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8:01-11 세상을 압도하는 신적 권세로 자발적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며, 진노의 잔을 마심으로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보호하시는 전능하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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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별 설교와 기도를 마치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 동산으로 가십니다. 그곳을 잘 아는 가룟 유다가 로마 군대와 대제사장의 아랫사람들을 이끌고 무기와 횃불을 든 채 찾아옵니다. 예수님은 피하지 않으시고 나아가 "누구를 찾느냐" 물으시며, "내가 그니라"고 신분을 밝히십니다. 그 순간 대적자들은 압도되어 땅에 엎드러집니다. 예수님은 다시 질문하시며 자신을 잡되 제자들은 보내주라고 명령하심으로 그들을 보호하십니다. 그때 베드로가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베자, 예수님은 칼을 꽂으라 명하시며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기꺼이 마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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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문화적 배경 : 예수님이 건너가신 '기드론'은 '검은 계곡(흐리다, 탁하다, 어두컴컴하다)'이라는 뜻으로, 우기에만 물이 흐르는 예루살렘 동쪽의 험한 골짜기입니다. 가룟 유다가 이끌고 온 무리 중 '군대'는 보통 600명으로 구성된 로마의 보병대를 가리키며, 여기에 성전 경비병들까지 합세한 엄청난 규모의 병력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둠의 권세를 상징하듯 횃불과 무기를 들고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체포하러 왔습니다.
# 신학·정경적 배경 : 공관복음서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인간적 고뇌를 그렸다면,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체포 과정을 철저히 '영광의 왕께서 십자가를 향해 주도적으로 나아가시는 승리와 통제의 사건'으로 신학화합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지칭하신 "내가 그니라(에고 에이미, ἐγώ εἰμι)"는 구약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 3:14)고 하신 신적 자기 계시(Theophany)입니다.
# 철학·인문학적 배경 : 본문은 세상의 힘(무력, 폭력, 군대)과 하나님의 힘(진리, 사랑, 순종, 희생)의 철학적 충돌을 보여줍니다. 세상은 칼과 횃불로 사람을 억압하고 지배하려 하지만, 예수님은 무력을 무력으로 갚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자신을 내어주어 타인을 살리는 '대속적 사랑'과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순종'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무력을 무장해제 시키는 가장 위대한 권세임을 증명하십니다.
# 때로는 세상을 뒤덮은 어둠의 세력이 너무 거대해 보이고, 무력감 속에서 뒷걸음질 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묵상할 요한복음 18장 전반부의 말씀은, 무기와 횃불로 위협해 오는 세상의 군대 앞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으시고 도리어 신적 권위로 그들을 압도하시며, 자기 백성을 살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결박당하시는 위대한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를 지키시기 위해 고난의 잔을 기꺼이 마신 주님의 크신 사랑을 경험하고, 세상의 어떤 위협 앞에서도 요동치 않는 하늘의 담대함을 회복하시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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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절 기드론 시내를 건너 체포의 자리로
배신의 밤, 무력과 폭력을 앞세운 세상의 위협 앞에서도 피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기도의 동산으로 나아가시는 평강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의 동산(겟세마네)으로 가십니다. 그곳은 가끔 예수님이 제자들과 모이시던 곳이라 가룟 유다도 알고 있었습니다. 유다는 군대(로마 보병대)와 대제사장들의 하속들을 이끌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든 채 그곳으로 들이닥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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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유다가 자신을 배반하고 체포조를 이끌고 올 것을 다 아셨습니다(13:1). 그러나 주님은 도망치거나 숨지 않으시고, 오히려 유다가 가장 잘 아는 동산으로 묵묵히 걸어가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상황에 떠밀려 희생당하는 무력한 피해자가 아니라, 구속 사역을 위해 스스로 십자가의 길을 열어가시는 주권자이심을 보여줍니다. 유다가 동원한 600명의 '군대'와 '성전 경비병'들은 세상의 정치 권력과 타락한 종교 권력의 총합체입니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등과 횃불을 들고 '세상의 빛(8:12)'이신 예수님을 잡으러 오는 영적 아이러니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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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에도 가룟 유다와 같이 믿었던 사람의 배신이 찾아올 때가 있고,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세상의 무력과 폭압이 내 삶을 조여올 때가 있습니다. 직장에서 부조리한 시스템이 나를 위협하거나, 재정적인 위기가 거대한 군대처럼 들이닥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도망치거나 숨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을 보십시오. 그분은 두려움의 밤에 기드론의 검은 계곡을 넘어 '기도의 동산'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사명의 자리'로 묵묵히 걸어가셨습니다. 위기가 닥쳐올 때 회피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우리를 위해 죽음의 골짜기를 당당히 걸어가신 주님을 의지하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성숙하고 담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권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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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절 에고 에이미, 세상 권세를 압도하는 신현(Theophany)
