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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9:14-20:6 여호와의 집에서 예레미야와 바스훌

*

도벳에서의 퍼포먼스 이후 예레미야는 다시금 성전 앞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합니다. 이에 성전 질서를 관장하는 총감독 바스훌은 예레미야를 때려 나무 고랑으로 채워 감금한 후에 풀어줍니다. 이에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바스훌을 ‘사방으로 두려움’이라는 뜻의 마골밋사빕이란 이름으로 바꾸시게 될 것이라 하고 그가 결국 예루살렘 성전이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져서 왕도 그리고 성읍의 모든 부와 소득과 귀중품과 보물들이 원수의 손에 넘겨지고 바스훌과 그의 집 사람들은 포로로 끌려가고 그에게 부화뇌동하는 이들도 동일하게 될 것이라 예언합니다. 

*

# 14,15절 여호와의 임재가 떠난 성전은 이제 재앙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집 뜰에 서서 목이 곧은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이 성읍과 촌락에 대해 선언한 모든 재앙을 내릴 것이라 선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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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백성들은 성전이 영원한 안전과 무조건적인 용서의 징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 뜰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예언하기를 그간 선언한 모든 재앙이 분명하게 내릴 것이라 선언하게 합니다. 그 영역은 예루살렘 성 뿐 아니라 모든 촌락에 임하게 될 것이라 말하며 총체적인 심판을 선언합니다. 결국 이러한 심판을 맞게 된 이유는 그간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한 것을 듣지 않고 목이 곧은 곧 교만한 것 때문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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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순종의 길은 멸망 뿐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순종없는 성전은 더이상 안전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 없는 성전은 더 이상 용서의 징표가 되지 못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경외가 있을 때라야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고 하나님이 함께하고 하나님의 보호와 임재가 충만하게 됩니다. 오늘 주님의 몸된 성전으로서의 교회된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교회이기에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에 온전히 순종하고, 그분의 말씀을 즐거이 묵상하는 자라야 복있는 자로 거룩한 백성으로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몸된 성전의 거룩은 여호와의 말씀에 대한 순종 여부에 따라 구분됩니다. 하나님의 통치에 귀 기울이고 순종함 없이 주님의 긍휼과 사랑과 용서만을 무조건적으로 바라고 악용하는 것은 또 다른 교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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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4-15(성전 앞뜰에서의 심판선포) - 묵상도움글

표적행위를 끝내고 도벳에서 돌아온 예레미야는 다시금 성전 앞뜰에 서서 온 백성에게(14절) 야훼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목덜미를 뻣뻣하게 하면서 당신 말 듣기를 거절한 예루살렘과 그 주변의 다른 모든 성읍들에 야훼께서 이미 선포하였던 재앙을 임하게 하실 것입니다(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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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절  여호와의 임재에 익숙하지 않으면 영적 분별력을 잃게 됩니다. 

제사장 바스훌은 여호와의 성전의 총감독으로 성전의 질서 유지를 명목으로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고 그를 때리고 성전에 있는 나무 고랑에 채워 감금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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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예언, 주류들의 말들, 그리고 오랜 전통과 관습에 익숙해 있다가 정작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전하는 것에 대해 영적 분별력을 갖지 못하고 오히려 예레미야의 예언에 대해 질서 유지를 명목으로 그를 때리고 고랑에 채워 감금시키는 일은 바스훌이 질서를 유지하려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게 되는 패역한 일을 자행하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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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된 평화, 익숙한 전통, 바라던 일들 모두 그것이 과연 하나님으로부터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 기인한 것인지 늘 깨어 있지 않는다면, 어느새 익숙함에 속아 하나님의 바른 뜻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이일 수록 자신을 향한 쓴소리와 부정적인 부분에 대한 조언을 귀담아 듣습니다. 하지만 미성숙한 이들은 자신의 뜻을 거스리거나 객관적인 부분에 대한 말을 듣게 되면 금새 그것을 부정하고 급기야 그렇게 바른 말 하는 이의 입을 막으려 합니다. 

