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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8:01-12 너희의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
*
여호와께서는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터지자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든 것을 예레미야에게 보여주면서 이스라엘의 운명이 이와 같을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하지만 악에서 돌이킨다면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리라 하십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악한 길에서 돌이켜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라는 말씀에 오히려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리라 합니다. 

*

여호와의 표적은 여호와의 명령, 예언자의 실행, 여호와의 해석으로 나타납니다. 토기장이의 표적도 이와 같은 구조입니다. 본문은 징계와 심판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선포하는 본문입니다. 

*

# 18:1-12(토기장이와 토기그릇) - 묵상도움글

* 표적의 세 가지 구성요소 : 여호와의 명령, 예언자의 실행, 여호와의 해석 - 두 번째 것은 전제될 경우가 많은데 세 가지가 다 나타난다.

특히 징계와 심판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선포하는 본문(1-12절)은 세 단락으로 나누어 질 수 있습니다. 먼저 1-6절은 토기장이(옹기장이)의 비유 또는 표적행위를 통해 이스라엘의 심판과 심판 이후의 새로운 출발에 있어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주장하며, 7-10절은 구원과 심판을 결정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어 이방민족들에게 적용합니다. 11-12절은 심판자로서의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이스라엘에 의해 거부될 것을 보여줍니다. 제 고집대로 행하다가 구원의 기회를 상실한 이스라엘에게는 심판만이 미래의 가능성으로 남겨질 것이다.

1-6 토기장이

1-2 하나님의 실천 명령

3-4 예언자의 명령이행

5-6 하나님에 의한 표적행위 해석

7-10 야훼의 주권과 이방민족

11-12 이스라엘의 상실된 구원 가능성

*
# 1-6절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토기장이 곧 창조주로서 절대주권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여호와께서는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그릇을 빚어 만들 듯이 이스라엘을 그 목적에 따라 지으신 분이십니다. 예레미야에게 다시금 이러한 역사를 직접 토기장이의 집에서 확인하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원하는 대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터져버리면 그것을 가지고 토기장이는 자기 의견에 좋은대로 다른 그릇을 만드는 것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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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도 그와 같이 티끌과 먼지 같은 존재였으나 주의 손에 붙들리어 빚어지고 하나님나라의 거룩한 백성으로 창조되었습니다. 하지만 질그릇처럼 그릇을 만든다가 터지거나 잘못되면 버리거나 다른 그릇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로 죄로 인해 더럽혀진다면 징계를 통해 회개하길 원하시지만, 만일 회개의 가능성이 없어진다면 멸망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의도와 목적을 망각하고 계속 이탈한다면 이스라엘은 얼마든지 버림받을 수 있습니다. 이 일은 오랜 시간동안 진행되지만 결국 원치 않는 모습으로 귀결될 경우에 토기장이이신 여호와께서는 얼마든지 버리거나 다른 그릇으로 대체해 버리실 수 있는 주권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결코 그런 분이 아니시고 다만 자신들을 구원하시고 축복해 주시는 분 정도로 여호와의 주권을 제한시켜버리고 왜곡되고 교리화된 구원신앙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의적으로 교리적으로만 여호와를 찾는 이스라엘을 징벌하신다고 예레미야를 통해 선포하는데 이스라엘은 일방적으로 여호와를 이해하며 결국 불순종의 길을 가는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는 절대주권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족속을 향하여 토기장이가 하듯이 능히 행할 수 있는 주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을 천명하신 것입니다. 

