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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7:1-20 편지를 펴 놓는 자리

*

온전한 신앙이란 위기를 내 손으로 틀어막는 일이 아니라,
그 위기를 하나님 앞에 활짝 펼쳐 놓는 한 번의 용기 있는 몸짓입니다.

.

여름의 끝자락입니다. 한낮의 볕은 아직 따갑지만, 아침저녁으로 스미는 바람의 결이 어느새 달라졌습니다. 매미 소리가 잦아든 자리에 풀벌레 소리가 들어서고, 마당 한켠의 감나무는 벌써 열매의 무게로 가지를 낮출기 시작했습니다. 계절은 이렇게 소리 없이 자기 할 일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에는 계절처럼 순하게 지나가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도무지 물러가지 않는 걱정, 밤마다 되돌아와 문을 두드리는 두려움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이 늦여름의 문턱에서 저마다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는 모든 분의 심령 위에,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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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는 손에 편지 한 통을 쥔 사람이 등장합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입니다. 그 편지는 앗수르 왕 산헤립이 보낸 것으로, 온통 협박과 조롱으로 가득한 글이었습니다. "너는 네가 신뢰하는 하나님이 예루살렘이 앗수르 왕의 손에 넘어가지 아니하리라 하는 말에 속지 말라"(사 37:10). 세상에서 가장 강한 제국의 왕이, 이제는 히스기야가 의지하는 하나님까지 직접 겨누며 비웃는 편지였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이런 편지를 받았을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찢어 버리거나, 밤새 곱씹으며 분을 삭이거나, 아니면 서둘러 답장을 쓰려 하지 않겠습니까?

이 이야기의 역사적 배경을 잠시 짚어 보면 그 위기의 무게가 실감 납니다. 때는 주전 701년,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를 침략하여 예루살렘을 제외한 견고한 성읍들을 거의 다 함락시킨 뒤였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이때 예루살렘이 "새장에 갇힌 새처럼" 완전히 포위된 상태였다고 설명합니다. 인간적으로 계산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성벽 하나에 목숨을 건 작은 도성과, 온 세계를 무릎 꿇린 대제국. 그 사이에 히스기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가 한 일은 뜻밖이었습니다. 처음 랭사게의 위협을 전해 들었을 때, 그는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은 채 여호와의 전으로 올라갔습니다(사 37:1). 그리고 선지자 이사야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사 37:3). 얼마나 정직한 고백인지요. 아이를 낳으려는데 밀어낼 힘이 없다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으나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고백은 주저앉는 자의 한탄이 아니었습니다. 힘이 다한 그 자리에서, 그는 손을 놓은 것이 아니라 손을 들었습니다. 도움을 찾을 수 없는 자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알았기에, 그는 자기 무능의 밑바닥을 그대로 하나님께 내어놓았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에는 우리가 배워야 할 낮은 어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이사야에게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그 말로 말미암아 견책하실까 하노라"(사 37:4)라고 전합니다. 바로 그 "혹시"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약해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 기도가 하나님의 팔을 비틀어 원하는 결과를 뽑아낼 수 없음을 아는, 성숙한 신뢰의 언어입니다. 유대인 사상가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은 그의 책 『사람을 찾는 하나님』에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 뜻에 굴복시키는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임재 앞에 노출시키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움직여지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히스기야의 "혹시"가 바로 그러합니다. 그는 응답을 손에 쥐려 하지 않고, 응답을 정하시는 분의 주권 앞에 자신을 활짝 열어 놓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기도할 때에야, 비로소 기도가 나를 중심에 둔 독백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참된 대화가 됩니다.

이사야는 두렬워 말라는 하나님의 응답을 전했지만, 산헤립은 물러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두 번째 편지를 보내어 이번에는 여호와를 직접 겨냥합니다. 고산과 하란과 레셉, 하맛 왕과 아르밧 왕의 신들이 아무도 제 백성을 건지지 못했다며, 네 하나님도 저들과 다르지 않다고 비웃습니다(사 37:12-13). 그가 늘어놓은 이름들은 허풍이 아니라, 실제로 앗수르의 말발굽 아래 스러진 성읍들의 목록이었습니다. 그만큼 그의 위협은 무거웠습니다. 산헤립에게 신이란 결국 힘의 서열이었습니다. 강한 제국은 약한 민족의 신을 언제나 이겨 왔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의 계산에는 치명적인 빈칸이 있었습니다. 그가 여태 이긴 것은 신이 아니라 우상들, 곧 사람의 속으로 만든 나무와 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그는 아직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세상의 조롱은 아무리 많은 이름을 늘어놓아도, 그 목록 어디에도 우리 하나님의 자리는 없습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오늘 본문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 펼쳐집니다. 히스기야는 그 협박의 편지를 손에 받아, 다시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 "그 글을 여호와 앞에 펴 놓았습니다"(사 37:14). 얼마나 인상적인 몸짓인지요. 그는 편지를 요약하지도, �y색하지도 않았습니다. 두려움을 미화하거나 과장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협박의 문서를 있는 그대로 하나님의 시선 아래 펼쳐 놓았을 뿐입니다. 하나님, 이것이 제가 받은 편지입니다. 직접 읽어 보시고, 직접 응답해 주십시오. 우리를 짓누르는 문제 앞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첫 번째 기도의 자세가 바로 이것입니다. 감출지도 부풀리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펴 놓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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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기도가 놀랍습니다. 그는 성전 지성소의 그룹 사이에 계신 하나님을 부르면서, 동시에 "주는 천하 만국에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사 37:16)라고 고백합니다. 좁은 법궤 위에 현존하시는 그 하나님이 온 우주를 지으신 창조주라는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무엇을 먼저 구했는가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우리를 살려 주소서"라고 매달리지 않았습니다. 먼저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조롱했음을 아뢰고, 그 조롱을 하나님과 맞대면시킵니다. 그리고 기도의 절정에서 그가 구한 것은 자기 목숨의 안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천하 만국이 주만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사 37:20). 내 구원조차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것이 되게 해 달라는 이 기도가, 성경이 가르치는 가장 높은 기도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협박의 편지 같은 소식이 배달됩니다. 병원의 진단서 한 장, 통장에 찍힌 붉은 숫자, 관계의 끝을 알리는 차가운 문자 한 통. 우리는 그것을 서랍 깊은 감추거나, 혼자 밤새 곱씹으며 마음의 병을 키우곤 합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다른 길을 보여 줍니다. 그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펴 놓으라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신앙은 종종 문제를 빨리 없애는 능력으로 신앙을 재려 합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은 우리가 위기를 통과하는 동안 우리와 깊어지기를 원하십니다. 문제의 해결보다 먼저 문제를 가지고 나아가는 그 발걸음, 두려움을 정직하게 펼쳐 놓는 그 몸짓 속에서, 우리는 이미 살앀 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손에 쥔 편지가 무엇입니까. 그것을 홀로 견디지 마시고, 성전으로 올라가는 히스기야처럼 주님 앞에 펴 놓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작은 구원 하나하나가 오직 주님만이 하나님이신 줄을 세상에 알리는 이야기가 되기를, 그리고 이 늦여름의 바람처럼 순하고 서늘한 평화가 여러분의 지친 심령마다 스며들기를, 여러분 모두가 오늘도 자기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펴 놓는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모든 성도가 매일성경으로 매일 묵상하는 광양사랑의교회 평화의길벗_라종렬 목사였습니다. 묵상의 여정에 있는 여러분의 오늘 하루도 주님의 평화가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

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_05PWf6WpT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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