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03:01-15 하늘에서 내려와 나무에 들림으로,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는 인자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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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이자 유대인의 지도자인 니고데모가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는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생임을 인정하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도전하십니다. 니고데모가 물리적인 재탄생을 묻자,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나는 영적 원리를 바람에 비유하여 설명하십니다.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그에게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인자'임을 밝히시며,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자신도 십자가에 들려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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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문화적 배경 :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자 '유대인의 관원(산헤드린 공회원)', 그리고 '이스라엘의 선생'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사회의 최고 지성인이자 종교적 엘리트였으나,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여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밤'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영적 어둠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 신학적 배경 : 본문의 핵심인 '거듭남'은 헬라어로 '아노덴(anothen)'인데, 이는 '다시(again)'라는 뜻과 '위로부터(from above)'라는 이중적 의미를 가집니다. 예수님은 이 단어를 통해 땅의 출생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적 출생을 강조하십니다. 또한 '물과 성령'은 에스겔 36:25-27의 예언(맑은 물로 씻고 새 영을 부어줌)을 배경으로 하여, 죄 씻음과 내적 갱신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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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절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 : 표적을 통해 예수님을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으로 인식하지만, 아직 온전한 믿음에는 이르지 못한 채 밤중에 찾아온 구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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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이요 유대인의 지도자인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께 와서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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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데모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존경받는 위치에 있었으나, 그의 영혼에는 해결되지 않은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그가 '밤'에 왔다는 것은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한 것이기도 하지만, 상징적으로 그가 아직 '빛'이신 예수님을 온전히 만나지 못한 영적 어둠의 상태임을 보여줍니다. 그는 예수님을 '선생'이나 '표적을 행하는 자' 정도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표적을 보고 믿는 피상적인 믿음에 자신을 의탁하지 않으십니다(2:23-25). 참된 신앙은 예수님을 단순한 선생이나 기적을 행하는 분으로 인정하는 것을 넘어, 나의 구원자로 영접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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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우리도 니고데모처럼 사회적 지위나 교회 직분(집사, 장로, 권사)이라는 옷을 입고 있지만, 내면에는 남모르는 영적 어둠과 고민을 안고 있지는 않습니까? '모태 신앙'이나 '오랜 신앙생활'이 구원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체면 때문에, 혹은 바쁜 일상 때문에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미루고 '밤'에 머물러 있다면, 지금이 바로 주님 앞에 솔직하게 나아갈 때입니다. 예수님은 밤중에 찾아온 니고데모를 물리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지위나 체면을 내려놓고 주님 앞에 단독자로 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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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절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리라 : 육적인 출생을 넘어, 물과 성령으로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게 하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하시는 재생(변화)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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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니고데모의 칭찬에 답하는 대신 단도직입적으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선언하십니다. 늙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나냐는 질문에,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시며,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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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나다(gennao anothen)'는 '위로부터 태어나다'는 뜻입니다. 이는 인간의 노력이나 수양, 종교적 열심으로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는 창조적 사건을 의미합니다. '물과 성령'은 에스겔서의 예언처럼 죄를 씻어 정결케 하고(물), 새 마음과 새 영을 부어주는(성령) 사역을 가리킵니다. 육적인 혈통이나 가문이 하나님 나라의 입장권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을 통한 전적인 신분의 변화, 즉 영적 출생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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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신앙생활을 '도덕적인 개선'이나 '교양 있는 삶' 정도로 착각하곤 합니다. 술 담배를 끊고, 착한 일을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본질이 바뀌어야 합니다. 이것은 내 힘으로 불가능하기에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 '등록 교인'은 많으나 진정으로 '거듭난 성도'는 얼마나 될까요? 우리 가정을 돌아봅시다. 자녀들이 교회 학교에 다니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그들이 인격적으로 성령님을 만나 거듭남의 체험을 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매일 성령 안에서 새 생명으로 호흡하고 있는지 점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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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절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 : 임의로 불되 소리는 들리나 근원을 알 수 없는 바람처럼, 주권적이고 신비로운 방식으로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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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다고 비유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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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프뉴마(pneuma)'는 '성령'과 '바람'이라는 두 가지 뜻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그 존재와 힘을 압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는 사역은 인간이 조종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속한 신비입니다. 