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03:22-36 하늘로서 오신 신랑, 성령을 한량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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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에서 세례를 베푸실 때, 세례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유대인과 정결 예식에 대해 변론하다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가는 것을 보고 요한에게 불평합니다. 이에 세례 요한은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고 하며, 자신은 신랑의 친구로서 신랑(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것으로 기쁨이 충만하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위대한 선언을 남깁니다. 이어지는 본문은 위로부터 오시는 예수님의 신적 기원과 절대적 권위, 그리고 아들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영생을 확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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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지리적 배경 : '애논(Aenon)'은 '샘들'이라는 뜻으로 물이 풍부한 곳이었습니다. 당시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사역 시기가 잠시 겹쳤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구속 사역을 점진적으로 이양하시는 섭리였습니다.
# 문화적 배경 : 유대 결혼 풍습에서 '신랑의 친구(shoshben)'는 결혼식을 준비하고 신랑과 신부를 연결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신랑이 신부를 맞이하여 기뻐하는 소리를 들을 때, 친구의 임무는 완성되고 그는 기쁨으로 무대 뒤로 물러납니다.
# 신학적 배경 : 본문은 예수님을 '위로부터 오시는 이', '하나님이 보내신 이'로 묘사하며 그의 신적 기원(선재성)을 강조합니다. 34절의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은 예수님이 성령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완벽하게 대언하심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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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23절 함께 사역하는 현장 : 유대 땅과 애논에서 각각 세례를 베푸시며 구원 사역을 펼치시는 주권자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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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십니다.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는데,곳에 물이 많아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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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사역이 공존하는 시기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유하시며(diatribō - 시간을 보내다)' 사역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제자들과 깊은 교제를 나누시며 사역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요한도 자신의 사명이 다할 때까지 충실히 사역을 감당합니다. 두 사역의 공존은 경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의 협력과 계승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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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회 안에서도 여러 모임과 사역들이 동시에 진행됩니다. 때로는 다른 부서가 더 주목받거나 부흥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경쟁자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입니다. 내가 있는 자리, '물이 많은 애논'과 같은 나의 일터와 가정에서 묵묵히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오늘 나에게 맡겨진 영혼들에게 세례(복음)를 베푸는 성실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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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26절 비교와 시기심의 발단 : 인간적인 비교 의식과 시기심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 가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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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제자들과 한 유대인 사이에 정결 예식에 대한 변론이 일어납니다. 그 후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예수)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라고 불평 섞인 보고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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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결 예식'에 대한 논쟁은 당시 세례의 효력과 권위에 대한 논쟁이었을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스승의 권위가 떨어지고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가는 현상(인기 하락)에 대해 위기감과 시기심을 느꼈습니다.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라는 표현 속에는 과장된 질투와 스승을 위하는 척하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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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사역이나 직장 생활에서 우리는 종종 '숫자'와 '인기'로 평가받는 세상의 기준 때문에 힘들어합니다. "저 집사님 구역은 사람이 많은데, 우리 구역은 왜 이럴까?", "저 사람은 승진했는데 나는 뭔가?" 이런 비교 의식은 사탄이 주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사람의 숫자'에 머물면 시험에 들지만, '하나님의 섭리'에 머물면 자유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몰리는 곳이든 흩어지는 곳이든 주님이 계신 곳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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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28절 하늘에서 주신 사명 : 모든 권세와 직분이 하늘로부터 주어짐을 알게 하시고, 각자에게 합당한 사명을 주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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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 대답합니다.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증언한 것을 기억하라고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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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자신의 위치와 한계를 명확히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흥왕하는 것도, 자신이 쇠하여가는 것도 모두 '하늘(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는 자신이 '주인공(그리스도)'이 아니라 '조연(보내심을 받은 자)'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겸손이자 소명 의식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찾았기에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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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내가 주인공'이 되려는 유혹 속에 삽니다. 그러나 성도는 주님을 빛내기 위해 부름받은 '반사체'입니다. 가정에서 부모로서, 직장에서 상사나 부하로서, 교회에서 직분자로서 내 위치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내가 높아지려 하기보다, 나에게 주신 분복(分福)을 인정하고 그 자리에서 충성할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내게 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라는 고백이 우리 안에 회복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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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30절 신랑의 친구가 누리는 기쁨 : 우리의 참 신랑이 되시며, 우리가 그분의 흥왕하심을 통해 기쁨을 누리게 하시는 영광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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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런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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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예수님을 '신랑'으로, 자신을 '들러리(친구)'로 비유합니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랑과 신부입니다. 친구의 기쁨은 신랑이 돋보일 때 완성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dei auxanein - 반드시 ~해야 한다)"라는 표현은 단순한 양보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적극적인 순종과 열망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높아지는 것을 자신의 실패가 아니라 자신의 사역의 성공으로 여겼습니다. 이것이 성숙한 사역자의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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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흥하시는 것이 나의 기쁨입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길 원합니다.
