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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4:01-10 두 무화과 광주리의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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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들에 대한 예언을 마무리 하면서 남유다가 완전히 멸망하기 전에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성전 앞에 놓인 두 무화과 광주리를 통해서 유배에 간 이들과 예루살렘에 남은 이들 사이에 생긴 서로에 대한 오해와 갈등을 바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판단 기준을 제시해 주십니다. 포로로 끌려간 이들은 좋은 무화과 로 다시 돌아와 내 백성이 되겠고, 유다 땅에 남은 이들은 흩어져 수치와 조롱을 당해 멸절될 것이라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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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바벨론 왕이 유다왕 여고냐와 고관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성전 앞에 놓은 두 무화과 광주리를 보여주십니다. 극히 좋은 무화과와 극히 나쁜 무화과 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를 예레미야에게 확인하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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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남유다는 긴장과 분열로 치닫게 됩니다(주전 597-587 여호야긴 왕 때). 이 때 바벨론으로 유배당한 자들과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 사이에는 계속되는 긴장과 반목이 있었습니다. 유배 당한 이들은 저주를 받아서 야훼 공동체에서 제외 되었고, 이 땅에 유배를 당하지 않은 이들은 선택을 받아 약속의 땅에 남아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바벨론으로 끌려간 이들의 이름과 직분들을 먼저 언급하고 성전 앞에 놓인 두 무화과 광주리를 보여줍니다. 이야기의 중심이 유배된 이들을 긍정적으로 언급하며 격려하기 위한 의도로 보입니다. 지금 유배 된 이들은 생명의 위협과 고국을 떠나는 슬픔에 절망적인 상황을 극히 좋고 나쁜 무화과라는 표현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광주리의 무화과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이고, 다른 광주리는 나빠서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광주리라고 두번씩이나 표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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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의 출입을 아시되 머리털까지 헤아리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마 28:30). 우리의 언행심사의 좋은 부분과 그렇지 않음 부분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 우리의 처지와 상황과 의도와 시도들을 모두 알고 계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고, 우리 모두를 향한 계획을 예비하고 계시며,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그곳에 함께하시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으나 하나님은 바다 속으로라도 길을 내시는 분이시며,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서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사 지금도 우리를 향해 일하고 계시고, 끝까지 신실하게 약속을 이뤄가시는 분이십니다. 

안타까운 현실에 절망하는 예레미야를 향하여 두 광주리 무화과 환상을 통해서 예언자를 돕고, 또한 극한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소망과, 자만하는 이들에게 경고를 통해 긴장 속에서도 점검케 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보여지는 것들을 분별하고 그 가운데서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사인들을 읽어내고 해석하고 깨달아 가는 영적 혜안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하는 말씀을 통해서 세밀하게 인도해 가시며, 우리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예비하시고 이어가시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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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절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믿음도 회개도 주시고 주백성 삼아 주신 것입니다. 

보여준 두 광주리 무화과의 첫번째 좋은 무화과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십니다. 갈대아인의 땅으로 옮긴 유다 포로들은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 하십니다.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고국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안으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또한 내가 여호와인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고, 그들이 전심으로 회개하게 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약속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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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과 5절에 있는 ‘옮긴다’라는 표현은 이들을 바라보고 잘 돌볼 것이라는 표현과 연관지어 그 주권이 여호와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바벨론 왕이 주도권을 갖고 이들이 끌려간 것은 이들이 잘못하고 저주를 받아 끌려 간 것으로 알고 있는 상황에서 여호와께서 이들을 옮기시고 그들을 돌보시고 또한 그들을 향해 특별한 계획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들을 돌아보면서 좋게 하여 다시금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라고 말하면서 언약을 잊지 않고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시겠다는 표현입니다. 

