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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26:1-27:1 밤에 맺히는 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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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신앙이란 내 손으로 낳지 못한 것을 밤새 기다릴 줄 아는 생명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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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도 말복도 지났습니다. 한낮의 볕은 여전히 사납지만, 새벽 공기의 결이 며칠 사이에 달라졌습니다. 이른 아침 마당에 나가 보면 풀잎 끝마다 물방울이 조그맣게 맺혀 있습니다. 밤새 비가 온 것도 아닌데 어디서 왔는지 모를 물이 잎사귀마다 조용히 앉아 있습니다. 이슬입니다. 저는 이 계절의 이슬을 볼 때마다 마음이 조금 이상해집니다. 비는 요란하게 오고 요란하게 그치는데, 이슬은 오는 소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낮에는 절대로 맺히지 않습니다. 오직 밤에만, 가장 서늘한 시각에만 맺힙니다. 이 여름을 온몸으로 건너오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소리 없이 애쓴 자리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아 시뜻해진 분들, 밤이 길어서 아침을 기다리는 일이 버거워진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 모든 분의 심령 위에,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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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한가운데도 이슬이 나옵니다.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사 26:19). 예언자는 하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그 힘을 이슬이라고 불렀습니다. 참 뜻밖의 선택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이야기라면 벼락이나 폭우나 지진 같은 것이 어울릴 법한데, 그가 고른 것은 손등에 닿아도 놀라지 않을 만큼 작은 물방울이었습니다. 그러나 비가 거의 오지 않는 가나안 땅에서 이슬은 목숨이었습니다. 일교차가 큰 그 땅에서 밤마다 맺히는 이슬은 시든 초목을 되살리는 유일한 물이었고, 성경은 그것을 축복의 이름으로 자주 불렀습니다. 이슬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밤새 공기 속에서 맺힙니다. 사람이 만들 수도 없고, 앞당길 수도 없고, 그저 밤이 지나가야 생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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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24장부터 27장까지를 학자들은 '이사야의 소묵시록'이라 부릅니다. 온 땅이 뒤집히는 심판과 만민을 위해 차려진 산 위의 식탁을 지나, 오늘 26장에 이르러 예언자는 마침내 그 나라의 성읍을 노래합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승리한 사람의 노래가 아닙니다. 이 말씀을 처음 들은 사람들은 환난 한복판을 지나던 빈궁한 이들이었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부르는 노래, 그것이 26장입니다. 그래서 이 장은 앞부분이 찬양이고 뒷부분이 탄식입니다. 찬양과 탄식이 한 몸으로 붙어 있는 이 이상한 노래가, 실은 신앙의 가장 정직한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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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첫마디는 성읍입니다.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벽과 외벽으로 삼으시리로다"(사 26:1). 이사야 묵시록에서 '성읍'은 줄곧 무너지는 것의 이름이었습니다. 24장의 혼란한 성읍, 25장의 견고한 성읍, 26장 5절의 솟은 성이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단 한 번, 같은 말이 정반대로 뒤집힙니다. 무너지는 성과 무너지지 않는 성을 가르는 것은 높이가 아니라 재료였습니다. 성벽의 재료가 사람의 힘이면 무너지고, 하나님의 구원이면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안전을 느끼는지 물어보라는 말입니다. 통장의 잔액으로, 자녀의 성적으로, 사람들의 평판으로 안전을 느낀다면 우리는 이미 무너지는 쪽의 성벽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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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성 안에 사는 사람을 본문은 이렇게 부릅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사 26:3). '심지'로 옮겨진 히브리말은 본래 토기장이가 그릇을 빚을 때 쓰는 틀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마음속에 자리 잡은 틀, 그러니까 사람이 품고 사는 방향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견고하다는 말을 우리는 자주 오해합니다. 요즘 세상에서 심지가 굳은 사람이란 대개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을 뜻하니까요. 그러나 본문이 곧바로 덧붙이는 설명은 전혀 다릅니다. 그가 주를 신뢰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견고함이 자기 안에서 나오면 완고함이 되고, 신뢰에서 나오면 평강이 됩니다. 자기 확신이 단단한 사람은 부딪히면 깨지지만, 신뢰가 단단한 사람은 부딪히면 오히려 붙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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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은 여기까지입니다. 7절부터 노래는 탄식으로 내려갑니다. 그 탄식 가운데 제 마음을 오래 붙든 구절이 있습니다.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사 26:9). 낮에 하나님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응답이 눈에 보이고 증거가 손에 잡히니까요. 그러나 밤에 하나님을 찾는 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여전히 그분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있는 일은 다릅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절이 서늘하게 이어집니다. 악인은 은총을 입을지라도 의를 배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받으면 달라지고 용서받으면 뉘우친다는 우리의 낙관을 예언자는 믿지 않았습니다. 은총이 자동으로 사람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은총을 받고도 그것을 자기 무죄의 증거로 삼는 사람이 있고, 심판이 미뤄진 것을 심판이 없다는 뜻으로 읽는 사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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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탄식은 마침내 가장 아픈 자리에 이릅니다. "우리가 잉태하고 산고를 당하였을지라도 바람을 낳은 것 같아서 땅에 구원을 베풀지 못하였고"(사 26:18). 잉태했고, 산기가 임박했고, 부르짖었는데, 낳은 것이 바람이었다는 고백입니다. 히브리말로 바람은 숨이며 동시에 헛것입니다. 고통은 조금도 가짜가 아니었는데 손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저는 이 구절 앞에서 여러 얼굴을 떠올립니다. 