대적자들 앞에서 신적 이름인 "내가 그니라(에고 에이미)"를 선포하사, 세상의 권세를 발밑에 엎어지게 하시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당할 일을 다 아시고 앞장서 나아가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들이 "나사렛 예수"라 답하자, 예수님은 "내가 그니라(에고 에이미)"라고 선언하십니다. 그 순간 예수를 잡으러 왔던 무리들이 뒤로 물러가며 땅에 엎드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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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요한복음 기독론의 장엄한 절정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숨어있지 않으시고 주도적으로 나아가십니다. 체포하러 온 자들에게 대답하신 "내가 그니라(ἐγώ εἰμι, 에고 에이미)"는 헬라어 표기로, 구약성경 출애굽기 3:14에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자신을 계시하신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는 신성한 이름입니다. 무기를 들고 살기등등하게 다가왔던 600명의 군대는 예수님의 이 신적인 자기 계시(신의 현현)의 말씀 한마디에 압도되어 땅에 엎드러집니다. 이는 에스겔이나 다니엘, 사도 요한이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엎드러졌던 것과 같은 본능적인 경외와 두려움의 반응입니다. 예수님이 체포당하신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천군 천사를 동원하여 저들을 쓸어버릴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스스로 결박을 허락하신 무한한 사랑의 결과임을 확증하는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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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상은 돈과 권력, 그리고 폭력을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믿으며 교회를 조롱합니다. 우리도 때로는 세상의 거대한 권력과 스펙 앞에서 스스로를 메뚜기처럼 여기며 주눅 들곤 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그 어떤 거대한 군대와 조직도, 우리 주님이 "내가 그니라!"고 선언하시는 말씀 한마디 앞에서는 낙엽처럼 엎드러질 수밖에 없는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질병, 파산, 억울한 모함이라는 대적들이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습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만왕의 왕께서 지금 내 안에 성령으로 살아계심을 믿고 선포하십시오. 무력한 자가 아니라 이미 세상을 이기신 전능자의 자녀로서, 세상의 위협 앞에서도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걸어가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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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절 자기 사람들을 놓아주라, 목자의 희생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내어주심으로, 대적자들의 손에서 제자들을 온전히 건져내어 자유케 하시는 참되고 선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이 다시 "누구를 찾느냐" 물으시고 "나사렛 예수라"는 대답에 "내가 그라고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요한은 이것이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주님의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고 증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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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엎드러진 그들을 향해 예수님은 다시 질문하시며, 이번에는 제자들의 안전을 보장받으십니다.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는 말씀은 탄원이나 애원이 아니라,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시는 주권자의 추상같은 명령입니다. 이 표현은 요한복음 11:44에서 죽었던 나사로를 풀어줄 때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고 하셨던 명령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즉, 예수님은 자신이 친히 체포의 포박을 당하심으로써 제자들에게 주어질 죽음과 정죄의 결박을 풀어내어 생명의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이는 요한복음 10장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10:11)고 하신 예언의 성취이자, 17장 12절의 대제사장적 기도의 실제적인 응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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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님은 위기의 순간에 홀로 살겠다고 도망치거나 부하들을 방패막이로 삼는 세상의 지도자들과 다릅니다. 주님은 거룩한 방패가 되어 모진 풍파를 온몸으로 막아내시고,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결박당할 수밖에 없던 우리를 풀어 자유케 하셨습니다. 