결정적으로 이전에 행하던 악한 일에서도 택한 이들에게 다시금 이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분이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 오직 여호와가 하나님인줄 아는 믿음을 그들에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들이 전심으로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약속의 땅으로 물리적으로 돌아오는 것 뿐 아니라 불신앙과 불순종의 상태에서 믿음과 순종으로 회개하게 되는 일도 결국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셔서 믿음도 회개도 가능하게 하시겠다는 표현입니다. 그렇게 택한 백석을 약속을 이뤄가시면서 내 백성 삼으시고 하나님이 되어 온전한 관계를 이뤄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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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사화복이 주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믿습니다. 지금 우리가 주님을 믿는 것도, 우리의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는 것도, 주님의 보배로운 소유가 된 것도, 거룩한 나라의 백성됨도, 그리고 우리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을 받는 것도, 우리가 지금 선 자리에 있는 것도, 우리에게 붙여주신 도움의 사람들과 이웃과 가족과 공동체도 모두다 주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들입니다. 그런 주님의 섭리 곧 일하심과 새롭게 창조해 가시는 일이 오늘도 여전히 우리 가운데 임하고 있기에 우리에게 흔들리지 않는 산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포로에 끌려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리고 아무런 소망도 없을 것 같고,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신실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갖고 일하고 계심을 믿으며, 이 하루도 우리에게 주어진 이 길을 올곧게 주님이 주신 믿음으로 달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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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의 출애굽_김기석목사님의 <끙끙앓는 하나님> 255페이지

여호와는 남의 땅에서 포로살이를 하는 이들을 잘 지켜보면서 잘 되게 하겠다 이르신다. 그리고 그들을 본토로 인도하시어 새로운 나라를 이루게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세우다’,

‘헐다’ , ‘심다’와 ‘뽑다’는 이미 1장 10절에서도 사용된 단어군들이다. 45장 4절에도 등장한다. 예레미야서에서는 이 단어 짝들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여호와는 그들에게 당신을 주로 알아볼 수 있는 마음을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히브리어에서 ‘안다’는 단어는 객관적 지식이나 정보를 이르는 말이 아니라 아주 친밀한 사귐을 이르는 말이다. 하나님이 더 이상 추상이나 관념이 아니라 가슴 떨리는 현실이 될 때, 그래서 그들이 전심을 다하여 여호와께 돌아올 때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그들은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문장은 시내 산 계약이 맺어질 때에 사용된 구절의 변형태이다. 이로써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바벨론으로부터의 구출을 예레미야가 제2의 출애굽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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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0절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선택에 공의로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유다와 시드기야와 그 고관들, 예루살렘의 남은 자와 약속의 땅에 남은 자들, 그리고 애굽 땅으로 도피한 자들을 나쁜 무화과에 비유합니다. 그들은 버리고, 세상 모든 나라 가운데 흩어서 환난을 당하게 하고, 부끄러움과 말거리가 됨과 조롱과 저주를 받고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보내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고 이 일을 여호와게서 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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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되지 않은 이들을 유대된 이들을 저주하고, 자신들은 잘나서, 지혜로워서, 그리고 무죄하여 하나님이 유배를 피하게 하셨고, 또한 애굽으로 이주한 이들은 전쟁의 위협에서  잘 벗어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착각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을 나빠서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무화과에 비유하여 버리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좋은 무화과와 정 반대되는 표현들로 이들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돌아 오게하지 않고 흩어버리겠다 하시고, 돌보지 않고 환난을 당하게 하시겠다 하시고(9절하), 좋게 하지 않고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고, 세우지 않고 말거리가 되게 하며, 심지 않고 조롱과 저주를 받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아는 마음이 아니라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 가운데 보내서 심고 뽑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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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살아 있다고, 남아 있다고, 그리고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고, 뭔가를 피했다고, 그리고 지키고, 세우고, 얻고 올랐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님에도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기뻐하신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심지어 우리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평안하다 문제가 없다 생각하는 것은 더더욱 심각한 자만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교만할 수록 경고도 말씀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급기야 자기 중심적이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여 모든 것을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여 멸망으로 가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기 죄를 슬퍼하지 않는 사람에게 회개의 기회가 없고, 자신의 악행에 절망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일말의 소망도 사라질 것입니다. 

지금 내가 선 자리가 주님이 허락하신 자리인 것을 믿는다면, 무엇을 소유한 것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한지 그분의 말씀을 경청하고 순종하고 있는지의 여부가 우리 삶의 평가 기준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 그 이면에 가려진 진실과, 하나님의 마음과 은혜를 헤아릴 줄 아는 혜안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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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1-10(두 무화과 광주리의 환상; cf. 22:24-30; → 21:1-10) - 묵상도움글

