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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05:13-20 세상에서는 소금과 빛, 천국에서는 큰 자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왕(메시아), 새 출애굽을 완성하실 모세와 같은 분, 새 이스라엘의 기초가 될 제자들을 불러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새로운 세상(시대)이 시작 되었음을 선포하시는 이야기를 마태는 빠르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몰려온 무리들을 향해 가르치신 복에 대한 메시지는 사람들의 마음과 발걸음을 멈칫거리게 만듭니다. 그동안 자신들이 생각하고 기대했던 세상의 기준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당황스런 상황(세상으로부터의 핍박이 예상되는 삶)에 있는 제자와 무리를 향하여 천국 제자의 정체성(세상의 빛과 소금)이 세상에 미칠 긍정적인 영향을 확인시켜 주시고, 예수님의 메시지에 대한 오해를 막기 위해 율법과 선지자들의 가르침과의 연관성을 짚어주고 계십니다.


# 13-16절 천국백성은 세상에서 착한 행실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부름받은 자입니다.

천국 백성은 세상의 소금과 빛입니다. 소금은 그 맛을 잃으면 안되고, 빛은 모든 사람에게 비취는 기능이 있습니다. 이렇게 착한 행실을 사람들에게 비춰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구별된(거룩) 이들이 천국백성과 제자입니다.

*

소금의 기능(부패방지)보다도 그 고유의 맛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소금은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이 없습니다. 오직 소금만이 짠 맛을 낼 수 있는데 그 고유의 맛을 잃어 버린다면 버려져서 사람들에게 밟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짠 맛은 세상과 다른 기준 곧 (팔복과 같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선한 행실 또는 거룩한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나라의 새 백성은 바로 이렇게 세상과 다른, 그 어떤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한 맛을 내는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로 부름 받았고 지음 받은 새 피조물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거룩함(선한 행실)을 잃는다면 당연히 사람들에게 핍박(팔복의 삶의 결과)이 아닌 비웃음(밟힘)과 무시를 당하게 되는 것이며 어떤 영향도 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등불(빛)은 어둠 속에서 숨길 수 없습니다. 오히려 등불은 모든 사람들에게 비치게 하려고 키는 것입니다. 천국백성(제자들)이 빛이라고 하는 이야기는 이들의 구별된 삶은 감출 수 없고 드러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드러내어 어둠에 비춰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려고 하는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별된 행실이어야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전하고 선한 영향력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습니다.

*

우리의 정체성 곧 주님이 우리를 특별하게 구별하시고 천국백성(제자)으로 세움받았음을 아는 것이며 우리의 삶이 세상에서 그 맛을 드러내고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과 다른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라야 선한 행실로 선한 영향력을 주어서 참된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 속에서 가장 정직하지 못하고 돈만 아는 이기적 집단으로 인식되고 부정과 부패의 온상으로 낙인찍힌 교회의 현 주소는 우리가 고유의 맛을 잃은 민 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다른 기준 곧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바르게 알고 그 뜻대로 살아가는 일을 회복하여 치열하게 우리 삶이 재편되어야 할 것입니다.



# 17-19절 천국백성은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을 온전히 지켜 행하며 사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이나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완전하게 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율법과 선지자)은 모두 다 이루실 것이라고 재확인해 주시면서 율법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지 않도록 행하고 가르치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언약)을 말합니다. 또한 구약에서 세밀하게 가르치셨던 가르침들을 말하기도 합니다. 팔복의 가르침을 듣는 이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율법에 대한 생각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달라서 예수님께서 구약의 말씀들을 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말씀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구약의 말씀들을 읽을 때, 특별히 율법등에 대해 묵상할 때에 이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뜻(의도와 목적과 정신 또는 의미)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의 뜻(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등등)과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기준들을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해 가르쳐 주셨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끝까지 그것을 듣지 않고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시면서 철저하게 아버지의 뜻과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신실하게 순종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가르침들을 온전하게 이루시고 완성하신 모델이 됩니다.

그런 예수님께서는 이제 구약의 원래의 취지들 곧 하나님의 뜻을 다시금 재해석해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면서(개혁은 본질을 되찾아 주시는 것입니다) 새언약의 말씀으로 그리고 새백성의 삶의 지침들을 몸소 삶으로 보여주시고 살아내시고 가르쳐 주시면서 이제 천국백성된 제자들이 그 길을 따르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이 계명(말씀들)들을 일점일획도 허투로 생각하지 아니하고 그 말씀의 의미들을 바르게 묵상하고 이해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예수님께서 성취하고 완전케 하시면서 재해석해 주시는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합당한 삶의 모습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천국에서 큰 자라 칭찬 받는 모습입니다.

*

오늘 말씀을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는 일이 필요한 것은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고 풍성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말씀을 가벼이 여길 뿐 아니라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데에 관심을 두기보다 자기가 만든 신(우상)의 뜻을 따라 세상과 같은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살아가는 이상한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가르치고 말씀을 가벼이 여기고, 잘못된 신학과 교리로 고착되어 기형적이며 이기적인 종교인을 양산하는 일들이 보일 때마다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들을 날마다 그런가 하고 상고하며 주야로 즐거이 묵상하며 그 말씀의 뜻과 인도를 따라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천국의 백성과 제자된 우리가 살아가야 할 복된 길입니다.



# 20절 천국백성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나은 의를 행하는 자입니다.

결정적으로 예수님은 천국백성의 의(義,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가 바리새인과 서기관보다 더 나아야 함을 천국에 들거가는 조건으로까지 강조하고 있습니다.

