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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9:01-13 깨진 옹기같은 유다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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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는 이번에는 힌놈의 골짜기에서 예레미야에게 예언과 퍼포먼스를 행하라고 합니다. 옹기를 사서 깨뜨리는 행위를 통해 이스라엘의 운명을 보여주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더럽혔기 때문에 결국 재앙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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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20:6(깨어진 질그릇 – 체포된 예레미야) - 묵상도움글

야훼께서 예레미야에게 옹기(질그릇 항아리)를 사서 몇몇 장로들과 제사장들을 데리고 하시드(질그릇 조각) 문 곁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갈 것을 명하십니다(1-2절). 장로들과 제사장들은 예언자가 거기에서 행하고 말하는 것을 보고 듣는 증인(목격자)의 역할을 담당합니다. 명령에 따라 지정한 곳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 위에 정하신 심판을 선언하며(3-9절) 그릇을 깨뜨립니다(10절). 야훼의 말씀에 따라 예레미야는 자신의 표적행위를 해석해 줍니다(11-13절). 한번 깨어진 옹기는 고칠 수 없어 버려지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에 의해 그렇게 심판을 받고 버려질 것입니다(11절).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 앞뜰에서 심판의 말씀을 한 번 더 선포합니다(14-15절). 야훼의 집 감독관인 바스훌이 예루살렘과 유다의 멸망을 선포하는 예레미야를 체포하여 체형을 가하게 합니다(20:1). 그 다음 날 풀려난 예레미야는 바스훌에게 멸망과 유배의 심판을 선포합니다(20:2-6).

13:1-11에 나오는 베띠(아마포 띠)의 표적행위처럼 옹기를 깨는 표적행위는 11절의 해석이 보여주듯이 유다의 완전한 멸망을 가리킵니다. 옹기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면 고쳐 다시 쓸 수 없는 것처럼 유다의 운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다에 임할 심판은 교육적 목적이나 정화를 위한 심판이 아니라 완전한 파괴를 목표로 하는 멸망의 심판입니다. 심판 이후의 유다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오직 절망과 암흑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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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절 여호와의 말씀과 명령에 대해 모든 세대가 즉각 두렵고 떨림으로 듣는 것이 바람직 합니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의 옹기를 사서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사람과 흰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 예언하며 여호와께서 재앙을 내릴 것이라 말하니 모든 자의 귀가  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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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놈의 아들 골짜기는 도벳 사당이 있던 곳으로 그곳에서 유다 백성들은 자기들의 자녀를 불살라 신에게 바친 끔찍한 폐습이 자행된 현장이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예언하며 옹기를 사고 퍼포먼스를 준비하게 하는 것을 통해서 여호와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옹기는 유다와 그들의 운명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토기장이이신 여호와께서 만드시고 세우시고 여기까지 인도한 존재가 이스라엘입니다. 이제 증인들을 세워서 그들에게 재앙이 임할 것에 대해서 선포한 것입니다. 유다 백성이 자신들의 인신공희(人身供犧) 행위가 얼마나 심각하고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똑바로 직시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패륜에 대한 결과가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하나님의 말씀이 울릴때 듣는 자의 귀가 떨릴 정도로 무서운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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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탐욕을 성취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권한들을 오,남용하는 경우가 많아질수수록 영적 감각이 무디어지고, 심각한 죄악에 대한 경각심도 떨어집니다. 급기야 자신들의 모든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합리화하면서 결국 폐륜적 이방제의들에 대해 거부감 없이 동조됩니다. 마치 오늘날 교회가 세상의 문화와 별반 다를바 없는 이기적이고, 돈에 눈이 멀고, 윤리 도덕은 바닥에 떨어지고, 하나님과 세상으로부터 사랑은 커녕 불신과 미움과 경멸의 대상으로 전락된 현실입니다. 

