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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6:01-17 욥의 탄식(歎息)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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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욥에게 한 말은 진정성을 떠나 욥에게는 어떤 위로나 마음에 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욥을 조롱하고 경멸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래서 근심도 아픔도 줄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자신에게 온 이 모든 것이 결국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도망가지 않고 하나님께로 나아가기로 마음 먹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물으며 매달려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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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절 고통당하는 자에게 위로와 해답의 말보다 먼저 공감과 진심을 담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간 친구들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한 이야기들이 결국 욥에겐 조언과 훈계를 넘어 정죄와 비난 급기야 조롱과 상처로 다가왔습니다. 그렇잖아도 모든 것을 일고 자신의 몸까지 상한 욥에게 친구들의 이러한 언행은 욥을 더욱 괴롭게 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말하고 또 잠잠히 기다려 보아도 풀리거나 아픔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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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인 욥도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친구들도 그 괴로움 앞에서 어떻게든 답을 찾으려 하는 노력들이 본의 아니게 상대에게 오해와 상처로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강도가 점점더 심해지는 형국입니다. 그래서 욥의 반응도 더 거칠어집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아무리 말해도 풀리지 않고, 잠잠하여도 아픔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벽에 부닥친 느낌을 토로합니다. 그래서 이제 뚫린 하늘을 향해 하소연 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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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을 향한 안타까움도, 그리고 그를 위로하자고 한 얘기가 오히려 욥에게 상처가 되고 조롱이 되어서 안절부절하는 친구들에 대한 애잔함도 겹칩니다. 우리가 당사자인 경우에도 그런 상황에 접하면 욥과 친구들만큼이라도 할까 싶은 맘이 들다가도, 고통을 당한 상황들을 생각하면 이렇게 밖에 못할까 하는 맘이 들기도 합니다. 아픔과 고통을 당하는 자들을 위로하고 공감하는 일에 지혜를 구합니다. 다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어도,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고, 말없이 바라보며 그들이 외롭지 않도록 곁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지 않도록 그래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누군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길 빕니다. 그런 넉넉한 맘과 진정한 사랑과, 나눌 수 있는 여유와 공감할 수 있는 능력과 품을 수 있는 따뜻한 맘이 내게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위로받고 사랑받고 치유받아야 누군가에게 나눌 수 있기에, 하늘의 위로와 사랑과 어루만지심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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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7절 이해할 수 없는 고난속에서 우리 마음을 쏟을 곳은 결국 하늘입니다. 

욥은 이제 사람들의 설명과 위로에 한계를 절감하고서 이 모든 일의 원인과 결과가 결국 주님의 손에 달려있다 확신하며 주께 호소합니다. 주님이 자신을 피로하게하고, 집알을 패망하게 하고, 시들게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노해서 자신ㅇ르 찢고 적대시해서 날카로운 눈초리로 보시고, 사람들의 모욕을 당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악인과 행악자의 손에 넘기고, 평안을 꺾어 부서뜨렸고, 과녁을 삼았고, 자신의 모든 괴로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모든 신체가 더렵혀지고, 죽음의 그늘이 있습니다. 그래서 욥은 포학이 없고 기도는 정결하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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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랬는지 1-2장의 이야기를 우리가 이미 보았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데, 그런 상황을 전혀 알 수 없고, 그런 시간들이 하루 이틀도 아닌 수일이 지났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납득하기 힘든 상황이 지속되고, 친구들도 사람들도 다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지속되고 있을 때 욥이 취한 하늘을 향한 하소연은 충분히 공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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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화복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고 하는 것을 생복에서는 인정하기 쉬운데 사화에서는 서운하고 억울한 맘이 더 듭니다. 왜 하필이면 나에게, 왜 곡 이렇게 해야만 하는지, 그리고 왜 이렇게 아프게 하는지 그리고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는지 감당하기 여려울 때 그런 혹독한 시련을 주신 하나님을 향해 묻고 또 물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의문도 원망도 탄원도 하소연도 결국 하늘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기에, 그곳만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의 근원이며, 주님 아니고서는 우리의 이러한 상황을 다 이해하거나 주관하실 분이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프면, 슬프며, 괴로우면 주님의 얼굴 보고 주님께 하소연하고 주님께 묻고 주님께 토로하는 것이 사는 길인줄 믿습니다. 부디 그런 시련이 없길 바랄 뿐이며, 지금 고통 당하는 친지들에게 주의 위로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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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참된 위로자 되시는 주님

지금도 여전히 내 삶의 모든 것이

주님의 허락하에 있음을 믿습니다. 

아픔과 고통당하는 자에게

참된 위로를 주는 언행에

진심을 담아내는 선한 이웃이고 싶습니다. 

이웃의 마음을 선하게 바라볼 줄 아는

마음의 넉넉함을 갖게 하옵소서. 

괴로워도 슬퍼도 

사람은 의지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오직 주께 의지하는 믿음으로

강건케 하옵소서. 

오직 주만 의지하오니

나와 이웃의 상처입은 마음들을

긍휼히 여기사 위로하여 주옵소서. 

영원한 소망되신 주님만을 바라며

하늘에서 주는 위로로

평강케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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