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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5:1-18 엇갈린 발걸음이 마주친 화해의 언덕, 그 넉넉한 은총의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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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내 몫을 지키기 위해 형제를 밀어내던 차가운 '모범답안'을 찢어버리고, 죽음이라는 삶의 유한함 앞에서 서로의 상처를 끌어안는 '수평적 화해'를 이루며, 묵묵히 곁을 내어주시는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서사 속에 내 삶을 편입시키는(묵상) 자비로운 생명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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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내린 다정한 봄비가 메말랐던 대지를 촉촉이 적시고, 길가에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들이 저마다의 빛깔로 하늘을 향해 고요히 고개를 드는 날입니다. 바쁘게 쫓기듯 살아온 하루의 끝자락에서 피곤한 어깨를 기대며 영혼의 안식을 구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모호한 질문들 앞에서 고뇌하며 참된 진리의 빛을 기다리는 모든 분께 창조주 하나님이 주시는 넉넉한 평화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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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은 늘 내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누군가를 밀어내고 배제하라고 다그칩니다. 타인을 향해 곁을 내어주는 일은 곧 나의 손실이라 여기며, 사람들은 저마다 단단한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서 안도감을 느끼려 합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구약성경 창세기 25장의 풍경은, 파란만장했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죽음 앞에서 그동안 배제되고 찢겼던 형제들이 어떻게 다시 만나 경이로운 '수평적 연대와 화해'를 이루어내는지를 참으로 묵직하게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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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향년 백칠십오 세를 일기로 "나이가 많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창 25:8) 돌아갑니다. 평생을 하나님의 약속 하나에 기대어 나그네로 떠돌았던 거인의 고요한 퇴장입니다. 그런데 그의 장례식 장면에 우리의 시선을 오래도록 머물게 하는 가슴 먹먹한 구절이 등장합니다. "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창 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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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줄의 기록은 기적과도 같습니다. 송민원 교수는 그의 책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에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명령과 선택이라는 '수직적 관점'에만 갇혀 있으면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얽히고 충돌하는 깊은 '수평적 관점'의 이야기를 놓치게 된다고 통찰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수직적이고 교리적인 '모범답안'을 쥐고 이삭은 언약의 자손이요 이스마엘은 육신의 자손이기에 철저히 분리되어야 마땅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수평적 시선으로 성경을 읽어낼 때, 비로소 버림받은 이스마엘의 상처와 제단에 묶였던 이삭의 트라우마가 우리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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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의 질투와 아브라함의 무기력함 속에서 쫓겨나 거친 광야를 떠돌아야 했던 이스마엘과, 모리아 산에서 아버지의 칼날 아래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이삭은 모두 기성세대의 맹목과 폭력에 상처 입은 가여운 아들들이었습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 단절되어 서로 다른 곳을 헤매던 두 형제가,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절대적 슬픔이자 인간의 유한함 앞에서 마침내 서로의 곁에 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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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일 변호사는 고통의 연대를 성찰하며 "저 역시 제 외로움과 고통에서 눈을 들어 타인의 외로움, 아픔을 보려는 그 순간부터 저의 외로움과 아픔의 방의 크기가 작아지기 시작했습니다"라고 갈파했습니다. 이기주 작가가 말했듯 세상의 말과 행동에는 나름의 온도가 있습니다.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며 서로를 밀어내던 차가운 분열의 온도를 넘어, 막벨라 굴 앞에서 서로의 상실과 고통의 눈물을 마주 본 두 형제의 침묵은 얼어붙은 원망을 단숨에 녹여내는 가장 뜨거운 생명의 온도였습니다. 나아가 성경은 이스마엘의 족보를 세밀하게 기록하며, 그에게도 열두 지도자가 태어나는 복을 주셨음을 명확히 증언합니다(창 25:16).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쳐놓은 편협한 신학적 울타리를 훌쩍 넘어, 버림받은 자의 눈물까지도 품어 안는 광활한 바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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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벅찬 수평적 화해와 넉넉한 은총을 우리의 비루한 일상으로 모셔 들이기 위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묵상의 여정』의 저자 박대영 목사님은 묵상을 가리켜 자신의 도리에 대한 "기억과 성찰과 행동"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묵상은 책상머리에서 지식을 해부하거나 타인을 정죄할 교리를 무기처럼 갈고닦는 일이 아닙니다. 아버지를 장사 지내기 위해 마주 선 이삭과 이스마엘처럼, 내 안에 똬리를 튼 배제와 미움의 역사를 정직하게 성찰하고, 마침내 타인을 향해 기꺼이 내 곁을 내어주는 화해의 행동으로 나아가는 영적 몸부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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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는 신앙이란 세상의 무한 경쟁 이야기와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 중 "어느 한 이야기를 선택하여 그 이야기의 일부가 되기로 결심하는 일"이라고 통찰했습니다. 묵상은 남을 짓밟고 나의 소유를 쟁취해야만 살아남는다는 세상의 폭력적인 서사를 거절하고, 나의 상처 입은 인생과 실패의 경험마저도 넉넉히 품어 하나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서사 속으로 내 삶을 온전히 편입시키는 거룩한 항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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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이스마엘처럼 세상과 사람들에게 거절당한 자가 아닐까?" 하며 짙은 열등감과 회의에 빠진 분이 계십니까? 혹은 "나는 이삭처럼 늘 훌륭한 헌신과 믿음을 증명해 내야만 해"라는 무거운 율법의 짐에 짓눌려 지쳐 계시지는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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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무언가를 움켜쥐고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는 그 무거운 강박을 십자가 앞에 가만히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흠결 없이 누군가를 이겨내기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아브라함조차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흙으로 돌아가는 연약한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우리의 구원과 평화는 우리가 세운 견고한 담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쫓겨나 우는 자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두려움에 떠는 자를 위로하시며, 마침내 원수 되었던 이들을 서로의 품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그 맹렬하고도 끈질긴 긍휼에 온전히 기대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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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 주간, 내 이익을 위해 타인을 밀어내던 세상의 얄팍한 모범답안을 찢어버리십시오. 그저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내어주시며 수평적 화해를 이루신 주님의 그 넓은 이야기에 묵상으로 깊이 접속하여, 내 곁에 선 이웃의 상처를 따스하게 보듬어 안는 평안과 은총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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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앙 여정은 굽이쳐 흐르는 두 강물이 마침내 거대한 호수에서 하나로 만나는 '두 물머리(Confluence)'와 같습니다. 하나의 강물(이삭)은 깊은 산골짜기의 침묵을 안고 흐르고, 또 다른 강물(이스마엘)은 거친 광야의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상처를 안고 흐릅니다. 굽이치는 동안 그들은 각자의 아픔과 질투로 거칠게 요동치지만, 결국 하나님의 넉넉한 은총이라는 거대한 호수(막벨라 굴의 화해)에 다다랐을 때 두 강물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습니다. 내 길만이 옳다고 다투던 헛된 수고를 멈추고,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의 바다 같은 품에 우리 영혼을 온전히 내어맡길 때(묵상), 갈라지고 상처 났던 우리의 삶은 비로소 세상을 살리고 생명을 품어내는 크고 고요한 평화의 물결로 함께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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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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