하는 것 같습니다. 현재의 문맥에서 10절의 탄식은 11절이 선포한 심판의 성취에 대한 반응으로 이해될 수 있기에 예언자의 말로 간주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에 선포된 하나님의 심판이 그대로 성취될 것을 미리 내다보고 부르짖으며 탄식합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이 가능성에 속하지 않고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보여줍니다.

10절 심판 선언(7-9절)에 뒤이어 폐허가 된(될) 예루살렘과 유다를 애통해하는 애가가 나옵니다. 죽은 자를 애도하며 노래 부르듯이 예언자는 산들과 광야 목장을 위해 울며 애가를 부릅니다. 그는 다가오고 있는 죽음의 재앙을 미리 내다보고 예루살렘과 유다의 멸망을 애도합니다. 한 때 사람들이 가축을 키웠던 푸른 산들과 광야의 초지들이 완전히 불에 타서 폐허가 되었습니다. 통행하는 사람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하늘의 새와 가축까지도 다 도망쳐 버렸습니다. 들짐승들조차도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산들과 초지들이 초토화되었습니다. 생명의 움직임이 완전히 사라진 황폐해진 땅을 죽음의 적막(寂寞)이 지배합니다.

11절 예언자가 울며 애가를 부르는 이유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죄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들을 심판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10절의 시선이 들판을 바라보는데 비하여 11절에서는 시선이 성읍을 향합니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을 돌더미로 만들어 재칼의 소굴(cf. 10:22; 49:33; 51:37)이 되게 하시며, 유다의 성읍들을 황무지로 만들어 주민이 없게 하십니다. 예루살렘과 유다가 생명에 적대적인 광야처럼 폐허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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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4절 여호와께서는 불순종과 우상을 숭배하는 이 백성에게 경고를 통해서라도 깨우길 원하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여호와의 마음과 뜻을 바로 아는 지혜자를 찾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해 주길 원하셨습니다. 이 땅이 멸망하고 광야 같이 불타서 황폐해 진 이유는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고 순종하지 않고 행하지 아니함이 첫번 째 이유이고, 마음의 완악함을 따라 조상들이 가르친 바알을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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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이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것은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순종하며, 그대로 사는 삶 곧 하나님을 경외하여 순종하고 말씀의 삶을 원하십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면서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렇게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행하는 자로 자라 가지 못하고 있다고 고발합니다. 또한 마음이 완악함을 따라 조상들이 자기들에게 가르친 유전과 전통을 따라 바알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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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멸망의 원인이 자명한 사실이고, 그들의 죄악에 대해서도 명확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며 순종하는 자로 살든지, 완악함에 귀를 닫고 그대로 행하든지 행하지 않든지 해야합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한 경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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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6절 여호와께서는 회개하지 않는 이 백성을 심판 하사 유배를 보내게 됩니다. 

돌이키지 않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쑥과 독한 물을 마시게 되고,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나라 가운데서 흩어 버리고 진멸될 때까지 칼을 보내시겠다고 선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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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모든 천지 만물의 주인 되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요청하시는 쑥과 물 둘 다 먹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해져 있으니 효율적으로 잘 경건해 보는 것이 좋겠지요. 녹이고 연단해도 돌이키지 않고, 포로로 끌려가면서도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 지면서 잘 바꿔야 합니다. 만일 그곳에서도 변하지 않고 성장하지 않는다면 마침내 아무도 조상들이 알지 못하는 곳으로흩어 버리게 됩니다. 고쳐야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이 우상의 고리에서 꺾고 나오라는 것이고, 그렇게 나오면 회개할 준비와 여러가지 것을 잘 준비합니다. 더이상 땅을 오염시키지 말아야하고 정결케 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쑥과 독한 물 곧 녹이고 연단하는 것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돌아오길 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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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는 분명 정의와 공의를 세우시고, 약속의 땅에서 거룩한 백성들이 하나님이 말씀을 따라 살고, 헛된 우상을 섬기지 아니하며 살아가길 원하십니다. 탐욕과 이기와 부질없는 것들을 얻고 누리려고 애쓰기보다 여호와의 말씀 듣는 것을 더 즐겨하는 백성이어햐 할 것이비다. 더 늦어서 흩어지고 진멸되기 전에 말입니다. 여호와께 돌이키지 않아서 회개의 자리로 돌아 가기에 너무 멀리 떨어진 것을 깨닫거든 겸손히 말씀을 요청하고 주 앞에 나아갈 수 있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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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2-16(재난의 원인) - 묵상도움글

산문으로 쓰여진 12-16절은 화자(예언자)의 질문(12절)과 하나님의 답변(13-16절)이라는 외적 틀을 사용하여 유다의 멸망을 신학적으로 고찰합니다. 예루살렘과 유다의 멸망이 필연적으로 제기하게 될 질문에 대해 미리 답변을 마련해줌으로써 파국적 재난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어디에서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기업으로 준 가나안 땅이 광야처럼 황폐해졌는가? 하나님 백성이 어찌하여 이처럼 멸망에 떨어졌는가? 멸망과 땅의 황폐함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이 초래한 결과일 뿐입니다. 이스라엘의 배반이 멸망을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떠나 그분 목소리를 순종하지 않고 제 조상들처럼 완고하게 바알들을 쫓았기 때문입니다(13-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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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 거룩한 백성 삼아 주신 하나님 아버지

여호와를 향하여 경외와 경배를 드리고

사람은 사랑하고 물질은 잘 다스려 가는

지혜로운 인생이길 원합니다. 

우리의 언행심사가 진실과 사랑으로 일치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푸른풀밭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셨는데

주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므로 말미암아

어디서든 주의 나라 누리게 하옵소서. 

날마다 날마다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여호와의 목소리에 즐거이 순종하고 

헛된 우상을 버리고

주께서 공급하시고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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