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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02:01-13 설상가상 신앙고수(固守, 高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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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루에 1장에서 나온 상황과 동일한 장면이 나옵니다. 욥의 온전함과 정직함과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남에 대한 여호와의 신뢰에 대해 사탄은 소유물이 아니라 욥의  뼈와 살을 직접 친다면 여호와를 욕하게 될 것이라 합니다. 이에 욥은 극심한 종기에 시달립니다. 이를 본 그의 아내는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합니다. 그래도 욥은 범죄하지 않습니다. 친구 세 사람이 방문하여 망연자실하며 칠일 동안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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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절 우리는 모두 여호와 앞에 있음을 믿습니다. 

또 하루, 사탄은 다시금 집요하게 욥이 소유가 아니라 그의 뼈와 살을 직접 친다면 분명 주를 욕할 것이라고 그렇게 범죄할 것이라고 그리고 그는 대번에 신앙을 잃을 것이라 호언장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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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이 모든 것을 잃고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자 사탄은 다시금 집요하게 여호와를 향해 욥의 신앙을 비틉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욥이 까닭없이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습니다. 앞서는 소유물이었기에 욥 자신에게 직접적 고통이 없어서 충분히 그럴 것이라고 잔인한 말을 서슴지 않습니다. 작은 물건 하나 잃는 것도 속상한데, 생떼같은 자녀들을 하루아침에 통채로 다 잃어버린 일은 고통을 넘어 그 충격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락으로 떨어지고 천재지변을 만나는 지각변동 이상으로 다가오는 일입니다. 자녀의 고통 앞에서 차라리 내가 아픈게 더 낳다고 여기는, 할 수만 있다면 생명도 자신이 대신하고 싶어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을 몰랐던 듯 합니다. 욥의 신앙은 자신의 모든 소유 곧 재물이나 자녀의 주권이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있고, 자신에게 양도된 것을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청지기의 마음으로 거룩하게 관리 보존 양육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사탄은 다시금 욥의 뼈와 살을 치게 된다면 ‘틀림없이’ 주를 욕하게 될 것이라고 도발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여전히 까닭없이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을 것이며, 그 까닭이 없어지는 순간 욥은 틀림없이 여호와를 욕하게 될 것이라 자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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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이 회개할 리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입니다. 욥의 신앙은 고수( 高手)여서 고수(固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의 신앙이 고수(高手)였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인정하실 정도로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 경외하기와 일상의 거룩을 지켜가는 일들을 오랜 시간동안 무의미해 보이고 무모할 정도로 그런 일상을 하던대로 고수(固守)해 오던 습관이 지금의 그런 신앙을 갖게 했던 것입니다. 그만큼의 시간동안 충만하게 채워진 욥의 신앙을 그 주변의 모든 것들을 다 흔들어 댄다 하더라도, 비가 나고 창수가 나고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하더라고 그의 신앙이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욥의 신앙이 평범하거나 보편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우리의 신앙에 대한 노력과 방관 내지 방황을 합리화 하는 근거로 삼아서도 안되고, 그래서 이러한 신앙을 추구하는 일을 멈추거나 지금 있는 정도로 안주하는 것은 더더욱 위험한 일입니다. 분명 지금은 아니어도 이러한 온전함과 정직함과 하나님 경외를 향한 신앙의 여정을 멈추거나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주어진 상황에서 주를 바라보며 나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일상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모든 것이 여호와 앞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계획과 하나님의 뜻을 다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계획은 우리가 불행하고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평안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렘 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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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0절 까닭 모를 고난에도 범죄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생명을 해하지 말고 욥의 살과 뼈를 칠 수 있는 하나님의 허락을 받은 사탄은 욥을 칩니다. 욥은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서 질그릇 조각으로 긁어댈 정도로 심해집니다. 오죽하면 그의 아내가 그래도 온전함을 굳게 지키는 욥을 향하여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합니다. 욥은 이를 어리석은 말이라 하고, 우리가 하나님께 복도 화도 받는 것이라 말하며 여전히 입술로 범죄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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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은 자신이 겪는 고통이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생사화복이 모두다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다는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 신앙은 까닭없는 고난이 와도 변하지 않는 신앙이었습니다. 하지만 사탄도 욥의 아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욥의 아내가 안타까운 맘으로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하는 말에 대해서 ‘어리석다’라고 말합니다. 틀렸다는 뜻도 있고, 하나님을 아는 지혜가 없다는 의미도 됩니다. 적어도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과 아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부족했다고 본 것입니다.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그간 신실하게 살아온 욥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까닭없이 엄청난 상실에 자신의 몸까지 생명의 위협을 받는 고통 속에 있는 욥을 바라보면서, 당연히 그런 상황을 방치하고 무능한 것같은 여호와를 향하여 욕하고 차라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죽으라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반응으로 보입니다.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누구도 까닭없이 당하는 고통이 너무도 크다면 충분히 하나님의 부재에 대해 생각하고, 더군다나 그런 부재가 오래이고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면 더더욱 이러한 언행심사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욥은 온전함을 지키고, 까닭없는 고난의 연속에도 불구하고 범죄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인정한 그 신앙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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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의 고난앞에 우리는 금새 그 원인을 찾으려 하고, 그것에 대한 잘잘못을 따지려하고, 그래서 찾은 것이 정답이라 생각하면서 쉬이 누군가를 정죄하고 확신하면서 마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한 신념은 사탄이 여호와를 향하여 집요하게 욥의 신앙을 의심하고 들이대듯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집요하게 고수해가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이 곧 투자라고 심는대로 거둔다고 모든 일이 권선징악할 거라고 극단적으로 화신하며 호언장담하는 것들은 신앙이 아닌 신념이고 어찌보면 지금 집요한 태도를 보이는 사탄의 신학이 아닐까도 생각됩니다. 

