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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8:8-22 어긋맞긴 두 손에 담긴 하늘의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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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신앙이란, 힘과 서열로 인간의 가치를 매기는 세상의 폭력적 수직 질서를 단호히 거부하고, 하나님의 천상 회의에 참석하여 내 낡은 생각을 철저히 교정받는 영적 엎드림을 통해, 자격 없는 자에게 거저 주어지는 하나님의 맹렬한 은혜의 손길 아래 서로를 동등하게 껴안는 생명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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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두 손은 참으로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무언가를 더 움켜쥐려 혈안이 된 탐욕의 손, 타인을 밀어내고 높은 곳으로 오르려는 배제의 손, 상처 입은 이를 보듬는 연민의 손까지, 우리가 내미는 손의 방향이 곧 우리 존재의 현주소일 것입니다.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나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에 지쳐 진리의 길을 묻고 계신 분들, 그리고 풀리지 않는 삶의 모순 앞에서 회의하며 서성이는 모든 분의 심령에, 우리의 약함조차 다사롭게 감싸 안으시는 주님의 평화가 스며들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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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은 힘과 능력, 태생적 조건에 따라 서열을 매기고 강자만이 축복의 중심을 차지하는 피라미드적 질서를 강요합니다. 창세기 48장의 풍경은, 일평생 그 지독한 서열과 축복을 쟁취하기 위해 싸워왔던 늙은 야곱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어떻게 세상의 수직적 질서를 완전히 뒤집어엎는지를 가장 경이롭게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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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둔 야곱에게 요셉이 두 아들을 데리고 나아옵니다. 요셉은 당시의 상식과 제국의 논리에 따라 장남 므낫세를 아버지의 오른손 쪽에, 차남 에브라임을 왼손 쪽에 세웁니다. 장자가 더 큰 축복과 권력을 독점하는 것은 고대 근동의 절대적인 수직 질서였습니다. 그러나 눈이 어두운 야곱은 굳이 팔을 어긋맞껴 오른손을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왼손을 장남 므낫세의 머리에 얹습니다. 기득권의 질서에 익숙했던 요셉은 불쾌하게 여기며 아버지의 손을 바로잡으려 합니다. "아버님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우수를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그러나 야곱은 단호히 거절합니다.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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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를 수평적 시선으로 관통해 보면, 그것은 장자권을 차지하기 위해 형제가 서로를 짓밟는 끔찍한 폭력의 역사였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고, 이스마엘과 이삭이 갈라섰으며, 야곱 자신도 형 에서를 속여 쫓겨났고,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노예로 팔아넘겼습니다. 축복은 오직 한 사람의 몫이라는 승자독식의 룰이 형제들을 원수로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생의 벼랑 끝에서 "나도 안다"라고 읊조리며, 그 피비린내 나는 폭력의 고리를 자신의 엇갈린 두 손으로 끊어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태생적 서열이나 자격, 능력의 순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위대한 혁명의 선언입니다. 놀랍게도 창세기의 마지막 세대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이 엇갈린 축복 앞에서 서로 다투지 않습니다. 서열을 허무는 은총의 교차로에서, 형제가 서로를 죽이지 않아도 나란히 하나님의 사랑을 누릴 수 있는 참된 샬롬이 비로소 완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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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견고한 세상의 수직 질서를 부수고 자격 없는 자에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논리에 항복하기 위해 우리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영적 호흡이 바로 참된 묵상입니다. 조병수 교수는 묵상을 가리켜 "천상 회의에 참석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성경을 펴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천상 회의에 예복을 입고 참석하게 되며, 엄위하신 하나님의 존전에 서면 내 얄팍한 생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집니다. 참된 묵상은 성경을 내 입맛에 맞게 조작하여 위로를 얻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처럼 "아버님 그리 마옵소서"라며 세상의 낡은 상식을 고집하던 관성을 내려놓고, 나를 철저하게 교정하시는 하나님의 그 낯설고 십자가적인 방식 앞에 정직하게 내 생각을 무장해제 시키는 고통스럽고도 영광스러운 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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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요셉처럼 "하나님, 내 헌신과 도덕적 노력 위에 당신의 오른손을 얹어 주셔야 합당합니다"라며 기어코 서열을 증명해 내느라 지쳐 계시지는 않습니까? 야곱의 그 어긋맞긴 두 손은 훗날 갈보리 언덕에서 우리를 위해 당신의 팔을 십자가에 벌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있습니다. 주님은 마땅히 저주받아야 할 우리의 머리 위에 은총의 오른손을 얹으시고, 죄 없으신 독생자의 머리 위에 심판의 왼손을 얹으시는 그 이해할 수 없는 엇갈린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살려내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획득한 서열이나 공로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남루함과 무자격함조차 기어코 가로질러 찾아오시어 넘치는 하늘의 복으로 우리를 덮어 내시는 하나님의 그 압도적이고도 눈부신 자비에 온전히 잇대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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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처 많고 모순된 신앙 여정은 한 폭의 명작을 완성해 내는 십자수(Cross-stitch)의 과정과 같습니다. 세상의 얄팍한 논리는 반듯하게 평행선만을 달리는 직선만이 옳다고 우기며, 실이 서로 어긋나고 엉키는 것을 비효율적인 실패라 부릅니다. 그러나 위대한 예술가이신 하나님은 우리 삶의 도화지 위에 직선만을 수놓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자격 없는 우리를 향해 기꺼이 당신의 섭리와 은총의 실을 엇갈리게 교차하십니다. 우리가 내 고집스러운 직선의 궤도를 꺾고 하나님의 낯선 교정에 우리 영혼을 온전히 내어 맡길 때, 비로소 엇갈리고 교차하며 수놓아진 우리의 남루한 일상은 세상의 직선으로는 결코 그려낼 수 없는 가장 입체적이고도 경이로운 구원과 샬롬의 명작으로 찬연히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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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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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9ycdgbr_xx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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