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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3:01-14 내 백성 되게 하려 하였으나

*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한 가지 퍼포먼스를 행하게 합니다. 베 띠를 사서 물에 적시지 말고 허리에 띠고, 그것을 가지고 유브라데로 가서 바위 틈에 감추고 온 후에 다시 가서 가져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감춰 둔 띠는 이미 썩어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결국 유다의 교만의 끝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임을 밝혀 주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심판이 임박함을 진노의 잔(포도주)이 가득 찬 속담을 가지고 전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조롱의 소리로 듣습니다. 

*

# 13:1-11(베 띠의 표적행위) - 본문 구조

13:1-2 첫 번째 단계의 표적행위

13:1 실행명령

13:2 실행보고

13:3-5 두 번째 단계의 표적행위

13:3-4 실행명령

13:5 실행보고

13:6-7 세 번째 단계의 표적행위

13:6 실행명령

13:7 실행보고

13:8-11 전체 표적행위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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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절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곁에 항상 함께 붙어 있어야 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베 띠를 사서 허리에 띠고 물에 적시지 말라 명령하는데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합니다. 

.

베 띠는 속옷처럼 허리에서 무릎 위까지 가리는 아마포로 된 천을 가리킵니다. 후반부에는  썩어버린 베 띠가 이스라엘의 교만을 상징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에게 이것을 입히고 퍼포먼스를 진행하라고 한 것을 보면 결국 예레미야의 행동은 이스라엘의 교만한 모습을 패러디한 상징적 행동으로 보입니다. 이를 물에 적시면 더 빨리 썩어 버리기에 적시지 말라 합니다. 베 띠를 상하지 않게 잘 간수하라는 말로 이해 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런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지만 여호와의 명령에 바로 순종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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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간혹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셨다고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나 결단을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참으로 난감합니다. 이런 말씀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상식을 벗어난 명령을 보편적으로 하시는 분으로 오해하면 안됩니다. 예레미야의 경우는 특별한 경우입니다. 베 띠를 사서 허리에 띤 것은 결국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렇게 친밀하고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특별한 퍼포먼스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가 그렇게 주님과 함께 하길 원하십니다. 

*

# 13:1-2(야훼의 첫 번째 명령과 실행보고) - 묵상도움글

야훼께서 예언자에게 ‘베 띠’(아마포 띠)를 사서 허리에 두르고 물에 담그지 말 것을 명령하시고(1절), 예언자는 그분의 명에 따라 베 띠를 사서 허리에 두릅니다(2절). 베 띠로 번역한 히브리어 ‘피슈팀’은 허리에 걸치는 짧은 속옷을 가리킵니다. ‘물에 적시지(담그지) 말라’(1b절)는 야훼 명령의 두 번째 부분은 그 의미가 불분명합니다. 아마도 베 띠를 상하지 않게 잘 간수하라(항상 달라붙게 하라)는 말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다. 적어도 11절의 해석은 이러한 이해를 지지합니다.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를 허리띠와 허리띠를 두른 사람과의 관계로 말함,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항상 달라붙어 있어야, 허리띠가 사람에게 달라붙어 있는 것처럼.

*

# 3-5절 이스라엘은 유브라데 강 가로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번에는 허리에 띤 띠를 가지고 유브라데로 가서 그것을 바위 틈에 감추라고 하자 예레미야는 이에 또 순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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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가 있는 곳에서 유브라데 강까지는 1천킬로가 넘는 거리입니다. 그 길을 왕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이 행동을 하라고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자 예레미야는 즉각적으로 순종합니다. 그래서 이 ‘유브라데’를 좀 더 가까이에 있는 다른 지명으로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지명이 되었든 지금 예레미야의 이러한 퍼포먼스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보고 생각하고 알리고 있는지는 미지수입니다. 다만 예레미야와 하나님 사이에서는 분명하게 이 행동에 대한 소통과 순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이러한 행동은 결국 퍼포먼스의 순간에 전달되기보다 이러한 모든 행위를 다 마쳐서 간증하며 전달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메시지가 전달된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선지자 한 사람이 그 먼 길을 다녀온다고 해서 당대 그를 원수처럼 저주하고 증오하던 종교지도자들이나 백성들에게는 아무런 반향도 충격도 전해주지 못하지만 들을 귀 있는 이들만 듣고 보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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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예언하시고 약속하시고 명령하신 것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완악하고 교만하여 우상을 숭배하고 공의와 정의가 무너진 상황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먼 유프라테스 강을 다녀오는 것만큼이나 많은 위험과 변수와 문제에 봉착하고 그 일 자체만으로도 버거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남유다는 멸망하여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여호와의 말씀대로 다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있다면 이해할 수 없는 말씀과 명령에도 이와같이 순종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런 믿음을 갖기란 여간 어렵습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명령하신대로 묵묵히 이 일을 행한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

# 13:3-5(야훼의 두 번째 명령과 실행보고) - 묵상도움글

야훼의 말씀이 두 번째로 예레미야에게 임합니다(3절). 사서 허리에 두른 띠를 가지고 유프라데로 가서 그것을 바위 틈새에 감추라고 명령하십니다(4절). 야훼의 말씀에 따라 예언자는 유프라데로 가서 베 띠를 숨깁니다(5절).

