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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계시록 14:01-13 긴장 - 의인의 구원과 악인의 심판 1


영적 전쟁이 진행된 후에 마침내 하나님의 인을 받은 이들과 짐승의 표를 받은 이들의 최후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인을 받은 이들은 하나님과 함께 거룩한 삶을 통해 새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그러나 땅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며 불과 유황의 고난으로 쉼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인내하며 계명과 믿음을 죽기까지 지키며 복있는 자로 참된 안식에 거하게 됩니다. 


# 1-5절 하나님은 교회를 끝까지 지키고 보호하시며 거룩한 삶을 사는 온전한 예배자 되게 하십니다. 

사도 요한은 어린양이 시온산에 있고 십사만 사천의 사람들 곧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 곧 성령의 인침을 받은 이들이 그 앞에 있는 것을 봅니다. 또 많은 물 소리와,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거문고 타는 것같은 소리를 듣습니다. 이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는데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의 사람들만 배울 수 있는 노래입니다. 

*

시온산은 하나님의 나라 곧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곳이라 할 수 있는데 이미 시작되었고 완성된 나라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지금 계속되는 요한계시록의 약속의 말씀이나 현상들은 이미 역사 가운데 계속 실현되고 체험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이 땅에는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고 있고 순종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며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이들은 땅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구원과 심판이 이미 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완성될 날을 바라보며 살아간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둘 중에 어느 한 부분만을 강조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앞서 땅에 속한 자 곧 666표를 받은 자들과 대조적으로 성령의 인침을 받은 이들 곧 십사만사천의 사람들은 지금 어린양과 아버지의 이름이 이마에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호하고 주권을 인정하며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이 선창하는 새노래, 그리고 십사만사천의 사람들만 부를 수 있는 새노래는 무엇일까요? 문자적으로는 찬양이라 할 수 있지만 이는 제의적 용어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찬양하며 새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몸과 삶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4-5절에서 구체적으로 그러나 함축적으로 새 노래의 삶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선 새 노래는 새 백성 곧 구원받은 새 사람, 새 백성, 새 피조물, 새 인류만 부를 수 있고 불러야 할 노래가 새노래입니다(필자는 청년의 때에 이 새 노래가 신곡(新曲)인줄만 알고 매번 찬양 인도하면서 새로운 노래만 불렀다가 어른들이 불편해 하던 경험이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무지함이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습니다)

새 백성이 부를 새 노래는 첫째로 여자(음녀)와 더불어 더럽히지 않고 순결한 자입니다. 이는 독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신부로서의 삶이 아니라 땅에 속한 이들의 삶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로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 곧 자기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제자의 길을 가는 것을 말합니다. 셋째로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됨은 하나님의 약속과 선택으로 난 자입니다(롬 9:6-13).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자들, 대속함과 속죄함과 구속함을 받은 곧 구원받은 이들을 말합니다. 모두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소유요 백성입니다. 넷째로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입니다. 정직과 진실로 그리고 세상의 거짓되고 부정한 것들에 동요되거나 미혹되어 살지 않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언행심사가 구별된 거룩한 삶을 온 몸으로 살아내는 이들입니다. 이러한 삶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인치시며 거룩한 백성으로 새롭게 창조해 주셨기 때문이며, 그렇게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택해 주신 은혜로 말미암습니다. 

*

지금 우리는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입니다. 속한 자이며 그분의 통치와 인도하심과 계명과 믿음을 지키며 사는 자들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면전에 있음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실 만한 예배와 찬양을 온 몸으로 살아내는 거룩한 산제물되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즐거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주야로 주의 말씀을 즐거이 묵상하는 이들입니다. 삶의 자리에서 주의 말씀을 따라 사랑하며 증인으로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그렇게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곧 십사만 사천에 해당되는 교회요 하나님의 백성이요 의인이요 거룩한 백성인 것입니다. 우리 삶에 이러한 새 노래와 열매가 풍성하고 또 온전한가요?



# 6-11절 하나님은 복음을 거절한 땅에 속한 자들에게 진노의 잔을 먹게하는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이번에는 천사가 날아가면서 땅에 거주하는 자들(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고 큰 음성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으니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고 창조주를 경배하라 합니다. 둘째 천사는 큰 성 바벨론의 멸망을 선포합니다. 이 천사는 음행한 나라에게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입니다. 세번째 천사는 누구든지 짐승의 표를 받으면 그로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되어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고 세세토록 쉼을 얻지 못하리라 선언합니다. 

