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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5:01-09 자기들의 길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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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의 눈물의 간구(14:17-22)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한 재앙을 철회하지 않으시고 철저하게 진행하여 여러 민족 가운데 흩으실 것이라 선언하십니다. 이러한 그들의 멸망을 누구도 동정하지 않을 것이며 여호와께서도 더이상 자기들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재앙의 뜻을 돌이키지 않으시고 철저하게 대적의 칼에 붙이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

# 1, 5절 여호와와 우리 사이에 중보자와 긍휼을 구하는 자가 없다면 더이상 희망은 없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사무엘이 중보하다 하더라도 이 백성을 여호와 앞에서 쫓아낼 것이며, 예루살렘을 불쌍히 여기며 울 자도, 평안을 물을 자도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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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cf. 출 32:7-14; 민 14:13-20; 신 9:18-29)와 사무엘(cf. 삼상 7:8-9; 12:19-23; 시 99:6)은 구약의 대표적인 중보자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온다 하더라도 예언자(공동체)의 간구(4:17-22)를 단호하게 거절하실 것임을 천명하십니다. 그렇게 여호와의 재앙이 내려져서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지게 되면 누구도 예루살렘을 불쌍히 여기지도 않을 것이며 그들을 위해서 울 자도 없고 평안을 물을 자도 없을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잊혀져 버리고 사라져 버릴 것에 대한 강조된 표현입니다. 뒤이어서 이러한 재앙 곧 여호와와의 관계(거룩한 왕과 백성)으로서의 관계가 깨어진 이유는 신실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패역하고 반역하여 여호와를 떠난 이스라엘의 문제였음을 철저하나 재앙의 시행의지를 통해 보여주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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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진노아래 유기된 인간에게 아무런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긍휼, 자비, 인애, 사랑)가 나타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신 중보의 사역들이 다시금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화목케하사 하나님을 믿는 백성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에 순종하며 여호와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새백성(새인류, 새사람) 삼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에게는 그러한 중보자들로 말미암아 여기까지 왔건만 여호와를 배반하여 다시 이러한 중보가 소용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도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으로 다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구원받은 이로 섰다가 다시 반역하는 일이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던 우리를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는 백성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고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는데 또다시 반역의 길로 행한다면 얼마나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입니까? 지금 주님과의 관계를 다시 점검해야 합니다. 회복된 관계(구원)를 감사하며 기쁨으로 유지하고 있는지요? 아니면 또다시 제 길로 행하여 딴 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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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절 우리의 죄악이 여호와께서 택하여 모으신 것을 다시 흩어 버리게 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쫓아내신다고 하시자(1절) 그럼 어디로 가리이까 묻는 질문에 여호와께서는 죽음과 칼과 기근과 포로로 가게 될 것이라고 천명하십니다. 이어서 네 가지(칼, 짖는 개,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로 벌하셔서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 흩어 버리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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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적인 경건에 사로잡혀서 여호와를 찾지도 않고 예배하지도 않으며 무엇보다 정의와 공의가 사라져 버린 이 백성,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고 기다리고 돌이키며 기회를 주어도 끝내 돌이키지 않는 이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단호하게 내리신 결정은 그들을 쳐서 흩어 버리시는 것입니다. 죽음, 칼, 기근, 포로 모두 전쟁의 상황을 통해 많은 이들이 칼과 기근으로 죽어갈 것이며 남은 이들은 포로로 끌려가게 돌 것을 함축적인 단어들로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전쟁 후에 죽임당한 이들의 시체가 들짐승들의 먹이가 되고, 장사되지 못하고 거리와 들판에 내버려진 시신을 개들이 끌고 다니고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이 먹어 치웁니다. 무덤에서 안식을 찾지 못하고 저주받은 비참한 죽음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재앙의 원인과 죄악의 근원을 므낫세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므낫세는 이방 종교와 제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일월성신을 위해 재단을 샇고 자기 아들을 불가운데 지나게 하며 점과 사술을 행하여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한 자입니다(왕하 21:1-9). 이러한 므낫세의 죄가 지금 세대의 죄악의 뿌리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디 므낫세 뿐이겠습니다. 그의 전과 후에도 그리고 곁에 있는 추종자와 백성들도 모두 그의 탐욕에 물든 우상에 함께 동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만의 잘못이 아니라 부화뇌동한 어리석은 지도자와 백성들이 문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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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습관적으로 오래된 죄악의 근원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나요? 개인적인 면에서 우리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그릇 행하며 이기와 욕망을 따라 하루하루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나요? 주님이 부르시고 거룩한 백성으로 세우신 것은 우리만 잘먹고 잘 살라는 것이 아니라 부르시는 그 뜻 안에는 우리로 말미암아 축복의 통로 되라신 뜻이 있습니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다 해당되는 것입니다. 만일 자신의 구원에만 머물러 있다면 언능 부르시고 구원하신 뜻이 무엇인지 주님께 묻고 주께서 맡겨주신 사명들을 기쁨으로 감당해 가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주님의 인도와 통치를 따라서. 그래서 오늘도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시는 주님 말씀앞에 나아가 갈 바를 묻고 주님의 인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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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4(하나님의 거절 II : 심판의 필연성) - 묵상도움글

