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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01:11-24 복음의 출처는 사람이 아니다 (1)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의 출처가 (유명한)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임을 밝히고 이에 대한 변론을 네 가지 역사적인 사건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 한 줄 묵상 :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아야 하며 유명세를 따른 사람으로 말미암지 않는다(오직 주로 말미암은 복음으로 주만 바라라). 


* 첫 번째 부차 주제에 대한 변론(1:11~2:14)

 1. 논제(1:11-12)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았다.

 2. 변론 : 네 가지 역사적인 사건을 통한 변론(1:13~2:14)

    1) 처음 복음을 알게 되었을 때(1:13~17)

    2) 예루살렘에 베드로를 만나러 갔을 때(1:18~24)

    3)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갔을 때(2:1~10)

    4) 게바가 안디옥에 있을 때(2:11~14)

   바울은 1:11~12절의 논제에 대해서 1:13~2:14까지 네 가지 자신에게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들을 통해서 변론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결코 사람을 따르려고 하지 않았고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복음을 듣고 배우고 전하는 삶을 살았음을 변론한 말씀입니다. 


# 11, 12절 우리가 믿고 따르는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이 사람으로 말미암아 받고 배운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받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1:1에서 이미 자신의 사도됨이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임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여기서 다시한번 자신의 복음의 출처가 그리스도임을 밝히고 시작합니다. 당대 거짓 교사들은 유명한 사람(가령 사도들이나 유명한 선생들)을 따라 원조 논쟁을 통해서 자신들이 전하는 복음의 정당성을 강조 하려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자신은 그들처럼 유명세를 타거나, 유명인에게 줄을 댄 것이 아니며, 또한 그들의 뜻을 따라 산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메섹 도상의 주님과의 만남으로 시작하여 바울 사도는 자신의 회심과 소명사건이 시작되었음을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알고 있던 복음에는 여러가지 상황과 와전과 편향으로 사람의 유전이 원인이 되어서 순수한 복음의 능력을 많은 부분에서 상실하고 있습니다. 다시 계시된 말씀 앞에 나아가서 내가 듣고 싶고 만나고 싶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 들려주고 계시해 주신 그 분(복음)을 듣고 알고 만나고 배워야 할 것입니다. 매일 주의 말씀 앞에 나아가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라도 우리의 욕망이 투여 된 우상을 만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분주하더라도 매일 말씀 앞에서 우리 주님을 만나고 교제하며 경청하는 것은 결국 나의 삶의 원천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신앙고백입니다. 계시된 말씀앞에 서는 일, 그 말씀을 선포하는 일, 그 말씀을 연구하는 일,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일들 모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다만 즐거이 감당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 13, 14절 나의 신앙은 전통적인가? 성경적인가?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기 이전에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고 멸하기에 앞장 선 자였다는 고백을 합니다.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지나치게 믿고 열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받기 전의 자신의 삶에 대해서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었고, 조상의 전통에 대한 열심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교회의 문제가 유대교와 연관이 있기 때문에 특별히 언급한 것입니다. 유대교에서 혈연 지연 학연과 같은 혈육, 사람(사도), 예루살렘교회를 중요시 하는 것에 자신은 휩쓸리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기 전에, 복음을 알기 전에 본인도 그러한 것들에 열심이 있어 교회를 핍박하던 자였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복음, 그리고 교리와 신앙과 관련되어 정리된 것들은 과연 교회의 전통 속에서 배운 것인지, 교회 밖에서 알고 있던 것의 연장인지, 아니면 성경을 통해서 바르게 배우고 서있는 것인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복음을 알기 전과 후에 가치관과 세계관 삶의 이유와 내용등이 분명하게 바뀌지 않았다면 다시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싸우고 있고 열심을 품고 행하는 모든 것들의 동기가 무엇인지도 점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전에 나의 삶이 허탄한 것들을 추구하는 욕망을 따라 살았다면 이제는 복음으로 말미암고, 복음을 믿고 전하며, 복음으로 살고, 복음으로 섬기는 삶이어야 할 것입니다. 


