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4:1-13 가지 끝에 남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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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신앙이란 모든 것이 털려 나간 자리에서도 남기신 분의 손을 알아보는 눈을 얻는 생명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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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도 중순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매미 소리가 한창 두꺼워지는 시간이지만, 새벽 공기에는 어느새 서늘한 한 겹이 섞여 듭니다. 아침 산책길에 무심코 올려다본 감나무 아래로 덜 익은 열매 몇이 떨어져 뒹굴고 있었습니다. 여름이 저를 통과해 가는 소리를 그렇게 듣습니다. 이 계절을 견디느라 마음이 마른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오래 붙들고 있던 일이 손에서 빠져나가고, 익숙하던 문이 닫히고, 무엇을 더 해 볼 여력조차 남지 않은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 모든 분의 심령 위에,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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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연안의 농부들은 감람나무를 거둘 때 장대로 가지를 두들깁니다. 온 식구가 나무 아래 천을 펴 놓고 위를 향해 장대를 휘두르면 검은 열매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집니다. 그런데 아무리 두들겨도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가장 높은 가지 끝, 하늘과 맞닿은 그 자리에는 언제나 몇 알이 남습니다. 오늘 본문은 온 땅이 흔들리는 무서운 심판의 환상으로 시작해서, 뜻밖에도 그 몇 알을 가리키며 끝이 납니다. 다 털린 뒤에 남은 것, 그것이 무엇이기에 예언자는 그 자리에 시선을 멈추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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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24장부터 27장까지를 성서학자들은 '이사야의 소묵시록'이라 부릅니다. 13장부터 23장까지 예언자는 바벨론과 모압과 애굽과 두로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심판을 선고해 왔습니다. 그런데 24장에 이르면 그 이름표가 모두 사라집니다. "…에 관한 경고"라는 익숙한 머리말도 없습니다. 대신 "보라"라는 한 마디와 함께 온 땅이 통째로 저울 위에 올려집니다. 한 나라의 흥망을 말하던 시선이 세계의 운명으로 넓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넓어진 시선의 끝에서 예언자는 여호와께서 우주의 왕이시라는 사실을 봅니다. 이름을 가진 제국들이 다 무너진 뒤에도 남는 이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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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세 절은 굉음입니다. "보라 여호와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시며 황폐하게 하시며 지면을 뒤집어엎으시고 그 주민을 흩으시리니"(사 24:1). 네 개의 동사가 연달아 터지는데, 주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여호와 한 분이십니다. 그다음 2절이 여섯 쌍의 사람을 나란히 세웁니다. 백성과 제사장, 종과 상전, 여종과 여주인, 사는 자와 파는 자, 빌려 주는 자와 빌리는 자, 이자를 받는 자와 이자를 내는 자. 그리고 여섯 번 똑같이 말합니다. 같을 것이라고. 우리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어 놓은 선들, 안뜰에 설 수 있는 자와 바깥뜰에 서야 하는 자를 가르던 그 선들이 한꺼번에 지워집니다. 흥미로운 것은 순서입니다. 제사장이 맨 앞에 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나 성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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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예언자의 대답은 뜻밖에도 땅의 이야기입니다. "땅이 또한 그 주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깨뜨렸음이라"(사 24:5). 땅이 스스로 더러워진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사는 사람들 아래서 더러워졌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밟고 선 자리가 사람 때문에 병드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율법과 율례는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그 돌판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세상 어느 민족도 그 돌판을 받은 적은 없지만, 약한 자를 짓밟지 말라는 것쯤은 누구나 압니다. 이웃의 몫을 삼키지 말라는 것쯤은 누구나 압니다. 아는 만큼 책임이 있습니다.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못 본 척한 세월이 땅을 저주에 넘겨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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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세 절에서 소리가 하나씩 꺼집니다. "새 포도즙이 슬퍼하고 포도나무가 쇠잔하며 마음이 즐겁던 자가 다 탄식하며"(사 24:7). 소고가 멎고 수금이 멎고 흥겨운 함성이 끊어집니다. 그런데 가장 아픈 대목은 그다음입니다. 술이 아예 없어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있는데 쓰다고 말합니다. 축제에 기쁨을 더해 주던 잔을, 이제는 견디기 힘든 현실을 잠시 잊으려고 듭니다. 같은 잔인데 마시는 마음이 달라진 것입니다. 심판의 가장 깊은 층은 잔치의 도구를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잔치의 마음을 잃는 것입니다. 