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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3:15-27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멸망과 유배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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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은  총체적으로 확고하게 진행이 될 것인데, 그래도 다시 여호와의 경고를 듣는다면 소망이 있을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완악한 이스라엘이 심판을 자초할 것을 알고 예레미야는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왕과 이스라엘을 향하여 맡긴 양떼의 안부를 묻고, 화친을 통해 생존을 도모하던 이에 의해 오히려 지배당하게 되는 고통을 말합니다. 이러한 징계는 유다의 죄악때문이며 그들이 여호와를 잊고서 거짓을 신뢰한 까닭에 결국 화를 당하게 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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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그 주민들을 멸망의 심판에 넘길 수밖에 없는 원인을 점차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22절의 “네 죄악이 크므로”가 23에서는 회개가 불가능하여 심화될 것이고, 25절의 ‘거짓’이 27절에서는 ‘우상숭배’로 구체화 됩니다. 이러한 죄악들은 결국 예루살렘이 고통을 당하게 되는 원인이 되는데, 이 고통을 다양한 표상을 사용해서 강도를 높여가며 묘사하고 있습니다. 21절에서는 “산고를 겪는 여인’으로, 24절에서는 ‘사막 바람에 불려가는 검불’로, 26절에서는 성폭행 당하는 여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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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7절 임박한 심판 전이라도 겸손히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회개 한다면 심판을 면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귀를 기울여 교만하지 말라 전합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심판이 시작되기 전(어둠을 일으키시기 전, 너희 발이 어두운 산에 거치기 전, 빛이 사망의 그늘로 변하여 침침한 어둠이 되게 하시기 전)에 여호와께 돌아와 영광을 돌리라고 전합니다. 만일 이렇게 듣지 않는다면 예레미야는 그들의 교만으로 울고, 사로잡힘으로 말미암아 눈물을 흘려 통곡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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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교만해진 데는 여호와를 알지 못함에서 기인합니다. 여호와를 알지 못함은 말씀을 듣지 않음이요, 말씀을 통해서 여호와를 알아가는 일에 게을렀던 것입니다. 여호와에 대한 무지가 우상을 숭배하게 되고, 여호와께서 공의와 정의를 행하지 않는 것을 분노하는지도 모르고 어둠의 일을 즐거워하고, 탐욕의 농예가 되어서 여호와의 영광을 헛된 것으로 바꾸고 어둠과 사망의 길로 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라도 여호와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서 여호와께서 돌아가면 여호와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교만으로 말미암아 예레미야는 눈물을 흘리며 목자되신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각기 제길로 가는 양떼들이 마침내 대적들에게 사로잡혀가게 될 것을 알고 통곡하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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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목자의 인도와 그 목소리 청종하는 것을 기뻐하며, 주야로 그 말씀을 묵상하며 겸손히 살아가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여호와를 아는 자들은 그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알고서 겸손해 집니다. 하지만 아직도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부질없는 것에 사로잡혀 종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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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5-17(교만에 대한 경고) - 묵상도움글

현재의 자리에서 15-17절은 12-14절과 함께 하나의 이야기적 틀을 구성합니다. 곧 전자는 후자에 대한 예언자의 반응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12-14절에서 야훼의 확고한 심판의지를 알게 된 예언자는 이를 단순히 전하기보다는 마음의 완악함(술취함)에 사로잡혀 멸망의 길을 가는 동포를 구하기 위해 그들의 길을 막아 섭니다. 상황이 절망적이기는 하지만 그는 민족의 구원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이들에게 긴급하게 호소하며 경고합니다. 야훼의 심판이 완전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너무 늦기 전에 현실을 바로 깨닫고 그분께로 돌아와 순종해야 한다. 빛을 기다린다고 빛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빛을 암흑으로 만드시는 분이기에, 구원의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에 서둘러 교만을 버리고 그분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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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9절 여호와의 진노 앞에 스스로를 겸손히 낮춘다면 그래도 다시 세워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제 왕과 왕후(여호야긴과 그의 어미 느후스다를 가리키는 것으로 봅니다)가 폐해졌다는 것을 알리고 스스로 낮출 것을 요구합니다. 이미 하나님의 심판은 남방쪽에서도 봉쇄되고 위쪽으로도 많은 이들이 잡혀가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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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전세가 기울어졌을 때 차라리 항복하는 것이 사는 길이라는 것을 언뜻 말하고 있습니다. 왕과 왕후의 폐위가 여호와의 주권 하에 진행됩니다. 남방9네겝)의 성읍들이 봉쇄되어서 열 자가 없습니다. 이는 누구도 이 심판을 열고 닫지 못하고 오직 여호와만 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유다가 포로로 잡혀가되 온전히 잡혀간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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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낮추지 않으면 이 교만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의 진노의 잔 앞에서는 스스로 낮추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그 길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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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8-19(유다의 유배) - 묵상도움글