‘두 무화과 광주리의 환상’은 주전 597년과 주전 587년 사이에 발생한 이스라엘의 사회적 긴장과 분열을 그 배경으로 합니다. 주전 597년에 여호야긴 왕과 함께 바벨론으로 유배당한 자들과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자들 사이에는 계속되는 긴장과 반목이 있었습니다. 에스겔서의 연대기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바벨론 유배민들은 여호야긴 대신에 왕위에 오른 시드기야를 바벨론의 하수인으로 경멸하며 그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은 유배민들에게서 정치적-경제적 기득권을 박탈하였고, 종교적으로 이들을 야훼 공동체에서 제외시켜버렸습니다. “그들은 야훼에게서 멀리 떠나 있다. 이 땅은 [우리의] 소유로 주어졌다!”(겔 11:15b) [개역개정은 MT에 따라 명령형으로 읽지만 이는 문맥에 일치하지 않습니다. 모음점을 바꿔 완료형으로 읽어야 합니다.] 예루살렘의 새로운 지배세력은 구(舊)지배세력에 속하는 제1차 바벨론 유배민들을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축출된 자들로 정죄했습니다. 두 집단 간의 다툼에서 야훼는 제1차 바벨론 유배민들의 손을 들어주십니다(cf. 렘 24:1-10; 겔 11:14-21). 제1차 유배민들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로 야훼께서 이들을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하셔서 이들과 계약을 갱신하실 것입니다.

주전 597년 제1차 바벨론 유배(cf. 왕하 24:14-16)로 유다 사회는 극심한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경험합니다.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간 자들을 [예레미야 52:28에 의하면 삼천이십삼 명] 더 이상 이스라엘의 일원으로 간주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통속적 신앙에 따르면 유배는 죄의 결과이기에 유배민들은 죄인들이 됩니다.] 이제 야훼께서 무화과 두 광주리의 이상을 통해 예레미야에게 어느 집단이 이스라엘의 적법한 후계자가 될 것인지 보여주십니다.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무화과처럼 매우 좋은 무화과가, 다른 광주리에는 너무 나빠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무화과가 담겨 있었습니다(2-3절). 야훼의 징계로 여호야긴과 함께 주전 597년에 바벨론으로 유배 당한 자들이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로 이들에게 이스라엘의 구속사적 미래가 약속됩니다(5-7절). 이들은 징계를 받은 후에 야훼에 의해 다시 고향 땅에 심겨집니다(6절). 헐고 뽑으셨던 야훼께서 이들을 다시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심으십니다(cf. 1:10). 야훼께서 이들을 돌아오게 해주실 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당신을 알고 온전히 따를 수 있는 마음까지 주시고, 파기되었던 계약을 회복하십니다.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7절). 새로운 미래의 시작은 전적으로 야훼의 구속행위에 속함을 보여줍니다.

반면에 유배를 모면하고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인 시드기야와 그의 신하들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들은 너무 나빠 먹을 수 없는 무화과로 버림을 받고 야훼의 심판에 넘겨집니다(8-10절). 이들에게는 미래가 허락되지 않습니다. 야훼께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흑사병)’으로 이들을 완전히 멸망시키십니다(10절). 유배지도 이들에게 피난처가 되지 못합니다. 야훼께서 이들을 쫓겨난 곳에서 수치와 속담거리와 비웃음과 저주의 대상으로 만드십니다(9절; cf. 25:18; 26:6; 29:18, 22). 8절의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은 주전 587년의 두 번째 유배 때 애굽으로 도망한 자들을 가리킵니다(cf. 42:1-43:7; 44). 유다의 구속사적 전통이 주전 597년에 바벨론으로 유배당한 자들에 의해서 계승될 것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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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우리를 향한 놀라운 계획은 갖고 계신 하나님

그 계획을 신실하게 이뤄가고 계신 하나님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과 더불어 다양한 채널로 

주님 뜻 계시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예레미야에게 보여준 두 무화과 광주리 환상을

오늘 말씀을 통해 보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고

우리의 수고하고 애씀이 아무 소용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지금 우리가 누린 모든 것들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우리를 말씀의 거울 앞에 비춰

거룩한 길로 행하는지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에 있는 것인지

제대로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눈을 허락해 주옵소서. 

지금 보여지는 안타까운 정세가

결국 우리의 공동체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패역한 세대일 수록 더욱 

정결한 백성의 길로 행할 수 있길 원합니다. 

주께서 우리를 돌아보아 좋게 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사 세우고 헐지 않으시며

좋은 것으로 심고 또한 허락하신 자리에서

뽑지 않으시는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오늘 우리 주님을 알고 믿고 따르며

온전히 주께로 돌아올 수 있게 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우리 주님이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주의 백성됨은 오로지 주의 은혜인줄 믿고

다시금 감사하옵고

그 은혜에 합당하게 처신해 가는

신자되기 원합니다. 

나와 타인의 처지에 대해

함부로 하나님의 뜻을 운운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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