.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오래도록 빚으시고 마침내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주셨습니다. 토기장이가 만든 그릇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짓이겨서 다시 다른 그릇을 만들 듯이 이스라엘이 계속 불순종하면 징계하시며 개선하기를 원하시겠지만 만일 더이상 돌이키지도 않고 고칠 수 없다고 판단하시면 버리실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도 여호와의 구원에 대하여 교리적으로만 이해하고 왜곡된 구원주의에 빠져서 우리 삶에서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하며 주님께서 바라시는 정의와 공의의 열매는 맺지 못하고 있다면 택하신 이스라엘을 징계 하시듯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버려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구원은 우리가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백성으로 만드셨지만 그런 은혜와 능력을 거절하고 불순종의 길로 행한다면 우리의 결말도 징계를 당한 이스라엘의 운명에서 멀지 않을 것입니다. 

*

# 18:1-6(토기장이[옹기장이]) - 묵상도움글

1-6절의 문학유형에 관해서는 통일된 견해가 없습니다. 비유로도, 알레고리로도, 또는 이상으로도 해석되지만 아마도 비유의 영향을 받은, 변형된 형태의 표적행위로 간주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언자적 표적행위의 양식에 따라 사건을 기술함으로써 토기장이(옹기장이)의 행위를 앞으로 있을 사건의 모형으로 이해하도록 인도해줍니다.

a) 18:2 하나님의 실천 명령

b) 18:3-4 예언자에 의한 명령의 이행

c) 18:5-6 하나님에 의한 표적행위의 해석

야훼와 이스라엘의 관계는 토기장이(옹기장이)와 진흙의 관계에 유사합니다. 토기장이가 독자적 결정에 따라 마음에 드는 대로 진흙을 다룰 수 있는 것처럼 야훼와 이스라엘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녹로에서 그릇을 만들다가 잘못되었을 경우 진흙을 버리거나 또는 다시 짓이겨 다른 그릇을 만드는 것처럼, 야훼도 죄로 인해 더럽혀진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징계하여 회개시키시거나, 또는 회개의 가능성이 없을 때는 멸망시키실 수 있습니다. 본문은 ‘잘못 만들어진 그릇은 폐기될 수도 있음’에 초점을 맞춥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의도와 목적을 망각하고 의지적으로 이탈할 때 이스라엘은 버림받을 수 있습니다.

현대인에게는 야훼의 절대주권이 ‘임의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본래적 의미는 자기중심적인 구원신학에 대한 거절입니다. 야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지만, 이스라엘에 종속된 신은 아닙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셨지만, 이 선택에 구속(무한 책임)을 받지 않으십니다. 야훼는 당신의 뜻을 거역하는 이스라엘에게 심판자로 등장하여 멸망을 선고하실 수 있습니다.

2절 야훼께서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이 집‘으로 내려갈 것을 명령하십니다. 예언자에게 구체적 행위를 명령하지 않으시고, 그곳에서 말씀을 들려주실 것을 말합니다. 예언자에게 토기장이의 작업과 관계된 말씀이 주어질 것을 보여줍니다. 고대 세계에서 진흙으로 그릇을 만드는 일은 중요한 수공업에 속했습니다. 토기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물이 필요했기에 토기공장들은 주로 물가에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이에 적합한 장소로는 물을 구하기가 용이했던 성의 남동쪽 골짜기(예루살렘 서남쪽의 힌놈 계곡 동쪽의 기드론 계곡)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19:2에 의하면 벤-힌놈 골짜기 로 나아가는 문을 ‘하시드 문’(질그릇 조각의 문)으로 불렀습니다(렘 19:2).

3절 야훼의 명령에 따라 예언자는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 토기장이가 녹로(선반)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쌍수형의 단어가 암시하듯 녹로는 보통 두 개의 바퀴로 구성됩니다. 토기장이는 진흙을 빚어 녹로 위에 놓고 왼손으로 녹로를 돌리며 오른손으로 그릇의 형태를 만듭니다. 녹로에서 만들어진 그릇은 화로로 옮겨져서 구워집니다.

