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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05:10-19 여호와를 인정하지 아니하며 다른 신을 섬긴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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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백성을 용서할 수 없고, 벌하고 보복하며 심판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4:7-9) 반복해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인정하지 않았고, 여호와를 버리며 거룩한 땅에서 이방 신들을 섬긴 것 때문에 북방의 군대를 들어서 치게하시고 유다 백성은 포로로 끌려가서 이방인들을 섬기게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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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18절 징계와 심판을 행하시는 이유는 잘못을 깨닫고 돌이켜 온전케 하기 위함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징계의 도구인 유다의 대적 곧 북방의 군대를 향해 유다의 성벽으로 올라가 무너뜨리되, 다 무너뜨리지 말고 가지만 꺾어버리라고 명합니다. 그것은 이미 여호와의 것이 아니라고 선언하십니다. 유다를 징계하시고 심판하시지만 진멸하지는 않으실 것이라고도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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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을 수 없는 유다, 하나님이 벌과 보복을 피할 수 없게 된 이들이 결국 받게 되는 심판을 시작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그들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면서 의지하던 성벽, 대적들이 결코 오를 수 없고 허물 수 없을 것이라고 여기던 그 성벽이 무너집니다. 유다 백성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자신들은 예루살렘 성전과 하나님이 언약이 있기 때문에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오해하고 경거망동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들이 그토록 자랑하던 그 성벽으로 대적들이 올라와서 무너뜨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떠나버린 헛된 것을 부여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것이 아닌 곧 하나님을 떠난 것들을 꺾어 버리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은 ‘가지만’ 꺾어 버리라 하십니다. 또한 진멸이 목적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징계의 목적이 파멸과 멸망이 아니라 회개와 회복을 위함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고, 진노 중에라도 끝까지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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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징계가 없는 것은 유기입니다. 하지만 아직 하나니께서 경고하시고 심지어 징계의 채찍을 내리시는 것은 적어도 우리가 돌아갈 기회를 허락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벌을 받게 되거든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사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마음으로 행하고 계심을 믿으며 속히 그 범죄함에서 돌이키는 것이 지혜로운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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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3절 여호와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기에 반역하고 왜곡하며 자기 욕망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이 여호와를 반역했고, 여호와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해서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먼저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칼과 기근을 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예언자들의 말을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말씀이 그들 속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오히려 어려움을 당할 것이라고까지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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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말하는 대로 또 행동합니다. 여호와에 대한 바른 이해와 묵상이 없기에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 버립니다. 지금 유다백성의 모습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에 문제가 있기에 그들의 말과 행동은 심각한 수준에 다다릅니다. 이들의 모습이 얼마나 심각한 반역인지 고발하고 있습니다. 우선 그들은 여호와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바알이 더 현실적이고 여호와는 자신들의 풍요를 위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급기야 지금 선지자를 통해서 전해지는 경고와 재앙들은 결코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들려진 칼과 기근을 보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의지하고 있는 외교적, 종교적인 힘과 권력과 다른 것들이 칼과 기근으로부터 지키고 보호해 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런 경고를 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바람이라고 폄하 하면서 오히려 선지자들이 저주를 받고 자기들이 말한대로 당하게 될 것이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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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절 말씀은 거짓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에 그들이 당하게 될 것을 말하는 것에 대해서 12절과 같이 당하게 될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속으로 읽으면 유다백성에게 심판예언자들의 말은 실체가 없는 바람같은 것으로 치부되어 심판도 실현 가능성이 없게 될 것이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는데, 13절을 앞의 말씀과 분리해서 따로 읽게 되면 거짓 예언자 곧 구원예언자들에 대한 비판으로 예레미야의 심판예언에 맞서 이스라엘의 평화와 안전을 선포하였던 다수의 구원예언자들은 헛된 소리나 떠드는 자들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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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인정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결국 우리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믿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여호와를 바르게 아는 일도 중요하고, 역으로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거룩함을 담아야 합니다. 우리가 알게 된 여호와의 말씀대로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가 세상에 휩쓸려 사는대로 생각하며 결국 하나님을 인정하는데서 멀어져 어느새 반역의 자리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여호와를 아는 일에 열심을 갖고 있으며, 내가 알고 있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의 한계를 인정할 수 있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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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절 말은 생각을 담고 있기에 결국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한 대로 생각한 대로 행동한 대로 심판하십니다. 

