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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8:1-19:15 소리 없는 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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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신앙이란 하나님을 더 크게 부르는 법을 배우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조용히 일하고 계신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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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열기가 정수리로 곧장 쏟아져 내리는 팔월 초입입니다. 아스팔트는 하루 종일 달구어져 저녁이 되어도 식을 줄을 모르고, 잎사귀들은 마지막 물기까지 끌어올리느라 잔뜩 힘을 준 채 늘어져 있습니다. 이런 날에는 세상이 온통 소리로 가득한 것 같습니다. 매미 소리, 에어컨 실외기 도는 소리, 급하게 울리는 알림음. 그러나 정작 이 계절에 열매를 익히는 것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볕입니다. 볕은 말이 없습니다. 다만 매일 같은 자리에 서서 포도알을 채워 갈 뿐입니다. 이 뜨거운 날들을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견디고 계신 모든 분의 심령 위에, 주님의 다사로운 평화가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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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소리로 시작합니다. "슬프다 구스의 강 건너편 날개 치는 소리 나는 땅이여"(사 18:1). 예언자가 바라본 그 땅은 분주했습니다. 갈대로 엮은 가장 빠른 배를 물에 띄우고, 사절들을 급하게 강 저편으로 보내고 있었습니다. 산 위에는 기치가 오르고 나팔이 울렸습니다. 앗수르라는 거대한 그림자가 다가오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소란한 화면 위로, 조금도 서두르지 않는 한 음성이 얹힙니다. "내가 나의 처소에서 조용히 감찰함이 쬐이는 일광 같고 가을 더위에 운무 같도다"(사 18:4). 온 세상이 배를 띄우는 동안, 하나님은 볕처럼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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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이 울려 퍼진 때는 주전 팔 세기 후반, 앗수르가 서쪽으로 밀고 내려오면서 작은 나라들이 하나씩 삼켜지던 시기였습니다. 남방의 신흥 강국 구스는 애굽을 손에 넣은 뒤 예루살렘 왕실에 사절을 보내 함께 맞서자고 재촉했습니다. 유다의 정치인들에게 그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제안이었습니다. 홀로 버틸 수 없다면 힘 있는 이웃과 손을 잡는 것 말고 무슨 수가 있었겠습니까. 예언자가 문제 삼은 것은 계산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정교한 계산표에서 오직 한 줄, 하나님의 이름만이 빠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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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고요를 설명하기 위해 본문이 고른 비유가 참으로 뜻밖입니다. 쬐이는 일광과 가을 더위의 운무. 둘 다 소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둘 다 열매를 익힙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이 침묵하시면 일하지 않으신다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볕이 아무 말 없이 포도알을 채우듯, 하나님의 침묵은 부재가 아니라 성숙의 다른 이름입니다. 응답이 없는 것 같은 그 여름 한복판에서, 실은 무언가가 조용히 익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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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낫이 등장하는 시점이 놀랍습니다. "추수하기 전에 꽃이 떨어지고 포도가 맺혀 익어갈 때에 내가 낫으로 그 연한 가지를 베며"(사 18:5). 다 익어 이제 거두기만 하면 되는 그 순간에 잘립니다. 제국이 스스로 완성되었다고 확신하는 정점에서 단 한 번의 낫질로 정리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계획표에는 언제나 '조금만 더'가 있지만, 하나님의 계획표에는 정확한 한 번이 있습니다. 벼가 빨리 자라라고 논의 벼 포기를 하나씩 뽑아 올렸다가 결국 뿌리를 상하게 했다는 옛사람의 어리석음이 남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도 자주 하나님의 때를 앞질러 우리 손으로 열매를 당겨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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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은 『팡세』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방 안에 조용히 머물 줄 모르는 데서 비롯된다." 그는 인간이 사냥과 놀이와 전쟁으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몰아가는 이유를 자기 존재의 공허를 마주하지 않으려는 두려움에서 찾았습니다. 갈대 배를 띄우던 그 손도 실은 두려움의 손이었을 것입니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서, 그래서 배를 띄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움에서 나온 분주함은 언제나 우리를 더 멀리 데려갈 뿐,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가지 못합니다. 