오늘 우리 일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한 영적 분별력과 영적 감각을 민감하게 갖고 있어야 합니다. 시대를 옳게 분별하며, 나와 우리 공동체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계시되는 말씀에 대한 분별력과 그 말씀으로 무장하고 세상을 읽어내고 그 가운데 이 세대와 다른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에 대한 부분들을 잘 읽고 순종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

# 3-6절 여호와의 임재가 불의한 이에게는 두려움과 절망으로 다가옵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을 때리고 감금했다가 풀어주는 바스훌을 향하여 여호와의 예언을 전합니다. 우선 바스훌이 ‘사방으로 두려움’이라는 뜻의 ‘마골밋사빕’이 될 것이라 선언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친구들에게 두려움이 되어서 그들의 원수들의 칼에 엎드러지는 것을 볼 것이고 온 유다가 바벨론의 왕의 손에 넘겨져서 죽게 딜 것이라 합니다. 그 때에 성읍의 모든 부와 소득과 귀중품과 왕들의 보물들이 우너수의 손에 넘겨져서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바스훌 집안의 모든 이들도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 이르러 죽게 될 것이라 합니다. 이는 바스훌 뿐 아니라 거짓 예언을 들은 모든 친구들도 그와 같을 것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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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임재가 죄인에게는 두려움이고 의인에게는 영광이 됩니다. 바스훌은 성전의 질서를 맡는 총감독이긴 했지만 그가 예레미야를 때리고 감금한 행동은 그 예언을 백성이 듣고 돌이킬 기회를 막았기 때문에 그가 한 행동은 이제 모두에게 두려움이 될 심각한 행동이 된 것입니다. 존경의 대상이 아닌 모두에게 공포거리가 되고 심지어 바벨론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리라는 예언은 그간의 모든 수고가 헛것이 되는 심각한 예언이었습니다. 이제 그가 예레미야를 통해서 들어야 할 예언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자신과 가족들과 그가 지키고 싶어했던 모든 이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 죽게 되고, 그들의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며 자신들의 안위와 든든한 배경이 될 것이라 여겼떤 모든 부와 소득과 귀중품과 왕들의 보물들도 원수의 손에 넘겨지게 되고 그들은 포로로 끌려가 죽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스훌의 행위가 이토록 심각했던 이유는 하나님의 예언을 옳게 분별하지 못하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위치의 중함과 책임을 직시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예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어서 다른 백성들까지 들을 기회를 박탈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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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와 권한이 커질 수록 책임이 중하고, 그가 한 언행은 그만큼의 영향력과 책임 역시 커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영적 분별력과 감각을 민감하게 다루고 있지 않다면 그에 따른 언행의 결과와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결국 바스훌의 모습은 그간 예레미야의 예언에 대해서 꿈쪽도 하지 않고, 귀기울이지도 않고, 순종은 커녕 미친 사람 취급했던 강퍅하고 패역한 모든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주류 속에서 어느새 하늘의 뜻보다 관습과 사람들의 시선에 더 치중하여 눈치를 보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사람과 돈과 자신이 쌓은 권력과 지위로 말미암아 영적 분별력을 잃고 말년에 추해지는 이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이 땅에서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영적인 눈이 흐려지지 않고 분별력을 세우고,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진위 여부를 옳게 분별하는 일 뿐 아니라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살아가는 일 또한 쉬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영적인 감각은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옳게 분별하며 어디서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이로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  20:1-6(예레미야와 바스훌) - 묵상도움글

1절 전통과 기존질서(status quo)를 대변하는 예루살렘 성전이 예레미야의 심판선포에 반응을 보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제사장 바스훌이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포한 예레미야의 예언을 듣고 행동에 나섭니다. 이멜의 아들 바스훌의 직분을 표시하는 ‘야훼의 집의 총 감독관’은 여기에서만 발견되는 명칭으로, 아마도 성전과 그 주변의 질서유지에 책임을 맡은 자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예레미야처럼 야훼의 이름을 빙자하여 소란케 하는 자들을 잡아다가 가두고 벌을 주는 것이 ‘성전의 총감독’이 담당하고 있던 임무의 일부였던 것 같습니다(cf. 29:26). 바스훌은 애굽에서 기원하는 이름으로 ‘호루스(horus)의 아들’을 의미한다.

29:25-26에 의하면 마아세아의 아들 스바냐가 여호야다를 대신하여 ‘여호와의 성전 감독자’로 나옵니다. 이를 배경으로 보자면, 임멜의 아들 바스훌은 주전 597년에 유배를 당했던 것 같습니다.