유다 백성의 심각한 생각과 말과 행동은 결국 그들이 행한대로 당하게 됩니다. 그들이 뱉은 말은 불이되어서 결국 자신들 스스로를 불사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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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생각을 담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한대로 또 행동합니다. 사람은 속에 있는 것을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언행을 보면 그가 어떤 생각을 품었는지 알게 됩니다. 바라기는 우리의 언행심사(言行心事)가 일치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라 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생각한 대로 하나님을 반역했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의 말을 부정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예언에 대한 정당성을 인정해 주면서 하나님의 심판의지와 실행능력을 부정하며 심판예언자를 멸시한 자들(유다 백성과 구원예언자 곧 거짓 예언자들)에게 멸망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불이 되게 하고, 유다 백성을 나무가 되게 하여 말씀의 불로 백성의 나무를 삼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언자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이 불이 되어 그 말씀을 거역한 백성을 다 삼켜 버린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선포된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성취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선포하실 뿐만 아니라 능력으로 그 말씀을 실행하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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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말하고 생각한 대로 보응하게 합니다. 순종의 사람들에게는 그에 합당하게, 거역하는 이들에게는 그에 응당하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주신 말씀을 불이 되게 하고 백성은 나무가 되게하여 불사르리라는 것은 말씀대로 그대로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신 말씀도 마찬가지인줄 믿습니다.

“백성들이 겪게 될 시련은 그들이 자초한 것입니다. 그들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였고, 재앙을 만나지 않으리리는 헛된 바람에 기대 살았습니다. 거짓 예언자들 때문입니다. 평안이 없을 때에도 ‘평안’을 선포하고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들려주고 제 밥벌이를 하던 이들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아무런 예언을 준 일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말을 불이 되게 하고, 백성들을 나무가 되게 하여 불사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5:14).”_<끙끙앓는하나님>-김기석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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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0-14(유다에 임할 심판)_묵상도움글

10-11절은 전통적인 포도원의 비유를 사용하여 유다에 심판을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 누군가에게 예루살렘의 포도원 두둑(성벽)으로 올라가 파괴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본문이 직접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분에 의해 심판의 도구로 부름을 받는 자들이 유다를 침공할 이방 세력임을 문맥으로부터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가 심히 반역하였기에 하나님께서 이방 군대를 불러 이들을 징계하십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이스라엘과 유다를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포도나무의 가지만 잘라내게 하십니다. 심판의 목적이 하나님 백성을 정화시키는데 있음을 함축적으로 보여줍니다.

12-14절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두 가지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합니다. a) 12절의 ‘그들’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가? b) 13절과 12절의 문장 관계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특히 후자의 질문이 중요합니다. 13절이 야훼를 부인하는 자들이 하는 말(12b절)의 연속인지(JPS, NIV, 개역개정, 새번역) 또는 12b절에 전제된 구원예언자들에 대한 예레미야의 비판인지(NRS, EIN) 모호합니다. 문법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양자의 해석이 모두 가능합니다.

12절 사람들이 야훼를 인정하지 않으며 “여호와께서는 계시지 아니하니” 라고 떠들어댑니다. 문자적으로 “그분은 아무 것도 아니시다” 정도로 옮길 수 있는 이 말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적 주장은 아닙니다. 야훼의 능력을 무시하는 말입니다. 야훼는 당신의 의지를 집행시킬 만한 힘이 없는 분이시기에 그분의 말씀은 무시해도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와 같은 심판예언자들이 선포한 그러한 재앙을 실제로 임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그분께는 없습니다. 심판예언자들(<>구원예언자)이 그분의 이름으로 ‘칼과 기근’의 재앙을 선포하지만 실현성이 없는 헛된 말 잔치에 불과할 뿐입니다. 교만에 사로잡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의존하길 거절하고 더 이상 그분을 자신의 실존적 토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13절 [12절의 연속으로 읽는 개역개정에 따르면:] 야훼를 무시하며 최소한의 두려움도 보이지 않는 자들에게 그분의 이름으로 재앙을 선포하는 심판예언자들은 실체가 없는 ‘바람’일 뿐입니다.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멸망의 심판은 실현 능력이 없는 헛된 말로 바람처럼 허공으로 사라질 뿐입니다. 심판예언자들의 선포는 야훼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들은 자기 생각을 떠들 뿐입니다. 이들이 [거짓으로] 선포한 재앙은 유다가 아니라 이들에게나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명목상으로만 인정하는, 그분을 이스라엘의 구원자로만 알고 있는 자들에게 예레미야와 같은 심판예언자들은 거짓예언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13a절을 12b절로부터 단절시켜 독자적 말씀으로 읽을 경우 13절은 예레미야와 대립하였던 구원예언자들에 대한 비판이 됩니다. 예레미야의 심판예언에 맞서 이스라엘의 평화와 안전을 선포하였던 다수의 구원예언자들은 헛된 소리나 떠드는 자들일 뿐입니다. 이들은 야훼로부터 말씀을 받지 못했음에도 그분의 이름으로 구원을 선포하는 거짓예언자들입니다.