목적지로 언급된 유브라데는 여러 면에서 이해가 어렵습니다. 유브라데를 두 번 왕복하는 거리는 대략 3500km정도 됩니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강의 바위 틈새에 베 띠를 감추고 이를 다시 가져오기 위해 최소한 몇 달이 소요되는 멀고도 위험스러운 여행이 필요했는지는 의심스럽습니다. 또 표적행위는 보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행하여야 하는데, 유브라데가 표적행위의 무대가 될 경우 예레미야가 행한 행위를 증거해줄 사람이 없게 됩니다. 마치 예레미야 개인에게 하신 말씀처럼 보입니다. 표적행위의 장소 유브라데가 원래적이라면 장소의 선택은 분명 의도적이었을 것이고, 의도적이었다면 8-11절에 나오는 야훼의 해석에서 언급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해석은 유배와 그 장소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쓸모 없이 된 이스라엘의 심판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해석에 따르면 아무 강이나 상관이 없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많은 주석자들은 그리스역본 Aquila(eij Faran)에 따라 아나돗에서 북동쪽으로 대략 6km 떨어진 곳에 있는 발음이 유사한 파라(Para; cf. 수 18:23)로 고쳐 읽습니다. 

*

# 6-7절 이스라엘의 교만은 포로 생활 속에서 철저하게 무너질 것입니다. 

여러 날 후에 여호와께서는 다시 유브라데로 가서 감추인 한 띠를 가져오게 합니다. 그런데 이미 띠가 썩어서 쓸모 없게 되었습니다. 

.

유브라데로 끌려간 하나님의 백성들을 여호와께서는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들이 이전에 행하던 우상숭배와 공의와 정의를 행하지 않는 원인이 되는 탐욕과 교만에 대해서 철저하게 회개하고 정화한 뒤에야 출바벨론 하게 하여 다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여 새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계획을 하나님께서는 진행하실 것입니다. 썩어진 띠는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렇게 썩어져야 한다는 것과, 그런게 된 후에라야 다시금 약속의 땅으로 올 수 있음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속되어야 다시 새백성으로 여호와 앞에 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

주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은사와 일들에 대해서 교만하지 아니하고 겸손히 행한다면 그 띠는 결국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고, 여호와의 명예와 영광이 되게 하는 데에 쓰임받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교만하여 그 띠가 썩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살아온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그토록 바벨론을 의지하려는 것들 모두 교만으로 해석됩니다. 하나님 아닌 것을 통해서도 자신들의 안위와 모든 것을 보장 받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벌써 교만인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얼마나 헛되고 무의미한 것인지를 직면하게 될 날이 오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

# 13:6-7(야훼의 세 번째 명령과 실행보고) - 묵상도움글

여러 날이 지난 후에 야훼의 말씀이 다시 예언자에게 주어집니다. 야훼께서 예레미야에게 유브라데로 가서 거기에 숨겨둔 띠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십니다(6절). 야훼의 말씀에 따라 예레미야는 유브라데로 가서 흙을 파고 감추어 둔 곳에서 띠를 꺼내 가져옵니다(7a절). 예레미야는 띠가 썩어서 아무짝에도 쓸모 없게 된 것을 봅니다(7b절). 

*

# 8-11절 이스라엘의 교만이 온전한 여호와의 백성이 되어 여호와의 이름과 명예와 영광이 되는 길을 버리게 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행하라 한 퍼포먼스의 의미를 설명해 주십니다.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교만을 이같이 썩게 하리라는 메시지였습니다. 이들의 교만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거절하고, 마음의 완악한 대로 행하며,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며 절한 것을 말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이 모든 것들이 썩어버린 띠처럼 쓸 수 없게 되리라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속하여 여호와의 백성으로 여호와의이름과 명예와 영굉이 되는 것이 부르심의 뜻인데 이들은 그것을 듣지 않았습니다. 

.

