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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15-21 고아의 두려움을 지우는 따스한 숨결, 내 안의 빈방을 채우시는 보혜사

.

신앙이란 세상에 홀로 남겨진 고아처럼 떨고 있는 우리를 결코 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 내면에 영원한 거처를 마련하시는 보혜사 성령의 따스한 은총을 ‘온몸의 시(詩)’로 써 내려가는(묵상) 경이로운 생명의 호흡입니다.

*

꽁꽁 얼어붙었던 대지의 빗장을 풀고, 메말랐던 나뭇가지마다 생명의 수맥이 차올라 기어코 연둣빛 새싹을 밀어 올리는 2026년 3월의 경이로운 봄날입니다. 저마다의 무거운 삶의 짐을 짊어지고 오늘이라는 시간의 강을 건너오신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짙은 외로움과 신앙의 회의 속에서도 여전히 진리의 빛을 갈망하며 길을 묻고 계신 모든 분께 생명이신 주님의 평화를 전합니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세상은 화려하고 군중으로 넘쳐나지만, 그 한복판에 서 있는 우리는 종종 지독한 고독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아무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고, 거대한 세상 속에 나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은 불안감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요한복음 14장의 다락방 풍경 역시, 십자가의 죽음과 이별을 예고하신 예수님 앞에서 극심한 두려움과 상실감에 빠져 있는 제자들의 창백한 얼굴을 보여줍니다.


송민원 교수는 그의 책 『태초에 질문이 있었다』에서, 성경은 표면이 매끈한 글이 아니라 “주름이 많은 텍스트(Wrinkled Text)”라고 통찰했습니다. 성경을 읽는 이들은 겉으로 드러난 문자뿐만 아니라, 그 행간에 숨겨진, 즉 ‘말한 것보다 말하지 않은’ 깊은 심연의 소리까지 들으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승을 잃고 세상의 거친 폭력 앞에 무방비로 내던져질 제자들의 그 침묵 어린 공포, 그 깊이 팬 마음의 주름을 예수님은 누구보다 정확히 읽어내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의 떨리는 어깨를 감싸 안으며 이토록 눈물겨운 약속을 주십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8).


이 말씀은 단순한 립서비스나 얄팍한 위로가 아닙니다. 영원한 동행에 대한 창조주의 비장한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요 14:16-17)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육신의 눈에 보이는 힘과 이익만 좇기에 진리의 영을 알지도 보지도 못하지만,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고아의 상태에서 건져내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히 품어 안으십니다.


이기주 작가는 언어의 본질을 살피며 세상의 무수한 말들이 각자의 고유한 온도를 지니고 있다고 갈파했습니다. 끊임없이 자격을 묻고 경쟁을 부추기며 우리를 평가하는 세상의 말들은 영혼을 얼어붙게 하는 차가운 얼음장이지만, “너희를 홀로 두지 않겠다”는 예수님의 이 언약은 벼랑 끝에 선 연약한 영혼들을 단숨에 녹여버리는 펄펄 끓는 가장 따뜻한 ‘생명의 온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광양사랑의교회 성도 여러분, 이 따스한 보혜사 성령의 임재를 우리 삶의 구체적인 현실로 모셔 들이기 위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 바로 ‘묵상’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묵상을 책상머리에 고요히 앉아 성경 구절을 머리로 분석하고 도덕적 교훈을 찾는 정적인 행위로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묵상의 여정』은 우리에게 묵상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줍니다. 이 책은 묵상을 가리켜 “온몸으로 이행하는 사랑의 사건”이자 “영적 시작(詩作)”이라고 정의합니다. 시인이 삶의 진물을 잉크 삼아 온몸으로 시를 줍듯이, 그리스도인은 내 삶의 가장 쓰라리고 남루한 현실 속으로 찾아오신 보혜사의 숨결을 모든 촉수를 곤두세워 만지고 맛보며 나의 피와 살로 받아 모시는 치열한 행위가 곧 묵상입니다.


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내 삶은 왜 이리 팍팍할까?”, “나는 왜 여전히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고 고아처럼 홀로 남겨진 것 같을까?” 하며 자책하는 분이 계십니까? 더 훌륭하게 헌신하고 완벽한 믿음을 증명해 내야만 하나님이 내 곁에 머무실 것이라는 율법적인 강박에 짓눌려 계시지는 않습니까?


한동일 변호사가 성경을 강독하며 남긴 묵직한 고백을 기억해 보십시오. “돌아봄과 바라봄은 한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깊어지고 나아가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일어나 가는 것입니다”. 더불어 그는 숨 가쁘게 뛰어온 삶을 멈추고 “천천히 걸으며 주위를 둘러보고 살피며 갈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은 우리가 하루아침에 결점 없는 영웅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거듭된 실패에 자책하며 웅크려 있는 바로 그 자리에 보혜사 성령께서 찾아오셔서, 내 손을 다정히 쥐고 천천히 다시 일어나 걷게 하시는 맹렬한 은총입니다. “그 날에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 주님은 우리의 완벽한 성취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내 안의 빈방을 가만히 내어드리고, 그분이 내 안에 내가 그분 안에 거하는 신비로운 연합의 은총에 곤비한 영혼을 온전히 기대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무엇인가를 증명해 내야 한다는 무거운 짐과, 고아처럼 버려졌다는 두려움을 십자가 앞에 모두 내려놓으십시오. 오직 사랑으로 우리 안에 영원히 거하시는 성령의 숨결을 밥처럼 달게 먹고 마시며, 그 은혜를 우리 일상의 아름다운 시(詩)로 성실하게 써 내려가는 복된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속이 텅 빈 ‘대나무 피리’와 같습니다. 속이 비어 있다는 것은 때로 공허함과 외로움, 고아와 같은 뼈저린 결핍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피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어떤 아름다운 소리도 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텅 빈 공간이야말로 절대자의 숨결이 가장 온전하게 머물 수 있는 완벽한 여백입니다. 참된 연주자이신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의 텅 빈 연약함 속으로 당신의 따스한 숨결을 불어넣으실 때(묵상), 비로소 우리의 고단한 삶은 세상의 슬픔을 위로하고 하늘의 넉넉한 평안을 노래하는 눈부시고도 장엄한 은혜의 선율로 울려 퍼지게 될 것입니다.


평화의길벗_라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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