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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09:01-16 욥의 탄식(歎息) 3 일리(一理), 물리(物理), 진리(眞理)

*

욥은 수아 사람 빌닷의 말에 일리(一理)가 있다고 인정합니다. 인생은 하나님 앞에 의롭지 않고, 아무리 변론하기를 좋아해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에 제대로 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크시니 행하신 일과 우주만물을 통치하시는 것(物理)에 대하여 사람은 옳다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허물이 있다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 말할 수 없지만, 그분의 통치와 심판 앞에서(眞理) 인간은 다만 간구할 뿐 그 결과는 다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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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절 일리(一理) 하나님은 지혜와 능력이 완전하시나 인간은 의롭지 않습니다. 

정의와 공의, 지혜와 능력의 하나님은 순전한 자 버리지 않으시고 악인은 벌하십니다. 욥은 그런 빌닷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인정하며 자신도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없다는 것도, 사람이 아무리 지혜로워도 하나님 앞에 비교할 수도 없다는 것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앞에 완악하게 대적하고도 형통할 자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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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들이 그들의 죄때문에 죽었다고 대놓고 거칠게 말하는 빌닷의 말에 상처를 받아 분노할 수 있을 터인데 욥은 차분하게 빌닷의 말을 인정하며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언급합니다. 욥이 충격적 사건 뒤에 얼마나 많은 생각을 곱씹고 되새겼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아마도 그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과 이유들을 묵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빌닷의 생각에 일리가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그 누구도 의롭지 못합니다. 또한 사람이 아무리 지혜로워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다 알 수 없습니다. 중동지역 문화에서는 말을 잘한다거나 변론을 잘하는 이들을 지혜롭다고 여겼습니다. 아는게 많아야 말을 많이 할 수 있고, 그래서 그런 말을 잘하는 혀가 두 개인 뱀을 지혜롭다고 비유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께 변론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질문하는 기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많은 말을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응답에 대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사람이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크신 능력을 거슬러 완악하게 행동하고도 형통할 자도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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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신앙의 연륜이 쌓여가면 타인의 주장을 인정하거나 수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러 이유 중에서 자신의 앎이 선악(善惡)과 옳고 그름(是非)과 진위여부(眞僞與否)의 판단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이 견고하게 자리하여 만일 타인의 주장을 인정하면 자신의 신념의 근간이 다 무너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는 것이 많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고, 제대로 아는 것도 자신이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앎이 얼마나 부족한지 그 한계를 아는 것이어야 하는데, 이를 알지 못하면 더 보수화 되어가게 됩니다. 욥은 온전한 자라 이를 알고 인정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있어서도 한계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이 성경과 경험과 많은 가르침을 통해서인데, 이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갈 때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서라야 제대로 알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 우리는 질문하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뜻, 계획, 섭리, 성품, 경영, 정체 등등)을 알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인생과 달라서 때로 우리는 그것을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순전한 마음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려서 들려도 다 알지 못하는 판에, 불순종과 교만과 완악한 마음으로는 더더욱 주님을 알아갈 수도 없고, 그의 삶이 형통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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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0절 물리(物理) 반성적 지혜 :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물리(物理)를 다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산이 무너져 옮겨도 산이 깨닫지 못하고, 땅을 움직여 그 기둥이 흔들려도, 해와 별을 뜨지 못하고 가둬도, 홀로 하늘을 펴고 바다 물결을 밟으시며(파도 억제 또는 파도를 만드시는 분), 뭇 별들(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위대하심을 표현할 때 사용, 아모스 5:8)과 남방의 밀실(남방의 별들 또는 바람, 눈, 우박등이 저장되어 있는 천상의 창고)을 만드셨으며, 측량 불가한 큰 일들, 셀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신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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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땅이 무너지고 옮겨지고 흔들리는 일은 지진같은 천재지변을 말합니다. 다른 성경에서 이러한 현상은 하나님의 임재를 말할 때 사용하는 유비입니다. 천재지변(天災地變)을 당하게 되면 우리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합니다. 불가항력적인 사건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고, 그것을 경영하시는 하나님앞에 우리는 겨우 티끌하나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일월성신(日月星辰, ‘성신’은 많은 별을 뜻합니다)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늘을 주관하시고, 바다의 파도를 일으키고 잠잠케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남방의 묘실에 있는 바람과 눈과 우박등을 만들고 주관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측량할 수도 없는 큰 일, 셀 수도 없는 기이한 일 곧 천지만물의 운행에 곧 질서(物理)에 대해서 우리는 다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그 천지 만물의 이치들을 하나님께서 창조 섭리 운행하고 계신 것입니다. 결국 빌닷이 가진 인과응보적인 원리로 이러한 모든 것들을 다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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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무(無)에서 유(有)를, 혼돈(混沌)에서 질서(秩序)를 창조하사 물리(物理)로 경영하시되, 때로 역행(逆行)하는 일도 하십니다. 이것을 측량할 수 없는 큰 일로, 셀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신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광할한 우주를 바라보면서, 경이로운 만물의 풍경을 보면서, 그 속에서 발생하는 천재지변을 겪으면서 우리의 앎과 지혜와 능력이 감당하기 어려운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염려로 우리의 키를 한자도 더할 수 없고, 우리의 지혜가 아무리 많다 한들 하나님의 지혜에 비할 수 없고, 우리의 능력이 아무리 크다 한들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 앞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지금 욥이 당하는 일과 같은 많은 일들 앞에서 감히 하나님의 존재 여부와 전지전능하심과 운행방식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피조물인 우리가 할 수도, 알 수도 없는 일인 것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다만 간구(질문, 9:15하)할 뿐입니다. 

