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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12:01-16 유배를 예고하는 퍼포먼스


성전에서의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8-11장)를 설명한 후에 이러한 죄에서 돌이키지 않는 반역하는 족속들이 결국 유배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상징 행위들을 에스겔을 통해서 보여주게 하고 이러한 퍼포먼스에 대해 설명한 후에 남은 자들 통해 이 모든 일들이 여호와께서 하신 것임을 증언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 주제에 있어 4-5장에 연결되는 12:1-20의 두 표적 행위

 - 성이 함락당한 이후의 두 모습 : 유배(1-16절)와 땅에 남은 자들의 비참한 운명(17-20절)

 - 4:1-8(성의 포위)⇒4:9-17(기근)⇒5:1-4(함락)⇒12:1-16(유배)⇒12:17-20(폐허가 된 성읍)


# 1-7절 여호와께서는 반역하는 족속의 목전에서 퍼포먼스 통해 돌이킬 기회를 주십니다.

에스겔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반역하는 족속들 곧 눈과 귀가 있음에도 보지 않고 듣지 않는 이들에게 표적 행위(퍼포먼스)를 시간대별로 하라고 명합니다. 낮에 포로의 행장을 꾸려 그들의 목전에서 끌려가면 혹 생각이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저물 때에 목전에서 포로되어 가는 자 같이 하여 성벽을 뚫고 옮기고, 캄캄할 때에 역시 그들이 목전에서 행장을 어깨에 메고 나가며 얼굴을 가리고 땅을 보지 말라 합니다. 이 모든 거승ㄴ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에스겔은 여호와게서 명령하신대로 낮과 저물 때와 캄캄할 때에 그들의 목전에서 퍼포먼스를 행합니다. 

*

오래도록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선지자와 제사장과 여러 계시의 수단을 통해서 깨우치고 돌이키길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강퍅하여 계속 여호와를 향하여 반역했습니다. 이러한 죄에 사로잡혀 있기에 그들은 바로 보고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눈이 있어도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지도 못합니다. 귀가 있어도 여호와의 경고를 듣지 못하고, 또한 듣지 않습니다.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에스겔의 선포를 완강하게 거절하고 있는 유배민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낮에 끌려가는 포로의 행장같이 내놓고, 저물 때에 성벽을 뚫고, 캄캄할 때에 행당을 내다가 그들의 목전에서 어깨에 메고 나가라고 여호와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에스겔을 통해 이스라엘 족속에게 징조가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6하). 선지자를 세우고, 말씀하시고, 경고하시고, 표적 행위를 통해서 미리 예고하시는 모든 행위들은 아직은 비록 반역하는 족속이라 할지라도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징조는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경고요 교훈이요 돌이킬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적으로 피할 시간, 돌이킬 수 있는 기회, 자백하고 회복할 수 있는 여지를 주시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허락하신 표적행위들을 민감하게 분별하고 반응할 수 있길 원합니다. 직접적인 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우리 가운데 성령을 통해서 주시는 감동을 통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확실한 성경의 말씀을 통해서, 또한 주의 사람들과 사건들과 역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경고와 다양한 이끄심에 대해서 분별하고 그렇게 깨달은 말씀에 대해서는 속히 응답하고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 상징과 예언과 계시를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서도 오래 참으셨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포기할 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다시금 오래 참으시면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돌이키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일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역시 보고도 볼 수 없고, 듣고도 깨닫지 못하게 하는 죄악 때문입니다. 이러한 반역은 거듭될 수록 더욱 우리의 마음까지 강퍅하게 되고 눈과 귀가 멀게 됩니다. 날마다 주님과 교제하고 소통하고 귀기울이지 않는다면 어느새 우리의 마음도 강퍅하게 되어서 정말 들어야 할 주의 음성과 역사를 보고 듣고도 깨닫지 못하게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계시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길 원합니다. 



