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이사야 25:1-12 가리시는 손, 걷으시는 손

*

온전한 신앙이란 나를 가려 주시는 손과 나를 열어 주시는 손이 같은 한 분의 손임을 알아 가는 생명 사건입니다.

.

팔월 한복판입니다. 말복이 지났는데도 한낮의 볕은 조금도 물러설 기색이 없습니다.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가 일렁이고, 그늘 한 뼘을 찾아 사람들이 건물 모서리에 비스듬히 몸을 붙입니다. 저는 이맘때 길을 걷다가 문득 커다란 나무 아래로 들어설 때의 그 느낌을 좋아합니다. 온도가 몇 도쯤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정수리를 내리누르던 무게가 한순간에 사라집니다. 그늘은 무엇을 더해 주는 것이 아니라 가려 주는 것뿐인데도 그렇습니다. 이 여름을 억척스럽게 건너오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볕을 피할 곳 하나 없이 온몸으로 하루를 받아 내신 분들, 뜨거운 것은 날씨만이 아니어서 마음이 먼저 시뜻해진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 모든 분의 심령 위에,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

오늘 본문에도 그늘이 나옵니다. 그것도 아주 뜨거운 자리 한가운데 드리운 그늘입니다. "주는 포학자의 기세가 성벽을 치는 폭풍과 같을 때에 빈궁한 자의 요새이시며 환난 당한 가난한 자의 요새이시며 폭풍 중의 피난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사 25:4). 한 절 안에 요새가 두 번, 피난처가 한 번, 그늘이 한 번 나옵니다. 말이 자꾸 겹치는 것은 그만큼 절박했다는 뜻입니다. 숨을 곳을 찾는 사람은 말이 길어집니다. 그리고 이 절박한 고백 바로 앞에는, 뜻밖에도 무너진 성의 잔해가 놓여 있습니다.

.

이사야 24장부터 27장까지를 학자들은 '이사야의 소묵시록'이라 부릅니다. 어제 우리가 읽은 24장이 온 땅이 뒤집히는 굉음으로 가득했다면, 오늘 25장은 그 굉음이 잦아든 자리에서 조용히 시작하는 감사기도입니다. 김필회 교수는 이 감사기도가 여기 놓인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본래 이 시는 어느 불의한 성이 무너진 것을 보고 드려진 소박한 감사시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편집자는 그 작은 노래를 세상의 종말을 그린 24장 바로 뒤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마지막 시대의 환난을 지나는 공동체에게, 저 큰 두려움 앞에서도 붙잡을 것이 있다고 말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옛사람의 사소한 감사 하나를 온 역사를 견디는 힘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우리가 오늘 드리는 작은 감사도 어쩌면 누군가의 마지막 밤을 지켜 줄 등불이 될지 모릅니다.

.

예언자는 이렇게 노래를 엽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사 25:1). 여기서 '기사'란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초자연적 기적이 아니라, 억압에서 풀려나고 전쟁이 그치는 구원의 사건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라는 말이 이 고백의 척추입니다. 하나님은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역사에 끼어드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김근주 교수는 1절 끝의 히브리어 표현이 '완전한 신실함'으로 읽힐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오래된 계획과 한결같은 신실함, 이 둘이 맞물릴 때 비로소 사람은 기다릴 수 있습니다. 즉흥적인 신은 무섭습니다. 언제 마음이 바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품어 오신 뜻을 오늘도 어김없이 밀고 가시는 분이라면, 오늘 이해되지 않는 한 조각도 언젠가 제자리를 찾을 것입니다.

.

그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2절과 3절에 나옵니다. 견고한 성읍을 돌무더기로 만드시고, 외인의 궁성이 다시는 성읍이 되지 못하게 하십니다. 흥미롭게도 그 성의 이름이 끝내 나오지 않습니다. 김필회 교수는 이 익명성이 오히려 의도적일 수 있다고 봅니다. 예언자에게 그 성의 멸망은 감사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였고, 그는 눈앞의 한 사건에서 앞으로 하나님이 하실 모든 일의 확실성을 읽어 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름은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무너진 성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모든 힘의 이름 없는 얼굴로 남습니다. 김근주 교수는 여기 쓰인 '성읍'과 '견고한 성읍'이 잘 방비된 도시, 나아가 인간이 쌓아 올린 문명의 자부심을 가리킨다고 읽습니다.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는 것들의 목록을 떠올려 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무너짐 뒤에 회개가 따라옵니다. 강한 민족이 주를 영화롭게 하고 포학한 나라들이 주를 경외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원수를 없애는 데서 끝나지 않고 원수를 돌이키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

