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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13:20-14:22 욥의 탄식(歎息)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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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의 말에 대한 욥의 괴로움은 그 자체로도 힘들지만 그들이 한 이야기들로 인해 욥의 생각이 점점 깊어집니다. 그리고 응답하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마저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앞에서 인생의 한계를 말하다가도, 혹시 주님이 부르시고 응답하시지 않으실까 하는 희망도 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시간은 흘러가는데도 주님은 모든 희망을 끊으시는 듯 응답하지 않고 욥은 그 앞에서 애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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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20-28 하나님의 오랜 침묵은 고통당하는 이에게 두려움으로도 다가옵니다.

욥은 주님을 향하여 주먹(손, 치유하는 손이 아닌 치시는 손)으로 자신을 치지 말고, 주의 진노(위엄)로 자신을 두렵게 하지 않길 요청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악이 도대체 얼마나 많아 이렇게 된 것인지 알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런데 왜 아무런 응답이 없는지 묻고, 지금 이렇게 꼼짝 못하게 된 상태에서 점검하는 것 같으니 자신은 피폐해져 가고 있다고 탄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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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은 고통중에 탄식하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도 생깁니다. 그간 자신의 상처를 치료했던 주님의 손이 주먹으로 다가옵니다. 그간 위엄앞에 경외하던 주님이 이제는 자신을 향하여 진노하므로 두려워집니다. 제발 이렇게 되지 않기만을 구하는데, 여전히 하나님은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도대체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왜 이렇게까지 자신을 점검하고 썩은 물건의 낡아짐 같이 좀먹은 의복같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만드시는 것인지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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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고통과 공동체의 고통과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앞에서 우리는 우리가 아는대로 해석해 보고 생각해 보고 답을 찾아도 보고 묻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아무런 응답이 없을 때 하나님의 침묵 앞에서 두려움이 생깁니다. 믿음은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인내로 경주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의 오랜 침묵은 분명 우리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렇듯 신실하신 주님을 향한 호소입니다. 나의 죄악 때문이든 그렇지 않든 지금은 아무런 응답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주님은 아시리라는 믿음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주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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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1-6 한계가 있는 인생을 왜 하나님은 눈여겨 보시고 재판하실까요?

욥은 인생이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피력합니다. 그런 인생을 왜 주님은 눈여겨 보면서 재판을 하는지 하소연 해봅니다. 누구도 정결한 삶을 제대로 살기 힘들고, 삶의 날의 기한도 주님이 정하시는데, 품꾼들이 일을 마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처럼 자비를 베풀 수 없는지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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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 인생같은데 그런 인간을 왜 하나님이 재판을 하고, 또 인생을 향해 지나친 기대를 갖고 계신게 아닌가 하는 말을 합니다. 또 하나님의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무죄인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도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잠시라도 인생과 자신을 그냥 홀로 있게 두시면 좋겠다는 얘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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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욥의 죄를 찾으려고 묵상해 오다가 이번에 그렇지 않은 관점을 가지고 묵상해 오면서는, 오죽하면 이렇게까지 할까 하는 맘으로 욥을 바라보니 우리의 일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당하고, 이해할 수 없는 고난들이 있을 때, 그리고 그런 시간들이 너무도 오래 지속될 때 별의 별 마음이 다 들어서 욥의 마음이 많이 공감되었습니다. 그가 죄인이라느니, 그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무례히 행한다느니, 교만하다느니 하는 말로 쉽게 폄하하거나 정죄하기엔 지금 그의 고통과 의문은 정말 너무너무 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데 주께서 저를 생각하지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하던 그 시인의 마음이나, 욥이 지금 여기서 연약한 인생을 향하여 지나친 관심과 기대를 갖는 하나님을 향하여 질문하는 것 모두 공감이 됩니다. 부디 그런 일이 없길 바랄 뿐이지만, 지금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이들에겐 이 시간들을 견뎌낼 수 있는 하나님의 긍휼만을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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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7절 희망 없는 인생이 쉴 날은 요원하니 차라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덮어 주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나무는 찍혀도 다시 움이 나고, 뿌리가 늙어도 물 가운데 움이 돋는데, 인생은 죽으면 스러지고 마는 것 같은데, 그래서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고, 죽으면 그걸로 끝이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 존재라고 욥은 생각합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께서 차라리 자기를 스올 곧 무덤에 숨겨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혹시 때가 되면 자기를 기억하셔서 산자의 땅에 되돌려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 고난의 때가 속히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무정한 자 같은데, 결국은 자신의 잘못을 덮어주시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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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부활 신앙이 있다 한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의 시간들이 너무도 길어지면 차라리 죽는게 더 낫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욥은 아직 부활신앙에는 이르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러한 상황들을 피하게도 멈추게도 조절하실 수 있다고는 여전히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에 자신의 문제를 덮거나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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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대단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더 일반적이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간절히 추구하는 신앙입니다. 그리고 실제 우리 삶에서 이러한 일들이 있었을 때 우리도 그런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며 마침내 애통이나 곡하거나 아픈 것이 있지 않게 하실 그 날을 소망가운데 바라보며, 오늘 이 땅에서의 고난과 눈물을 통과할 수 있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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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22절 모든 희망이 끊어진 것 같은 상황에서 여전히 하늘을 향해 애곡합니다. 

