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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50:15-26 폭력의 사슬을 끊어 낸 샬롬의 완성, 그리고 약속을 향한 뼈의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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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야곱이 죽자,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과거의 원한을 품고 복수할까 두려워하며 "당신의 형들이 당신에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는 아버지의 유언(거짓일 가능성도 있는)을 전하며 요셉 앞에 엎드려 스스로 종이 되겠다고 자청합니다(15-18절). 요셉은 울음을 터뜨리며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라며 그들을 안심시키고 간곡히 위로하며 봉양할 것을 약속합니다(19-21절). 이후 요셉은 애굽에서 110세를 살며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삼 대를 봅니다(22-23절). 죽음이 임박하자 요셉은 형제들에게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권고하시고)…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고 맹세시킨 후, 110세에 죽어 애굽에서 입관됩니다(24-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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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문화적 배경으로 살펴보면, 고대 애굽(이집트)에서 '110세'는 가장 이상적이고 완벽한 장수의 축복을 상징하는 나이였습니다. 요셉이 110세를 살았다는 것은 그가 애굽 제국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과 지혜, 축복을 모두 누렸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애굽은 죽은 자의 영생을 위해 미라를 만들고 거대한 무덤을 짓는 문화였으나, 요셉은 애굽의 최고위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시신을 애굽의 묘지에 영구 안치하지 말고 '해골'의 상태로 보관했다가 가나안으로 가져가라는 파격적인 유언을 남깁니다.

# 신학적·구속사적 배경으로는, 요셉의 고백인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는 창세기 전체의 신학을 요약하는 핵심 구절이며, 신약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는 복음의 원형입니다. 요셉이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리니(paqad, 파카드)"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셔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실 출애굽(Exodus) 사건에 대한 위대한 예언적 선포입니다.

# 송민원의 '수평적 읽기' 관점에서 보면, 본문은 17년 전 45장에서 이미 눈물로 화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사라지자 다시 권력자(요셉)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형들의 병든 내면(불신)을 보여줍니다. 수평적 폭력의 가해자가 겪는 죄책감의 감옥이 얼마나 깊은지를 증명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두 번째 눈물은 바로 이 낫지 않은 상처에 대한 연민의 눈물입니다. 요셉은 이 한계를 뛰어넘어, 인간의 악한 권력 의지와 폭력을 하나님의 수직적 섭리(생명 구원)로 덮어버리며 역기능 가정에 완전한 '샬롬'의 종지부를 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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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8절 치유되지 않은 죄책감과 불신의 감옥 : 17년의 세월도 녹이지 못한 두려움