# 15~17절 사람을 따르지 않고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다시한번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이 택정과 부르심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그가 전한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곧 그리스도를 이방에 전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 일을 위해서 혈육과 의논하지 않고 사도들을 만나려 했던 것도 아니고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한 것도 아니며 오히려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메섹으로 돌아갔다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는 자신의 회심과 소명에 대한 간증입니다. 보통은 회심 이후에 소명을 받게 되는데 바울사도는 회심과 소명이 한꺼번에 일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이 부름을 받은 것이 다시한번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복음 곧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을 이방에 전하는 것이 사명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 일들을 하기 위해서 혈육이나 유명한 사도들을 찾아 정통성과 권위를 얻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자신이 사람을 따르려 하지 않고 주님께서 부르신 그 부르심을 따라 행동해 왔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라비아와 다메섹으로 간 것도 같은 의미를 전하고 있습니다. 아라비아 행은 그냥 침묵과 준비의 기간이라기 보다는 이 곳을 시내산으로 보고(톰 라이트) 엘리아처럼 하나님과 씨름한 기간,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으로 보기도 하고, 계속 복음을 전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어서 다메섹으로도 간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회심과 소명을 받은 이후 자신의 행보는 사람을 따르지 않고 주님의 부르심을 따랐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회심과 부르심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경험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 것, 주님의 몸된 교회가 된 것, 왕같은 제사장이 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확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회심 이후의 우리의 삶의 이유는 오로지 우리 주님의 뒤를 따르는 자여야 합니다. 세상의 스펙이나, 유명한 자들에게 줄을 대고 그런 곳에 소속되고 사사받았다는 것으로 우리의 복음에 대한 정통성과 권위를 확보 하려 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오직 복음을 통해서 우리의 가치관도 삶의 내용과 방향도 인도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나의 나 됨이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고, 바른 복음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부르신 뜻대로, 주신 사명대로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님을 만나는 자리, 주님을 전하는 자리,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그 길로 온전히 행하길 원합니다. 


# 18~20절 유명한 자와의 인맥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바울이 회심 후 3년 만에 게바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가서 15일을 머물렀지만 야고보 외에 다른 이들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다는 여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회심과 소명을 받은 바울이 이후에 사람을 따르지 않으려고 했던 행보를 예루살렘 여정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는 것으로 변론하고 있습니다. 당대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갔지만 오래 머물지 않고 15일만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의 형제였던 야고보를 만나긴 했지만 그 외에 다른 사도들을 만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유명한 이들과 친분도 있지만 애써 많이 만나려고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며 자신은 오히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살았다는 것을 동시에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만나는 목적이 자신의 이익을 위한 계산된 행동일 때 결국 그 사람을 우상처럼 섬기거나 물건처럼 이용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경배의 대상도 이용의 대상도 아니라 사랑하고 섬기고 동역할 대상입니다. 그런 사람에게서 우리가 가진 복음의 정통성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인맥이 우산과 울타리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내가 하는 일을 막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분은 사람인가? 하나님인가? 지금 내가 간절히 만나고 찾고 붙잡고 교제 하려고 하는 이는 누구입니까? 사람들과의 관계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전하고 증명하는 것으로 채우고, 그 사랑과 믿음을 얻고 채우기 위해서는 날마다 주님을 만나는 그 자리에 나아가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지금 사람을 의지하는지 하나님을 의지하는지 깊고 세밀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세상(은 빽으로 산다)이 추구하고 인정하는 인맥과 스펙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는 그 자리, 곧 주님과 교제하고 예배하고 주님의 통치를 받는 그 자리에 날마다 즐거이 나아가길 원합니다. 


# 21~23절 바른 믿음(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길입니다. 

바울 사도는 회심 이후의 여정을 지속하는 가운데 결국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 자신을 만나지 못했지만 오히려 이전에 자신들을 박해 하던 자가 전에 멀리하던 그 믿음(복음)을 전한다고 인정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바울은 유명한 이들을 만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집중했는데, 오히려 유대교에서는 자신이 복음 전하는 것을 인정해 주었다(영광을 돌리다)는 것입니다. 인맥 쌓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사람들을 중심으로 뭔가를 얻으려고 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유대의 교회들이 자신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음을 말하면서, 당대 거짓 교사들이 사람을 의지하는 것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복음이 틀렸고 예루살렘과의 유명세를 이야기 하는 이들을 향하여서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인정과 인맥과 인사가 더 빠르고 더 좋고 더 성공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아니하시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에 집중하기 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간다면 마침내 사람들도 인정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인정 받으려는 것이 목적은 아니지만 결과로서 마침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은혜로 부르신 그 부르심의 소명을 따라 사람이 아니라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복음으로 살고 바른 복음을 전하고 그 복음으로 주님께 영광 돌리길 원합니다. 


# 거둠의 기도

나를 부르신 주님

세상을 보지 아니하고, 사람을 보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의 그 부르심과 인도를 따라 살아가기 원합니다. 

사람의 인정과 인맥과 세상의 스펙이 아니라 

주님의 인정과 주님과의 관계에 집중하겠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바른 복음을 변함없이, 묵묵히 전하는 자로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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