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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7:18-36 구덩이 곁의 식탁, 그리고 마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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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절규를 발밑에 두고 태연히 밥을 먹는 세상의 잔혹한 질서 안에서도, 하나님은 은 이십 세겔에 팔려가는 발걸음 곁을 묵묵히 걸으시며 찢겨진 일상을 구원의 이야기로 엮어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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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햇살이 눈부시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계절에도 어딘가 누군가는 캄캄한 구덩이 안에 있다. 홀로 고함치고 있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 그 바닥에서, 사람은 자신이 버려진 것인지 잊혀진 것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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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7장의 도단 들판이 그렇다. 형들은 멀리서 요셉을 알아본다.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그 목소리에는 경멸과 두려움이 섞여 있다. 채색옷이 벗겨진 채 물 없는 빈 구덩이에 던져진 요셉, 그리고 성경은 가장 서늘한 문장 하나를 남긴다.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동생이 살려달라 울부짖던 그 시간에, 형들은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는 능력이 완전히 마비된 인간의 맨얼굴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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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는 묻는다. "우리가 무슨 유익을 얻으리요." 형제의 생명이 한 순간에 효용의 문제로 환원된다. 요셉은 은 이십 세겔에 팔린다. 인격이 가격이 되고, 사람이 상품이 된다. 자끄 엘륄은 기술 사회의 핵심 폭력을 이렇게 진단했다. 모든 것이 수단이 되고, 효율이 윤리를 대체하며, 인간은 계산 가능한 단위로 쪼개진다고. 유다의 계산은 고대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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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퍼는 값싼 은혜를 경계했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한 채 자기 위로만을 채워가는 경건, 그것은 제자도가 아니라 자기기만이라고. 구덩이 곁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자신을 믿음의 사람이라 여기는 것, 그것이 바로 값싼 은혜의 실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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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어떻게 이 냉혹한 질서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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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은 성경 지식을 축적하는 행위가 아니다.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 가치관의 틈새로 흘러들어,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세계를 조용히 균열시키는 시간이다. 낡은 수동 펌프를 생각해 보라. 단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그 속으로 부어지는 순간, 펌프는 지하 깊은 곳의 생명수와 비로소 맞닿는다. 묵상은 그 마중물이다. 내 힘으로 사랑하려는 수고를 멈추고 말씀이 흘러들어 오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것, 거기서부터 타인의 고통을 향한 다정한 눈빛이 회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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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요셉의 구덩이에서 하나님을 침묵시키는 듯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이 부재하셨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분은 이스마엘 상인들의 낙타 뒤를 먼지 속에서 따라가던 그 길 위에도 계셨다. 형들의 배신조차 품어 안으시어, 마침내 기근에서 세상을 건져내는 이야기로 엮어내셨다. 침묵하셨을지언정 떠나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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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조용히 앉으라. 은 이십 세겔의 논리가 내 안에서도 작동하고 있는지, 누군가의 절규를 발밑에 두고 내 몫의 밥을 삼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씀 앞에 그 민낯을 가져가라. 본회퍼가 옥중에서 썼듯, 교회는 타자를 위해 존재할 때 비로소 교회다. 그 방향은 성경 지식에서 오지 않는다. 말씀이 나를 뚫고 지나가도록 허락한 묵상의 시간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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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 곁의 식탁에서 일어서는 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마중물 한 바가지를 허락하는 것이다. 묵상으로 오라. 하나님은 거기서 기다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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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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