주의 말씀에 대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듣는일이 회복되어야 할 것입니다. 약속에 신실하신 주님 앞에서, 말씀의 권위에 대한 온전한 고백과, 우리의 일상에서 오래도록 습관적으로 범하는 죄악에 대해서도 두렵고 떨림으로 온전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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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3(야훼의 명령) - 묵상도움글

옹기(오지병)로 옮긴 히브리어 ‘baqbuq’(왕상 14:3; 렘 19:1, 10)는 물을 따를 때 꼴깍꼴깍하는 의성어에서 온 단어로, 목이 좁고 배가 불룩하며 손잡이가 하나로 된, 진흙을 구워 만든 액체를 담는 병이나 항아리를 가리킵니다.

그 위치가 불명확한 ‘질그릇 조각의 문’(하시드 문)은 예루살렘 남서쪽을 두르고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나아가는 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토기장이들이 깨어졌거나 잘못 만들어진 토기를 내다버렸던 곳이 문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같습니다. 느헤미야서에 나오는 ‘골짜기 문’(2:13; 3:13)이나 ‘분문’(거름 문; 2:14; 12:31)과 동일한 문으로 간주됩니다.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벤-힌놈 골짜기)는 예루살렘 남쪽과 서쪽을 둘러싸고 있는 골짜기 이름입니다. 왕정시대에 사람들이 우상에게 제사를 드렸던 장소인 도벳(Tophet)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도벳에서 아이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거나 불에 태워서 몰록/몰렉에게 제사를 드렸습니다(렘 7:31-32; 19:6; 32:25). 요시야 왕은 도벳을 더럽혀 몰록에게 아이들을 바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왕하 23:10).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ge-ben-hinnom)로부터 신약의 Gehenna(Targumim: Gehinnam)가 파생되어 나옵니다. 가증스러운 제의적 행위 때문에 유대교에서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가 최후인 심판 장소로 바뀝니다. 주전 1세기경에 Gehenna는 죽은 직후에 또는 최후의 심판 후에 악한 자들을 불로 징계하는 장소로 간주되었습니다(cf. 마 5:22; 막 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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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절 여호와의 명령과 뜻은 결코 이스라엘이 다른 헛된 것들을 경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여호와를 버리고 불결하게도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고, 무죄한 자들의 피를 흘리게 합니다. 무엇보다 이방 신전에서 행하던 인신공희를 바알에게 번제로 드렸는데 여호와께서는 당신이 명령하거나 말하거나 뜻한바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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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다른 이방신을 섬기는 것도 모자라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립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결코 있을 수 없는 일들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타인의 희생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사리분별이 제대로 되지 않는 어린 생명들을 희생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드립니다. 그런 이방의 심각한 문화를 하나님의 백성들이 버젓이 자행한 것입니다. 