그런데 성을 무너뜨리시던 그 손이 4절에서 갑자기 그늘이 됩니다. 저는 이 낙차 앞에서 늘 멈춰 섭니다. 성벽을 치는 폭풍 같은 기세 앞에서 하나님은 빈궁한 자의 요새가 되십니다. 팔레스타인의 갑작스러운 폭우와 살을 태우는 폭염은 그 땅 사람들에게 생명을 위협하는 두 얼굴이었습니다. 예언자는 그 두 위협을 그대로 가져와 하나님을 피난처와 그늘로 고백합니다. 5절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폭양을 구름으로 가림 같이 포학한 자의 노래를 낮추시리이다"(사 25:5).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구름 한 장을 옮겨 놓는 일로 묘사됩니다. 얼마나 소박한 그림입니까. 그러나 뙤약볕 아래 서 본 사람은 압니다. 구름 한 장이 목숨입니다. 성경에서 가난한 자란 재산의 액수로 정해지는 이름이 아니라 달리 숨을 곳이 없어 하나님만을 그늘로 삼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가운데 누가 가난한 자인지도 분명해집니다.

.

그리고 6절에서 무대가 산 위로 올라갑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사 25:6). 종말의 전쟁을 끝내신 왕이 보좌에 앉으셔서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이 잔칫상을 차리는 일이라는 것이 저는 늘 놀랍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손님 명단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니라 만민입니다. 김필회 교수는 시온을 향한 민족들의 순례가 성경 여러 곳에 나오지만 민족들이 초대를 받아 올라오는 장면은 여기뿐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들은 자격을 갖춰 문을 두드린 것이 아니라 불려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에서 하나님은 손을 뻗어 사람들의 얼굴을 덮은 가리개를 걷어 내십니다. 그 천은 무지의 상징이 아니라 애도의 표지였습니다. 죽은 이를 위해 얼굴을 가리던 천입니다. 이제 그 천이 필요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사망을 영원히 멸하시고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기 때문입니다.

.

가려 주시던 손이 이제 걷어 내십니다. 폭양은 구름으로 가려 주시고, 슬픔의 천은 손수 벗겨 내십니다. 이 두 동작이 한 분의 것입니다. 우리를 무엇으로부터 가려 주셔야 할지, 무엇으로부터 꺼내 주셔야 할지 그분은 정확히 아십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을 논하면서 바로 이 구절을 끌어와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선포했고(고전 15:54),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환상에서도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신다는 약속이 다시 울립니다(계 21:4). 산 위의 그 식탁은 아직 멀리 있지만, 우리는 그 상의 축소판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성찬상입니다. 우리는 매번 그 앞에서 만민을 위한 잔치의 첫 술을 미리 뜹니다.

.

그렇다면 그날까지 우리는 무엇을 하며 사는가. 9절이 대답합니다.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사 25:9). 기다렸다는 말이 한 절 안에 두 번 나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감옥에서 맞은 대림절을 두고, 감방에 갇힌 사람이 문이 밖에서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썼습니다. 안에서는 열 수 없는 문이 있습니다. 손잡이가 바깥에만 달린 문 앞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은 무기력이 아닙니다. 문 밖에 누군가 계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기다림과, 아무도 없다고 믿는 사람의 체념은 겉모습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시간입니다. 9절의 고백이 구원이 이루어진 다음에 나온 감사가 아니라 아직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한 채 미리 부르는 노래라는 점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김근주 교수의 표현대로, 하나님이 행하실 날을 기다리며 오늘의 고난을 이겨 내는 그 믿음이야말로 참된 부활 신앙입니다.

.

본문은 마지막에 뜻밖의 장면 하나를 붙여 놓습니다. 모압이 거름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대는 그림입니다. 헤엄치는 자가 손을 뻗듯 모압도 손을 뻗지만, 그가 빠진 곳은 물이 아니라 거름 구덩이여서 능숙한 손놀림이 오히려 그를 더 깊이 가라앉힙니다(사 25:11). 표현이 거칠어 낯설지만, 여기서 모압은 한 민족의 이름이라기보다 한 자리의 이름입니다. 성벽의 높은 요새를 자기 힘으로 삼은 교만의 자리입니다. 스스로를 건지려는 능숙함과, 건져 주시기를 기다리는 무력함. 오늘 본문은 이 둘을 나란히 놓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요새는 무엇입니까. 정확히 말하면, 당신은 지금 어느 물에서 헤엄치고 있습니까. 방향이 틀린 자리에서의 유능함만큼 사람을 빨리 가라앉히는 것은 없습니다.

