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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22-31 평화라는 이름의 거처, 흔들리는 마음에 내려앉는 다정한 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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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란 세상이 주는 화려한 성공과 조건부 평화의 환상에 속지 않고, 상처 많고 연약한 우리 내면에 친히 '거처'를 정하시며 참된 평안을 부어주시는 주님의 약속에 온전히 참여(묵상)하는 거룩한 저항입니다.

*

얼어붙었던 겨울의 장막을 걷어내고, 기어코 연둣빛 새싹들이 생명의 온기를 뿜어내는 2026년 3월의 경이로운 봄날입니다. 저마다의 무거운 삶의 짐을 짊어지고 오늘이라는 시간의 강을 건너오신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삶의 모호함과 짙은 회의 속에서도 여전히 참된 평안을 갈망하며 길을 묻고 계신 모든 분께 생명이신 주님의 평화를 전합니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은 늘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이 올라가야만 안전하다고 속삭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평화(Pax)는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갈등의 싹을 잘라버렸을 때 주어지는 일시적인 승리감에 불과합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요한복음 14장 후반부의 다락방 풍경 역시, 주님의 십자가 수난과 떠나심을 앞두고 깊은 공포와 불안에 사로잡힌 제자들의 요동치는 내면을 보여줍니다.


그 두려움 속에서 가룟 인이 아닌 유다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요 14:22).


그의 질문 속에는 짙은 아쉬움이 배어 있습니다. 이왕 메시아로 오셨다면, 로마 제국과 대제사장들이 굴복할 만큼 압도적이고 화려한 영광을 세상 앞에 폭발적으로 드러내어 달라는 인간적인 요구입니다. 송민원 교수는 그의 책에서, 우리가 성경을 읽거나 하나님을 대할 때 이미 자기 안에 확고하게 설정해 놓은 얄팍한 ‘모범답안’을 비워내야 한다고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유다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힘과 승리의 메시아'라는 모범답안에 갇혀 있었기에, 십자가라는 가장 나약한 방식으로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주님의 신비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빗나간 기대와 두려움 앞에 서 있는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꾸짖음 대신 참으로 눈물겨운 은총의 약속을 건네십니다.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요 14:23).


세상은 번듯한 자격을 갖추고 무결점의 도덕성을 증명해야만 인정해 주지만, 하나님은 상처 입고 불안에 떠는 우리의 냄새나는 내면 속으로 친히 찾아오셔서 당신의 ‘거처(Home)’를 삼으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내뱉는 비교와 정죄의 언어는 결국 파괴와 절망이라는 어둠의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예수님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이 약속은 생명을 창조하셨던 하나님의 가슴, 곧 영원한 ‘사랑과 평화’로 돌아가는 펄펄 끓는 은총의 언어였습니다.


예수님은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이 압도적인 주님의 평안을 우리 삶으로 모셔 들이기 위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묵상은 저항입니다. 세상이 주입하는 불안과 공포, 힘이 있어야만 평안할 수 있다는 세속의 거짓된 논리에 동화되기를 단호히 거절하고, 십자가의 은총에 영혼의 닻을 내리는 거룩한 영적 전투입니다. 또한 묵상은 참여입니다. 묵상은 텍스트를 머리로 쪼개어 분석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비루하고 초라한 내 일상의 무대 위로 성령 곧 보혜사(요 14:26)를 초청하여, 하나님이 써 내려가시는 위대한 사랑의 이야기에 내 삶을 포개어 넣는 치열한 동행입니다.


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왜 이리 쉽게 세상의 유혹에 넘어질까?”, “내 안에는 여전히 이기심과 두려움이 가득한데, 주님이 정말 내 안에 거하실까?” 하며 깊은 회의와 자책감에 빠져 계신 분이 있습니까? 완벽한 믿음을 증명해 내지 못해 웅크려 계시지는 않습니까?


한동일 변호사가 고백했던 묵직한 성찰을 기억해 보십시오. 나약한 타인을, 그리고 약하고 못난 나 자신을 이해하고 참아내는 것은 스스로 한계를 긋는 일을 멈추고,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물 수 있도록 더없이 나의 약점을 보듬고 사랑하는 태도”라고 갈파했습니다.


우리의 구원과 평안은 우리가 근심을 완벽하게 통제하거나 훌륭한 신앙적 업적을 쌓아서 쟁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무력합니다. 나는 쉽게 두려워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그 빈자리에 찾아오셔서 굳건한 평화의 기둥을 세워주시는 주님의 다함 없는 긍휼 덕분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완벽한 성취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십자가의 수난을 앞둔 캄캄한 밤에도 제자들에게 먼저 평안을 건네시던 그 다정한 사랑에 영혼의 무게를 온전히 내어맡기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내가 스스로 구원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강박의 짐을 십자가 아래 모두 내려놓으십시오. 두려움을 조장하는 세상의 거친 소음에는 귀를 닫고, “내가 너와 함께 거처를 삼겠다”고 다가오시는 주님의 그 따스한 숨결을 묵상으로 달게 마시십시오. 이번 한 주간, 세상이 줄 수도 알 수도 없는 하늘의 넉넉한 평안 속에서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는 복된 광양사랑의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의 상처 많고 흔들리는 인생은 버려진 ‘낡은 첼로(Cello)’와 같습니다. 오랜 세월의 풍파에 긁히고 칠이 벗겨진 첼로는, 세상의 화려한 무대 위에서는 볼품없고 무가치해 보일지 모릅니다. 때로 줄이 끊어져 볼멘소리를 낼 때면 우리는 스스로를 책망하며 쓸모없다 여깁니다. 그러나 위대한 연주자이신 성령께서 다가와 그 낡고 흠집 난 악기(우리의 내면)를 당신의 가슴에 깊이 끌어안고 숨결(평안)을 불어넣으실 때, 그 상처의 틈새는 오히려 가장 깊고 장엄한 영혼의 울림을 만들어내는 은총의 공명통이 됩니다. 내 힘으로 나를 수리하려는 수고를 멈추고 주님의 품에 나를 온전히 내어맡길 때, 우리의 곤고한 삶은 세상을 위로하는 가장 따뜻한 하늘의 선율로 피어날 것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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