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09:13-23 맹목적인 종교의 틀과 세상의 두려움을 넘어, 참된 안식과 빛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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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으로 인해 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이었던 자가 눈을 뜨게 됩니다. 그러나 이웃들은 함께 기뻐하기보다, 그날이 '안식일'이라는 이유로 그를 바리새인들에게 끌고 갑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범한 예수님을 죄인으로 정죄하는 자들과, 죄인이 어떻게 이런 기적을 행하느냐고 반문하는 자들로 분열됩니다. 치유받은 자는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당당히 고백하지만, 유대인들은 기적 자체를 부정하려 그의 부모를 소환합니다. 부모는 아들이 눈을 뜬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면 유대 공동체에서 출교당할 것이 두려워 "아들에게 직접 물어보라"며 책임을 회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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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문화적 배경 : 고대 유대 사회에서 '출교(아포쉬나고고스, ἀποσυνάγωγος)'는 단순한 종교적 징계를 넘어, 사회적·경제적 관계가 완전히 차단되는 사회적 사형 선고와 같았습니다. 치유받은 자의 부모가 느낀 두려움은 생존과 직결된 것이었습니다. 또한 병이 나으면 제사장에게 가서 정결 예식을 확인받는 것이 율법의 순서였으나, 이웃들이 회당의 권력자인 바리새인에게 먼저 데려간 것은 당시 사회가 기득권의 통제 아래 얼마나 경직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 신학·정경적 배경 : 예수님이 안식일에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것은 창세기 2장에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창조 사역'의 재현입니다. 요한복음 5장의 38년 된 병자 치유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안식일의 본래 목적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규례'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고 참된 안식(샬롬)을 주시는 것'임을 보여주시는 '안식일의 주인'(마 12:8)으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 철학·인문학적 배경 : 본문은 인간의 '확증 편향'과 '제도적 폭력'을 적나라하게 고발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신학적 틀(안식일법)을 지키기 위해 한 인간의 눈이 떠진 엄청난 생명의 기적을 무시합니다. 이는 진리보다 자신들의 권력과 체제 유지를 더 중시하는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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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6절 안식일 논쟁과 바리새인들의 분열

율법의 문자에 갇혀 생명의 기적을 정죄하는 영적 소경들의 위선을 고발하시고, 안식일의 참된 주인이자 수여자로 오신 성자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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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사람들이 눈을 뜬 사람을 바리새인들에게 데리고 갑니다.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묻자 그는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라고 사실대로 말합니다. 바리새인 중 어떤 이는 예수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고 정죄하고, 어떤 이는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런 표적을 행하겠느냐며 그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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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에서 치유를 받으면 율법에 따라 제사장에게 먼저 데려가 공동체로 복귀하도록 돕는 것이 우선임에도, 이웃들은 회당의 실세인 바리새인에게 그를 끌고 갑니다. 이는 한 영혼의 회복보다 체제의 균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당시 사회의 삭막함을 보여줍니다. 바리새인들은 치유의 기쁨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안식일 규정(진흙을 이기는 노동)'을 어겼다는 사실에만 집착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야말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참된 안식임을 행동으로 증명하셨습니다. 빛이신 예수님이 진리를 비추시자, 어둠에 속한 자들 내부에서 '분쟁(스키스마, σχίσμα)'이 일어납니다. 거짓된 평화가 깨어지고 진리를 둘러싼 거룩한 충돌이 시작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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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로 '원칙과 규정'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억압하고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 안에서도 전통이나 행정적인 절차를 지키느라, 정작 위로가 필요한 상한 영혼을 정죄하거나 소외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도의 틀을 깨고 한 영혼에게 다가가 빛을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 광양사랑의교회 공동체도 차가운 법의 잣대보다, 이웃의 회복을 진심으로 기뻐하고 함께 눈물 흘려주는 따뜻한 '긍휼의 시선'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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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절 치유받은 자의 담대한 고백