# 8-12절 여호와께서는 묵시와 징조를 설명하여 반역하는 족속이 돌이키길 원하십니다. 

표적 행위를 행한 다음날 만일 반역하는 이스라엘 족속이 이 일에 대해 묻게 되면 이것은 예루살렘 왕과 그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족속에 대한 묵시와 징조로서 그들이 포로로 사로잡혀가고, 무리들도 성벽을 뚫고 행장을 메고 나가게 되며, 왕은 어두울 때에 행장으로 메고 나가되 눈으로 땅을 보지 않고 자기 얼굴을 가리게 되리라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라고 합니다. 

*

눈과 귀가 멀어버린 이들이 혹여나 생각하고 다음 날 에스겔이 한 퍼포먼스에 대한 의미를 묻게 되면 그것을 설명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반역하는 족속이라 알고 계시지만 일말의 여지와 기대를 갖고서 그들이 에스겔의 퍼포먼스에 대해서 한번 생각하고 자신들의 문제를 깨닫길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다음 아침에 이들이 무슨 행위인지 그 의미를 물으면 답할 것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오래 참으시고, 다시 속을 줄 아시면서도 또 기회를 주시고 기다리십니다. 적어도 우리의 불순종에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생명록에서 지우시진 않습니다. 이를 악용해서도 안됩니다. 다만 진실로 그런 주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오래참으시는 사랑에 대해서 깨닫는자들은 고의로 이를 악용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겸손이 그런 하나님을 향하여 온전한 마음으로 섬기길 다하게 됩니다. 

이 행위는 예루살렘 왕과 그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족속들에 대한 묵시와 징조입니다. 곧 여호와께서 보여주신대로 이스라엘은 포로로 사로잡혀가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무리들은 성벽을 뚫고 행장을 그리로 가지고 나갑니다. 무너져 버린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은 뚫고 나갈 벽이 없게 됩니다. 그러니 포로로 끌려가는 이들은 더이상 그들을 보호해줄 성벽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또한 징조입니다. 그래서 무리들은 포로로 끌려가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왕은 어두울 때에 어깨에 행장을 메고 나가며 눈으로 땅을 보지 아니하려고 자기 얼굴을 가리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시드기야 왕은 실제로 밤중에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칩니다(왕하 25:3). 얼굴을 가리고 땅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우선 수치와 비탄의 상징으로서 예루살렘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눈이 멀게 되리라는 것도 됩니다. 결국 시드기야 왕은 자식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본 후에 두 눈을 빼앗기고 바벨론으로 끌려갑니다(왕하 25:7).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이스라엘 온 족속과 왕에 대한 묵시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유배와 탈출하다가 사로잡혀 두 눈을 잃고 끌려가게 될 시드기야의 운명에 관한 표적행위입니다. 

*

보여주어도 보지 않고, 들려 주어도 듣지 않으니 특별한 표적 행위를 통해서 묵시와 징조를 보여 주더라도 보지 않고 듣지 않는 것은 결국 강퍅함으로 이어집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에게 묵시과 징조와 계시를 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사람들과 공동체와 역사와 세상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영적 민감함을 가지고 이러한 하나님의 신호를 민감하게 깨닫고 반응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오래참으심과 긍휼하심으로 주시는 이러한 징조와 계시를 반복해서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대로 강퍅해 지고 하나님은 그 인내의 한계에 결국 우리가 행한대로 보응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경고하고 예언하였지만 아직 실행되지 않은 상황으로 적어도 우리에게도 그런 기회들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이러한 신호를 통해 바르게 진단하고 그에 따른 합당한 처신들로 돌이키고 온전함을 위해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징조와 계시와 묵시를 주의 음성으로 바로 듣고 바로 분별하며 바로 순종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 13-16절 여호와께서는 남겨진 이들을 통해 가증한 일을 자백하고 증언하길 원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물을 치고 올무에 걸리게 해서 왕을 끌고 갈대아 땅 바벨론에 이르게 해서 그곳에서 죽고 예루살렘 땅을 다시 보지 못하게 되리라 말씀하십니다. 왕을 호위하는 자와 부대들도 다 흩으시고 이스라엘은 이방인 가운데로 흩어 여러 나라 가운데에 헤치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런 중에 몇 사람을 남겨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서 벗어나게 해서 그들이 간 이방 땅에서 자신들의 모든 가증한 일을 회개하며 여호와를 알게 하리라 말씀하십니다. 