무너지는 산이 흩어지고, 바위가 옮겨지게 하고, 돌을 닳게하며 땅의 티끌을 씻어버리는 물같이 주께서는 사람의 희망을 끊으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사람을 영원히 이기셔서 떠나게하시고, 그의 얼굴 빛을 변하게 하시고 쫓아보내시오니 자녀들이 그를 알지 못하고, 그런 일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지금 너무도 괴롭다고 그래서 애곡만 할 뿐이라고 탄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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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희망을 끊어버리시면 인생은 아무 의미 없습니다. 욥에 있었던 명성의 근거가 되는 모든 선한 것과 경건한 삶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상태입니다. 또한 희망이 끊어지니 후손들의 존귀와 비천에도 신경 쓸 겨를도 없습니다. 지금 너무 아프고 영혼은 애곡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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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을 묵상해 가면서 교만해 질 수 없습니다. 욥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 과연 그러한가라고도 생각해 봅니다. 나만 겪는 고난이라고 생각했고, 내 것이 제일 아프다고 생각했으며, 나의 고통이면 모든 것이 해명된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주변을 둘러볼 겨를도 없이 고통스러웠던 적보다 내 욕심으로 인해 주변에 관심도 없던 이기적 삶에 대해서도 생각이 났습니다. 여하간 주님이 생사화복의 주권자라는 고백이 이러한 결과와 상황에 처해서도 여전히 고백하며 신실하신 주님을 기대할 수 있다면, 그런 믿음이 일말이라도 있다면 우선 그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에 이 믿음 간구할 뿐입니다. 주여 지금 고통 당하는 내 이웃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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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불합리하고 불의하고 불공평한 세상에서

악인은 득세하고 의인은 고통스러운데

하나님의 역사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같은 

그런 상황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먹습니다. 

인생의 한계와 희망이

너무도 짧고, 너무도 미약한 듯 합니다. 

그러나 오늘 여전히 여기서

부르짖고, 기다리고, 침묵하며

애곡하고 꿈꾸고 다시 고백하며

잠잠히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우리 생각대로 응답하지 않으시더라도

지나고 난 뒤에 주님의 등을 바라보며

그곳에 우리와 함께 하셨던 주님을

뒤늦게라도 발견하고 고백할 

그런 날이 속히 오길 간절히 구하나이다. 

우리 믿음의 한계에 다다르지 않도록

주여 지금 응답해 주옵소서. 

애곡하며 주의 날을 기다리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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