1절 여호와께서 구약의 대표적인 중보자인 모세(cf. 출 32:7-14; 민 14:13-20; 신 9:18-29)와 사무엘(cf. 삼상 7:8-9; 12:19-23; 시 99:6)을 언급하시며 예언자-공동체의 간구(17-22절)를 단호하게 거절하십니다. 모세와 사무엘이 여호와 앞에 서서 간구할지라도 이미 돌아선 그분의 마음은 다시 백성에게로 향하지 않을 것입니다. 가능성과 경고의 영역에 머물던 그분의 결정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유다의 멸망은 유다의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여호와는 예언자에서 이스라엘을 “내 앞에서 쫓아 내보내라”고 명령하십니다. 중보가 거절당한 예언자는 하나님 편에서 그분의 명령을 수행해야 합니다. ‘여호와 앞에서 보내다’는 관계의 단절로 심판을 함축합니다. 여호와와 이스라엘은 이제 남남이 되어 각자의 길을 가야 합니다. 여호와로부터 내쫓긴 이스라엘은 그분의 보호 밖으로 떠나가야 합니다.

2절 여호와께서 가상적인 백성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의 형식을 통해 심판을 선포하십니다. 예언자가 백성을 여호와 앞에서 내보내어 떠나가게 했을 때 그들이 보일 반응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답변할 말을 주십니다. 백성의 질문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은 1절 마지막에 나오는 동사 ‘떠나가다’(acy 야차)를 받습니다. 위선적 경건에 사로잡힌 백성에게 결정된 운명은 ‘죽음과 칼과 기근과 포로’의 심판입니다. 재앙의 범위가 전면적입니다. 누구도 전쟁의 피해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싸우다가 칼아 맞아 죽거나, 전염병과 굶주림으로 죽거나, 살아남는다 할지라도 포로로 잡혀갈 것입니다.

3절 2절과 관련시켜 보자면 3절은 아마도 점령당한 이후의 비참한 형편을 기술한 것 같습니다(?). ‘죽이는 칼’은 점령군의 무자비한 피의 복수를 함축하는 것 같습니다. 칼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시체가 들짐승의 먹이가 됩니다. 장사되지 못하고 거리와 들판에 내버려진 시체를 개들이 질질 끌고 다니고,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이 먹어 치웁니다. 무덤에서 안식을 찾지 못하고 저주받은 비참한 죽음에 떨어집니다.

4절 “나는 그들을 세상 모든 나라들에 공포가 되게 할 것이다. [이는] 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짓 때문이다.”

므낫세의 등장은 갑작스럽습니다. 아마도 현 세대의 죄악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그리고 얼마나 철저하게 검게 물들었는지를 보여주려는 것 같습니다. 열왕기하 21:1-9에 의하면 유다 왕 므낫세는 이방종교와 제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 또 자기의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점치며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했습니다(5-6절). 열왕기기자의 평가에 의하면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이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므낫세의 죄 때문이었습니다(왕하 23:26).

앗수르의 수용은 앗수르의 종교와, 기존에 잠재된 가나안의 종교도 등장하며 강력한 혼합주의가 득세하게 됩니다. 요시야는 이를 제거하기 위해 시도하다 실패로 끝나기도 합니다. 모든 책임을 므낫세의 책임으로 볼 수 없으나, 결정적으로 종교적 부패가 있어 므낫세를 열거한 것으로 보입니다.