십 년을 기도했는데 달라진 것이 없는 가정, 평생을 바쳐 키운 자녀가 교회를 떠난 부모, 정직하게 일했는데 결과가 초라한 사람들의 얼굴입니다. 성경은 이 실패를 변명해 주지 않습니다. 다만 진정성이 있어도 열매가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적어 둡니다. 이것이 성경의 정직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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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는 시인이 되겠다고 찾아온 젊은이에게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셈하지 않고 헤아리지 않는 것이며, 수액을 재촉하지 않고 봄의 폭풍우 속에 태연히 서서 그 뒤에 여름이 오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않는 나무처럼 무르익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여름은 반드시 오지만 오직 참고 기다리는 이에게 온다고, 그러니 인내가 전부라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시인의 이 말은 아름답지만 오늘 본문 앞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성경이 말하는 기다림은 언젠가 내 안에서 열매가 익으리라는 기다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끝내 낳지 못했습니다. 세계의 거민을 출산하는 일은 애초에 그들의 몫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견뎌야 할 것은 열매가 익기까지의 시간이 아니라, 그 열매가 내 것이 아님을 인정하기까지의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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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빈손 위에 이슬이 내립니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사 26:19). 여기 쓰인 '티끌'은 조금 앞에서 무너진 성이 이르던 자리의 이름과 같은 말입니다. 높이 솟았던 것들이 낮아져 도달하는 곳이 티끌이었는데, 정작 현실에서 티끌에 누워 있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세상은 높이 서 있고 믿는 사람은 바닥에 엎드려 있는 이 뒤바뀐 풍경이 이 노래의 배경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행하시면 자리가 통째로 바뀝니다. 그리고 그 뒤바꿈이 벼락처럼 오지 않고 이슬처럼 옵니다. 18절과 19절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습니다. 더 노력해서 낳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낳지 못한 자리에서 그분이 낳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위로는 조금만 더 힘내라는 격려가 아니라, 이제 네 손에서 놓으라는 초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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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다음에 이어지는 명령이 또 뜻밖입니다.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사 26:20). 부활을 노래한 사람에게 주어진 다음 지시가 숨으라는 것입니다. 여기 쓰인 밀실은 침실을 뜻하는 말이고, 문을 닫으라는 말은 사방을 완전히 밀폐하라는 뜻입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 문이 닫히던 밤, 이스라엘이 문설주에 피를 바르고 아침까지 나가지 않던 밤이 떠오릅니다. 두 밤의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그 밤에 하나님의 백성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안에 있었고, 밖에서 일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문이 열린 뒤에 여호와께서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옛 뱀을 벌하십니다. 우리가 지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분의 칼을 자꾸 우리 손으로 대신 휘두르려 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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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오늘 우리가 배울 것은 밤을 견디는 법입니다. 우리 시대는 밤을 견디는 법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잠들지 못하면 약을 먹고, 결과가 늦으면 방법을 바꾸고, 기다림이 길어지면 사람을 바꿉니다. 교회 안에서도 은혜의 속도가 자꾸 빨라집니다. 오늘 결단하고 내일 변화된 간증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이슬은 그렇게 오지 않습니다. 밤이 충분히 깊어야 하고, 공기가 충분히 식어야 하고, 무엇보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십 년째 응답 없는 기도를 여전히 드리는 분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여전히 성실한 분들이 실은 이슬이 맺히는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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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문을 닫으라고만 하지 않고, 그보다 앞서 문을 열라고 합니다.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나라가 들어오게 할지어다"(사 26:2). 견고한 성읍의 첫 번째 실천이 방어가 아니라 개방이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스스로를 지키는 일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문은 저절로 닫힙니다. 이 여름 우리 공동체의 문턱이 누구에게 낮았고 누구에게 높았는지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처음 온 사람이 어디에 앉을지 몰라 서성이지는 않았는지, 형편이 어려워진 이웃이 조용히 발길을 끊을 때 그 빈자리를 알아챘는지 말입니다. 밤에 맺힌 이슬은 아침에 누군가의 목을 축이라고 맺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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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면 처서입니다. 이 지독한 볕도 결국 물러갈 것이고, 새벽마다 풀잎에 맺히는 물방울은 조금씩 더 굵어질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그런 새벽이 있습니다. 밤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데, 아침에 나가 보면 어느새 잎사귀마다 물기가 앉아 있는 그런 새벽 말입니다. 오늘 바람을 낳은 것 같은 자리에 서 계신 분들, 산고는 다 겪었는데 손에 쥔 것이 없어 서러운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 빈손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이슬은 언제나 마른 잎에 맺힙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밤을 밀실에서 견디고, 티끌에 누운 자리에서 깨어 노래하며, 아침마다 새로 맺히는 은총을 받아 마시는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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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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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4giYQ4FNvM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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