*

영원한 복음을 든 천사들이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영광을 돌리고 경배하라고 전합니다. 왜냐하면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심판하시는 분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 영원한 복음은 당대 로마 제국에서 말하는 황제의 아들이 신이라거나, 로마의 평화라거나 새로운 세상이 되었다고 선언하는 복음에 대해 그러한 것들은 거짓이며 참 복음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복음이며, 어린 양 예수님께서 참된 평화의 왕으로 오신 분이시며, 예수님께서 새로운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고 시작되게 하셨다는 복음입니다. 이를 영원한 복음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 천사들은 영적 존재로 실재한다 하겠으나 결국 땅끝까지 모든 열방에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먼저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천국 복음 곧 하나님나라의 복음(영원한 복음)을 전하시면서 회개를 촉구하고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라고 하셨던 것처럼 이 천사들의 메시지도 모든 만물의 주 되시며 시만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에게 마땅한 영광을 돌리도록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워하고 영광을 돌리고 경배하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천사는 큰 성 바벨론 곧 당대로서는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고 교회를 핍박하는 로마 제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핍박하는 모든 나라의 세력들을 상징한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천사는 바로 그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두번이나 완료형으로 선언하며 당연한 사실로 마땅히 이루어질 것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분명하게 그렇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무너진 이유는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였기 때문입니다. 자신들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까지도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순종하며 사신 우상을 숭배하고 자고하며 살도록 강요하고 부추겼기 때문에 이들은 마침내 심판을 당해 멸망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셋째 천사는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래서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고,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 고통을 당하고,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선언합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 아닌 것드를 경배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쌓았던 이들에게 남은 것은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입니다. 불과 유황으로 고통을 당하고, 밤낮 쉼을 얻지 못하게 되는 심판입니다. 

*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이들을 향하여 경고하며 회개를 촉구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영광 돌리며 경배하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증인된 교회가 땅에 속한 이들을 향하여 행해야 할 사명입니다. 세상과 제국의 포도주에 취한 이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 임할 것을 경고하면서 영원한 불과 유황으로 쉼없는 고통을 당하는 데에서 떠나 참된 안식과 기쁨이 있는 영원한 그의 나라로 인도하는 영원한 복음을 부지런히 증거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삶의 여정은 증인으로, 말씀으로, 긍휼의 마음으로 가득차 있어야 합니다. 아직 포기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신 하나님의 그 사랑 때문입니다. 적으로 아직 우리의 숨이 붙어 있고, 우리가 눈을 들어 이웃들을 볼 수 있는 여력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아직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명 곧 증인의 사람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온 몸으로 새 노래를 부르며 온 몸으로 복음을 살고 온몸으로 살아낸 그 증거들로 땅끝까지 온 몸으로 복음을 전하는 성도요 거룩한 백성이요 교회이길 원합니다. 



# 12-13절 하나님은 인내하며 계명과 믿음을 지킨 이들에게 복과 쉼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성도들의 인내 곧 하나님의 계명과 믿음을 지키는 이들이 있습니다. 지금 이후로는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시며 성령께서 동의하시며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그들이 행한대로 보응하시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백성 곧 거룩한 성도로 이 땅을 살아가는데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다 하십니다. 이들은 순교자들, 순교적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인들,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이들,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된 이들 모두를 포함합니다. 실제로 육체적 죽임을 당하는 이들을 생각해 볼 수 있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이들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돌아가면 그리고 주님과 함께하면 우리는 수고를 그치고 쉼을 얻습니다. 순교자들을 위로하시는 말씀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이 땅에서 순교적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안식은 창조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곧 하나님과 함께함이 안식입니다. 성막을 통해서 우리가 거해야 할 거룩한 땅이 어디인지 보여주었고, 안식을 통해서는 우리 삶의 시간의 성소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고(계명과 믿음을 지키며) 외부적 핍박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은 오랜 인내를 요구합니다. 고스란히 순교를 당하는 이들도 있었고, 또 그만큼 순교적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 모두에게 하나님은 성령으로 인치심 곧 성령의 도우심과 능력을 통해서 능히 감당하여 참 쉼을 누리며 살아가도록 지금도 역사하시고 영원한 나라에서도 약속하고 계십니다. 



# 거둠의 기도

모든 만물의 근원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새 노래 부르는 새 백성으로 구원하셨으며

땅에 속한 이들을 향해 긍휼도 베푸시고

또한 불의한 이들을 마침내 심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지금 우리 삶이 새 노래를 제대로 부르고 있지못하여

온 몸으로, 삶으로 흠없는 거룩한 산 제물되지 못하였음을 고백합니다. 

택하신 자들을 지키고 보호하시며 새 노래를 부르도록

곧 거룩한 새 백성의 삶을 온전히 살 수 있도록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땅에 속한 이들을 향한 오래 참으심과 긍휼을 보았으며

그들이 돌아오길 바라시며 교회로 증인되어서

회개의 복음, 영원한 복음을 전하길 원하시는 그 사랑을 봅니다. 

우리도 오래참으신 주님의 사랑으로 지금 신자 되었으니

우리도 땅에 속한 이들을 향해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결코 쉬지 않고, 포기하지 않게 하옵소서. 

주의 말씀과 믿음을 지키며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며

주께서 허락하시는 참된 안식을 지금 이곳에서

매일 주님과 더불어 누리고 살게 하옵소서. 

우리의 언행심사가 주님이 받으실 만한 

거룩한 산제물 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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