2절 성전의 총감독 바스훌은 심판예언으로 소란을 피운 예레미야를 잡아 때리고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베냐민 문 위층’에 감금시킵니다. ‘베냐민 문 위층’(베냐민 윗대문)은 성전 경내로 들어가는 문으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는 벤야민 문(37:13; 38:7)하고는 구별됩니다. 이름으로부터 추측하자면 성전 북쪽(벤야민 지파 방향)으로 면한 문인 것 같습니다. ‘위층’은 성전의 베냐민 문이 비교적 높은 지대에 위치했기 때문에 붙여진 수식어입니다. 아마도 유다 왕 요담이 건축한 ‘성전의 윗문’(왕하 15:35; cf. 겔 9:2)과 동일시될 수 있습니다.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으로 번역한 히브리어 ‘mahpeketh’의 의미는 불분명합니다. 아마도 징벌도구로 사로잡힌 자들의 손발을 묶어놓는데 사용되는 기둥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3절 다음 날 풀려난 예레미야는 바스훌에게 심판의 선고로 응수합니다(cf. 암 7:16-17). 야훼께서 그의 이름을 바스훌대신에 ‘마골밋사빕’으로 부르실 것입니다. 이름을 바꾸는 행위는 단순한 조롱을 넘어 상징적 행위에 속합니다. 유다에 선포하였던 야훼의 심판이 바스훌에게 개인적으로 선포됩니다. 역할이 완전히 바뀌어 성전의 치안을 담당하였던 바스훌은 이제부터는 유다에 임할 재앙의 구현자(具現者)가 됩니다. 마골밋사빕으로 그 이름이 바뀐 바스훌은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적들로 인해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히게 될 유다의 운명을 상징하게 됩니다.

4절 바스훌에게 주어진 새 이름 마골밋사빕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해석해줍니다. 바스훌이 그의 친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공포를 경험하게 됩니다. 바스훌이 보는 앞에서 그의 친구들이 침략자들의 칼에 맞아 쓰러질 것입니다. 야훼께서 온 유다를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주시기에 누구도 그의 칼을 피할 수 없습니다. 바벨론 왕이 그들을 칼로 죽이고 사로잡힌 자들은 바벨론으로 유배시킬 것입니다. 야훼 성전의 질서를 책임진 자가 야훼께서 유다에 임하게 하실 심판의 상징적 인물이 됩니다. 여기서 처음으로 북쪽에서 내려오는 적들(1:11-12; 4:6; 6:1)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언급됩니다. 야훼께서 바벨론 제국을 불러 당신께 등을 돌린 유다를 심판하십니다.

5절 야훼께서 예루살렘 성의 모든 부와 귀중품을, 유다 왕들의 모든 보물을 바벨론 침략군의 손에 넘겨주어, 저들이 그것들을 약탈하여 바벨론으로 가져갈 것입니다. ‘모든’을 네 번(모든 부, 모든 소득, 모든 귀중품, 모든 보물) 사용하면서 침략군에 의해 남김없이 약탈당할 것을 강조하여 보여줍니다. 유다는 사람도 재물도 모두 빼앗기고 폐허만 남게 될 것입니다.

6절 바스훌은 예루살렘과 유다가 바벨론의 칼에 처참하게 유린당하는 것을 볼뿐만 아니라(3-5절) 집안 사람들과 함께 바벨론으로 유배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바스훌과 그의 ‘거짓 예언’을 추종한 그의 친구들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거기서 죽어 묻힐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바스훌이 거짓을 예언했다고 고발합니다. 바스훌은 예레미야의 심판예언에 맞서 야훼의 구원을 선포했던 구원예언자들을 지지했던 것 같습니다. 바스훌과 같은 성전 소속의 제사장들과 구원예언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심판예언자는 성전과 사회를 어지럽히는 ‘예언자 행세를 하는 미친 놈’에 불과했습니다(cf. 29:26). 

*

# 거둠의 기도

말씀하시는 하나님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는 시청각적인 것들을

옳고 민감하게 분별하고 반응할 수 있길 원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된 성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임재가운데 거룩하고 신실하게

주님께 순종하는 거룩한 전이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 깨어 있어서

어떤 형태로 전해지든 

그것을 선악과 가부간에 옳게 분별할 수 있는

영적 감각과 분별력을 허락해 주옵소서.

그래서 착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시의 걸림돌이 아니라

통로로서 온전히 감당할 수 있길 원합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과 임재를 증거할 수 있는

영적 통로로 쓰임받길 원합니다. 

우리의 모든 소유의 주권이 주께 있고

우리의 안녕과 질서 또한 주님께 있음을 믿으며

주님 아닌 것들에 우리의 마음과 신앙을 쏟지 않게 하옵소서. 

언젠가 주님 앞에 설 날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오늘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뤄가는

말씀이 전파되는 디딤돌로 통로로

온전히 쓰임받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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