14절 ‘야훼 만군의 하나님’께서 당신의 명에 따라 재앙을 선포한 예레미야의 예언자적 사역의 정당성을 인정해주시며, 당신의 심판의지와 그 실행능력을 부정하면서 심판예언자들을 멸시한 자들(유다 사람들 또는 구원 예언자들)에게 멸망을 선언하십니다. 야훼께서 예레미야의 입에 있는 당신의 말씀을 불이 되게 하시고 유다 백성을 나무가 되게 하셔서 말씀/불로 백성/나무를 삼키게 하십니다. 예언자의 입에서 나가는 하나님의 말씀이 불이 되어 그 말씀을 거절한 백성을 다 삼켜버릴 것입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선포된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성취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선포하실 뿐만 아니라 능력으로 그 선포된 말씀을 실행하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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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7절 여호와에 대한 반역은 결국 우리가 수고한 떡을 먹지 못하게 되고, 우리가 의지한 것들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는 한 나라를 먼곳에서 보내서 이스라엘을 심판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들이 얼마나 강하고 무서운 이들인지 소개하면서 그들이 오게 되면 결국 그동안 여호와를 버리고 풍요제의를 따라 수고하며 애쓰고 농사지은 것들을 자신들과 자녀들도 먹지 못하도록 빼앗기고 자신들이 믿고 있던 견고한 성벽도 칼로 파멸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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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남은 것은 파멸 뿐입니다. 유다백성이 그토록 외교적으로 위기를 모면해 보기 위해서 노력하고, 나름대로의 신앙적 확신을 갖고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하는 길이었기에 결국 보장되지 않는 길이며 파국을 피할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북방에서 오는 한 나라, 그들이 용맹하고 무자비하고 용사들이라 할지라도 지금 그들을 부르고 다스리시는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그래서 그들의 진행하는 모든 행위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대리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심판을 두려워하기보다 그들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지금 말씀하시고 돌이키도록 기회를 주시고,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선지자의 경고에 귀기울여야 했습니다. 이들의 무자비함은 그들이 활을 들기만 하면 백발백중 사람들을 쓰러뜨리기에 열린 무덤처럼 사람들이 죽어 갈 것이며, 모두 다 용사이기에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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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자녀들이 먹을 추수 곡물과 양식을 먹고, 양떼와 소떼를 먹으며 포도나무와 무화과 열매를 먹을 것이라고 합니다. 더욱 이들이 그토록 의지하던 성들도 칼로 파멸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이들이 그토록 하나님의 은혜를 외면하면서 떠난 이유가 자신들의 소유를 풍요롭게 하고,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많이 모아서 자손대대로 물려서 잘 먹고 잘 살겠다고 풍요의 신 바알을 따라 그토록 열심히 살아왔는데 정작 그렇게 모은 모든 소유를 누리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이들을 이방의 땅으로 끌고가서 그들이 모은 모든 것들과 소유들은 하나도 누리지 못하고 이방인들이 먹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심각한 저주이면서 치명적인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가 수고하고 애쓴 것들을 누리지도 못하고 물려주지도 못하고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을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부질없는 것들에 너무 많은 수고와, 고민과 마음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유다 백성이 그토록 의지하던 성벽 그 중에는 예루살렘 성도 포함될 것입니다. 그런 모든 것들이 칼로 파멸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이 예언에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진멸하지는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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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인정하는 것이, 그리고 여호와의 심판의 손이 들려지기 전까지는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모든 열방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이제라도 심판에 대한 지연과 유보를 하실수도 있습니다. 그 전제 조건은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공평과 정의를 이루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고한 대로 누릴 뿐 아니라 자손들에게도 귀한 신앙의 유산들을 물려 주는 일등은 우리가 간절히 바라고 고대하던 바입니다. 부질없는 것들, 다 누리지도 못할 유한한 것들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신앙의 유산들을 물려 줄 수 있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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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절 여호와를 버리면 헛된 것들(이방신과 이방인)을 섬기며 종노릇하는 인생으로 전락합니다.

