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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7:27-44 십자가와 부활의 길 7 : 고난 받는 메시아


사형선고를 받으신 예수님은 먼저 군인들에 의해 왕인것처럼 온갖 희롱을 당하십니다.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지고 골고다에 올라서 마침내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이고 십자가에 못박히십니다. 십자가 좌우편 강도도, 지나가는 사람들도,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장로들도 예수님을 희롱하고 마지막까지 시험하며 모욕합니다. 계속해서 군인들과 조롱하는 이들의 말을 통해서 예수님의 신분과 정체성이 역설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 단순한 우리의 죄의 차원을 넘어서 모든 것을 회복하고 온전케 하시기 위해 제물이 되어야 했던 십자가 사건이기에 이토록 상세한 과정을 기록한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대속과 구원의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과정 속에서 묘사하는 이야기들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서 재해석되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해야 합니다.



# 27-31절 희롱 당하신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십니다.

빌라도 총독의 군병들이 온 군대를 모아 예수님을 희롱합니다. 홍포를 입히고, 가시관을 씌우고, 갈대를 손에 들리게 합니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서 문안하는 것처럼 유대인의 왕이라 부릅니다. 이어서 침을 뱉고, 손에 든 갈대로 머리를 칩니다. 이 일을 다 한 후에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갑니다.

*

산헤드린 공회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에도 예수님은 지금처럼 희롱을 당하면서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고 조롱을 받았습니다(26:68). 이제 빌라도의 법정에서 이번에는 군인들에게 예수님은 다시금 유대인의 왕이라고 희롱을 당합니다. 여기서 모인 ‘온  군대’의 숫자가 대략 600여명이 넘는 숫자로 예상합니다. 비무장한 예수님 한분을 조롱하는 일이 이렇게 많은 숫자의 군인들이 모였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증거하는 역할도 합니다.

군인들이 예수님을 희롱하면서 한 행동들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신분을 드러내는 역설적인 행위들입니다. 그들은 비록 조롱하고 희롱하는 차원에서 하는 것이지만 이 글을 기록하는 마태는 이들의 행위가 결국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부분들을 집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들이 이미 구약적으로 예언된 것들이 성취된 부분들이 많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는 일들과 홍포를 벗기고 다시 그의 옷을 입히는 등의 행위에 대해서는 결국 구약에 예언된 형태들이 하나하나 성취되는 말씀들입니다.

홍포는 왕이 입었던 옷의 색깔과 같습니다. 가시관으로 머리에 씌운 것은 왕관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오른 손에 들린 갈대는 왕들이 들고 있는 홀의 역할을 합니다. 급기야 그들은 장난스레 예수님 앞에서 왕에게 하는 것처럼 무릎을 꿇고 희롱하면서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문안까지 합니다. 단순히 조롱을 위한 행동으로 한 것이지만 마태는 이러한 내용을 일부러 상세하게 언급하는 것은 지금 이들이 예수님을 조롱하였으나 결국 그분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지금은 모르지만 마침내 모든 일을 다 이루신 후에 알게 되면 자신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을 한 것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들이 한 행동이 무엇을 성취하고 의미하는 지 모르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렇게 행동한 군인들의 숫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왕을 호위하는 이들이 많은 것과 같은 것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십니다. 단순한 정치적인 부분을 넘어선 진짜 왕이십니다. 하지만 그런 왕이 오셨으나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이렇듯 온갖 조롱과 희롱의 말과 판단으로 무시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의 왕과는 너무도 다른 무기력한 모습에 더더욱 무시합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 희롱하여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살아계신 주님의 임재를 인정하지 않고 불신하며 애써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님은 소위 주님을 믿는다 하는 이들을 비롯하여 세상으로부터도 이와 같은 힐난과 조롱을 당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들 중에서 이런 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불신앙과 범죄에도 불구하고 오래 참으시는 주님을 무시하기도하고, 유기된 상태인 줄도 모르고 주님은 아무런 징계도 할 수 없는 무능한 분으로 알고서 그 존재마저 부인하는 불신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지금 이러한 희롱을 견뎌내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부득이 약속하신 것을 신실하게 이루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지금 주님의 오래참으심과 무능한 것과 같은 무저항이 결코 주님이 존재하지 않거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잠시 유보하고 계신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 32-37절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지고 가시던 십자가를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억지로 대신 지워 가게 합니다. 마침내 골고다(해골의 곳)에 이르러 쓸개 탄 포도주를 마시게 했지만 예수님은 마시지 않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군인들은 예수님의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킵니다.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입니다.

*

예수님께서 빌라도 법정을 떠나 골고다에 올라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까지의 과정을 아주 짧고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처참한 모습과 고통 그리고 피흘림에 대한 분들이 적나라하게 묘사되는 것 없이 짧게 언급하는 것을 통해서 오히려 더 이 여정의 메시지가 강력하게 다가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시몬과 그의 가족은 이 사건을 계기로 후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참조 막 15:21: 롬 16:13).