우리도 압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이 살아가는데 아무 맛이 없는 날들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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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절부터 12절까지는 폐허가 된 성읍의 풍경입니다. 개역개정이 '약탈을 당한 성읍'이라 옮긴 말은 본래 '혼돈의 성읍'에 가깝습니다. 여기 쓰인 단어는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의 창조로 정복된 태초의 혼돈을 가리키던 바로 그 말입니다. 창조가 거꾸로 감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마다 닫혀서 들어가는 자가 없으며"라는 문장은 사람들이 두려워 문을 걸어 잠갔다는 뜻이 아닙니다. 폐허가 되어 들어갈 길 자체가 없어졌다는 뜻입니다. 문은 잠긴 것이 아니라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거리에는 포도주를 찾는 부르짖음만 남습니다. 시몬 베유는 은총은 채우는 것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빈자리가 있는 곳에만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무서운 말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가득 채우고 있는 한 은총이 들어설 틈이 없다는 뜻이니까요. 그런데 오늘 본문의 순서를 따라가다 보면, 하나님께서 땅을 공허하게 하신다는 그 첫 문장이 파괴의 선언인 동시에 자리를 만드는 일이었음을 보게 됩니다. 비움은 끝이 아니라 준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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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13절이 놓입니다. "세계 민족 중에 이러한 일이 있으리니 곧 감람나무를 흔듦 같고 포도를 거둔 후에 그 남은 것을 주움 같을 것이니라"(사 24:13). 학자들은 이 그림이 심판의 철저함을 말한다고 봅니다. 옳은 말입니다. 다 털리고 몇 알밖에 안 남았다는 뜻이니까요. 그러나 성경을 계속 읽어 온 사람은 이 문장에서 다른 것을 함께 봅니다. 이스라엘의 율법은 감람나무를 떨 때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 두라고 명했습니다. 남은 것은 농부가 깜빡 잊은 부스러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처음부터 지정해 두신 몫이었습니다. 동양의 옛사람들은 이것을 석과불식이라 불렀습니다. 아무리 지독한 흉년이 들어도 이듬해 봄에 심을 씨앗만은 끝내 먹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배가 고파 뒤틀리는 밤에도 그 한 알을 남겨 두는 손이 있어서 다음 봄이 옵니다. 이사야서는 첫 장부터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는 이름을 안고 걸어온 책입니다. 다 흔들린 뒤에도 가지 끝에 무엇인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먹지 않고 남겨 두신 하늘의 씨앗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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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에게 이 말씀이 어떻게 다가올까요. 우리는 흔들림 앞에서 자꾸 크기를 셉니다. 얼마나 잃었는지, 얼마나 남았는지를 계산합니다. 그리고 남은 것이 너무 적어서 다시 시작할 수 없다고 결론을 냅니다. 그러나 본문은 남은 것의 크기를 한 번도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남았다고만 말합니다. 신앙은 잔고를 세는 일이 아니라 남기신 분을 알아보는 일입니다. 한국 교회가 지금 겪고 있는 흔들림도 그렇습니다. 숫자가 줄고 사회적 신뢰가 흔들리는 시간을 지나며 우리는 자꾸 잃은 것의 목록을 만듭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손에 남아 있는 것, 곧 말씀 앞에 앉는 아침 한 시간과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몇 사람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다음 계절의 씨앗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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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과 일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업이 무너진 자리에서 남은 것은 신용 한 조각일 수 있고, 건강을 잃은 자리에서 남은 것은 옆을 지키는 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잃은 것의 목록 대신 남은 것의 목록을 적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목록의 맨 위에 이름 하나를 적어 두시기 바랍니다. 나를 이만큼 남겨 두신 분의 이름입니다. 곁에 다 잃은 것 같은 얼굴이 보이거든, 그에게 남아 있는 한 가지를 찾아 이름 붙여 주십시오. 그 한마디가 무너진 성문 자리에 다시 문을 다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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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의 감나무 아래에도 떨어진 열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고개를 들면 아직 가지에 매달린 것들이 있습니다. 감나무는 가지가 약해 잘 부러지는 나무입니다. 그런데 그 부러진 자리로 빗물이 스며들어 오래 삭으면 나무 속에 검은 무늬가 앉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상처를 품은 나무를 먹감나무라 부르며 가장 귀한 목재로 씁니다. 흔들린 자리가 그저 손실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무가 먼저 알고 있는 셈입니다.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떨어진 것을 세는 법이 아니라 남은 것을 알아보는 눈일 것입니다. 온 땅을 흔드시는 손이 동시에 가지 끝을 붙드시는 손임을 믿는 여러분 모두가, 이 늦여름을 지나 다음 계절의 열매로 서는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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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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