모든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인신공희 전통은 수렵과 목축시대와 농경시대에 이어진 악습입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바쳐서 자신들의 신의 호의를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극단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결국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서 죄없는, 연약한, 돌봄이 픨요한 이를 희생시키는 행위들은 천인공노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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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신을 분향하며 무죄한 자의 피로 채우고, 바알을 위해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번제로 불살라 드리는 일은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 배은하는 일이며, 여호와 하나님과 무관 무시하는 패역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도 아니고, 하나님의 뜻도 아니며, 하나님의 계획과도 부관한 일이며 오직 자신들의 이기적 욕망과 탐욕의 산물로 우상을 숭배하고 심지어 타인의 희생을 통해서라도 그것을 채우려는 가장 어리석은 인간의 악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 세상 속에서도 주님이 우리에게 한알의 밀알이 되고 빛이 되고 소금이 되라시는 역행, 역설적인 삶은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 이외에 주님이 능력 주심 외에 갈 수 없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주님의 긍휼과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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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절 여호와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행위가 얼마나 허망한 시도였는지 입증하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제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 골짜기를 ‘죽임의 골짜기’라 부르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또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계획을 무너뜨릴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더불어 전쟁을 통해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심판하여 조롱거리가 되고, 곤경에 빠져 자녀의 인육을 먹게 되는 두려운 심판에 대해서도 언급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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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을, 하나님이 주신 것을, 하나님의 주권을 가진 자녀들을 그렇게 아무렇게나 대해서는 안된 것입니다. 자녀들은 우리의 소유도 아닙니다. 그들의 주권은 여호와께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잠시 맡아서 양육하고 성인이 되도록 돕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돌봄이 필요한 어린 아이들을 희생양으로 삼아서 자신들의 이득을 챙기려는 자세는 너무도 심각한 일입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주변 강대국의 손을 이용해 예루살렘을 심판하게 되면 그들의 그토록 채우고자 했던 것들을 채우지도 못하고, 전쟁으로 무너져 버릴 것이며, 시신을 미처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조롱거리와 놀림 거리가 될 것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난공불락이라 여기던 예루살렘에서 오래 버티다가 에워싸인 성읍에서 나가지 못하고 이제 자녀들의 인육을 먹는 반인륜적인 일이 벌어지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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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숭배는 탐욕의 산물이라 했습니다. 자기 욕망을 위해서 자식과 이웃까지 그리고 스스로를 희생시키는 것이 우상숭배의 본질입니다. 탐욕을 이루기 위해서 인간이 아무리 노력한 들, 건강을 잃으면 소용 없고, 영적 강건함을 고수하지 않고는 날마다 시험에 들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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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죽임’은 다르다. 죽임은 생명의 폭력적 단절이다. 죽임을 당하는 이들은 대개 보복의 능력이 없는 약자들이다. 절박하다고 하여 누군가를 희생시킴으로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이나 사회는 불의하다. 하나님은 그런 행위를 용납하실 수가 없다. 하나님은 거룩한 땅을 피로 물들인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하신다.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가 장엄하게 울려 퍼진다.”_김기석목사님의 <끙끙앓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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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9(심판의 선고와 그 근거) - 묵상도움글

야훼는 4-5절에서 유다의 우상숭배를 고발하신 후에 6-9절에서 이들에게 심판을 선고하십니다. 풍요와 번성을 바라며 우상에게 제사를 드렸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가 멸망과 저주를 상징하는 ‘죽음(살육)의 골짜기’가 될 것입니다(6절). 야훼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계획(모계)를 산산조각 내어 이들을 적들의 칼에 죽임을 당하게 하실 것입니다(7절). 본문은 이들의 계획에 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아마도 바벨론의 위협에 대비하여 마련해 둔 군비강화와 주변나라들과의 정치적 동맹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야훼께서 이들의 계획에 반대하시기에, 이들은 처참하게 패배를 당할 것입니다. 이들이 마련한 침상과 이불은 몸을 펴고 덮기에는 너무 짧고 좁았습니다(사 28:20). 이들의 패배는 파국적이며 전면적이어서 전쟁에서 쓰러진 자들의 시체가 무덤에서 안식을 얻지 못하고 길거리와 들판에서 하늘의 새와 들짐승의 먹이가 됩니다(7b절; cf. 7:33a).

성읍들은 완전히 무너져 귀신들이나 살기에 적합한 장소가 됩니다. 폐허가 된 성읍 곁을 지나가는 자들은 귀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휘파람을 붑니다(8절; cf. 18:16; ‘조롱 거리’는 ‘휘파람거리’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9절은 다시 전쟁의 극심한 상황을 묘사합니다. 포위당한 성에 양식이 떨어지고 사람들은 굶주림을 참지 못해 서로를 잡아먹습니다(cf. 레 26:27-31; 왕하 6:24-31; 겔 5:8-10). 야훼께서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불러 유다와 예루살렘을 심판하시는 날의 참상과 극단적 혼란을 보여줍니다.