하나님은 우리가 죄책감의 감옥 속에서 신음할 때, 십자가의 완전한 용서로 우리 내면의 깊은 두려움을 몰아내시는 긍휼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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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죽자,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라아, רָעָה)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요셉에게 사람을 보내어 아버지의 유언을 전하며 용서를 구하고, 친히 요셉 앞에 엎드려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라고 자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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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5장에서 요셉은 형들을 안고 통곡하며 완벽한 화해를 선언했습니다. 그 후 애굽의 고센 땅에서 무려 17년을 함께 평안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라는 거대한 바람막이가 사라지자마자, 형들의 내면에 숨어있던 극심한 공포가 다시 폭발합니다. 송민원의 수평적 읽기가 고발하는 장면이 바로 이것입니다. 죄(수평적 폭력)는 시간만 지난다고, 환경이 좋아졌다고 저절로 치유되지 않습니다. 형들은 요셉이 가진 제국의 2인자라는 '권력'과 자신들의 과거 '악행'을 결부시켜, 요셉이 언제든 자신들을 심판하고 희생양 삼을 수 있다고 단정했습니다. 그들은 요셉의 은혜를 믿지 못했고, 어쩌면 아버지의 권위를 빌려 목숨을 구걸하려 했습니다. 가해자가 겪는 지독한 죄책감과 불신의 지옥입니다. 요셉이 그들의 말을 듣고 "울었더라"는 것은, 17년이 지나도록 십자가의 용서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전히 죄책감의 노예로 살아가는 형들의 영적 빈곤과 상처를 향한 깊은 탄식과 연민의 눈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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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운데서도 이런 감옥은 얼마나 자주, 얼마나 은밀히 우리를 옭아매고 있습니까? "저 사람이 겉으로는 용서했다 해도, 기회만 되면 내 약점을 잡을 거야"라는 의심의 방에 스스로를 가두고 살지는 않습니까? 진정한 화해는 용서하는 자의 은혜뿐만 아니라, 용서받은 자가 그 은혜를 온전히 신뢰하고 죄책감의 사슬을 끊어낼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우리의 모든 허물을 이미 덮으셨음을 확신하고, 더 이상 율법적 공포와 불신에 종노릇 하지 않는 참된 샬롬의 자유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 단락이 우리에게 남기는 선언을 함께 마음에 새깁니다. 하나님은 죄책감의 감옥 속에 갇힌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주님의 완전한 용서 안에서, 두려움의 사슬을 끊고 자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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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1절 복수의 칼을 꺾는 신학적 재해석 : 악을 선으로 바꾸신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은 인간의 끔찍한 배신과 악행조차도 완벽하게 직조하사 기어이 만민을 구원하는 선으로 역전시키시며, 우리를 원수 갚는 자가 아니라 생명을 먹이는 자로 부르시는 전능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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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드린 형들에게 요셉은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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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전체의 구속사를 꿰뚫는 가장 웅장하고 신학적인 절정입니다. 요셉의 첫 반응은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하타하트 엘로힘 아니, הֲתַחַת אֱלֹהִים אָנִי)"입니다. 인간의 가장 큰 교만은 자신이 선악의 심판자가 되어 타인에게 원수를 갚으려는, 곧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하려는 권력 의지입니다. 요셉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지만, 복수라는 달콤한 유혹을 스스로 꺾어버리고 자신을 철저히 피조물의 자리로 낮춥니다. 죄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과 심판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임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어서 요셉은 창세기의 결론을 선포합니다. "당신들은 악을 꾀하였으나(하샤브, חָשַׁב),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레토바, לְטֹבָה) 바꾸셨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악행(수평적 폭력)을 부정하거나 축소하지 않았습니다. 악은 명백한 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수직적 섭리는 인간의 그 지독한 악마저도 재료로 삼아, 기어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는 선"으로 완벽하게 역전시키셨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로마서 8장 28절에서 선포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의 구약적 원형입니다. 요셉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가해자들에게 징벌 대신 "당신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라고 선언하며, 수평적 폭력을 대속과 섬김의 샬롬으로 완벽하게 극복해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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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 나를 짓밟고 억울하게 만들 때입니다. 내 손에 힘이 생기면 반드시 갚아주겠다고 이를 갈곤 합니다. 그러나 복수심은 결국 나 자신과 공동체를 파멸시킬 뿐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라는 요셉의 거룩한 포기 선언이 우리의 입술에 회복되어야 합니다. 나를 해하려 했던 자들의 악행 너머에서 그 고난을 빚어 나를 단련하시고 더 많은 생명을 살리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를 바라보십시오. 