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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1:1-16 세상이 벽이라 부르는 것, 하나님이 문이라 부르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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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신앙이란, 사람을 이익의 수단으로 삼는 착취의 질서에 균열을 내고, 억눌린 자의 신음에 귀 기울이시는 하나님의 시선에 동참하는 묵상을 통해, 오늘의 남루한 현실 속으로 해방의 미래를 끌어당기는 은총의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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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요수아 헤셀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세계는 본질적으로 벽이 아니라 문이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저는 한참 그 자리에 머물렀습니다. 벽과 문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재질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같은 것을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입니다. 벽이라고 믿는 사람에게 그것은 벽이고, 문이라고 믿는 사람에게 그것은 문입니다. 창세기 31장을 읽으면서 저는 이 문장을 계속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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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반의 집이 야곱에게는 오래 벽이었습니다. 품삯을 열 번씩이나 바꾸는 장인 아래서 이십 년을 일했습니다(창 31:7). 착취였습니다. 야곱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아내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라헬과 레아는 들판으로 나온 자리에서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창 31:15) 딸들이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깊은 상처의 언어인지 우리는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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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반에게 딸들은 딸이 아니었습니다. 협상의 도구였습니다. 야곱은 노동력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곳, 모든 것이 경제적 효용성으로 환산되는 곳, 그 차가운 집의 풍경이 낯설지 않은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그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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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인간을 결코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목적으로 대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 결핍에 몰릴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이 바로 그 원칙입니다. 라반은 의식적으로 딸들을 팔았겠지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어느새, 곁의 사람들을 수단으로 대하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오래된 약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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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바로 이 절망적인 자리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야곱의 꿈속에 찾아오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창 31:12) 이 짧은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하나님이 보셨다는 것. 세상이 외면한 것을 하나님이 보셨다는 것. 라반이 품삯을 바꿀 때마다 하나님은 보고 계셨습니다. 딸들이 외국인처럼 팔려가던 그 밤을 하나님은 보고 계셨습니다. 아무도 증인이 되어주지 않는 착취의 현장에서, 하나님은 침묵하셨지만 눈을 감지는 않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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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보심이 드디어 말씀이 됩니다. "일어나 이 땅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창 31:13) 벽이 문이 되는 순간입니다. 라반이 세운 착취의 벽 한가운데, 하나님이 해방의 문을 내신 것입니다. 야곱의 탁월함 때문이 아닙니다. 야곱 역시 꾀를 부리고 이기심에 붙잡힌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억압받는 자의 자리로 내몰렸을 때, 하나님은 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 은총입니다. 우리가 자격을 갖추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고통 속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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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링마는 묵상을 가리켜 "미래를 현재로 끌어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참 좋습니다. 묵상이란 현실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해방의 미래를, 지금 내가 발 딛고 선 이 막막한 현실 속으로 끌어당기는 것입니다. 라반의 장막 안에서 야곱이 꿈을 꾼 것처럼, 착취의 현실 한가운데서 해방의 소망을 붙드는 것입니다. 그 소망이 아직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이 보셨다는 그 한 가지 사실로, 우리는 일어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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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묵상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보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자신도 보기 시작합니다.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실은 누군가의 고통 위에 서 있었다는 것을 보기 시작합니다. 라반의 집에서 신음하던 빌하와 실바의 얼굴을, 품삯을 열 번 바꾸는 동안 말 한마디 못 했던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님의 눈으로 다시 바라보는 것, 그것이 묵상이 우리를 데려가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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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어떤 벽 앞에 서 계십니까. 오래 부딪혀 왔지만 꿈쩍도 않는 것 같은 그 벽, 이제는 더 이상 빠져나갈 길이 없다고 느끼게 만드는 그 벽 앞에 지쳐 계십니까. 아니면 그 벽을 세운 사람이 되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를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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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자리에 계시든,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착취하는 라반도 보시고, 착취당하는 야곱도 보십니다. 그 보심이 우리를 정죄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다 보았노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도달하는 순간,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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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 주간,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이 벽인지 문인지, 조용히 짚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짚음이 묵상입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가 벽이라 부르던 것이 문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문을 통과한 사람은, 다른 누군가의 벽 앞에서도 문을 찾아주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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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성벽을 생각합니다. 겉에서 보면 견고하고 막막합니다. 그러나 성벽에는 반드시 문이 있습니다. 문이 없는 성벽은 성벽이 아니라 감옥입니다. 하나님은 감옥을 짓지 않으십니다. 라반의 집이 그토록 견고한 착취의 벽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은 그 벽 안에 이미 문을 내어두셨습니다. 묵상이란 그 문을 찾는 일입니다. 벽을 부수려 주먹을 쥐고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제 떠나라" 말씀하시는 그 음성을 따라 벽을 천천히 짚어가는 것입니다. 짚다 보면 문이 있습니다. 언제나 있었던 문이, 비로소 문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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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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