*

# 6-9절 우리의 죄악이 여호와께서 능력의 손으로 세우신 것을 다시 파멸하게 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철저하게 버림받아 절망에 빠진 까닭은 여호와를 버리고 떠나 갔기 때문입니다. 이에 여호와께서는 뜻을 돌이키는데 지쳐 이제는 손을 펴서 멸하고, 이 백성이 자기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기에 키를 까불러 그 자식을 끊어서 내 백성을 멸하리라 말씀하십니다. 많은 이들이 죽기에 과부가 많아지고, 이러한 이들이 갑자기 일어날 것이며 아무리 복을 받은 이라도 수치와 근심을 당하게 되고 남은 자도 대적의 칼에 붙이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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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재앙의 시작은 여호와를 버리고 떠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이 죄의 시작이고 결말입니다. 여호와를 버린 것이 죄고, 여호와로부터 떠난 것이 죄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게 되면 생명도 소망도 삶의 이유도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각기 제길로 행하며 불순종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전에 여호와의 손 곧 편 손과 팔로 이스라엘을 지키고 보호하시고 세우셨는데 이제는 그 구원의 손이 심판의 손으로 펴서 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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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부와 청년들의 어미(8절)와 일곱을 낳은 여인(9절)등 여자와 관련된 세 개의 비유와 키질의 표상을 통해서 예루살렘과 유다의 파국적 재앙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통해서 많은 남자들이 죽게 될 것이기에 많은 과부들이 생길 것입니다. 파괴하는 이들이 청년들의 어미를 덮쳐 놀라움과 두려움에 빠지게 합니다. 한 때 일곱을 아들을 낳아 자랑하던 여인이 자식을 모두 잃고 절망과 수치에 떨어집니다. 심판은 키질하듯 철저하게 행해질 것입니다. 키로 까불어 흩어지게 하시고(7절), 그 남은 자들을 다시 대적의 칼에 내맡기실 것입니다(9절). 어느 누구도 인내의 한계에 도달하신 여호와의 심판으로부터 벗어나 안전하게 목숨을 구할 수 없을 것입니다. 

.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는 우리의 죄악은 여호와의 긍휼과 사랑과 능력의 손이 심판의 손으로 만나게 합니다. 여호와를 버리고 멀리 떠난 데에서 다시 돌이켜 여호와 앞에 세워주셨는데 어느새 우리가 나아갈 바를 알지 못하고 방황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자기들의 길에서 돌이키길 원하십니다.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는 길인지 아니면 다른 길인지 말씀앞에 점검해야 합니다. 너무 멀리가면 우리는 우리의 기준을 욕망에 맞춰서 헛된 길로 빠지고서도 자신은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인생이 되어 버립니다. 헛된 길에서 돌이켜 다시금 하나님 앞에 나아가 택하신 백성으로서 보배로운 소유로,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해 가는 인생이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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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5-9(예루살렘의 멸망) - 15:1-4 멸망의 구체적 모습 - 묵상도움글

개역개정의 번역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마소라 본문에서는 편집자의 손에서 나온 5절 서두의 접속사 ‘키’(왜냐하면)에 의해 앞 단락에 연결된 5-9절은 독립된 단락입니다. 1-4절은 심판의 대상을 3인칭 복수 ‘그들’로 부르지만, 5-6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예루살렘(2인칭 단수 여성)에게 직접 말씀하십니다. 5절에서는 여호와께서 3개의 의문문을 사용하시면서 예루살렘의 절망적 처지를 탄식하시고, 6절에서는 예루살렘이 그처럼 버림받아 멸망에 떨어진 까닭을 알려주십니다. 7-9절은 여자와 관련된 세 개의 비유와 키질의 표상을 사용하면서 예루살렘과 유다의 파국적 재앙을 묘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는 남편과 자식을 잃은 과부만 남습니다(7b-8a절). 파괴자들이 청년들의 어미(예루살렘?)를 덮쳐 놀람과 두려움에 빠뜨립니다(8b절). 한때 일곱 아들들을 자랑하던 여인이 자식을 모두 잃고 절망과 수치에 떨어집니다(9a절). 서두와 마지막에 놓인 키질의 표상은 심판의 철저성을 한 단계 더 강화시킵니다. 여호와께서 당신 백성을 키로 까불러 흩어지게 하시고(7a절), 그 가운데 남은 자들을 다시 대적의 칼에 내맡기십니다(9b절). 누구도 인내의 한계에 도달하신 여호와의 심판으로부터 벗어나 안전하게 목숨을 구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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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언자들이 선포하는 말의 특색

“그들의 딸은 맹렬한 공격이요 거짓 평안의 환상에 구멍을 뚫는 것이며, 책엄 회피에 대한 도전이요 믿음을 회복히라는 촉구요 과연 분별력이 있으며 치우치지 않는가를 따지는 물음표다(《예언자들》, 아브라함 조슈아 헤셀. 이현주 옮김, 삼인, 24-25쪽) ,

*

# 거둠의 기도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참사랑 베푸신 우리 주 하나님

주를 외면하고 떠나 각기 제길로 

욕망을 따라갔던 우리의 패역함을 용서하사

다시금 주님의 자녀로 백성으로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합당한 자로서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

하나님의 인내의 한계에서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길로 행하지 않게 하옵시고

주께서 원하시는 길로 행하기 위하여

각기 제길로 가는 데서 떠나

주님이 가시고 인도하시는 그 길로

온전히 행하게 하옵소서. 

복을 받고도 다 쏟아 버리는 어리석은 인생이 아니라

복의 근원되시는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며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는 줄 믿고

주의 펴신 팔이 재앙이 아니라

선하신 역사를 이루시는 능력의 손으로 

만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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