진정한 신앙의 승리는 원수를 쳐부수는 것이 아니라, 그 원수와 그의 자녀들까지 책임지고 먹여 살리는 영적 가장으로 성숙해지는 십자가의 사랑에 있습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섭리 앞에, 복수의 칼을 내려놓고 생명을 먹이는 자로 일어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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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23절 제국 안에서 누리는 언약의 번성 : 세속의 한복판에서 이어지는 신앙의 계보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자리가 비록 세속의 제국일지라도, 그 안에서 믿음을 지키며 다음 세대를 신앙으로 길러내는 거룩한 번성의 축복을 허락하시는 은혜의 공급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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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은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주하여 110세를 살며, 에브라임의 자손 삼 대를 보았고,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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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애굽의 지혜 문학에서 110세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인 수명이자, 신의 축복을 받은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영광의 상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17세에 구덩이에 던져지고 13년을 노예와 죄수로 썩었던 요셉의 억울한 세월을 보상하사, 제국의 한복판에서 애굽인들도 흠모할 만한 최고의 영광과 장수의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요셉이 에브라임의 자손 삼 대를 보았고 그들을 "슬하에서 양육(직역: 요셉의 무릎 위에서 태어남)"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창세기 1장 28절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원초적 창조 언약이 이방의 땅 애굽에서도 중단 없이 신실하게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요셉은 비록 화려한 세속 제국에 둘러싸여 살았지만, 애굽의 우상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다음 세대를 신앙의 무릎 위에서 철저히 길러낸 언약의 계승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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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신분은 때로 연약해 보일 수 있으나, 하나님은 약속을 붙드는 자에게 세상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영광과 생명의 풍성함을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생업에 충실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감사함으로 누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의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사명은 내게 주신 성공과 평안을 바탕으로 우리 자녀들과 교회의 다음 세대를 내 신앙의 무릎 위에 앉혀놓고 거룩한 언약 백성으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세속의 문화에 자녀들을 빼앗기지 않고, 생육하고 번성하는 거룩한 말씀의 계승이 우리 가정과 공동체마다 풍성하게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세속의 애굽 한복판에서도 신앙의 무릎 위에 다음 세대를 앉혀 언약을 이어가는 거룩한 번성의 삶을 살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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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26절 권고하심(Paqad)의 대망과 뼈의 소망 : 화려한 제국을 거부한 나그네의 위대한 유언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의 썩어질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반드시 찾아오사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실 신실한 약속만을 최후의 유산으로 남기게 하시는 소망의 주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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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 형제들에게 유언합니다.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고 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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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의 거대한 서막이 닫히는 장엄하고도 묵직한 결론입니다. 요셉은 애굽 제국의 2인자였습니다. 피라미드와 같은 거대한 묘지에 화려하게 묻혀 영원한 부귀를 기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애굽을 자신의 영원한 집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24절과 25절에 반복되는 핵심 단어는 "돌보시고(히브리어: Paqad, פָּקַד)"입니다. 이 단어는 '권고하다, 방문하다, 개입하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 당신의 백성들의 삶에 강력하게 찾아오시는 구원 행동을 의미합니다. 인간 요셉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지만, 이스라엘의 진정한 목자이신 하나님은 반드시 그들을 찾아오사 약속의 땅(가나안)으로 이끌어 내실 출애굽을 확신한 것입니다. 요셉은 이 확실한 소망의 증거로 "내 해골(에첨, עֶצֶם)을 메고 올라가라"는 엄숙한 맹세를 남깁니다. 창세기는 빛나는 영광의 성취로 끝나지 않고, 미라가 되어 관에 갇힌 요셉의 침묵으로 400년의 기다림을 예고하며 끝이 납니다. 죽은 자의 '해골'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풍요에 취해 잠들려 할 때마다, "여기는 우리의 본향이 아니다. 하나님의 파카드(방문하심)를 기다리라!"고 소리치는 가장 강력하고 소리 없는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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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마지막 순간,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겨주고 떠나야 합니까? 세상 사람들은 통장의 잔고와 썩어질 애굽의 피라미드를 남기려 발버둥 치지만, 거룩한 나그네로 부름받은 성도는 다릅니다. 우리는 후손들에게 "비록 내 육신은 여기서 끝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돌보사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실 것이다"라는 임마누엘의 약속을 유산으로 물려주어야 합니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세상의 안락함에 영혼의 닻을 내리지 마십시오. 언제든 주님이 "가자" 하시면 메고 떠날 수 있는 신앙의 해골, 곧 약속에 대한 갈망을 가슴에 품고 사십시오. 부활의 그날, 권고하시고 방문하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고대하며, 오늘을 영원한 소망으로 살아내는 거룩한 나그네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화려한 애굽을 거부하고 해골 하나를 약속의 땅으로 보낸 나그네의 소망으로, 오늘도 주님의 파카드(방문하심)를 기다리며 살아가십시오.

