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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03:01-09 믿음(의 법)으로 성령과 의롭다함을 받는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예수 사건)의 역사성을 강조하면서 성령을 받음이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의 법)이며 아브라함이 의롭게 됨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논증합니다. 


* 두 번째 주요 주제에 대한 변론(2:15~4:11)

 1. 논제(2:15-21)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실함)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

  2. 4가지 논증(3:1~4:11)

    1) 현실 경험 : 새 사람 됨(3:1-5)

    2) 언약 인물 : 아브라함 언약의 아들들 됨(3:6-14)

    3) 시간 순서 : 그 언약의 때 순서(3:15-29)

    4) 신분 상태 : 종 vs 아들(4:1-11)

      바울은 이제 왜 우리가 예수를 믿어야 하는지, 바른 복음이 무엇인지, 율법(환유, 제유)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거짓 교사들의 다른 복음으로 인해 혼란을 겪는 갈라디아교회에게 언약과 연관된 네 가지 논증을 제시한다. 

     

* 본문 이해를 위한 용어 정리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함(갈 1:4)이 우리로 하나님을 믿는 백성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말할 때 율법과 상반되는 표현으로 믿음(의 법)에 의해서 그렇게 된다고 표현한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2:21)라고도 표현하고, 하나님의 의(롬 1:17, 3:21-22)라고도 표현한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몇 가지 용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 예수 사건 :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행하신 모든 공생애 사역과 십자가 부활 승천 그리고 성령으로 보내신 모든 사건들을 통칭한다. 

  - 예수님의 믿음(신실함) : 예수 사건은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과 약속을 따라 온전히 순종하신 일들을 말하는데, 이런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특별히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행하신 순종의 삶을 통칭하여서 예수님의 믿음 또는 신실함이라고 표현한다. 

  - 믿음의 법 :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표현되는 믿음은 크게 세 가지 용례가 있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예수님의 믿음(신실하심), 그리고 예수님의 신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게 되는 믿음(의 법)이 있다.그런데 세 번째 믿음은 율법(의 행위)과 대조해서 나올 때는 ‘믿음’이라고만 되어 있지만 ‘믿음의 법’으로 이해하는 것이 그 함의가 충분하게 된다. 이를 로마서 3:27에서 법과 행위의 법과 상반된 표현으로서 ‘믿음의 법(원리)’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 결국 인류는 죄 아래, 진노 아래 있었는데, 하나님의 의(은혜, 사랑, 자비, 긍휼)로 말미암아(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현의) 예수님의 신실(믿음)하신 순종의 사건들이 우리로 의롭다 함을 얻어(득의, 칭의)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된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을 믿음의 법이라 한다. 지금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진노 아래 죽을 수 밖에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되게 해주신 역사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래서 믿음을 갖게 된 것이지 내가 그냥 믿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바울이 전한 은혜의 복음이 부족하다고 자꾸만 다른 것을 더하려는 이들을 향하여 바울사도가 바른 복음에 대해 네 가지로 논증하고 있다. 




# 1-5절 믿음(의 법)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함이 우리를 의롭게 한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헛되지 않은 것임을 역설하는데 이어 그러한 사건과 의미, 역사를 분명히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왜 다른 복음을 수용하는지 묻는다. 이번에는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인지 아니면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인지를 통해서 묻고 있다. 

먼저 문맥상 ‘성령을 받은 것’에 대해서 의미상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과 같은 의미로 제시하고 있다. 이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냐 듣고 믿음이냐?라고 하는데 여기서 듣고 믿음은 ‘믿음을(의) 들음’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옳다. 역시 이 믿음은 “믿음의 법” 혹은 “예수님의 신실함”이라는 뜻이다. 이어서 성령과 육체를 대비한다. 처음에는 성령을 따라 잘 살다가, 곧 바울이 있을 때는 새 사람으로 잘 살다가 떠난 후에는 유대주의자들의 꾀임에 빠져서 율법의 행위를 강조해 율법의 항목을 지키고 육체에 표시를 내고, 할례, 절기와 음식 규정을 지키는 모든 것들이 육체로 귀결되기에 이를 ‘육체’로 마친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삶에 있어 고난을 받는 일들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을 주시고 또 성령의 능력을 따라 살아가게 되는 일도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을(의) 들음에서 나는 것이다. 