야훼께서 예언자에게 왕과 왕후에게 전할 말을 가르쳐주십니다. 개역개정이 ‘왕후’로 번역한 히브리어는 왕의 아내가 아니라 왕의 어머니[母后]를 가리킵니다. 유다 왕실에서 모후에게는 특별한 지위가 주어졌던 것 같습니다(cf. 왕상 2:19; 15:13; 왕하 11:1-3). 야훼께서 왕과 모후에게 그 머리에서 영광의 면류관(왕관)이 벗겨져 내려졌기에 ‘스스로 낮추어 앉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들의 폐위가 야훼의 결정에 속함을 보여줍니다. 야훼께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을 통해] 이들에게서 왕적 지위와 위엄을 빼앗으십니다. 왕과 모후는 아마도 열여덟 살에 왕위에 오른 여호야긴과 그의 어머니 느후스다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cf. 왕하 24:8-17). 19절은 유다의 절망적인 상황을 기술한다. 네겝은 유다 남부지방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 성읍들이 봉쇄되고 출입이 금지됩니다. 유다가 다 포로로 잡혀갑니다. 

*

# 20-22절 죄악을 돌이키지 않으면 결국 그 죄로 말미암아 후회할 날이 도래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지도자들을 비롯한 백성에게도 묻습니다. 맡겼던 아름다운 양들이 어디에 있는지, 화친을 도모하던 이웃들이 오히려 이스라엘을 칠 때에 그 고통은 해산의 수고를 감당하는 여인과 같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그들의 죄악이 큰 것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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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심판이 시작되면 북방에서 바벨론이 내려와서 예루살렘을 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는 이스라엘, 목자의 음성을 듣고 살아야 하는 양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아름다운 모습 즉 목자되신 여호와와의 관계가 온전한 모습들은 이제 찾을 수 없습니다. 교만과 완악함 그리고 죄악으로 인하여 이제 아름다운 양 떼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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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애굽, 앗수르, 바벨론등에 대하여 줄타기를 하면서 화친과 척화를 통해 생존을 모색하기 위해 친구(동맹자)를 삼았던 이들이 오히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우두머리로 세울게 될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습니다. 외교적 상황에서 영원한 친구도 동지도 없습니다. 언제든지 약육강식의 원리와 자국의 유익을 위해 배반과 화친을 난도질하는 것이 보편적인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보다 이러한 나라들을 두려워하고 신뢰하여 생존을 모색한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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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당하게 될 고통은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과 같을 것입니다. 마음으로는 왜 자신들이 이렇게 멸망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와 현실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당황합니다. 그토록 믿었던 것들(동맹국)에 의해서 오히려 성폭행(치마가 들리고 발뒤꿈치-”성기”에 대한 완곡 어법-가 상함은 성적으로 유린당하는 것을 표현하는 말입니다)을 당하는 것같은 상황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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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영광을 드러내야 할 이스라엘이 하나님 아닌 것을 더 의존하면서 생존을 도모하려는 죄악은 그토록 신뢰한 것들의 배반으로 뒤통수를 맞는 것같은 역설적인 상황으로 귀결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는 것 같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과 달리 세상에 우리가 의지할 것은 없습니다. 모두가 변하고 변질되고 처음 마음같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욕심과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동맹도 화친도 심지어 가족관계도 깰 수 있는 이들입니다. 우리가 신뢰하고 순종하며 믿고 따를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지금 헛된 것을 따르는 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결국 그토록 믿었던 것들에게서 배반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수 있습니다. 

*

# 23-24절 죄악은 돌이키지 않으면 또한 완악해져서 결국 심판을 맞게 됩니다. 

구스인의 검은 피부, 표범의 반점등은 변하게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죄악도 스스로 변하게 할 수 없기에 그들은 마침내 사막 바람에 불려가는 검불같이 흩어지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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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에티오피아; ‘검다’라는 의미를 가짐)인이 그의 검은 피부를 변하게 할 수 없고, 표범도 그의 몸에 있는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악에 익숙한 너희가 선을 행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몸에 문신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할 때에 고통이 있지만 자신의 몸에 문신을 하면서 나름의 욕망을 분출합니다. 하지만 후에 이러한 문신을 지우기 위해서 다시 몸에 작업을 할 때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아예 처음부터 있는 피부의 색이나 표범의 몸에 있는 문신처럼 오래도록 죄악으로 물든 이스라엘이 그 죄악을 버리고 다시 선을 행하기는 요원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러한 죄악을 여호와께서 심판하시면 이스라엘은 사막 바람에 불려가는 검불같이 즉 사방으로 흩어져서 유배를 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호와를 신뢰하지 못하고 헛된 것들을 섬기며 교만하고 완악하여 공의와 정의를 행하지 아니하니한 삶의 결과는 영광이 아니라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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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낯설지만 한 두번 반복되는 상황이 지속되면 금새 익숙해 집니다. 그런데 여호와 앞에서 거룩하고 온전한 삶이 아니라 부정하고 불순종하는 삶에 대한 죄악된 모습은 더욱 그렇습니다. 죄에 대한 달콤한 유혹은 금새 우리를 죄악에 익숙하게 만들어 버려서 우리의 일상처럼,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행하게 되면서 오히려 거룩한 길로 가는 것이 불편해지고 낯설고 급기야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주님앞에 나아가 예배하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삶의 자리에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일들은 날마다 낯선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원래 이 길이 낯설지 않게 지음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께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살앗기에 우리 몸에는 죄악에 더 친근하고 거룩에는 낯선 이들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아직 돌아오라는 주의 음성이 들리거든 더 망설이다 완악해 지지 말고 돌이켜 낯선 순종의 길로 들어설 수 있길 원합니다. 