*

【창세기 묵상을 마무리하며 : 수평적 읽기가 남긴 질문】

창세기는 완벽한 인간들의 성공 서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깊이 상처 입고, 서로 짓밟고, 짓밟혔던 불완전한 인간들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어떻게 조금씩 치유되어 가는지를 담은 길고도 정직한 기록입니다. 송민원의 수평적 읽기는 바로 그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요청합니다. 창세기의 인물들은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용서를 받고도 17년이 지나 또다시 두려움에 무너진 형들이었고, 눈물로 화해했던 그 자리에서도 여전히 불신의 씨앗을 가슴에 품고 있던 죄인들이었습니다. 이것이 수평적 폭력(희생양 메커니즘)의 진짜 무서움입니다. 한 번의 화해 선언이 수십 년 묵은 죄책감의 감옥을 단번에 무너뜨리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두 번째 눈물은 첫 번째 눈물보다 더 깊고 더 슬픕니다. 그것은 용서했음에도 용서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자들을 향한 연민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요셉은 수평적 복수의 칼을 꺾고, 인간의 악을 하나님의 선으로 재해석하며, 관에 갇힌 해골 하나를 약속의 땅을 향해 내밀었습니다. 인간의 수평적 폭력은 하나님의 수직적 섭리에 의해 완전히 압도됩니다. 이것이 창세기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던지는 질문입니다. 당신은 지금 애굽의 화려한 안락함 안에 영혼을 정착시키고 있습니까, 아니면 해골 하나를 붙들고 파카드(방문하심)를 기다리는 나그네로 살고 있습니까? 창세기는 이 질문을 가슴에 묻고 출애굽기를 펼치라고 말합니다.

*

# 거둠의 기도

인간의 악독한 의도와 험악한 세월의 수평적 상처마저도 

기어이 합력하여 선으로 바꾸사, 많은 생명을 구원하시는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과거의 죄책감과 불신에 사로잡혀 

두려워 떨던 요셉의 형들처럼, 우리 내면에도 온전히 치유되지 않은 

율법적 공포와 남을 향한 의심이 있음을 고백하오니, 

십자가의 완전한 용서로 우리를 덮어 주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라며 복수의 칼을 꺾고 형제들을 보듬었던 

요셉의 눈물이 오늘 우리의 눈물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공동체 안에 나를 해하려 했던 원수까지도 살려내고 봉양하는 

십자가 대속의 샬롬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비록 우리가 세속의 문화가 가득한 애굽과 같은 세상 한복판에 살아가지만, 

결코 이 땅의 안락함에 영혼을 동화시키지 않게 하옵소서. 

일상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번성하되, 

우리의 시선은 늘 영원한 본향인 약속의 땅을 향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죽음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권고하심(방문하심)을 확신하며 

자신의 해골을 약속의 땅으로 메고 가라 명했던 

요셉의 그 위대한 나그네 신앙을 우리 가슴에 깊이 새기기 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썩어질 세상의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는 거룩한 약속의 유산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신앙의 거장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창세기의 마지막 페이지가 관에 갇힌 해골의 침묵으로 닫히듯, 

우리의 삶도 이 땅의 화려한 성취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파카드(방문하심)를 향한 고요한 기다림으로 마무리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매일의 일상에서 "하나님이 반드시 돌보신다"는 

그 한 문장의 확신이 우리 신앙의 뼈대가 되게 하시고, 

그 뼈대 위에 다음 세대의 신앙이 살과 숨결로 덧입혀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구속자가 되사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마침내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실 우리의 참된 소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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