우리가 성령을 받고 의롭게 된 것은 우리의 어떤 공로로 되는 것도 아니고, 열심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율법의 행위로 되는 것들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의, 믿음의 법, 예수님의 신실하심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히 신실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 6-7절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은 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며 그것을 그의 의로 정하셨다. 그래서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갑자기 아브라함을 예로 든 이유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자신들의 유대인 혈통과 언약 자손과 선민사상으로 인하여 믿음의 법을 왜곡하고, 예수의 복음에 다른 것을 더하려는 자들을 향하여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서 반박하기 위함이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오실 예수를 믿었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었다고 하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을 믿었다고 하는데 이도 역시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았다. 이 부분은 조금 더 신학적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진노아래 있던 인간이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되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으로 인함이다(이것은 로마서에 잘 설명되어 있다). 그런 예수님의 대속의 사건이 구약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모세가 율법을 받기 훨씬 이전에, 할례도 받기 전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어 의롭게 된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게 된 것도 예수 사건의 효력이 구약에도 미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수님은 구약에서도 2천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앞으로도 모든 세대의 인류를 향하여 대속적 죽음에 자신을 내어 주신 분이고 그 효력 또한 창조 이래 모든 인류를 향하여 초월적으로 그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 믿음의 법을 통해서 아브라함도 의를 얻었도, 바울 당시나 오늘날에도 모두 동일하게 이 믿음의 법이 우리를 살리고 의를 얻게 하고 하나님을 믿는 백성이 되게 한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 누구든지 아브라함의 자손 곧 언약자손, 믿음의 자손, 의의 자손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 할례든 음식규례든 안식이든 율법의 행위를 가미하는 일은 터무니 없는 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 나는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 믿음의 자녀,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 의의 백성이 되었음을 믿고 감사합니다. 


# 8-9절 믿음(의 법)으로 의롭게 된 자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한 것은 결국 이방인도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과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하고,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게 하기 위함이다. 

아브라함이 받은 복음과 바울 사도가 갈라디아에게 전한 바른 복음과 오늘 우리가 듣는 복음은 모두 동일한 복음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진노아래 있던 인류가 다시 하나님과 화개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새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다. 갈대아 우르에 있던 아브라함을 부른 것이나, 오늘 우리를 부른 것이나 모두 동일하게 하나님을 찾지 않던 우리를 하나님을 택하시고 부르셔서 믿음의 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믿는 선한 백성이 되게 해주신 것이다. 

아브라함이 받은 복과 우리가 받는 복은 모두 다른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 새 인류, 새 사람이 되는 복, 곧 의를 얻는 자 되는 것을 말한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이유도, 바울 사도를 부르신 이유도, 바울 사도가 갈라디아교회에 가르치는 내용도, 오늘 우리를 부르신 이유도 복있는 자로 살게하고, 복의 통로가 되게 하기 위함이다. 진정한 복의 통로이신 주님께 거저 받았으니 우리도 그 받은 복을 흘려 보내야 하는 것이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뜻이다. 


* 2:15~21의 논제 곧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것을 논증하는 과정 속에서 계속 바울은 다른 복음에서 제기되는 의문과 문제를 대조하면서 바른 복음이 무엇인지 설명해 가고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무엇인지, 성령 받음이 무엇인지, 율법의 행위의 한계가 무엇인지,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서 그리고 복에 대한 의미들을 재정의 하면서 논증하고 있다. 


# 거둠의 기도

복의 근원이 되시며 신실하신 하나님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게 하시고

성령의 능력을 따라 행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믿음의 법으로 하나님을 믿는 

거룩한 새인류, 새백성, 새이스라엘, 새사람되게 하여주심 감사드립니다.

이 땅에서 복있는 자로, 복의 통로로 불러주심도 감사드립니다. 

부르신 뜻대로, 택하신 뜻대로, 구원하신 뜻대로,

의롭게 하신 뜻대로, 복주신 뜻대로

함께 복을 받고, 함께 복을 나누고, 함께 복을 전하는 자로

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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