세상의 논쟁과 압박 속에서도 치유받은 자의 입술을 통해 '선지자'로 고백받으시며, 어둠을 밝히는 진리로 드러나시는 계시의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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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들이 의견을 모으지 못하자, 눈을 뜬 사람에게 다시 묻습니다.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그러자 그는 주저 없이 "선지자니이다"라고 대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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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벌한 종교 재판과도 같은 압박 속에서, 치유받은 자의 영적 시력은 육신의 시력과 함께 점점 더 밝아지고 있습니다. 앞선 11절에서는 예수님을 단지 "예수라 하는 그 사람"으로 불렀으나, 이제는 "선지자(Prophetes)"라고 고백합니다. 구약에서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적을 행하는 자입니다. 그는 바리새인들처럼 복잡한 신학적 이론이나 율법 조문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은혜의 실재(Fact)를 바탕으로,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직관적으로 깨닫고 담대히 선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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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기독교를 향해 날 선 질문을 던지고, 복음을 논리나 이념으로 공격하려 듭니다. 직장이나 일상에서 신앙을 조롱하는 이들을 만날 때 우리는 어떻게 대응합니까? 복잡한 교리 논쟁으로 이기려 하기보다, 내 삶에 찾아오사 나의 어둠을 밝혀주신 예수님의 은혜를 진솔하게 간증하십시오. "내가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 내 삶의 절망이 소망으로 바뀌었습니다"라는 체험의 고백이야말로 세상의 어떤 철학보다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오늘 내가 만난 주님, 내 눈을 열어주신 선지자 되신 예수님을 당당하게 자랑하는 성도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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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19절 유대인들의 의심과 부모 소환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명백한 진리조차 의심하고 부정하려 애쓰는 타락한 인간의 완악함을 꿰뚫어 보시는 전지하신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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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그 사람이 날 때부터 맹인이었다가 보게 된 사실 자체를 믿지 않으려 합니다. 결국 그들은 그의 부모를 불러다 묻습니다.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났다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해서 보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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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과 신학적 신념을 위협하는 진리를 마주하자, 사실 자체를 조작하고 부인하려는 병적인 완악함을 드러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았다는 자신들의 결론을 정해놓고, 기적이 조작되었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부모를 소환한 것입니다. 눈앞에 찬란한 생명의 빛이 비치고 있음에도, 탐욕과 교만으로 인해 스스로 눈을 가려버린 '영적 소경'들의 비참한 실상입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외면하면, 결국 이성적 판단마저 마비되어 진리를 부정하는 어둠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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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도 정치적 진영 논리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 명백한 진실을 외면하고, 오히려 피해자를 추궁하며 책임을 전가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우리 안에도 내 생각과 다르면 진리조차 거부하려는 '확증 편향'의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내 경험, 내 지식, 내가 가진 알량한 지위가 예수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나의 편견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주님이 행하시는 새 창조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찬양하는 열린 마음을 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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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절 두려움에 사로잡힌 부모의 회피

출교의 두려움 앞에 자식마저 외면하는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고, 홀로 십자가의 길을 가시며 참된 구원을 완성하시는 긍휼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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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그가 자기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보게 되었는지,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그가 장성하였으니 그에게 물어보소서"라며 책임을 회피합니다. 요한은 부모가 이렇게 말한 이유가, 유대인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누구든지 출교하기로 결의하였기에 그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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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예수님이 아들의 눈을 뜨게 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출교(유대 공동체에서의 완전한 매장)'라는 거대한 체제의 폭력 앞에서 극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내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은 내 삶의 정체성을 찾는 매우 중요한 일임에도, 부모는 생존의 위협 앞에서 신앙의 고백은 물론, 자식을 향한 부모의 보호 본능마저 포기한 채 아들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이는 억압적인 체제 아래서 진리를 증언하지 못하는 인간의 뼈아픈 연약함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동시에 참된 신앙은 세상이 주는 두려움의 경계를 넘어설 때 비로소 완성됨을 역설적으로 교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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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비겁함을 쉽게 정죄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좁은 지역 사회나 직장 문화 속에서, '튀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거나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 내가 그리스도인임을 숨기거나 진리 앞에서 침묵한 적은 없습니까? 불의한 관행 앞에서 "나만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의 권력과 왕따의 두려움보다, 우리의 생사화복을 쥐고 계신 하나님을 더 경외해야 합니다. 세상의 출교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훗날 예수님은 회당에서 쫓겨난 이 아들을 친히 찾아가 만나주시고 안아주십니다(9:35). 진리를 위해 세상에서 밀려날 때, 주님은 당신의 영원한 품으로 우리를 영접해 주십니다. 이번 한 주, 두려움을 이기고 가정과 일터에서 예수님을 나의 주로 당당히 시인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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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사랑과 긍휼이 한이 없으신 하나님 아버지, 

어둠 속에 갇힌 불쌍한 영혼에게 다가가 

진흙을 이겨 생명의 빛을 주신 예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찬양합니다. 

주님, 우리는 눈을 뜨고 있다고 하면서도, 

바리새인들처럼 나의 알량한 경험과 율법적인 잣대로 

이웃을 정죄하고 주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영적 소경이었음을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또한 치유받은 자의 부모처럼 

세상의 따돌림과 불이익이 두려워 진리 앞에 침묵하고, 

주님을 모른 척하며 살았던 비겁함을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 주시옵소서.

이제는 제도의 틀과 기득권을 지키기보다 

한 영혼이 살아나는 것을 함께 기뻐하는 

따뜻한 심장을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세상의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내 삶에 행하신 주님의 아름다운 은혜를 담대하게 증언하는 

거룩한 용기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 모든 장년 성도들이 세상의 출교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주님의 품에 안기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삼아, 

오늘 하루도 빛의 자녀답게 당당히 걸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참된 안식이요 영원한 빛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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