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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02:1-10 선한 일을 위해 지음받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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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원대한 계획(1장)이 이루어져 거룩한 새 백성을 창조하셨는데, 이제 그 역사가 우리 가운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 개별적 내면적 측면(2:1-10)과 공동체적 외면적(2:11-22)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개별적 내면적 측면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우리를 살리사 선한 일을 위한 백성으로 새롭게 하셨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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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절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롬 1:18-23).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실존은 허물과 죄로 죽은 자였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알되 영화롭게 하지도 않고,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우상을 만들었습니다(롬 1:18-23). 그래서 죄 아래에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 잡은 자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을 따랐습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면서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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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이미 죽은 목숨입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그렇게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하나님께서 살리셨다고 선언하고 이를 설명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결국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이를 세상 풍조를 따른다고 말합니다. 삶의 방식이 하나님의 통치에서 벗어나 하나님 아닌 것들의 문화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곳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마귀(4:27; 6:11 '‘마귀''; 6:16 "악한 자'’)가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난 모든 것은 모두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의 지배 아래 살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을 알지 전에는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존재였습니다.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닌 거짓 것들의 지배하에서 살거나, 스스로 왕이 되어 자기 욕망을 따라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거기에는 그 어떤 만족과 기쁨과 생명과 사랑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불의함이 판을 치므로 하나님의 진노 곧 심판의 이유만 더욱 쌓이고, 절망과 죽음이 지배할 뿐입니다. 그래서 아무런 소망이 없는 상태에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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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실존을 알면 알수록 절망적입니다. 생사화복과 흥망성쇠가 모두 인간의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살아갈 수록 열심히 살아가도 인간의 한계 앞에 봉착하면 한없이 나약해지고 죽음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절망적이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애써 잊은채 현실의 쾌락에 영원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불현듯 죽음과 절망 그리고 자신이 소유한 능력의 한계에 봉착하고 나서야 영원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진노 아래에서 스스로 벗어날 방법은 없습니다. 

인간의 힘, 지혜, 지식(사상)이 진노아래에 있는 인간의 죽음을 살리지 못합니다. 과학, 철학, 종교, 이성 등등 인간의 능력이 극대화된 그 어떤 것으로도 허물과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살려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실존은 그래서 절망, 허무 뿐인 것입니다. 소유의 다소가 무색하고, 그 어떤 인간의 능력으로도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이 실존을 극복할 길은 없습니다. 결정적으로 인간 스스로에겐 아무런 희망이 없이 다만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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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절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리셨습니다(롬 3:21-26). 

