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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8:1-22 도망자의 돌베개, 그 차가운 자리에 내려앉으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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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내 욕망으로 모든 관계를 허물고 캄캄한 광야에 홀로 남겨진 그 자리에서조차 나를 찾아와 곁에 누우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압도적인 은총의 이야기 속에 내 남루한 삶을 온전히 편입시켜, 척박한 루스를 벧엘로 변환시켜 가는 거룩한 묵상의 여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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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베개 삼아 잠든 사람을 상상해 보십시오. 차갑고 딱딱한 돌이 뺨에 닿는 그 감촉. 잠이 올 리 없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잠들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너무 지쳐 쓰러진 것인지도 모릅니다. 브엘세바에서 하란까지는 멀고 먼 길입니다. 그러나 야곱을 지치게 한 것은 거리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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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도망자였습니다. 눈먼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것을 빼앗고, 에서의 분노를 피해 밤길을 달아나는 비겁한 도망자였습니다. 영적인 축복을 사모했다는 명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약속하신 것이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명분과 해석이 아버지의 몸을 더듬던 자신의 손을 깨끗하게 만들어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에서의 울음소리가 귓가에서 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목적이 선하다고 해서 방법의 폭력이 지워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야곱은 그 긴 밤에 온몸으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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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이 장면을 간결하게 전합니다.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창 28:11) 저는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야곱의 고독이 느껴집니다. 해가 진 광야,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자리, 차가운 돌 하나. 그것이 야곱이 가진 전부였습니다. 따뜻한 어머니의 장막을 영영 뒤로 한 채, 이기심으로 모든 관계를 끊어낸 한 인간의 영혼이 얼마나 차가울 수 있는지를, 그 돌베개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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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바로 거기서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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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 본문을 위대한 믿음의 선조에게 임한 거룩한 계시의 사건으로 읽습니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만 읽으면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신 장소가 어디입니까.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정갈하게 준비된 기도의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밟고 도망쳐 온 죄인이 차가운 돌을 베개 삼아 쓰러진 광야였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은총의 지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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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챔버스는 벧엘의 야곱을 묵상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에서처럼 자신에 대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고 느낀다면 절대로 하나님을 뵙지 못할 것이라고. 그 말이 참 아프게 다가옵니다. 내가 무언가를 이루었고, 충분히 헌신했고, 그럭저럭 괜찮은 신앙인이라는 자기 확신이 있는 동안에는, 역설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무너지고, 내세울 것 하나 없이 차가운 땅에 쓰러진 밤, 우리는 비로소 눈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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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본 것은 사다리였습니다. 땅에서 하늘에 닿아 있고, 그 위로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내리는 사다리(창 28:12). 야곱이 쌓아 올리려 했던 것은 자신의 욕망이 닿을 수 있는 수직의 탑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놓으신 것은 땅으로 내려오는 사다리였습니다. 하늘이 땅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위로 올라가려는 인간의 욕망을 향해, 아래로 내려오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응답한 것입니다. 십자가가 이미 벧엘 광야에 예고되어 있었다고 말하면 지나친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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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들려온 하나님의 말씀은 책망이 아니었습니다. 왜 그랬느냐는 추궁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 28:15) 얼마나 놀라운 선언입니까. 야곱이 착하게 살겠다고 맹세한 다음에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야곱이 변화하면 돕겠다는 조건부 약속이 아닙니다. 그냥, 지금 이 도망자 곁에, 무조건으로, 계시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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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깬 야곱은 두려움 속에서 외칩니다.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창 28:16) 이 고백이 참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새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거기 계셨습니다. 야곱이 속임수를 쓰는 동안에도, 밤길을 도망치는 동안에도, 차가운 돌에 뺨을 대고 쓰러지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거기 계셨습니다. 다만 야곱이 알지 못했을 뿐입니다. 묵상이란 어쩌면 이것입니다. 이미 여기 계셨던 하나님을 비로소 알아보는 일, 내가 그분의 임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임재를 받아들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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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피터슨은 묵상하는 독서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씀을 도구로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읽는 말이 우리 삶의 내부가 되도록 그것을 받아들이는" 독서라고. 말씀이 나를 통과하는 것입니다. 내가 말씀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품는 것입니다. 야곱이 사다리를 꿈에서 본 것으로 끝났다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잠에서 깨어 두려워하고 경탄하며 그 자리를 벧엘,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습니다. 내 안에 진리가 자리를 잡는 것, 내 삶의 언어가 바뀌는 것, 그것이 묵상이 만들어내는 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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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매킨타이어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나는 어떤 이야기 속에서 내 자리를 찾을 수 있는가. 그 이야기를 모르고서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알 수 없다고. 우리는 지금 어떤 이야기 속에서 살고 있습니까. 남을 밟고 올라서야 살아남는 이야기입니까. 아니면, 도망자의 차가운 돌베개 곁에 몸소 내려오셔서 끝까지 곁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입니까. 묵상이란 전자의 이야기에서 빠져나와 후자의 이야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입니다. 내 남루하고 부끄러운 삶의 자리를, 그 하나님의 거대하고 은혜로운 이야기 안에 편입시키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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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지금 야곱의 광야에 계십니까.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망가뜨려 놓고, 그 결과로 홀로 차가운 밤을 맞이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열심히 살아왔는데 어느 날 문득 내 발 아래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그 아찔한 자리에 계십니까. 어느 자리이든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자리로 오십니다. 우리가 준비되어서가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먼저 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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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힘으로 하늘에 닿으려는 그 무거운 욕망의 사다리를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미 당신의 사다리를 당신이 누운 그 차가운 땅 위에 내려놓으셨습니다. 루스라고 불리던 척박한 그 자리가 벧엘이 된 것처럼, 우리가 가장 포기하고 싶었던 그 자리가 하나님의 집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성취에 있지 않습니다. 야곱의 도망길도 놓지 않으셨던 그분의 끝없는 자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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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 주간, 그 자비를 조용히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내 삶의 이야기를 그분의 이야기 속으로 가만히 내어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 곁에서 차가운 돌을 베고 있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각자가 다른 누군가의 벧엘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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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는 광야이지만, 거기서도 새벽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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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 별자리를 먼저 보지 않고 별과 별 사이의 어둠을 먼저 봅니다. 점과 점 사이의 그 까마득한 거리, 서로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그 공허함.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누운 광야가 바로 그 어둠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 점들을 이어 선을 긋는 순간, 별들은 별자리가 됩니다. 흩어진 빛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얻습니다. 묵상이란 그 선을 긋는 일입니다. 내 힘으로 그어지는 선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광야에 내리신 그 사다리처럼, 우리의 파편화된 삶의 점들 사이를 조용히 이어주시는 은총의 선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그 선 앞에 가만히 서서, 내 삶이 어떤 별자리의 일부인지를 경이롭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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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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