4절 진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다가 훼손되면 토기장이는 그 진흙을 가지고 마음에 드는 다른 그릇을 만듭니다. 진흙을 녹로에 올려놓고 그릇의 형태를 만들다가 잘못되는 경우는 드물지 않았습니다. 토기장이가 작업 중에 실수하거나 녹로가 불안정하게 돌아가거나 진흙이 충분히 짓이겨지지 않았을 때 좋은 그릇이 나오지 않습니다. 원했던 그릇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경우 토기장이는 마음에 드는 그릇이 나올 때까지 일을 계속 되풀이합니다.

6절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자기 마음에 드는대로 그릇을 만드는 것처럼 야훼께서도 이스라엘에 대하여 마찬가지로 하실 수 있습니다. 토기장이가 자기가 만든 그릇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짓이겨서 다른 그릇을 만들듯이 하나님도 이스라엘이 당신께 불순종할 경우 고치기 위해 징계하실 수도, 또는 고칠 수 없다고 판단하셨을 때는 버리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리화된 이스라엘의 구원신앙은 하나님의 주권을 제한시켜버립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은 구원과 축복을 위해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의적-교리적 경건으로 당신을 찾는 이스라엘을 징벌하신다는 예레미야의 선포는 전혀 이해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일방적으로 이해하며 불순종을 떠나지 않는 이스라엘에게 이들을 징계하실 수 있는 당신의 절대주권을 주장하십니다.

*

# 7-10절 여호와께서는 온 열방의 흥망성쇠에 대한 주권을 가진 분이십니다. 

여호와께서는 토기장이의 표적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주권을 가지셨을 뿐 아니라 어느 민족이나 국가의 흥망성쇠에 대하여서도 동일하게 갖고 계심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악에서 돌이키면 재앙의 뜻을 돌이키시겠지만 악한 것을 행하여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는다면 유익하게 하리라던 복에서 뜻을 돌이키시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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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하신 이스라엘을 향한 절대 주권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열방을 향해서도 동일합니다. 그렇다면 택하신 이스라엘이 그 목적을 따라 순종하며 선을 행하지 않는다면 버릴 수 있는 여호와께서는 열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민족과 열방이 여호와의 선하신 뜻을 따라 살아가길 원하시지만 만일 여호와를 부인하고 각기 제길로 행하며 여호와 아닌 것들을 섬기는 완악한 행동으로 살아간다면 결코 함께하시지도 않으시고 유익하게도 않으시고 재앙을 내리실 것입니다. 하지만 악한 길에서 돌이켜 행한다면 재앙은 거두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구원의 길은 악에서 돌이켜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호와의 구원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열방을 향해서도 열려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전하시는 호소에 합당하게 반응하는 것은 자신들의 죄에서 돌이켜 여호와께로 돌아와 온전히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

구원과 심판은 종교적 전통 곧 성전이나 법궤나 희생 제사나 다윗 왕조의 혈연 공동체로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하나님을 찾지도 섬기지도 순종하지도 않는 우리들을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신 순종과 대속의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는 선한 백성으로 재창조 곧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선하신 인도와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선한 일에 열심인 백성으로 우리를 빚으신 대로 우리는 날마다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순종하며 선한 열매를 맺어가는 것이 참된 구원의 길이며, 여호와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지으신 뜻에 합당한 삶의 모습입니다. 이와 같은 여호와의 주권은 온 열방을 향하여 열려 있습니다. 구원은 무조건적인 보장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목소리 청종하기를 거절하고 악을 행한다면 얼마든지 베풀고자 한 복을 거두실 것입니다. 모든 것이 여호와의 주권하에 있습니다. 