여호와의 말씀 듣기를 거부하니 더이상 생명도 보호도 없으며 보호와 인도함도 없기에 그들이 가는 길은 탐욕이 이끄는 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완악한 마음의 욕심을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그 한계에서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탐욕을 이루어줄 우상을 만들고 다른 시들을 따라 섬기며 절하면서 살아갑니다. 거룩한 백성으로 택하여 세워서 축복의 통로가 되도록 하려 했지만 결국 여호와를 떠나 패역한 길로 행하고 만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이 거룩한 백성으로 여호와를 따라 여호와께 속하여 살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고, 여호와의 명예와 영광이 되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완악한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고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말합니다. 선민으로서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이름을 가지고, 여호와의 명예와 영광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만과 탐욕이 이 모든 영광에서 멀어지게하고 급기야 여호와로부터도 멀어지고 여호와의 백성의 자리에서도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의 백성이면 여호와게 붙어있어야 합니다. 곧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여호와와 함께 여호와의 길을 가는 것이 백성의 속성이자 의무인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교회된 우리에게도 동일한 부르심이며 속성이자 의무입니다. 오늘 주의 이름으로 주님의 명예와 영광이 되는 삶으로 채워가고 계신가요?

*

# 13:8-11(야훼에 의한 표적행위의 해석) - 묵상도움글

야훼의 해석은 세 번째 표적행위, 곧 사건의 결과에 집중됩니다. 썩어서 쓸모 없게 된 띠가 내버려지는 것처럼 부패한 유다와 예루살렘의 운명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야훼께서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그처럼 썩혀버리실 것입니다(9b절). 유다와 예루살렘은 교만의 악으로 완전히 썩었기에 버려질 수 밖에 없습니다. 교만이 야훼의 심판을 초래합니다. 예루살렘의 교만 앞에는 ‘큰’이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다윗의 보좌와 성전이 자리 잡고 있는 예루살렘에서 정치적-종교적 권력을 행사했던 자들이 유다 멸망에 더 큰 책임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10-11절은 앞에서 막연하게 교만으로 언급된 심판선고의 이유를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야훼께서 교만한 유다와 예루살렘을 ‘악한 백성’이라 부르시며 이들의 불순종과 우상숭배를 고발하십니다. 이들은 야훼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거절하고 제 완악한 마음에 따라(cf. 3:17; 7:24; 9:14; 11:8) 다른 신들을 쫓아다니며(7:6, 9; 11:10) 그것들을 섬기고 절했습니다(10절). 하나님 백성인 유다와 예루살렘이 생명과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을 떠나 다른 이방 민족들처럼 헛것들을 숭배하다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썩은 띠가 되어 버려짐을 당합니다. 11절에서 야훼께서는 띠와 띠를 두른 사람 사이의 관계를 빌어 당신 백성과 당신 사이의 원래적 관계를 설명하십니다. ‘속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는 ‘달라 붙다, 떨어지지 않다’를 의미합니다. 허리띠가 사람의 허리에 붙어있듯이 그분께서는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을 당신께 달라붙게 하여 당신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은 각각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를 가리킵니다. 야훼께 붙어있음, 곧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과 함께 그분의 길을 가는 것이 그분 백성의 속성이자 의무였습니다. 야훼는 이스라엘과 유다로 당신의 ‘이름과 명예와 영광’이 되게 하셨지만, 이들은 그분께 붙어 순종하기를 거절했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이 썩어서 버려질 수 밖에 없는 베띠와 같습니다. 너희는 선택을 말하는데, 그러나 너희는 이미 다 썩어 문들어져서 더 이상 아무 소용도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자랑하는 신하적 조건들은 아무 소용 없고 오직 버려질 뿐이다고 심판 선언하는 말씀입니다. 

*

# 12-14절 당연한 시대적 상황을 옳게 분별하지 못하면 교만하면 결국 분열을 통해 멸망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든 항아리(가죽 부대)에 포도주로 가득 차리라 하시는데 사람들은 당연한 이야기라고 응대합니다. 이에 여호와께서는 이 땅 모든 이들 곧 다윗의 왕위에서부터 지도자들과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들이 이 포도주로 잔뜩 취하게 될 것이며 결국 서로 싸우다가 상하게 되고 자멸하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

항아리에 포도주가 가득 차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알고 있으면서 이스라엘은 자신들에게 임박한 심판에 대해서는 시대적 상황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항아리(이스라엘)에는 이제 진노의 포도주가 가득차게 되어서 이 땅 모든 주민들을 심지어 다윗의 언약 백성과 왕들일지라도 취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모두가 심판의 영향력으로 넘어지게 될 것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심지어 여호와의 진노 앞에서 서로 충돌하면서 상하게 되어, 부한 자이든 주민이든 모두 다 총체적으로 심판을 받게 되는데 여기까지 진행되는 상황에서 여호와께서는 더이상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 아끼지 아니하며 자비를 베풀지 않고 멸하리라 하십니다. 