우리는 성령이 언제, 어떻게 역사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거듭난 사람의 삶에서 나타나는 변화(열매)를 통해 그 역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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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논리와 이성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 일들을 만납니다. 특히 한 영혼이 변화되는 일은 우리의 설득이나 프로그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바람처럼 임하시는 성령님의 주권적인 역사입니다. 전도 대상자나 변화되지 않는 남편, 자녀를 보며 낙심하지 마십시오. 바람이 불면 견고한 성도 흔들립니다. 우리가 할 일은 바람이 불기를 기다리며 닻을 올리는(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바람이 우리 교회와 가정에 불어오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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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2절 땅의 일과 하늘의 일 : 땅의 지식에 머물러 하늘의 일을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와, 하늘에서 내려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시는 참된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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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데모가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도 알지 못하느냐고 책망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는데 너희가 받지 않는다고 하시며, 땅의 일을 말해도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믿겠느냐고 반문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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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고데모의 무지는 당시 유대교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그들은 율법 지식에는 정통했을지 몰라도 영적인 세계에는 무지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기에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십니다. '땅의 일'은 앞서 말한 거듭남의 원리(바람의 비유 등)를, '하늘의 일'은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 계획과 독생자의 십자가 사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기본적인 영적 원리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완고함은 더 깊은 진리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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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경 지식이 많거나 직분이 높다고 해서 하나님을 잘 안다고 자부해서는 안 됩니다. 겸손히 성령의 조명을 구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의 선생'이라도 영적 맹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지식과 스펙은 쌓아가면서 정작 하늘의 비밀인 복음에는 무지한 현대인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말씀을 머리로만 분석하려 하지 말고,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님의 증언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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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15절 뱀처럼 들려야 할 인자 : 광야의 놋뱀처럼 나무에 달려(십자가) 죽으심으로, 이를 믿는 자들에게 멸망 대신 영생을 주시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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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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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락은 거듭남의 방법, 즉 구원의 근거를 제시합니다. '인자(Son of Man)'는 다니엘 7장의 영광스러운 메시아 칭호이지만, 요한복음에서는 고난받고 죽임당하는 모습과 연결됩니다. '들려야 하리니'는 십자가에 매달림(죽음)과 영광스럽게 높여짐(부활/승천)을 동시에 뜻하는 중의적 표현입니다. 민수기 21장의 불뱀 사건에서 놋뱀을 쳐다본 자가 살았던 것처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는 누구든지 영생을 얻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는(믿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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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불뱀(죄와 고통, 실패, 질병)에 물려 신음하고 계십니까? 해결책은 내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을 들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쳐다본즉 살리라"는 말씀은 오늘도 유효합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높이 들리신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참된 치유와 영생을 주십니다. 오늘 하루, 나의 시선을 땅의 문제에서 돌려 십자가 위의 예수님께 고정하십시오. 거기에 생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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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둠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두운 밤, 길을 잃은 니고데모처럼 답답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을 때가 많은 저희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저희의 종교적 열심이나 직분, 

세상의 지위가 구원을 줄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오직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음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권적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바람이 

지금 우리 심령과 가정, 우리 교회 위에 불어오게 하옵소서. 

굳어진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영적인 눈을 뜨게 하사 하늘의 일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광야에서 불뱀에 물려 죽어가던 자들이 놋뱀을 보고 살았던 것처럼, 

죄와 세상의 근심에 눌린 저희가 믿음의 눈을 들어 

십자가에 높이 들리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우리를 위해 하늘 영광 버리고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그 사랑을 의지하여 영생을 누리게 하시고, 

이제는 땅의 일에 매여 사는 자가 아니라 

하늘의 생명을 소유한 자답게 

세상에 생명의 빛을 전하며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참된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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