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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1:36-55 갈르엣의 돌무더기, 불완전한 평화 위에 내리는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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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신앙이란, 타인을 소유하려는 세상의 억압에 맞서 하나님이 내 고통을 감찰하신다는 믿음으로 경계선을 긋고, 비록 불완전할지라도 그 갈라진 틈새로 스며드는 주님의 빛을 인내로 수용하며 살아가는 생명의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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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바를 우리는 오래 오해해 왔습니다. "우리가 서로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를 살피시옵소서."(창 31:49) 이 말을 우리는 흔히 아름다운 이별의 축복으로 읽습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다정한 인사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미스바는 오랫동안 신앙 공동체의 표어가 되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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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본문을 꼼꼼히 읽으면 그 속에 다른 온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사랑의 언어가 아닙니다. 불신의 언어입니다. "나는 당신을 믿을 수 없으니, 하나님이 우리 사이를 감시해 달라"는 말입니다. 라반과 야곱은 화해한 것이 아닙니다. 더 이상의 파국을 막기 위해 경계선을 그은 것입니다. 돌무더기를 쌓고 "이 선을 넘지 말자"고 약속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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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실이 처음에는 실망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십 년의 갈등이 이렇게 끝난다는 것이. 그러나 저는 오히려 이 장면에서 성경의 솔직함을 봅니다. 성경은 모든 갈등이 아름다운 화해로 마무리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관계는 끝내 봉합되지 않습니다. 어떤 상처는 완전히 아물지 않습니다. 그 현실을 성경은 외면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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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라반에게 쏟아낸 말들을 들어보십시오.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창 31:38-40) 이것은 계산된 항의가 아닙니다. 이십 년 동안 눌러왔던 것이 한꺼번에 터지는 소리입니다. 억울함, 분노, 서러움이 뒤엉킨 그 절규 속에서 저는 야곱을 비로소 인간으로 봅니다. 그는 믿음의 조상이기 이전에, 착취당한 노동자였습니다. 정당한 몫을 받지 못한 채 이십 년을 버텨온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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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반의 대답은 서늘합니다. "딸들은 내 딸이요 자식들은 내 자식이요 양 떼는 내 양 떼요 네가 보는 것은 다 내 것이라."(창 31:43) 이 문장 안에 라반의 세계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내 것입니다. 딸들도, 손자들도, 야곱의 이십 년 수고도, 다 내 것입니다. 타인을 소유물로 보는 사람의 언어가 이렇습니다. 관계가 없고 인격이 없습니다. 오직 소유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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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라반을 쉽게 비난합니다. 그러나 잠시 멈추어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곁의 사람들을 소유의 언어로 대합니까. 내 자녀, 내 배우자, 내 부하직원, 내 성도. 그 '내'라는 말 속에 상대방을 나의 필요와 기대에 종속시키는 폭력이 숨어 있을 때가 있습니다. 라반의 이야기가 불편한 것은, 그 안에 우리 자신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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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팽팽한 적대의 끝에서 야곱은 한 가지를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젯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창 31:42) 이 고백이 저는 참 소중합니다. 야곱이 이십 년을 견딘 것은 자신의 강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증인이 되어주지 않는 착취의 현장에서, 하나님은 야곱의 수고를 하나하나 보고 계셨습니다. 그 보심이 야곱을 버티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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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것, 이것이 약자가 가진 가장 근본적인 위로입니다. 세상이 외면해도, 역사가 기록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보고 계신다는 것. 그것 하나로 우리는 억울함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라반의 입을 막으셨습니다. 완벽한 화해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억압의 사슬은 끊어졌습니다. 돌무더기 하나, 경계선 하나가 야곱에게 자유를 돌려주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차갑고 불완전한 돌무더기를 통해 일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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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저는 묵상을 말하고 싶습니다. 찰스 링마는 묵상을 가리켜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듣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라반처럼 모든 것을 소유하려는 세상의 소음에 맞서 분노로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내 고통을 보고 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고요히 듣는 것. 그 들음이 우리에게 야곱이 가진 것, 즉 이십 년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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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이란 또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훈련이기도 합니다. 모든 갈등이 아름답게 봉합되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평화도 평화로 받아들이는 것. 미스바의 돌무더기가 사랑의 언어가 아니었어도, 하나님은 그 돌무더기를 통해 야곱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화해가 늘 따뜻하고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차가운 돌무더기를 쌓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일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전부도 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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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지금 야곱의 자리에 계십니까. 이십 년까지는 아니어도, 오래 수고했는데 정당한 인정을 받지 못한 자리에 계십니까. 억울함이 쌓이고 쌓여 어느 날 터질 것 같은 느낌을 받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야곱의 수고를 보셨던 그 눈으로, 지금 당신의 수고도 보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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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완벽한 화해를 이루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힘드십니까. 어떤 관계는 끝내 회복되지 않는 것 같아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미스바의 돌무더기도 쓰십니다. 불완전한 평화도 평화입니다. 그 경계선 사이로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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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 주간, 타인을 소유하려는 충동 앞에서 잠시 멈추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 고통을 보고 계신 하나님을 조용히 신뢰해 보시기 바랍니다. 완벽한 화해가 아니어도, 불완전한 돌무더기 위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돌려주십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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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파제를 생각합니다. 방파제는 파도를 없애지 않습니다. 폭풍도 잠재우지 못합니다. 그저 그 사이에 서서, 파도가 항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뿐입니다. 거칠고 투박하고,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미스바의 돌무더기가 그랬습니다. 라반과 야곱의 이십 년 갈등을 해소하지도, 두 사람을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돌무더기 덕분에 야곱은 다시 쫓기지 않았습니다. 항구 안쪽이 잔잔해진 것처럼. 묵상이란 그 방파제를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상처 난 경계선마다 서 계신다는 것을, 파도 앞에서도 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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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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