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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1:01-13 막간 - 말씀의 증인되는 교회


두루마리를 교회에게 먹이신 주님은 이제 열방 가운데서 교회가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사도 요한을 통해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두 증인된 교회가 이 땅에서 살아갈 때에 권세와 권능을 주신 것을 엘리야와 모세의 본을 따라 보여 주십니다. 더불어 고난과 순교적 삶도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며 최종적으로 다시 살게 되리라는 것을 그리스도의 모범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 본문은 12-14장의 두루마리 계시의 축소판입니다. 본문의 구약 배경은 에스겔 3장(1-2절)이고, 4장과 다니엘 11장(3-13절)입니다. 더불어 모세와 엘리야, 그리고 예수님의 공생애 사건도 함께 배경으로 전제하고 해석해야 합니다. 


# 1-2절 하나님은 교회 곧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키고 보호하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증인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어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라 하시지만,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합니다. 이곳은 이방인 통해서 마흔 두 달 동안 짓밟히게 되리라 말씀하십니다. 

*

지팡이같은 갈대는 측량을 위한 도구로 보입니다. 측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께서 보호하고 계시고 또 보호 하시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측량하라 하는 세 가지는 모두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의 특징들을 상징하고 있고, 특별히 성소에 해당되는 부분이기에 내면적인 부분이나 영적인 부분을 측량하도록 한 것으로 보입니다. 몸된 성전 곧 교회와 분향단이 있는 제단과 경배하는 자들 곧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성소는 결국 교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와 성도가 성전이고 주님은 참 성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라하고 이곳은 이방인에게 주어 마흔 두 달 동안 짓밟게 되리라 말씀하십니다. 측량이 소유와 보호의 의미라면 그것을 하지 말라는 것은 핍박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기간을 마흔두 달 동안이라 하는 것은 한 때 두 때 반 때, 삼년 반, 천이백육십 일(3절)과 같은 기간입니다. 교회가 예언하고 증언해야 하는 시기이면서 동시에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하는 기간입니다. 

*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 주님의 몸된 교회,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는 전으로서의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이 친히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인도하십니다. 비로 이 땅에서 환난을 당하기도하고 심지어 외적으로 핍박을 당하기도하고 죽기도 하지만 그 기간은 정해져 있고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소유요 보호받는 교회로서 거룩한 성전으로서, 그리고 날마다 주님과 소통하고(기도), 또한 경배하는 자로 온전히 살아가기 원합니다. 



# 3-6절 하나님은 교회(두 증인)에게 예언의 권세와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 권세와 권능을 통해 증인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증인(두 감람나무, 두 촛대)에게 권세를 주십니다. 그래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회개의 복음을 전할(예언) 것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두 증인을 해하려고 한다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원수들을 삼킬 것입니다. 그래서 해하려고 하는대로 함께 죽임을 당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예언하는 날 동안은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권능을 가지고 물이 피로 변하게 하든지 아무 때 원하는 대로 여러가지 재앙으로 땅을 칠 것이라 말합니다. 

*

두 증인, 두 감람나무, 두 촛대는 모두 교회를 상징하는 표현들입니다. 증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교회(두 증인),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교회(두 감람나무), 세상의 빛으로 불을 밝히는 교회(두 촛대)등의 의미입니다. 앞서 약속하신대로 하나님은 두 증인 곧 교회를 보호하실 뿐 아니라 권세를 주십니다. 굵은 베 옷(회개)을 입고 천이백 육십 일을 예언 곧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는 주님이 허락하시는 기간동안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부지런히 회개(굵은 베옷)의 복음을 전하라 합니다. 

하나님은 이 땅 가운데서 증인의 삶을 살아가는 교회를 약속대로 보호하시되 그들을 해하려고 하면 입에서 불(회개의 메시지)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더 나아가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 경고합니다. 더 나아가 주님은 교회가 엘리야처럼 비가오지 못하게도 하는 권능을 가지고 예언하게도 하고, 모세처럼 물을 피로 변하게하고 아무 때나 원하는 대로 여러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ㄹ 수 있는 권능도 허락합니다. 엘리야와 모세 두 증인은 율법과 선지자의 대표이기도하고 결국 이들은 둘 다 제국의 통치에 맞선 이들이었습니다. 핍박 속에 살아가는 교회가 견딜 수 있는 능력의 원천히 하늘로부터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동시에 하나님의 교회들이 이 땅에서 거룩한 백성으로 예언과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을 보여주는 모델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삶의 궁극적인 모델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다음 단락에서는 그리스도를 교회의 모델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동시에 세상의 빛과 소금입니다. 성령이 함께하는 거룩한 교회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세상 가운데서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세상에 살아가는 교회에게 권능도 허락하십니다. 주님과 함께 왕노릇 하면서 심판의 메시지와 능력도 행할 수 있는 권세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다가오는 많은 위협에 굴복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히려 그런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상기하게하고 돌이켜 회개하는 길만이 사는 길이라는 것을 증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 나의 삶은 증인된 사명에 얼마나 충성되는지 더불어 거룩한 백성의 삶을 온전히 지향하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 7-13절 하나님은 교회가 그리스도를 따라 고난과 함께 영광도 받게 하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순교적 삶을 통해 증인으로 살아갑니다. 