*

사람을 속이고,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눈과 손을 피하고 넘을 수 없습니다. 바벨론의 눈을 피하고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다고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개척하고 자신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장담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그렇게 살았던 시드기야는 결국 탈출에 실패하고 사로잡혀가면서 자식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본 후에 두 눈ㅇ르 빼앗기고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를 호위하는 부대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칼에 죽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인 가운데로 흩어지게 되어서 여러 나라로 뿔뿔이 헤어지게 됩니다.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과 경고를 생각하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사로잡혀가고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죽게 되고, 누구도 바벨론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택하신 자들을 구원받을 자들을 또는 하나님의 계획가운데 필요한 이들을 얼마든지 선택하고 살리시며 다시 회복시키실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상황 속에서도 몇 사람을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서 벗어나게 해서 이방인 가운데서 살게 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자신들이 행한 모든 가증한 일들 곧 우상숭배한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후회하든 돌이키든 우선 자신들이 한 일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자백하고 고백하는 일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

*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분은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가진 권력과 능력 그리고 칼과 병거와 부대는 결코 우리를 지켜줄 수도 없고, 우리를 악한 길 곧 반역하는 길에서 돌이켜 거룩한 백성으로 살게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다 잃고 난 후에야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는 법입니다. 허다한 인생이 이렇게 너무 늦게 깨닫습니다. 아니 그렇게 깨닫지 못하고 마무리 하는 이들도 참 많습니다. 우리는 어떤까요? 지금 나와 우리 교회와 가정 그리고 민족 교회의 영적 상태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 진단이 되고 있을까요? 모든 것을 다 잃고 나서야 반역의 길, 배반의 길, 어리석은 길, 악인의 길, 멸망의 길로로 행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깨닫는 경우들도 허다합니다. 부디 우리의 영적 진단을 민감하게 진단하고 속히 사는 길로 행하길 원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끝까지 반역하고 돌이킬 기회에도 끝내 돌이키지 않는 이들을 향하여 심판하시지만 그 중에서도 몇 사람을 남겨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행위가 기준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선택하여 남기십니다. 이는 우리 삶의 모든 부분들을 꿰뚫고 계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의해 남겨질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그렇게 남기시는 이유는 이방인 가운데에 이르러서 자신들의 가증한 일을 자백하게 하고 여호와가 하나님인줄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

그들이 몰라서 반역하고 불순종하지 못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죄와 더불어 다른 신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패역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예언자가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면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막아야 하는 것 아니냐? 급기야 왜 하나님이 심판하느냐고까지 감히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패역한 족속,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이들을 결국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그 행위대로 심판받게 됩니다. 

아직 우리에게 생명이 있고, 여전히 이 땅에 생명을 갖고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악을 고백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그 사랑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은 남겨 진 자 곧 주님의 택하심과 구원하심의 은혜를 받은 이들이라면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주어진 사명이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합당한 반응입니다. 



# 거둠의 기도

반역하는 이들을 향한 긍휼과 오래참으심으로

다시금 징조와 묵시로 기회와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 아버지

바로 보고, 바로 듣지 못했던 강퍅함과

죄와 잘못된 신념으로 눈과 귀가 어두워진 길에서 떠나

주님의 뜻을 바로 알고 믿고 행하길 원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바로 보고 깨닫지 못하게 하는

잘못된 전통과 오래된 죄악과 왜곡된 신념들을

고치고 버리고 변화될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에 대하여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순종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뜻을 부지런히 묻고 

묵시와 징조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영적인 민감함도 갖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것을 잃고 난 후에라야 

수치과 후회를 깨닫지 않게 하옵소서. 

여호와의 그물과 올무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보이는 사람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면전에서

결코 피하거나 속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항상 주님의 면전에 있음을 기억하며 살게 하옵소서. 

패역한 세대 가운데서 살아가면서

우리가 행한 모든 가증한 일들을 자백하고

오직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줄 알고

돌이키고 온전케 되길 즐거워하며

거룩하신 주님의 증인으로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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