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14 00:37

관계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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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3 - 관계의 고통


어릴 적에 어른 들을 보면서 잘 이해하기 힘든 두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뜨거운 국을 드시면서 ‘국물이 시원하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펄펄 끓는 찌개며 탕을 후후 불어 입에 넣으시면서도 ‘어허 시원하다’ 하시는 말이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뜨거운 냄비나 그릇을 상에 올리시면서 ‘뜨겁지 않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주신 밥그릇이며 국그릇을 살짝만 닿아도 데일 것 같은데도 어머니는 아무 보조 장치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밥상에 올려 놓으시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그 뜨거운 국물을 왜 시원하다 하는지 이해가 되는 나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물을 때 나중에 나이 들어보면 안다 하시던 그 이유를 생각하곤 어느새 그런 나이가 되어 버렸나 서글퍼 지기도 합니다.


사실 어머니가 그 뜨거운 그릇을 상에 올리시면서 고통을 느끼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오래도록 일하시며 굳어진 살이 배긴 손 마디가 뜨거움을 잘 못 느끼시는 것도 있겠지만, 자녀들을 위해서 참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어머님 앞에서 우리 엄마는 뜨거운 것도 잘 이기신다고 철 없이 말하던 모습에 아무 말 없으셨던 그 맘이 자식들을 향한 큰 애정이었음을 이제야 자녀들을 길러보면서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듯 합니다.


사실 부모님이 정말로 고통스러워하고 아파하시는 것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당신들이 직접적으로 당하는 고통들은 죽을 병이 아니고서는 심지어 죽기까지 여간 아프다는 말씀을 잘 하지 않으십니다. 정말로 애간장을 녹이는 것 같은 고통은 당신들의 고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신들이 직접적으로 당하는 고통은 웬만해서는 그냥 견디시며 아픈 내색을 거의 내지 않으십니다. 부모님이 정말 아파하시는 것은 자식이 아플 때 그 고통을 당신의 고통으로 안아서 당신이 대신 아파해 주고 싶으나 그럴 수 없을 때 가장 고통스러워 한다는 것입니다. 열나는 머리에 찬 수건을 올려 주시면서, 밤새도록 신음하는 자식 옆에 잠을 제대로 못 주무시면서 수건을 갈아주시면서 아파하시고, 오랜 질병에는 백방으로 좋다 하는 약을 수소문하면서 아파하시고, 불치병에는 당신 탓인냥 일평생을 가슴에 품고서 아파하십니다. 그렇게 먼저 보낸 자식이 있다면 땅이 아니라 가슴에 묻는다 하지요. 그 고통을 무엇으로 표현 할 수 있을까요?


가장 큰 고통의 근원이 관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 몸이 아픈 것은 견디든지 치료하든지 그냥 그대로 안고 감내할 수 밖에 없고, 그렇게 아픈 만큼만 고통을 느낍니다. 하지만 관계에서 오는 고통은 그 크기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대신 아파 줄 수 없기에 더더욱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아프면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 그 자식의 아픔을 당신이 대신 아파줄 수도 없으면서 더 큰 고통을 안고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면서까지 자식의 고통을 덜고자 합니다.


인간은 삶의 여정에서 사회적인 많은 관계들을 형성해 갑니다. 친구, 사제, 부부, 노사, 주종, 군신, 이웃, 동기, 동문, 종교등등 수많은 선택과 만남을 통해서 이런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 발전해 가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관계들은 원한다면 관계를 끊을 수 있습니다. 무촌이라고 말하는 부부사이도 마찬가지 돌아서면 남이 되는 관계의 단절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 하나 자신이 선택할 수도 없고,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도 없는 관계가 있는데 그것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입니다. 아무리 법적으로 호적을 파고, 버리더라도 한번 맺어진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없어지거나 끊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관계를 끊을 수 없는 것이기에 자녀의 고통이 부모에게 가장 큰 아픔이 되는 것입니다.


끊어질 수 없는 관계의 고통이 가장 크다 하더라도 끊을 수 있는 관계의 고통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 만큼은 절대적으로 비교할 수 없지만 그에 버금가는 좋은 관계를 이어가는 이들도 허다합니다. 이러한 관계성 속에서 인간은 궁극적인 존재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늘 관계를 갈망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나라에 살면서 한 다리 건너 보면 모두가 다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웃의 누군가가 아프면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어주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그것이 인간의 도리입니다. 아무리 작은 고통이라도 당사자에겐 힘든 일이기에 그 고통에 대해서 대신할 수 없기에 함부로 왈가왈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고통의 문제로 앓고 있는데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의 고통이 결국 자신과 무관하지 않음을 기억하고 함께 감내하며 극복해 갈 수 있도록 손을 모아 주는 것이 마땅한 도리일 것입니다.

웃는사람 라종렬
광양시민신문 <쉴만한물가>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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