소유를 잃을 때에도 자신의 고통이 죽을만큼 클 지라도, 그래서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에 있을 지라도 욥은 결국 온전함과 정직함과 하나님 경외하는 것에 변함없이 악에서 떠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욥의 신앙은 이유가 없습니다. 까닭없이도 여전히 여호와를 경외하며 범죄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탄과 아내는 입술로 범죄하나, 욥은 그의 입술로 범죄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힌다고 합니다. 이 말은 책을 읽어 수양하지 않으면 그의 말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해를 입히는 말을 하게 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우리의 신앙적 언어들은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해하며 정죄하고 비난하고 배제하고 혐오하기까지 하는 불의한 신앙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

# 11-13절 가장 큰 위로는 공감(바라봄), 침묵, 함께함입니다. 

욥의 세 친구들이 욥이 당한 모든 재앙의 소식을 듣고 먼 곳에서 약속하며 욥을 위문, 위로하기 위해 왔습니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고통당하고 있는 욥을 보며 소리 질러 울며,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해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밤낮 칠일 동안 함께 앉아있으면서 한마디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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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의 고통에 대한 소식이 금새 친구들에게까지 닿았습니다. 원근각처에 있던 각각의 친구들이 욥을 위문하고 위로하기 위해 서로 약속하고 함께 방문합니다. 친구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기에, 방문하여 위로하기 위한 그들의 나섬과 동행과 위문이 귀합니다. 기본적인 친구의 본분이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단순한 친구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고통당한 욥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친구들은 그의 몰골 앞에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욥의 곁을 지킵니다. 욥은 고통에 말못하고 친구들은 충격으로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만으로도 욥은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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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고통의 원인을 설명하거나, 이해시키려는 태도를 취해서는 안됩니다. 고통을 당하는 사람의 잘잘못을 지적하는 것도 교만입니다. 그 고통이 무언가를 ‘깨닫게’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설명 역시 교만입니다. 지금 친구들은 아직까지 그런 교만이나 잘못된 태도 없이 욥에게 진정 위로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비록 욥에게 아무런 물리적 변화가 없더라도 마음만은 절망과 낙담과 고통속에서 함께하는 이들만으로도 위로가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친구들이 이후로 왜 태도가 돌변했는지…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나 욥을 정죄하게 되었는지… 이제 우리는 그런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규범적 지혜와 희의적(반성적) 지혜를 배워가게 될 것입니다. 

*

# 거둠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지금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하나님 안에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와 경영 앞에 있음을 믿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어디서든지

무슨 일을 만나더라도 일평생

온전과 정직과 경외하기를 힘쓰며

이해할 수 없는 현실

까닭모를 고난이 닥쳐오는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주만 바랄 수 있는 믿음 주옵소서. 

나의 알량한 신앙의 기준으로

쉬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욕하거나

계시지 않는 것같은 어리석은 언행을 삼가하고,

주님이 주시고 취하시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신 줄 믿고

모든 일에 범죄치 않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는 연약합니다. 

주님이 힘주지 않으시면 단 한 순간도

온전히 행할 수 없음을 고백하며

온전히 주님만을 의뢰합니다. 

이웃의 고통과 아픔앞에서

쉬이 정죄하고 단정하고 설명하면서

내 일이 아니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게하시며

때로 침묵과 동행과 함께함만으로도

큰 위로와 위문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참된 지혜로 살게 하옵소서. 

이웃의 아픔을 공감하면서

묵묵히 동행하며 위로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의 소유자 되게 하옵소서. 

그렇게 우리 신앙이 

잘 固守되어 高手로 성숙하게 하옵소서. 

*

신앙고수(信仰固守) 固守 高手 香菜

설상가설(雪上加雪), 

상상가상(霜上加霜), 

병상첨병(病上添病: 앓는 중에 또 다른 병이 겹쳐 생김), 

화불단행(禍不單行: 재앙은 한 번만 일어나지 않는다), 

전호후랑(前虎後狼: 앞에는 호랑이 뒤에는 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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