.

이 물음은 우리 시대의 급소를 찌릅니다. 오늘 한국 사회는 능숙함을 최고의 미덕으로 칩니다. 더 빨리 헤엄치는 법, 더 효율적으로 손을 젓는 법을 배우느라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물을 겨를이 없습니다. 교회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지난 세월 성장의 기술에는 밝아졌으나, 그 기술이 우리를 어디에 데려다 놓았는지는 잘 묻지 않습니다. 대안은 더 좋은 기술이 아닐 것입니다. 성벽 위에서 내려와 그늘 아래로 들어가는 일일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의 성적표 앞에서, 인사 발령 앞에서, 진단서 앞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손을 더 빨리 젓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미 거름 구덩이 쪽에 서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손을 멈추고, 나를 가려 주시는 그늘이 있음을 기억해 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우리 자신이 한 뼘 그늘이 되어 준다면, 그것이 4절의 하나님을 닮는 가장 정직한 방법일 것입니다.

.

팔월의 볕은 앞으로도 얼마간 더 뜨거울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 그늘을 조금 다르게 봅니다. 그늘은 볕이 없는 자리가 아니라 볕과 나 사이에 누군가 서 준 자리입니다. 그리고 그 그늘의 끝에는 산 위에 차려진 식탁이 있습니다. 거기서는 더 이상 가릴 것이 없어서, 우리 얼굴을 덮고 있던 천이 마침내 걷힐 것입니다. 눈물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자리, 눈물을 손수 닦아 주시는 손이 있는 자리 말입니다. 이 여름의 뙤약볕을 지나시는 여러분 모두가, 오늘은 그분의 그늘 아래서 숨을 고르시고 마침내 그 식탁에서 함께 웃게 될 날을 기다리며 걸어가는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평화의길벗_라종렬

.

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Sf0IO9LB1ro 



  1. 이사야 26:1-27:1 밤에 맺히는 이슬

    Date2026.08.13 By평화의길벗 Views2
    Read More
  2. 이사야 25:1-12 가리시는 손, 걷으시는 손

    Date2026.08.12 By평화의길벗 Views1
    Read More
  3. 이사야 24:14-23 해가 부끄러워지는 아침

    Date2026.08.11 By평화의길벗 Views1
    Read More
  4. 이사야 24:1-13 가지 끝에 남은 것

    Date2026.08.10 By평화의길벗 Views9
    Read More
  5. 이사야 23:1-18 칠십 년 뒤의 항구

    Date2026.08.09 By평화의길벗 Views5
    Read More
  6. 이사야 22:1-25 못에 걸린 것들

    Date2026.08.08 By평화의길벗 Views5
    Read More
  7. 이사야 21:1-17 파수꾼의 밤

    Date2026.08.07 By평화의길벗 Views5
    Read More
  8. 이사야 19:16-20:6 벗은 발로 낸 길

    Date2026.08.06 By평화의길벗 Views11
    Read More
  9. 이사야 18:1-19:15 소리 없는 볕

    Date2026.08.05 By평화의길벗 Views10
    Read More
  10. 이사야 17:1-14 반석을 치운 자리에

    Date2026.08.04 By평화의길벗 Views12
    Read More
  11. 이사야 16:1-14 대낮의 그늘

    Date2026.08.03 By평화의길벗 Views20
    Read More
  12. 이사야 14:24-15:9 대적을 위해 우는 밤

    Date2026.08.02 By평화의길벗 Views21
    Read More
  13. 이사야 14:1-23 품과 구덩이

    Date2026.08.01 By평화의길벗 Views25
    Read More
  14. 이사야 13:1-22 불 꺼진 궁전

    Date2026.07.31 By평화의길벗 Views19
    Read More
  15. 이사야 12:1-6 기쁨의 두레박

    Date2026.07.30 By평화의길벗 Views32
    Read More
  16. 이사야 11:1-16 한 싹의 혁명

    Date2026.07.29 By평화의길벗 Views45
    Read More
  17. 이사야 10:20-34 낮은 그루터기의 봄

    Date2026.07.28 By평화의길벗 Views32
    Read More
  18. 이사야 10:5-19 도끼는 자랑할 수 없다

    Date2026.07.27 By평화의길벗 Views17
    Read More
  19. 이사야 9:8-10:4 무너진 자리의 은총

    Date2026.07.25 By평화의길벗 Views42
    Read More
  20. 이사야 9:1-7 가장 깊은 밤의 빛

    Date2026.07.25 By평화의길벗 Views38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7 Next
/ 17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