*

# 11-16절 진리(眞理) 반성적 지혜 :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眞理)를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행하심을 깨닫지도 못합니다. 하나님이 취하시면 막을 수 없고, 왜 그러시냐고 물을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진노 앞에 라합(악의 무리를 통칭하는 유비, 리워야단도 유다함, 천상적 존재)도 굴복할 터인데, 하물며 사람도 모든 재앙의 인과(因果)를 다 알 수도 이해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할지라도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간구(질문)만 할 뿐이며, 그마저도 하나님이 대답하셨는지, 아니면 나의 말을 들었는지도 알 수 없다고까지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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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us revelatus"(드러내시는 분)와 "Deus absconditus"(숨기시는 분)는 라틴어 표현으로, 각각 "발견된 신"과 "숨겨진 신"을 의미합니다. 이 용어는 기독교 신학에서 주로 사용되며, 하나님이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나타내거나 숨기는 측면을 나타냅니다. "Deus revelatus"는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는 것, 즉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기독교에서는 성경, 기적,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와 관련이 있습니다. 반면에 "Deus absconditus"는 하나님이 자신을 숨기는 것, 또는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신비한 측면을 나타냅니다. 이는 하나님의 높은 지혜와 이해 불가능한 면을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분으로 그 존재 방식과 역사에 대해서 우리는 다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부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부분만 알 수 있습니다. 그마저도 우리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다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존재방식과 섭리를 다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과응보로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친구들 앞에서 욥은 지금 불가항력적인 충격과 사건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인지에 대해서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기 위해 질문하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주어졌음도 인정합니다. 그래서 욥은 드러내시고 동시에 숨기시는 하나님 앞에 경외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을 포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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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피조물 가운데 세워진 물리(物理)의 법칙에 가둘 수 없는 분이십니다. 인과응보의 원리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가항력적 세력과 사건일지라도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지금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황과 고난과 여러가지 일들 앞에 있다면, 하나님을 향해 질문하며 잠잠히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하심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대로 설명되고, 응답되고, 성취된다 하더라도 선하신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믿고 믿을 수 없는 현실, 기도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분을 향한 채널을 희미하게라도 켜 두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그분이 지나가신 뒤에야 하나님이 하신 일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리되신 주님을 날마다 낯설고 새롭게 만나고 알아갈 뿐입니다. 

*

# 거둠의 기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각사람에게 행하신 일들이

일리 있는 하나님이 뜻인 줄 믿습니다. 

천지만물을 다스리시는 주님의 역사를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으나

오직 주님의 통치하에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주님이 행하신 일들을 

우리는 다 깨달을 수 없으나

계시해 주신 부분을 알고

신비적 부분에 대해서는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길 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에 게으르지 않고

주님이 주시는 지혜와 진리 안에 행하게 하소서. 

천재지변 앞에서 더욱 겸손하기 원하며,

하나님이 하시는 큰 일과 기이한 일이

주님의 손에 있음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뒤늦게 주님이 행하신 일을 깨닫게 되더라도

여전히 주님이 끝까지 행하심을 믿게 하옵소서.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되

가장 적절한 시기를 정하사 역사하심을

믿음으로 인내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의로워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전적인 우리의 중보자 되신 주님으로 말미암음임을

늘 기억하며 감사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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