*

당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지키고, 율법을 해석하고, 율법 그 자체를 가르치며 대하는 정도는 ‘율법주의’라는 말로 집약됩니다. 물론 율법주의라는 말도 크게 세 가지로 해석됩니다. 하나는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 둘째는 이미 자신들은 선민이기에 그에 합당한 삶으로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셋째는 율법의 행함 여부와 상관없이 율법 그 자체가 자신들을 살려줄 것이라고 하는 생각입니다. 당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 세 가지 모두 다 율법을 철저하게 가르치고 지키는 일에 집중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사람들이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로 말았습니다. 자신들도 지킬 수 없는 법으로 해석하고 사람들을 억압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예수님께서 새로운 법을 선포하시니 마치 기존의 율법을 폐하러 오시는 것처럼 생각하는 율법 폐기론자들도 생겨납니다. 이에 대해서 앞선 단락에서 예수님은 폐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러 오셨음을 먼저 언급하신 것입니다. 아울러 잘못된 율법주의에 대한 생각으로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려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모습을 지적하면서도 천국의 제자들은 그들의 모습보다 더 이 말씀에 대한 태도(의, 도리)를 가져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더 나은 의’는 말씀의 본질 곧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과,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잘못 해석하고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성취하시고 가르쳐 주신대로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행하는  것입니다. 결국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와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갈 능력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님을 통해서 가능한 일입니다. 성령님의 역할이 예수님(과 말씀)을 바르게 알고 그 뜻을 따라 살아갈 능력을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말씀에 대한 관심과 이해 그리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삶에 대한 태도가 다시 점검되어야 할 때입니다. 왜곡되고 변질된 말씀과 이단적 가르침들은 말씀에 대한 경시와 외면하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복음에 대한 잘못된 이해도 성경 66권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않고 말씀을 번영과 탐욕을 성취하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지 오래며 그마저도 쪽복음, 반쪽 복음이 전부인양 생각하는 우를 범하고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말씀이 조금 더 복잡하고 깊어지면 어렵다고하고 쉬운게 좋은거라 하면서 치열한 하나님의 뜻에 대한 고민과 삶에 대해서는 등한시 여기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래서 묵상의 자리에, 말씀을 듣는 자리에, 말씀을 배우는 자리를 마련하지도 않고 모이기를 힘쓰지도 않습니다. 그저 탐욕 곧 교회 숫자를 늘리거나 자기 지갑을 늘리는 모임에는 구름처럼 몰려가고 정작 말씀으로 거룩한 백성으로 빚어져 가는 자리에는 사람들이 오지도 않고 그래서 주님이 주신 그 밥이 다 쉬어버리고 있습니다. 엔터테인먼트에, 번영과 탐욕에 이상한 조미료 가득한 것이 복음이요 말씀이라고 포장되어 지천에 널부러지 듯 깔려 있어서 분별력 없는 성도들이 아무거나 먹다가 체하고 병들어 가는 것이 오늘의 현주소입니다.

말씀을 암송하고 다독하고 통독하는 일들 매일 일정 분량을 묵상하는 일들 모두다 소중합니다. 그러나 읽은 그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뜻을 깨달아야하고 그 말씀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야 그 말씀이 나를 살리고 성숙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아가지 못하고 말씀을 소유하고 통독하고 알고 있는 것만으로 훈장처럼 여기며 지식적으로만 알고 그 말씀을  깨닫고 빚어져 가는 일을 경시한다면 이것도 심각한 일입니다. 자칫 바리새인들처럼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대한 태도와, 이미 듣고 묵상한 말씀을 살아내는 행실에 있어서 나는 과연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에 머물러 있는지 아니면 그보다 더 나은 의를 향해 몸부림 치며 한편으로 주야로 즐거이 묵상하며 그렇게 살고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만일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단호하게 조건으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오늘 새겨 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 땅에서 내가 그 천국을 살지 못한다면 오는 세상에서도 우리는 그의 나라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있을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천국백성된 교회들마다 골방과 공동체에서 말씀을 함께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이 그런가하고 상고하며 배우며 치열하게 살아낸 말씀을 나누는 말씀의 사람, 말씀의 공동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민들레와 들불처럼 번져 나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민들레가 왜 민들레인 줄 아십니까? 문 둘레에 많이 피어서 문둘레가 민들레가 되었답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훨씬 더 좋습니다. 그렇게 민초들이 이 말을 통해 민들레 홀씨되어 우리 말을 지켜 간다면 그 뜻과 정신이 미치는 선한 영향력이 이 땅 곳곳에 퍼지지 않을까요?” - 영화 <말모이> 조선어학회장 류정환(윤계상)의 대사 중에서...



# 기도

우리를 천국백성으로 제자로 부르신 주님

맛을 잃고 엉뚱한 행실로 세상의 지탄이 된

오늘 교회와 종의 자화상을 바라보며 회개합니다.

바른 말씀을 알고 살고 증거하길 원합니다.

맛을 잃은 성도들에게 다시금 고유의 맛을 회복할 수 있도록

주의 말씀과 능력으로 다시 살려 주시옵소서.

그렇게 회복된 소금이

어둔 세상에 빛으로 드러나 주께 영광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묵상하며

살아낸 말씀을 그렇게 살라고 가르치는

말씀의 종이게 하옵소서.

바른 말씀을 깨닫기 위해 말씀을 연구하여 가르치며

말씀을 맡은 자로서의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할

힘과 능력과 지혜로 충만케 하옵소서.

천국복음을 주의 말씀을 통해 가르쳐

천국에서 큰 자들을 세워가는 일에

전심전력하게 하옵소서.

이 땅에서 더 나은 의로

하나님나라(통치와 다스림)를 순종하며 살아가는

말씀의 사람들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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