볕은 서두르지 않기에 익힐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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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19장은 유다가 가장 사랑하던 요새, 애굽의 몰락을 그립니다.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임하시자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고 사람들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습니다(사 19:1). 그런데 심판의 첫 장면이 뜻밖에도 외부의 침략이 아닙니다. "그들이 각기 형제를 치며 각기 이웃을 칠 것이요 성읍이 성읍을 치며"(사 19:2). 밖에서 온 적이 아니라 안에서 자란 균열이 나라를 무너뜨립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종종 새로운 재앙을 더하시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품고 있던 것을 그대로 자라게 두시는 방식으로 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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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장면은 강이 마르는 일입니다. 애굽에게 나일은 단순한 하천이 아니라 신이었고 보험이었고 미래였습니다. 그 강이 잦아들자 어부가 탄식하고 그물 치는 자가 피곤해지며, 마침내 "그의 기둥이 부서지고 품꾼들이 다 마음에 근심하리라"(사 19:10)로 단락이 닫힙니다. 예언자가 나라의 몰락을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오늘 일감을 잃은 사람들의 얼굴로 그려 낸다는 점이 마음을 붙듭니다. 기둥은 부서지고 품꾼은 근심합니다.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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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장면은 지혜의 붕괴입니다. 소안과 놉의 방백들, 곧 고대 세계의 두뇌들이 어리석어집니다. "여호와께서 그 가운데 어지러운 마음을 섞으셨으므로"(사 19:14). 섞으셨다는 말은 포도주에 향료를 섞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곧바로 술 취한 자의 이미지가 따라옵니다. 취한 사람은 자기가 취한 줄 모릅니다. 비틀거리면서도 스스로는 똑바로 걷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지식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분별이 사라진 것입니다. 정보는 넘치는데 방향은 잃어버린 우리 시대의 초상이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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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 서 있습니까. 오늘 한국교회가 겪는 아픔의 상당 부분도 밖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냉대보다 우리 안의 분열이 더 깊이 우리를 상하게 했습니다. 성읍이 성읍을 치듯 교단이 교단을, 교회가 교회를 치는 동안 세상은 우리를 신뢰할 이유를 하나씩 잃어 갔습니다. 회복의 출발점은 형편이 나아지는 데 있지 않고, 형제를 치던 손을 내려놓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계절일수록 먼저 줄여야 할 것과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을 구별해야 합니다. 기둥이 부서질 때 가장 깊이 다치는 사람은 언제나 품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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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삶에서는 아주 작은 연습 하나를 권하고 싶습니다.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하루의 여백을 두는 것입니다. 다급한 문자 앞에서, 계약서 앞에서, 자녀의 진로 앞에서 즉답 대신 하루의 침묵을 하나님께 드려 보십시오. 그 하루는 비어 있는 시간이 아닙니다. 볕과 이슬이 열매를 익히는 시간입니다. 사막에서 자라는 풀은 한 방울의 물을 찾아 칠흑 같은 땅속을 끝까지 더듬어 내려간다고 합니다. 눈에 보이는 강이 아직 넉넉할 때 오히려 말씀과 기도라는 깊은 수맥으로 실뿌리를 내려 두는 것, 그것이 마름의 계절을 건너는 유일한 준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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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마지막 시선은 뜻밖에도 예배로 향합니다. 두려움의 대상이던 그 백성이 예물을 들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 시온 산에 이릅니다(사 18:7). 낫은 잘라 내기 위해서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결국 거두기 위해 들립니다. 이 여름의 볕도 그렇습니다. 뜨겁고 길고 소리가 없지만, 그 볕 아래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익어 가고 있습니다. 매미 소리가 사그라들고 아침 공기가 서늘해질 그날까지, 서둘러 배를 띄우는 대신 잠잠히 그분의 처소를 바라보는 자리에서, 소리 없는 볕 아래 익어 가는 평화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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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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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cfynr69JX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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