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01:01-09 문제투성이 교회를 품어내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
바울은 세속적인 가치관과 온갖 영적, 도덕적 문제로 얼룩진 고린도 교회를 향해 편지를 쓰면서, 먼저 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성도'라는 영광스러운 정체성을 상기시킵니다. 이어서 바울은 그들의 윤리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풍성한 은사와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미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날에 그들을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지켜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
# 역사 및 문화적 배경 : 1세기 고린도는 동서양의 무역이 교차하는 상업적 번성 도시로, 부와 사치, 그리고 타락이 극에 달한 곳이었습니다. 특히 아프로디테 신전을 중심으로 한 성적인 부도덕성이 만연하여 '고린도인처럼 산다'는 말이 '음란하게 산다'는 뜻으로 통용될 정도였습니다. 또한 헬라 철학과 수사학이 발달하여 사람들은 '지혜'와 '말의 화려함'을 숭상했고, 헬라 이원론(육은 악하고 영은 선하다)의 영향이 팽배했습니다.
# 신학 및 정경적 배경 : 이러한 세속적 문화는 고린도 교회 내에 여과 없이 들어왔습니다. 교인들은 철학 학파를 따르듯 자신에게 세례를 준 사역자나 설교에 능한 자를 추종하며 파당을 지었고(분파 문제), 이원론의 영향으로 몸으로 짓는 음행을 가볍게 여기거나 몸의 부활을 부정하기도 했습니다. 고린도전서는 이렇듯 총체적 난국에 빠진 '문제 교회에 바울이 제시하는 목회적 답안지'입니다. 바울은 임기응변적 처방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신학적 본질을 통해 교회의 모든 실천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 묵상 포인트 : 삼위일체 하나님은 죄 많고 연약한 우리를 은혜로 부르사 거룩한 성도로 삼으시고, 당신의 신실하심(미쁘심)으로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시며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온전한 사귐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
# 1-3절 부르심을 입은 하나님의 교회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부름받은 사도로 소개하며,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을 향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자 '각처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이라고 칭하며 은혜와 평강을 기원합니다.
.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하나님의 교회(ἐκκλησία τοῦ θεοῦ)"라는 독특한 표현을 쓴 것은 매우 의도적입니다. 이는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총회(카할)를 지칭할 때 사용된 칠십인역의 번역을 차용한 것으로, 세속적인 모임이 아니라 구약 이스라엘의 연속선상에 있는 거룩한 공동체임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타락한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거룩하여지고'는 수동태로 쓰여, 그들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거룩해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 사역의 결과로 거룩함을 부여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온갖 분쟁과 음행으로 얼룩진 그들이지만, 바울은 교회를 인간의 관점이나 도덕적 수준으로 평가하지 않고 철저히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나아가 "각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을 포함시킴으로써, 파당과 지역주의에 갇힌 고린도 교인들의 시야를 우주적 보편 교회로 확장시킵니다. 교회를 향한 바울의 이 따뜻하고도 단호한 선언은, 흠 많은 교회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당신의 소유로 삼으시는 주님의 뜨거운 애정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습니다.
.
오늘날 대한민국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많은 비판과 조롱을 받고 있습니다. 세속화, 물질주의, 분열과 도덕적 타락은 1세기 고린도 교회의 자화상인 동시에 21세기 한국 교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로 인해 많은 지성적인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냉소적이 되거나 상처를 받고 공동체를 떠나 '가나안 성도'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우리가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교정할 것을 촉구합니다. 교회의 본질은 사람의 행위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있습니다. 우리는 정치가 극단으로 나뉘고 혐오가 난무하는 한국 사회 속에서, 교회를 내 마음에 드는 사람들의 사교 모임으로 전락시켜서는 안 됩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도 누군가의 연약함과 실패를 볼 때 판단하고 정죄하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부르셨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비판은 이 영광스러운 정체성의 토대 위에서, 사랑과 회복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목회적 권면'이 되어야 합니다.
*
# 4-9절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한 감사와 소망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주어진 구변과 지식 등의 풍성한 은사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들을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로 부르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지켜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
이 감사 단락에서 바울의 목회적 심정과 신학적 깊이가 절정에 달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등에 편지할 때 보통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 등 그들의 '윤리적 삶과 신앙의 열매'를 인하여 감사했습니다(살전 1:3). 그러나 고린도전서의 감사에는 이러한 윤리적 칭찬이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칭찬할 만한 윤리적 삶의 모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구변(말)과 지식이 풍성하다는 이유로 교만해져 파당을 지었고, 은사를 남용하여 예배를 무질서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합니다. 그 감사의 근거는 교인들의 수준이 아니라 '그들에게 거저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은사', 그리고 '하나님의 미쁘심(신실하심)'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껍데기뿐인 영성에 취해 육신적인 삶을 사는 그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koinonia) 하나님은 미쁘시도다"라는 진리에 닻을 내립니다. 구원의 궁극적인 보증은 연약한 인간의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부르신 자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투성이 교회를 향한 바울의 위대한 영성이자, 오늘날 무너진 교회를 다시 세우시는 삼위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
현대 한국 사회는 '능력주의'와 '업적주의'에 깊이 함몰되어 있습니다. 스펙과 결과로 사람을 줄 세우고, 한 번의 실수로 사람을 매장해 버리는 차가운 시대입니다. 불행히도 교회마저 이러한 세상의 지혜와 가치관을 도입하여, 성도의 영성을 그가 가진 은사나 사회적 지위, 헌신의 양으로 평가하는 '세속화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의 감사를 통해 진정한 영성이 무엇인지 배워야 합니다. 그것은 문제투성이인 배우자, 자녀, 혹은 교회의 지체를 바라볼 때, 그들의 흠결 너머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감사하는 눈을 가지는 것입니다. 내 삶이 무너져 내린 것 같고 잦은 죄로 넘어질지라도, 나를 그리스도와의 사귐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미쁘심(신실하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광양사랑의교회를 비롯한 이 땅의 교회들이 세상의 지표로 경쟁하는 것을 멈추고, 십자가의 복음 앞에서 우리의 무자격함을 인정하며, 오직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만을 붙들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을 치유할 영적 능력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
# 거둠의 기도
신실하시고 자비로우신 삼위일체 하나님,
세상의 화려한 지혜와 이기적인 욕망에 휩쓸려,
십자가의 도를 망각하고 육신에 속한 자처럼 살아가는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주님 앞에 내어놓습니다.
1세기 고린도 교회처럼, 분열과 세속화로 얼룩져 조롱받는
이 땅의 교회를 바라보며 탄식하지만,
오늘 사도 바울의 눈물을 통하여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을 봅니다.
우리의 행위나 공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를 '하나님의 교회, 거룩한 성도'로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은사와 풍요가
나를 높이는 교만의 도구가 되지 않게 하시고,
오직 교회를 세우고 세상을 섬기는 사랑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연약함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영광스러운 사귐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미쁘심을 굳게 신뢰합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 광양사랑의교회와 한국 교회가
책망할 것이 없는 순결한 신부로 지켜지게 하시며,
어두운 세상 속에 십자가의 생명을 흘려보내는
거룩한 소명을 다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자 반석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