그런데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고, 또 함께 일으키사(부활, 거듭남)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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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인자하심, 자비하심, 사랑하심, 오래참으심, 신실하심 등등 다양한 언어로 표현됩니다. 로마서에서는 이 모든 것들을 합하여 ‘하나님의 의’라고도 표현합니다. 진노라에 있는 인간 곧 아무런 소망 없이 절망과 죽음의 종노릇 하는 인간이 스스로 살아날 길이 없기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심, 손내미심, 역사하심이 먼저 있어야 인간이 살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행하신 이유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긍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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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랑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리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속량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그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또 함께 일으키셨다는 것은 다시 살리시고 새롭게하사 새 백성되게 하신 것을 말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신령한 몸을 입으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고, 새롭게 하시고 거듭나게 하심으로 새백성,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활후에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나라의 거룩한 백성, 왕같은 제사장의 자리에 앉고 살게 하신 것입니다. 이 또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곧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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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자비하심 곧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은 오는 세대에 계속 나타내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예수님이 초림하신 이후나 이전이나 인간의 타락한 이후부터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는 은혜입니다. 오직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수 있고, 다시 살 수 있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에 거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믿는 백성, 선한 일에 열심인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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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 진노의 자녀로 사는 우리, 절망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유일한 소망은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자비하심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우리 힘으로 절대 불가능한 그 길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므로 계획하시고 약속해 주시고, 이 땅에 독생자를 보내시고, 말씀해 주시고, 속량하시고, 다시 살리시고, 대속하게 하시고, 거룩한 나라의 새백성들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세상의 풍조를 따라 죄아래 살아 있으나 죽은 자 같은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의인의 길로 복있는 자로, 새 생명을 얻은 자로, 거듭난 백성으로 구원얻은 자로, 사랑하는 자로, 천국백성으로, 성도로, 주님의 몸된 성전이요 교회로, 살게 하신 것은 모두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 때문입니다. 그 은혜를 깊이 새기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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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3:21-26에서는 이를 여러번 반복해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21-22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차별없이 하나님의 의(긍휼)가 나타났다고 말하고, 23-24절에서는 예수 안에서의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었다고 말하며, 25-26절에서는 예수의 피, 예수님의 신실하심, 예수님의 화복제물되심으로 하나님의 오래참으심과 의로우심으로 의롭다하심을 주셨다고 설명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긍휼 곧 우리를 사랑하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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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0절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선한 일을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롬 3:27-28).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신실하심(예수 사건)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이니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행위에서 난것이 아닌 것은 누구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결국 하나님께서 새피조물입니다. 이는 우리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새롭게 지음받은 것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예비하심 곧 계획과 언약하심을 통해서 결국 우리가 그 계획하심과 목적을 따라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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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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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구원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이고,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행위에서 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며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3절에서 하나님의 떠나 허물과 죄로 죽어서 진노의 자녀로 죄아래 살던 인간은 스스로 살 수 있는 능력도 길도, 그 어떤 방법도 없으며,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알면서도 영화롭게도 안하고 우상을 만들어 그의 종노릇 하면서 살아, 마치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한가지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면, 곧 하나님께서 먼저 손내미시고, 약속하시고, 역사하시고 길을 내어주지 않으시면 인간은 스스로 그 길을 찾을 수도 낼 수도 만날 수도 없습니다. 인간의 편에서 하는 모든 방법들(행위)은 구원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 은혜를 예수로 말미암아 이루셨습니다(4-7절). 이것을 ‘믿음으로 말미암아’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여기에서의 ‘믿음’은 우리가 예수를 믿는 믿음이라기보다는 제유법적 표현으로 예수님의 신실하심(1:7-12)과 예수 사건(성육신에서부터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의 모든 사역들)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신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믿음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예수님이어야 이것이 하나님의 선물이고, 전적으로 인간의 그 어떤 행위가 아니기에 자랑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 믿음이 우리가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말한다면 어떤 설명을 하더라도 행위와 자랑에 대해 자유롭지 못하게 됩니다. 바울은 이를 로마서에서도 강조했고, 이제 에베소서에서도 다시한번 이 ‘믿음’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의 계획하심 예수님의 성취하심, 성령님의 보증하심의 역사로 나타나서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살려 새백성되게 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왜 우리를 구원하셨느냐에 대한 설명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새롭게 창조한 존재입니다. 거듭나고 구원받고 부활하고 새롭게하신 것은 모두 하나님의 새창조에 대한 다른 표현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곧 예수님의 인도하심과 먼저 행하심의 길을 따라서 가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위하여 새롭게 지음받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선한 일은 하나님의 뜻과 통치하심에 합당하게 반응하며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다시 살리사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셨으니 이제 우리는 선한 일 곧 이전에 육체의 욕심을 따라 마귀의 종노릇하고 욕망을 따라 자기마음대로 살았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백성을 위해, 새창조를 위해 하나님은 미리 예비하시고 마침내 행하시고 우리로 그 으혜 아래에서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삶의 목적 곧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원래 창조의 목적을 회복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을 이루는 거룩한 백성으로 살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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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물,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받았으니 이에 합당한 반응은 감사와 순종입니다. 차별없이 주어진 이 놀라운 은혜 앞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하신 뜻을 따라서 이제 우리가 사는 것은 선한 일에 열심인 백성임을 깨달아 나와 우리 공동체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민감하게 깨닫고, 온전한 순종으로 주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주의 뜻 이루는 의인의 길, 복있는 자의 길로 행하길 원합니다. 이 길을 온전히 가기 위해서 오늘도 주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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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살아하시며

세상 풍조를 따라 허물과 죄로 죽어서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마귀의 종노릇하며

스스로 왕이 되어 욕망의 노예로 전락한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다시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큰 사랑을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선물로 주시고 다시 우리의 지위를

회복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부르시고 세우시고 살게 하신 뜻을 따라

주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그 선한 길로 행하며

날마다 주의 통치에 즐거이 순종하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 길로 행하길 원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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