*

# 18:7-10(야훼의 주권과 이방민족) - 묵상도움글

구원과 심판에 있어 민족의 경계가 허물어집니다. 악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만이 구원의 유일한 전제조건이 됩니다. 야훼께서 심은 나무인(cf. 11:16-17) 이스라엘도 순종하지 않으면 심판에 내맡겨지며, 반대로 멸망이 예정된 이방나라들일지라도 그 악에서 돌이키면 이들에게도 구원 가능성이 주어집니다. 예루살렘 성전도, 법궤도, 희생제사도, 다윗 왕조의 선택도 이스라엘을 심판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줄 수 없습니다. 구원과 심판은 종교적 전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7절 당신이 택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다른 민족들도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들이 야훼의 통치권 아래 있습니다. 그분은 당신 의지에 따라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시는’ 절대 명령권자이십니다. 후반절에 사용된 동사들은 1:10에서 야훼께서 예레미야를 민족들 위에 세우시면서 그의 권한을 언급하실 때 사용된 동사들이기도 합니다.

8절 어떤 민족이나 국가도 야훼의 통치권과 구원사 밖에 놓여지지 않습니다. 이방민족들에게도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것(11절)과 동일한 구원 가능성이 주어집니다. 이스라엘의 회개에 긍정적으로 반응하시는 하나님은 이방민족들의 회개에도 마찬가지로 응답하십니다. 이들이 그 죄에서 떠나 돌이키면 야훼께서는 이들에게 내리기로 이미 결정한 재앙에 대하여 마음을 바꾸실 수 있습니다.

9절 이방민족들이 자신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면 야훼께서는 언제라도 그들을 세우며 심어주십니다. 이방민족들에게 구원 가능성이 완전히 개방됩니다. 이들의 구원이 이스라엘의 구원에 종속되지 않고 대등한 차원으로 옮겨집니다. 두 동사 ‘건설하다’와 ‘심다’는 1:10에서 예레미야의 역할을 기술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10절 이스라엘에 구원이 무조건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것처럼 이방민족들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이 그분 목소리 청종하기를 거절하고 악을 행하면 야훼께서는 이들에게 베풀고자 했던 복(선)에 대하여 마음을 바꾸십니다. 그분은 다시 불순종에 떨어진 민족들을 재앙으로 징계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은 ‘취소할 수 없는 결정’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주어집니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께서 예언자를 통해 당신의 심판 결정을 알려주시는 것은 구원의 문이 닫히기 전에 돌아오라는 그분의 마지막 호소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물론 가능성으로 주어진 심판과 구원의 선택에 있어 주체는 ‘말씀을 듣는 청자’가 아닙니다. 청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하나님께서 결정하십니다. 청자들의 반응은 그분이 결정을 돌이키기 위한 전제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청자들의 반응이 반드시 하나님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결정을 돌이키실 수도 있지만, 때로는 청자들의 반응을 ‘이미 상실된 가능성’으로 거절하시기도 합니다(cf. 14:1-15:4).

*

# 11-12절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하길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랜 세월동안 기다리셨던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유다와 예루살렘에 재앙을 내리실 것을 계획하십니다. 그러면서도 악한 길에서 돌이켜 길과 행위를 아름답게 한다면 재앙을 돌이키실 수 있다고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헛되다고 말하며 자신들이 생각하고 계획한대로 악한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겠다고 말합니다. 

.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긍휼을 거절하고 자신들의 태도와 방식을 포기해야 할 필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완악함을 갖고 있습니다. 죄악이 오래되면 결국 교만하고 뻔뻔해 져서 자신들이 얼마나 멀리 왔는지 그 기준이 보이지 않기에 스스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고서도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재앙을 초래하는 지 알지 못합니다. 급기야 자신들을 살리기 위해서 기회를 주시는 여호와의 음성을 헛되다라고 말할 정도로 자고하고 패역한 모습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주시는 기회를 거절한 것입니다. 이 완악함을 어찌해야 할까요?

.