포로로 끌려간 이후에 자손들이 왜 자신들이 이렇게 포로로 끌려오게 되었는지를 묻게 될 경우에 답할 말씀을 주십니다. 그것은 여호와를 버리고, 약속의 땅에서 이방신을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포로로 끌려오게 해서 이곳에서 이방’인’들을 섬기리라 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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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이미 남유다도 북이스라엘처럼 멸망하여 북방의 강한 민족에게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가서야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행하셨는지를 묻게 될 때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신을 섬겼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라는 것입니다. 그 결과 약속의 땅이 아닌 곳에서, 이방 신도 아닌 이방인 곧 사람을 섬기는 종노릇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할 이들이 먼 타국에서 객이 되어서 심지어 종이 되어서 사람을 섬겨야 하는 포로로 전락될 것에 대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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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결국 우린 다른 무엇인가의 포로로 살게 됩니다. 내가 지배하려 하지만 이미 잃어버린 대리통치권은 다시 회복할 길이 요원하고, 헛된 것들의 포로로, 사람의 종으로 그렇게 분주하게 억압속에서 살아가는 비참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내 삶이 하나님 아닌 것에 사로잡혀서 원하지 않은 삶을 억압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다면 그 원인은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다스리려는 다른 것들의 종노릇 하고 있기 때문임을 기억하고 속히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길 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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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5-19(먼 곳 민족에 의한 심판) _ 묵상도움글

15-19절은 운문으로 된 15-17절과, 산문으로 된 18-19절의 두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전자는 이방민족에 의한 유다의 심판을 선언하고, 후자는 가상적 문답형식을 활용하면서 심판 이후를 살아가는 자들에게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심판이 파국적 재앙이기는 하지만 모든 것의 끝장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야훼께서 강한 민족을 불러 유다를 심판하시지만 완전히 진멸하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유배민들은 자신의 현실을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신학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멸망과 유배를 우상숭배에 대한 야훼의 징벌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관계회복을 위해서는 먼저 기존의 관계가 어떤 연유로, 누구의 잘못으로 파탄에 직면했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 원인을 바르게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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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징계와 심판을 통해서라도 우리가 회개하고

다시금 거룩한 주님의 백성의 자리로 돌아오길 원하시는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 아버지

주님 아닌 것을 의지하면서 

정작 주님을 반역하고 인정하지 않는 패역한 죄에서 

돌이키게 하옵소서. 

주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과 통치하신 말씀의 능력을 알고서

감히 그 말씀을 무시하는 어리석음 범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대로 보응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나의 말과 행실이 정결하게 하옵시며

언행심사가 거룩한 주님의 백성으로 선한 일에 열심인 자로

모두가 일치된 행실로 온전한 자 되게 하옵소서. 

아무리 강한 나라일지라도 

주님의 도구일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수고와 힘씀이 헛되지 않게 하옵시며

수고의 떡을 먹고 자녀들에게 소중한 것을 나누며

모든 소유가 주님이 통치에 따라 순응되길 원합니다. 

우리가 주님이 몸된 성전인 것과

주님의 약속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 보다 더

주님이 신실하심을 신뢰하며 주님만을 바라고

주님으로 만족하는 인생이게 하옵소서

주를 버리고 떠난 길의 결국은 파멸임을 기억하며

주님의 징계와 심판과 경고에 합당하게 반응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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