5절 야훼께서 가증스런 어린아이 희생제사를 고발하십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루살렘 남서쪽과 남쪽을 두르고 있는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있는 도벳에다 산당을 세우고 어린아이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했습니다. 전반절과 달리 후반절은 어린아이 희생제사가 바알이 아니라 야훼께 드려졌음을 보여줍니다(cf. 미 6:7; 삿 11:29-40; 창 22장). 하나님은 분명하게 어린아이 희생제사가 당신과 전혀 상관이 없음을 주장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한 적도 없고 말한 적도 없으며, 당신 마음에 떠오른 적도 없는 일입니다.

7절 야훼께서 ‘이 곳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계획’은 예루살렘의 위정자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름대로 마련해 둔 계획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야훼께 묻지 않고 자신들의 힘과 능력에 의존하여 적들의 침략으로부터 유다와 예루살렘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야훼께서 이들의 대적이 되셨기에 어떤 안전장치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분께서 배반한 당신 백성을 적들에게 넘겨 죽게 하실 것입니다. 유다의 패배는 전면적이다. 매장되지 못하고 들판에 버려진 수많은 시체가 들짐승의 밥이 됩니다(cf. 7:33 16:4; 34:20; cf. 신 28:26).

‘무너뜨리다’(개역: ‘무효케하다’)로 옮긴 동사 단어는 ‘황폐하게 하다, 멸망시키다’를 의미합니다. 1절의 ‘옹기’와 그 어원이 같기에 여기서 언어의 유희를 읽을 수 있습니다. 이를 고려하여 7절의 처음을 “내가 이곳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계획을 산산이 조각내 부서뜨릴 것이다” 라고 번역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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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3절 여호와의 말씀은 예루살렘이 옹기처럼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무너질 것이라 하십니다.

1-3절에서 예레미야에게 명한 일을 이제 시행하려 합니다. 그것은 옹기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이어서 여호와께서는 직접 옹기를 깨는 퍼포먼스를 시행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에 대해서 직접 설명해 주십니다.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번 깨뜨리면 조립하기도 복구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 백성과 성읍을 무너뜨리실 것입니다. 거룩해야 할 그 땅을 더렵혔으니 이제 이방신들 더럽힌 그 결과들을 고스란히 떠안게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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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진 옹기를 다시 맞추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진행한 이 퍼포먼스는 시청각적 충격이 동시에 전해진 것입니다. 바닥에 내던져져서 산산조각 나는 옹기와 그것이 깨어지는 소리는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옹기가 자신들의 운명이라는 것을 깨닫기는 쉽지 않을터인데, 오히려 두렵고 떨림으로 회개하기는 커녕 그런 퍼포먼스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메신저인 예레미야를 위협합니다. 

죽임의 골짜기 도벳에 매장할 자리가 없을 정도가 되고, 거룩해야 할 예루살렘을 하늘의 만상에 부향하여 다른 신에게 전제를 부워 더러워졌기에 도벳의 운명과 같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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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일은 차지하고서라도 우리 교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불의한 일들 곧 하나님 아닌 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경배하고 숭배한 일은 분명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이러한 예언을 읽고 듣고 가르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돌이키고 개선할 여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과 관습과 관례라는 이유만으로 결국 개혁과 개선의 기회를 놓치고 벼랑 끝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회개할 줄 모르는 백성에게는, 차라리 깨지고 부서져서라도 하나님께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게 복입니다”_<매일성경>


# 19:10(오지병을 깨뜨림) - 묵상도움글

사건의 진행상 야훼께서 표적행위를 명령하시는 10절은 1-2a절에 직접 연결됩니다. 야훼께서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에게서 옹기를 사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과 함께 ‘하시드 문(질그릇 조각 문) 어귀 곁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 이들이 보는 앞에서 옹기를 깨뜨리라고 명령하십니다.