자신들이 가진 생각과 신앙과 삶에 대해서 그 기준이되는 여호와의 말씀 듣기를 거절하고 눈이 어둡고 귀가 둔해 져 있기에, 삐뚤어지고 왜곡되고 완악해져버린 자신들의 길과 행위가 얼마나 심각한 지를 알지 못합니다. 날마다 우리 삶의 기준이 되는 다림줄 같은 여호와의 말씀 앞에 서서 우리의 삶을 조명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이러한 완악한 길로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서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인양 신앙을 왜곡하면서도 스스로의 앎에 여호와를 가두고서 벗어나지도 성숙해가지도 배우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어리석음과 우둔함에서 벗어나려면 주의 말씀의 검으로 다시 빚어지는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주의 말씀 앞에 서서 바라보는 나의 모습 속에는 아직도 완악함들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의 검으로 새롭게 하심을 간구합니다. 

*

# 18:11-12(이스라엘의 상실된 구원 가능성) - 묵상도움글

야훼께서 다시 예언자에게 말씀하십니다. 토기장이가 잘못 만들어진 그릇을 파기하는 것처럼 야훼께서 악을 행하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11:2, 9; 17:25; 32:32; 35:13)을 심판하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분은 계획한 심판이 실행되기 전에 이스라엘이 빨리 악한 길에서 떠나 당신께로 돌아와 행실을 바르게 하여 살길을 찾으라고 권면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완고한 마음은 야훼의 경고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길을 선택합니다(12절). 이스라엘은 자신의 태도와 방식을 포기해야 할 어떤 필요성도 못 느낍니다. 이스라엘은 예언자의 심판선포를 쓸데없는 일로 간주하며 하나님의 마지막 회개 요청을 거절합니다. 이스라엘이 야훼께로 돌아온다는 것은 ‘이미 놓쳐버린 기회’가 됩니다.

11절 ‘재앙을 내리다’에 사용된 현재분사와 ‘토기장이’는 동일한 어근(야차르)에서 나온 단어들입니다. 이러한 언어의 유희를 통하여 심판에 있어 야훼의 절대주권을 함축적으로 강조하여 보여줍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자기 마음에 드는대로 그릇을 만들듯이 야훼께서 이제 당신의 계획대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재앙을 임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시는 분도 아니지만, 또 당신의 절대주권을 변덕스럽게 행사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재앙과 구원은 야훼의 주권에 속하지만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은 아닙니다. 재앙은 이스라엘의 거절과 불순종을 징계하시는 야훼의 응답입니다. 이스라엘이 악한 길에서 돌이켜 그분께로 돌아오면, 그 행실을 고쳐 바르게 하면 그분은 이들에게 내리기로 계획한 재앙을 거두실 수 있습니다.

12절 야훼께서 당신을 심판과 구원의 결정권자로 보여주시며 죄악에서 떠나 심판을 피하도록 경고하시지만 이스라엘은 주어진 기회를 상실합니다. 이미 그 마음이 완악해진 이스라엘은 예언자의 선포를 거절하고 자신의 악한 생각을 따라 행합니다. 이들은 입고 있던 교리화된 구원신앙의 옷을 벗어버리기를 거절합니다(cf. 2:25; 7:24; 9:13 등등; cf. 3:17). 이스라엘은 성전중심적 사고에 안주하며,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심판의 길을 선택합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악하고 고집스런 마음을 따라 행하다가 결국은 멸망을 당합니다. 

*

# 거둠의 기도
나의 창조자이신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지으시고 세우신 사명을 따라

온전하게 순종하지 못한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의 뜻을 즐거이 순종하기보다

악한 길로 행하여 주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고

마음의 완악한대로 행한 죄 또한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손에 있는 주권을 기억하고

주께서 새롭게하시고 구원하사 

허락하신 사명을 기억하면서

보배로운 소유로, 거룩한 백성으로

그리고 제사장 나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

선한 길로, 선한 열매로, 선한 행위로

아름다운 열매 맺는 삶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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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레미야 20:07-18 예레미야의 고백 5 ; 여호와의 함께하심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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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레미야 19:14-20:6 여호와의 집에서 예레미야와 바스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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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레미야 18:13-23 예레미야의 고백 4 ; 여호와께 맡기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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