.

계절의 변화에 대해서 당연하게 여기면서 민감하게 느끼지만 정작 우리의 영적인 상황과 상태의 심각성을 지도자와 구성원들이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면 우리도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에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북의 바벨론과 남의 애굽을 향하여 서로 친바벨론, 친애굽파로 나뉘어서 주화, 척화로 내분되는 상황이 극렬하게 진행되어서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이렇게 심판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여호와께서는 더이상 긍휼을 베풀지 않고 사랑도 아니하고 아끼지도 않고 철저하게 멸할 것임을 천명합니다. 

.

지금도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심각한 죄악에 빠진 상황을 깨닫지 못하고 정신없이 시류에 휩쓸려 가다가는 모두가 공멸하는 것입니다. 민족 교회의 심각한 상황을 생각해 봅니다. 자정능력의 상실과 주님의 가르침과는 너무도 멀어져서 교만해 졌고, 시대의 요구와 상황들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발을 뻗고, 소수자들의 인권에 대해서 너무도 잔인하게 정죄를 하고 폭력을 행사하면서 이기적인 종교심을 발동하는 모습 속에서 분열되어지고 능력을 잃어버리고 흔들리는 교회의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의 뜻과 가르침에 대해 무지함은 결국 여호와의 진노의 잔을 피할 수 없습니다. 더우기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도전은 더이상 여호와의 긍휼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

# 13:12-14(분노의 술) - 묵상도움글

야훼께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격언을 인용해 누구나가 긍정할 수밖에 없는 말을 건네십니다. “모든 가죽부대가 포도주로 차리라”(12ab절). [‘가죽부대’로 번역한 히브리어는 ‘항아리’로 옮길 수 있습니다.] 이 격언은 모든 물건에는 나름대로의 기능과 용도가 있음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포도주 항아리에 포도주를 채워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누가 그것은 모르겠는가? 청자의 어이없어하는 반응(12b절)은 차라리 자연스럽습니다. 별다른 생각 없이 수긍함으로써 청자는 자신을 야훼의 심판 앞에 세우게 됩니다. 야훼께서 ‘다윗의 왕위에 앉은 왕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예루살렘 모든 주민’을 잔뜩 취하게 만드실 것입니다(13절). 예루살렘의 정치적-종교적 지배계층에 속하는 자들은 물론 그 주민들마저도 야훼께서 주시는 술을 취하도록 마셔야 합니다. 항아리의 용도가 물이나 술을 담는데 있다면 이스라엘의 용도는 술취함에 있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은 단지 심판을 위해 준비된 그릇으로 야훼께서 그 용도에 맞게 이들에게 아낌없이 분노의 술잔을 쏟아 부으실 것입니다.

술자리가 길어지면서 술에 취해 서로 싸우거나 잔을 부딪치다가 깨뜨리듯이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그렇게 서로 부딪쳐 깨어질 것입니다(14a절). 유다가 내부의 갈등과 분열로 갈가리 찢겨져 자멸할 것입니다. 야훼께서 주시는 심판의 술에 흠뻑 취한 유다(의 지도자들)는 분별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당파적 싸움에 빠져 자진하여 멸망의 길로 나아갑니다. 21:7과 거의 문자적으로 일치하는 후반절은 백성의 완전한 타락에 대한 야훼의 엄중한 심판의지를 보여줍니다. 야훼께서 배반한 당신 백성에게 등을 완전히 돌리십니다. 그분의 심판의지는 어떤 경우에도 완화되지 않습니다.

*

# 거둠의 기도

우리를 택하사 주의 백성되게 하시고

주의 이름과 명예와 영광이 되게 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대속하사 주의 백성 삼아 주심을 감사하오며

주의 명령과 말씀을 따라 온전히 순종하길 원하옵고 

우리에게서 있는 교만은 버리고 멀리하게 하옵시며

오직 주의 말씀 듣기를 즐거워하고

완악한 마음이 아니라 열린 마음, 온유한 마음 갖게 하옵시며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우상을 배격하고

주어진 건강한 시간들 속에서

더욱 주를 위해,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백성이게 하옵소서. 

우리는 주의 백성이오니

주의 이름과 명예와 영광이 우리를 통해 드러나길 원하오며

날마다 듣는 귀를 허락하사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행하는 거룩한 백성이게 하옵소서. 

심판하시는 중에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아버지

시대를 옳게 분별하지 못한

우리의 어두운 눈과 영적 감각들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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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레미야 18:13-23 예레미야의 고백 4 ; 여호와께 맡기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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