쓸개 탄 포도주는 통증을 가라앉히는 마취 기능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연민하기 보다는 조롱하는 의도가 있었기에 예수님은 이를 거절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일을 완수함에 있어서 정신을 잃고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리고 깨어서 감당하시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달리게 합니다. 옷을 제비 뽑고 그 앞에 앉아 지키는 것은 이 사건이 분명하게 일어난 것과 이후로 벌어질지 모를 소요를 지키기 위함일 것입니다. 죽음 이후에도 군인들이 지킨 것을 통해서 마태는 예수님의 시신을 유기하고 훔쳐가는 것이 불가능 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증거들로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머리 위에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쓴 죄패를 붙입니다. 머리 위에 죄패를 붙인 것으로 봐서 T자형 십자가가 아니라 십자형 십자가인 것을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를 붙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고 하면서 끝까지 예수님이 스스로 유대인의 왕이라 하면서 반역하거나 엉터리 주장을 한다고 조롱하려고 했겠지만 마태는 그런 언급이 없이 최패의 내용만을 언급하므로 앞서 계속 말한 예수님의 왕되심을 증거한느 이야기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그 누구도 십자가를 진 시몬이나, 형을 집행하는 군인들도 예수님이 왕이시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게 하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줄 모르고 있습니다. 이후로 이곳을 지키던 백부장과 군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있습니다(54절). 현장을 지휘하고 함께 형을 집행한 이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증거되고 있는 것입니다.



# 38-44절 모욕과 시험을 당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을 조롱하는 군인들 외에도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십자가 위의 예수님을 조롱하고 모욕하며 급기야 시험하기까지 합니다. 좌우편 강도도 함께 못 박혔음을 언급하고, 지나가던 이들이 성전을 헐고 다시 세우는 자라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조롱합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도 희롱하면서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신은 구원하지 못한다고 만일 이스라엘의 왕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하나님이 구원해 주셔야지 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느냐고 물으면서 좌우편 강도까지 예수님을 욕합니다.

*

성전을 헐고 사흘에 다시 짓는 자라고 조롱하지만 예수님 당신의 죽음이 결국 거짓된 성전이 무너지고 이제 참된 성전을 다시 회복하실 것에 대한 예언의 성취인 것을 사람들은 아직 잘 모릅니다. 공교롭게도 이들이 지금 시험하는 말은 공생에 시작 전에 광야 40일 후에 마귀가 시험할 때와 같은 시험을 던지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는 것입니다. 사탄이 돌이 떡덩이가 되게하고, 성전에서 뛰어내려보라하고, 자신에게 경배하라는 시험은 이제 마지막 십자가에서 동일하게 다시 제시됩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희롱도 마찬가지입니다. 저가 남은 구원하는데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한다고 조롱합니다. 만일 이스라엘 왕이라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고 그럼 자신들도 믿겠다고 말합니다. 혹 하나님이 또 당신의 아들이니 구원해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롱에 십자가 옆에 있던 강도도 덩달아 그렇게 욕합니다. 이들이 왜 예수님을 욕했을까? 자신들의 이목이 집중되어서?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잡혀 죽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비참한 목숨에 예수님때문에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음 때문? 같은 처지에 있으면서 누가 누굴 조롱할 시기가 아닌데 어리석게도 이들은 같은 처지에 있는 예수님을 욕하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누구를 위함인지, 어떤 분이신지, 지금 이 일이 자신들처럼 자신들의 죄가 아니라 인류의 대속적 죽음이라는 것을 알리가 없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

처음과 끝에 함께 있는 이 시험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험입니다. 집요하게 우리는 십자가의 방식과 폭력적 방식 곧 하나님나라와 세상나라의 가치관과 세계관 사이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을 얻으라는 미혹에서부터 돌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그리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서 주님이 도우시고 받으시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십자가에서 내려온다면 스스로 구원하신다면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이 주님을 알게 되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우리의 일평생에도 이와 같은 시험이 늘 우리를 향해 옵니다. 피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도우심과 성령의 충만함과 위로부터 오는 능력만이 이러한 미혹을 이길 수 있는 길입니다.

결국 지나가던 자들과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조롱하면서 던진 이야기를 통해서도 예수님의 신분이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참된 성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또한 우리의 구원자이시면서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들입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우리도 주님을 희롱한 이들과 같이

주님을 희롱한 무리였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을 구주로 믿는다고 하면서도

제의적으로만 믿었지

정작 진심으로 구주되신 주님께

온전한 믿음의 고백이 여전히 부족함을 고백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이

참 성전이신 것과, 삼일만에 부활하신 것과

하나님의 아들 되심과

우리를 구원하실 새이스라엘의 왕이신 분으로 믿습니다.

주님이 하나님을 신뢰하셨던 것처럼

우리고 이 믿음 갖기 원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변함없이

우리 주님을 향한 신뢰를 놓치지 말고

끝까지 주님을 신앙하며

주님이 가신 그 길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임을 알고

겸손이 감당할 능력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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