증언을 끝낸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을 따릅니다. 곧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여 영광을 얻으시는 길입니다.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과 더불어 전쟁하며 교회를 이기고 죽입니다. 그 시신이 영적 소돔과 애굽의 길 곧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입니다. 그러나 백성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3일 반(한 때 두 때 반 때와 동일)동안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땅에 속한 자들은 이 두 증인이 자신들을 괴롭게 했다고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냅니다. 그러나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며 그들이 부활합니다. 이에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고 하늘에서 음성이 있어 올라오라 함을 듣고 교회는 구름(영광)을 타고 하늘로(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 올라가니 원수들도 구경합니다. 그 때에 큰 지진으로 많은 이들이 죽고 남은 자들은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립니다. 

*

묘사되는 일련의 사건들은 가깝게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건과도 연결되어 있고, 모세와 엘리야의 사역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거짓 종교지도자들과 왕들과 땅에 속한 자들에 의해 골고다에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사흘 반 동안 장사지내지 못하게 했다는 것은 죽은 자를 조롱하고 치욕을 주고 모멸감을 주는 행위입니다. 그렇게 교회도 세상의 조롱과 비난과 핍박과 모멸을 당할 수 있고 심지어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습니다. 열방 가운데 많은 이들이 그렇게 주님의 뒤를 따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 가신 길을 따라 비난과 채찍의 길을 따라 간 것입니다. 

두 선지자(엘리야와 모세) 곧 우리 주님과 교회가 땅에 사는 자들(불신자)을 괴롭게 한 고로(권능으로 회개의 복음을 전한 것들이 그들에게는 괴로움으로 인식된 것입니다) 오히려 주님과 교회의 죽음에 대해서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서로 예물까지 보내며 자축합니다. 마치 자신들이 승리한 것처럼 말입니다. 세상은 자신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따라 살지 않고 역류하는 그리스도인들, 빛이 되고 소금 된 그리스도인들이 불편하고 불쾌하고 싫은 것입니다. 그러니 환대와 환영이 아니라 오히려 비난하고 핍박하고 거절하는 것이며 의인들의 삶을 비웃고 악인의 형통에 취해 여전히 자신들의 삶에서 돌이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삼일 반 후에 곧 때가 되면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니 그들이 발로 일어서서 부활하게 되고 구경하던 땅에 속한 자들은 크게 두려워합니다. 급기야 모세와 엘리야도, 그리고 주님도 또한 주님의 뒤를 따라 순교적 삶을 살아간 교회도 구름을 타고 곧 영광가운데 하나님과 함께 하게 됩니다.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은 또 다른 세계로 간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늘은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에 모세도 엘리야도 예수님도 그리고 주님을 따라 순교적 삶을 살아간 교회도 그렇게 하나님의 품에 영광 가운데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 때에 큰 지진이 나고 성 십분의 일(구약에서 남은 자)이 무너지고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남은 자의 수와 엘리야 시대에 바알과 우상에게 무릎꿇지 않았던 수, 칠천명의 사람들이 죽습니다. 이들의 죽음은 순교적 죽음의 길을 가며 증인의 삶을 살아간 교회의 여정을 보여줍니다. 이와 같은 증인의 삶으로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주께 돌아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활의 영광은 예수님께서 첫열매이시고 우리는 그렇게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완성된 최종적인 부활을 바라보고 이미 주님과 함께 죽고 다시 산 부활을 경험하며 믿고 기념하며 오늘 그 부활의 영광된 능력의 삶을 임마누엘 주님과 함께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활은 기념만하고 기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에서 그 능력과 영광을 누리고 증거하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고난과 핍박의 상황에서도 세상을 이길 힘과 인내의 능력의 원천인 것입니다. 

*

주님은 제자들을 향해 누구든지 자신을 따라 오려거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먼저 그 십자가의 길을 가셨고 그리고 삼일 만에 부활하사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두 증인된 교회도 그렇게 주님을 따르는 길에는 권능으로 세상을 심판하는 일도 있으나 순교적인 상황도 있습니다. 그래서 악이 이기는 것같고 그렇게 교회가 조롱과 핍박에 스러질 때 세상은 오히려 자신들이 승리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일도 있습니다. 교회가 그런 세상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인내해 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이긴 자이신 주님은 순교자적으로 증인된 삶을 살아간 교회를 다시 부활하게 하셔서 교회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영광을 얻게 되어 주님과 함께 주님의 나라에 영원토록 함께 하게 될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교회의 순교적 삶에 많은 이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도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그 길이 좁은 길이지만 땅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가는 멸망의 길로 하지 않고 주님이 가신 길이기에 그리고 그 길 끝에는 우리 주님의 영광이 있기에 오늘도 우리는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 거둠의 기도

교회를 보호하시며 권능과 권세를 주셔서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시며 생기와 부활의 영광을 약속하신 하나님 아버지

환난과 핍박의 오랜 여정에서 때로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우리가 가야 할 좁은 길과 십자가의 길이 아니라

세상의 길을 부러워하고 주의 약속을 의심했던 죄를 고백합니다. 

우리가 가야 할 이 여정이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과

우리에게는 이미 세상을 이기신 주님이 우리 편이 되셔서

우리도 이긴자로 살아갈 수 있는 권능을 주셔서

주님이 친히 우리를 보호 하기도 하고 

우리도 또한 능력으로 이긴 자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때로 악이 득세하며 교회를 핍박하고

그래서 순교적 삶을 살아야 하는 경우에도 

세상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주님은 우리에게 다시 살게 하시는 능력으로

영광을 얻게 하신 주님의 길로 행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하시며

세상을 이기셨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우리도 오늘 여기 우리가 선 자리에서 

부활을 살아 내고 누리며 증인의 삶을 살되

순교적 신앙의 여정으로 행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조롱과 핍박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런 세상을 긍휼히 여기며 기도하셨던 주님처럼

우리도 주님의 마음을 품고 긍휼의 마음으로 증인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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