내 죄와 내 허물로 인해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조롱과 형벌을 십자가에서 주님이 다 대신 받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엄청난 십자가의 보호와 긍휼을 입은 자로서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가정에서 배우자의 약점을 들추어 비난하기보다 내가 그 책임을 덮어쓰고 품어주는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합시다. 직장에서 부하 직원이나 동료의 허물을 감싸 안아주는 작은 목자의 삶을 살아낼 때, 이기주의로 얼어붙은 세상은 우리를 통해 참 좋으신 목자 예수 그리스도의 따뜻한 온기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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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1절 베드로의 칼과 예수님의 잔
폭력으로 맞서는 인간적 열심을 꾸짖으시고, 오직 아버지께서 주신 진노의 잔을 기꺼이 마시며 십자가로 순종하시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시몬 베드로가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오른쪽 귀를 베어버립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단호히 꾸짖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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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도의 위기감에 사로잡힌 베드로는 무력(칼)을 사용하여 예수님을 지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 방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육신적인 열심이자, 정작 싸워야 할 영적 실체(사탄)를 보지 못하고 눈앞의 하수인(말고)을 공격한 빗나간 폭력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무력 저항을 중단시키시며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언급하십니다. 구약성경에서 '잔'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와 심판을 상징합니다(시 75:8; 사 51:17). 죄 없는 예수님이 이 무서운 진노의 잔을 마신다는 것은, 인류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전적으로 감수하시겠다는 결연한 의지입니다. 주님은 세상의 폭력(칼)에 폭력으로 맞서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굴복(잔을 마심)하심으로 인류 구원이라는 가장 위대한 승리를 쟁취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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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도 베드로처럼 '내가 쥐고 있는 칼'을 빼 들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내 생각과 맞지 않는 사람을 날카로운 말로 베어버리고, 나의 권리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혈기를 부리며 세상의 방식을 동원합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이러는 것이다"라고 변명하지만, 실상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훼손하는 육신의 혈기일 뿐입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의 손에 쥐어진 미움과 복수, 그리고 혈기의 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참된 영적 승리는 남을 피 흘리게 하는 것에 있지 않고, 주님처럼 나 자신을 부인하고 내게 주어진 십자가의 잔(섬김, 희생, 용서, 손해 봄)을 묵묵히 마시는 것에 있습니다. 내 분노의 칼을 내려놓고, 억울해도 묵묵히 순종의 잔을 들이켤 때, 하나님은 우리의 그 작고 연약한 순종을 통해 마침내 세상을 변화시키는 부활의 영광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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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영원한 생명의 빛이시며, 역사를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둠의 세력이 무기와 횃불을 들고 위협해오는 배신의 밤에도,
피하거나 숨지 않으시고 오히려 "내가 그니라"는
창조주의 권능의 말씀으로 저들을 압도하신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찬양합니다.
주님은 천군 천사를 동원하여 대적들을 멸하실 수 있는
절대 주권자이심에도 불구하고,
허물 많고 연약한 저희를 죄와 사망의 결박에서 풀어주시기 위해
친히 십자가의 포승줄에 매이셨습니다.
이 측량할 수 없는 십자가의 대속적 사랑 앞에 뜨거운 눈물로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우리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세상의 거대한 힘과 부조리 앞에 너무나 쉽게 두려워하며 타협했습니다.
때로는 베드로처럼 나의 자존심을 지키고 내 뜻을 관철하기 위해,
사랑과 긍휼 대신 분노와 혈기의 칼을 휘두르며
형제자매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던 어리석은 죄인들임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가벼움과 육신적인 열심을 주의 보혈로 씻어 주시옵소서.
이제는 세상의 그 어떤 위협과 환난 앞에서도,
내 안에 살아계신 '스스로 있는 자(에고 에이미)'이신
주님의 권능을 믿고 담대히 서게 하옵소서.
분노와 미움의 칼을 칼집에 꽂고,
묵묵히 이 땅의 상처 입은 영혼들을 품어주며,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희생과 사명의 잔을 기꺼이 마시는
십자가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이 자발적이고도 깊은 십자가의 순종을 통해
세상의 악을 이기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굳게 세워가는
거룩한 빛의 사명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장 비참한 체포의 자리조차도 위대한 구원의 섭리로 바꾸어 내신
우리의 영원한 왕,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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