*

# 25-27절 죄악은 돌이키지 않으면 결국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를 망각하고 떠나 결국 유배를 가게 된 원인은 여호와를 망각하고 거짓을 신뢰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거짓의 내용은 간음과 사악한 소리, 음란, 음행, 가증한 것으로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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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악하고 불순종한 백성, 여호와가 아닌 헛된 우상을 따르고, 삶의 자리에 공의와 정의가 무너져서 더이상 약속의 땅을 더럽힐 수 없기에, 여호와를 망각하고 거짓을 신뢰한  이들에게 남은 몫과 분깃은 심판으로 인한 유배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백성이 헛된 우상을 섬기는 이들로부터 멸망당하는 수치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한번 이스라엘의 거짓을 신뢰하는 죄악들을 간음과 사악한 소리로 표현하고 이러한 것들을 숭배한 작은 산(큰 산이 아니라 역설적이게 표현한 것도 이들의 헛됨을 말하기 위함으로 보입니다)에서의 행위를 음란과 음행과 가증한 것으로 표현합니다. 발정난 들나귀처럼 돌아다면서 헛된 것들을 숭배하며 이러한 일들을 자행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 모든 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 시간들이 너무도 오래이기에 정결하게 하는 시간도 그만큼 오래 걸립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이 한세대를 훌쩍 넘은 70여년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하물며 우리의 삶에 만연된 부정도 정결하게 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

우리 주님의 대속하심과 정결케 하심의 은혜에 감사하면서도 그 은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삶이 우리에게 있는지 함께 돌이켜 봅니다. 주님 아닌 것들을 신뢰하고 따르며 거룩한 길로 선을 행하는 백성으로서의 길로 날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살아갈 이유를 다시한번 되새깁니다. 

*

# 13:20-27(멸망/유배의 원인) - 묵상도움글

예루살렘의 임박한 멸망을 선포하는 20-27절은 화자와 청자, 그리고 주제에 따라 다시 세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야훼를 3인칭 단수 ‘그’로 부르는 20-22절은 예언자의 말이고, 23-24절과 25-27절은 야훼의 1인칭 말씀입니다. 20-22절과 25-27절은 청자를 2인칭 단수 여성 ‘너’로, 그 사이에 놓인 23-24절 2인칭 복수 ‘너희’ 또는 3인칭 복수 ‘그들’로 부릅니다. ‘너’는 27절의 호격 ‘예루살렘이여’가 보여주듯이 유다를 대표하는 왕도(王都) 예루살렘을, ‘너희’ 또는 ‘그들’은 예루살렘 주민들을 가리킵니다. 이 세 단락은 느슨하지만 내용에 있어 서로 연결되며 주제에 있어 서로 보충적입니다. 첫 번째 단락은 북방에서 오는 재앙을 선포하면서 막연히 죄악을 그 원인으로 제시해줍니다. 두 번째 단락은 제2의 천성이 되어버린 유다 사람들의 완악함을 고발하면서 유배의 심판을 선언하고, 세 번째 단락은 우상숭배의 간음을 범한 예루살렘에게 수치의 심판을 선포한다. 야훼께서 예루살렘과 그 주민들을 멸망의 심판에 넘길 수밖에 없는 원인이 점차 구체적으로 언급됩니다. 22절의 “네 죄악이 크므로”가 23절에서는 회개의 불가능하므로 심화되고, 25절의 ‘거짓’이 27절에서는 우상숭배로 구체화됩니다. 상응하여 예루살렘이 겪게 될 고통을 다양한 표상을 사용해 강도를 높여가며 묘사합니다. 21절에서는 ‘산고를 겪는 여인’으로, 24절에서는 ‘사막 바람에 불려가는 검불’로, 26절에서는 성폭행 당하는 여자로 기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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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심판하시는 중에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아버지

시대를 옳게 분별하지 못한

우리의 어두운 눈과 영적 감각들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우리 안의 분열케 하는 어리석은 일들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소수자들의 인권을 주장하는 부분에 있어서 지혜롭게 처신하고

여호와께서 바람직한 방향이 무엇인지
어떻게 지도해 가야 할지를 알게하여 주옵소서.

심판중에도 긍휼을 잃지 않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속히 돌이키고 온전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교만은 주님의 진노가 있기 전에

늘 기도하며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날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 낮춰 겸손히 여호와와 함께 행하길 기도합니다. 

목자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고

우리의 친구되어 주신 주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헛된 것들에 마음을 둔 죄악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속히 이러한 죄악에서 돌이킬 용기와 믿음 주시옵소서.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거룩에 낯설고 죄악에 길들여지는 지경까지 이르지 않도록

우리를 깨워주시옵고

주께서 인도하시는 그 음성에

속히 응답하게 하옵소서. 

날마다 주를 기억하며

주를 신뢰하고 정결한 삶으로 점철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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