우리 교회가 부흥하고 다음 세대가 일어나는 것을 볼 때, 기성세대는 기꺼이 그들을 위해 자리를 내어주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나보다 더 잘되고, 무엇보다 예수님을 잘 믿는 자녀로 성장한다면 부모인 나는 좀 쇠하여져도 괜찮다는 마음, 그것이 참된 부모의 마음입니다. 나의 자존심이 꺾이고 예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그 지점에서 참된 기쁨을 맛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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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34절 위로부터 오시는 이의 탁월성 : 위로부터 오셔서 만물 위에 계시며, 성령을 한량없이 받아 하나님의 참된 말씀을 전하시는 진리의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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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십니다.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의 것을 말하지만,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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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세례 요한의 증언일 수도 있고 저자 사도 요한의 신학적 해설일 수도 있습니다. 핵심은 예수님의 '기원'이 땅이 아닌 '하늘'이라는 것입니다. 땅에 속한 인간(요한 포함)은 땅의 한계 안에서 말하지만, 예수님은 하늘의 실체를 친히 보고 증언하시는 분입니다. 특히 34절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을 보여줍니다. 성부께서 보내시고, 성령을 무한히 부어주심으로, 성자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완벽하게 전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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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땅의 논리와 세상의 가치관(부동산, 주식, 성공 등)에 익숙합니다. 그러나 위로부터 오신 예수님의 말씀은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땅의 소리가 아니라 하늘의 소리(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세상의 뉴스는 우리를 불안하게 하지만, 위로부터 오신 주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참된 평안과 살길을 열어줍니다. 내 생각(땅의 것)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하늘의 것)을 붙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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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36절 아들에 대한 태도와 영원한 운명 : 만물을 아들의 손에 맡기시고, 아들을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며 순종치 않는 자를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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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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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만물의 통치권을 아들 예수님께 위임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운명은 '아들과의 관계'에 달려 있습니다. 여기서 '믿는 자(pisteuōn)'와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apeithōn)'가 대조됩니다. 참된 믿음은 곧 순종임을 보여줍니다. 영생은 죽어서 가는 천국뿐만 아니라 지금 여기서 누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반대로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meno - 현재 지속형)' 있습니다. 심판은 미래의 사건이기도 하지만, 불신앙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생명에서 끊어진 진노의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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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믿는 것은 취미 생활이 아니라 생사가 달린 문제입니다.
나는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습니까? 믿는다고 하면서 순종이 없다면 내 믿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아직 아들을 순종치 않아 하나님의 진노 아래 머물러 있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영생의 길을 제시하는 것은 가장 시급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영생을 현재 누리는 기쁨을 얼굴과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강력한 전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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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세례 요한의 고백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은 더 높아지고 더 가지라고 말하지만,
주님은 세례 요한을 통해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겸손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 우리 안에 있는 시기심과 비교 의식을 제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드러나기보다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가정과 일터,
우리 교회에서 높임을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신랑 되신 주님의 친구로서,
주님이 영광 받으실 때 가장 크게 기뻐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위로부터 오셔서 우리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주시는 주님,
땅의 것에 매여 살아가는 저희에게
하늘의 생명과 지혜를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아들을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음을 확신하며,
날마다 말씀에 순종함으로 그 영생을 풍성히 누리게 하옵소서.
아직도 진노 아래 머물러 있는 이웃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생명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신랑 되시며 참 기쁨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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