# 19:11-13(표적행위의 해석) - 묵상도움글

11절 예언자에 의한 명령(10절)의 실행은 이미 이뤄진 것으로 전제하고 야훼께서 표적행위를 해석해주십니다. 예레미야가 깨뜨린 옹기는 예루살렘의 파국적 운명을 상징합니다. 토기장이의 그릇이 한 번 깨어지면 다시 수선할 수 없는 것처럼, 그렇게 야훼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예루살렘을 회복이 불가능하게 부수실 것입니다. 땅바닥에 내침을 받아 수선할 수 없게 크게 부숴진 그릇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처럼, 예루살렘은 야훼에 의해 심판을 받고 완전히 멸망할 것입니다. 후반절은 표적행위를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있는 도벳 산당에서 행해지는 우상숭배(3-9절)에 연결시켜줍니다. ‘도벳에 매장할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하리라’는 ‘매장할 자리가 없어 사람들이 도벳에 매장하리라’로 옮기는 것이 좀 더 정확합니다. 예루살렘에 매장지가 부족하여 제의장소인 도벳에다가도 장사를 지내야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될 것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이 얼마나 심한 심판에 떨어질지를 보여줍니다. 뿐만 아니라 우상에게 어린아이를 바치던 도벳이 더럽힘을 받아 더 이상 제의장소로 사용되지 못할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12절 야훼의 심판은 물론 우상을 숭배하던 장소인 도벳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야훼께서 예루살렘 성을 도벳처럼 만드실 것입니다. 도벳이 더럽혀져 묘지로 사용되는 것처럼 우상숭배로 더럽혀진 예루살렘이 시체들로 더럽혀집니다. 우상숭배자들은 우상처럼 결국 헛것이 되어 멸망에 떨어질 것입니다.

13절 심판의 대상이 예루살렘과 그 주민(12절)에게서 ‘예루살렘 집들과 유다 왕들의 집들’로 바뀝니다. 우상숭배에 빠진 예루살렘의 모든 집들이 ‘도벳 땅’(도벳 자리)처럼 더럽혀질 것입니다. ‘하늘의 만상’은 하늘의 일월성신(日月星辰)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높은 자들이나 낮은 자들이나 모두 지붕 위에 올라가 하늘의 별들에게 향을 사르고 다른 신들에게 술을 부어 올렸습니다. 천체숭배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널리 행해지던 제의로, 앗수르의 정치적 영향력의 증대와 함께, 특히 므낫세(696-642)가 유다를 통치할 때 민간에서 폭넓게 수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하늘의 일월성신을 숭배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신들에게도 제주를 부어 올렸습니다. 야훼께서 특별히 택한 예루살렘에 온갖 우상들이 자리를 잡고 야훼와 함께 경배를 받았습니다. 

*

# 거둠의 기도
오래참으시는 하나님

어떻게 해서라도 우리의 잘못을 깨닫게 하여

다시금 주께로 돌아와 새롭게 하길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도

하나님 아닌 것들을 섬기는 것도 모자라

신앙을 사유화하고 우상화하고

타인의 희생을 통해서라도

탐욕을 성취하려는 우리의 모습이

노골적으로 자행됨에도 깨닫지도 못하고

돌이키지도 못할 지경에 이른 것을 통한히 여깁니다. 

부서지고 낮아져서도 우리 힘으로 이를 돌이킬 수 없사오니

주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말씀의 검이 우리를 새롭게 빚으사

새롭게 하지 않고서는 

우리에게 살 길이 없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쌓은 아성의 어리석음과 부질없음을 

엉뚱한 고집으로 가리는 일이 없게하옵시며

조롱과 생명의 위협에도 

뻔뻔하게 우리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교만은

망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우리 사는 지경이 도벳같이 되었는데도

이 불의한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커녕

빛을 잃고 맛을 잃어버린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새롭게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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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15 by 평화의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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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레미야 20:07-18 예레미야의 고백 5 ; 여호와의 함께하심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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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레미야 19:14-20:6 여호와의 집에서 예레미야와 바스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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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레미야 19:01-13 깨진 옹기같은 유다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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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레미야 18:13-23 예레미야의 고백 4 ; 여호와께 맡기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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